# 152
152화 도사네, 도사야
“제가 너무 몰랐던 거죠. 의욕만 앞섰던 겁니다.”
강형우가 그렇게 말하는데, 마침 손님들이 들어왔다.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빠르게 자리가 채워졌던 것이다.
그러자 공지혜와 최민지, 은선경이 주문을 받는다고 정신없이 돌아다녔다.
“죄송합니다, 시간이 돼서. 어떻게 주문부터 하시겠습니까?”
강형우가 묻자 두 사람은 서로 눈치를 살피더니 곧 하와이안 돈가스 하나와 라면에 김밥 두 줄을 시켰다.
공지혜가 주문을 받아가자 강형우는 다시 말을 이어나갔다.
“막상 커피를 팔려고 하는데, 제가 아는 게 없더라고요. 무작정 일만 하다 보니 카페 같은 데 갈 시간도 없었고, 아포카토인가? 아이스크림에 커피 부어 먹는 거? 그런 게 있다는 걸 한 달 전에 처음 알았습니다.”
“예? 정말요?”
“예. 전 카페 가도 그냥 아이스 아메리카노나 마셨지, 무슨 프라푸치노니 돌체 라떼니 하는 것도 몰랐고요. 사이즈도 그란데, 벤티 하는데 이해를 못 했거든요.”
김송희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21세기 폰으로도 음식 배달시키는 시대에, 정글에서 막 튀어나온 원시인을 보는 시선이랄까?
진짜 그런 게 있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쑥스럽다는 듯 고개를 살짝 숙였다.
“그런 사람이 커피 판다고 하니 시작부터 막막했습니다. 그러다 알아보니, 여기서 쭉 나가면 큰길 바로 앞에 있는 카페 사장님이 대단한 실력자라고 듣게 됐습니다.”
“아, 거긴… 커피 맛있죠. 좀 비싼 게 흠이지만.”
“저도 마셔보니까 확실히 다르더라고요. 모모라고 거기서 몇 년 배워서 자격증 따서 독립하신 분이라는데, 아주 유명하다고 합니다. 그래서 거기 사장님한테 찾아가 부탁을 했습니다.”
우리 손님들한테는 좋은 거 해주고 싶다.
근데 내가 아는 게 없다.
맛있는 커피를 팔고 싶은데 가르쳐 주시면 안 되겠느냐?
그 긴 설득 끝에 카페 사장님은 약간의 조건을 달고 흔쾌히 허락했다.
“문제는 제가 완전 초짜라는 겁니다. 이게 하루 이틀 배워서 될 일도 아니고, 무슨 용어들이 전부 꼬부랑 말인지 도통 알아먹지 못하겠더라고요.”
그 하소연에 여자들이 처음으로 가볍게 웃었다.
덩치는 곰 같은 사람이, 겨우 커피 때문에 어려워하는 게 색다르게 느껴진 모양이었다.
“결국 사장님한테 빌었습니다. 원두도 잘 모르고 하니 사장님이 배합해 주시는 대로 팔겠습니다. 그랬죠.”
물론 공짜는 아니었다.
강형우는 사장님이 음식 시키시면 무료로 배달해 주겠다. 아니면 내킬 때 오시면 제대로 대접해드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장님은 거절하셨다.
대신 조건을 건 게, 하와이안 돈가스와 소스 만드는 법을 가르쳐 달란다. 자기 가족이 지성분식의 단골손님 중에 하나라는 것이다.
강형우가 매달린 걸 받아들인 이유도 그거였단다.
“카페에서 파는 일은 없을 거라고 하시더라고요. 게다가 곧 부인 생일이라서 서프라이즈가 필요하다고 해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그래서, 거기서 받아 쓰기로 해서 커피 가격이 비쌌던 건가요?”
“예. 사실 그것도 충분히 설명 못 드린 게 저희 잘못이 맞습니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가 있는데, 저희 가게는 보시다시피 분식집이잖아요.”
두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분위기는 아까와 달랐다. 벽을 치고 경계하던 눈빛이 아니라 많이 동조하는 느낌까지 들었다.
“솔직히 많이 안 남습니다. 라면 하나 팔아봐야 오백 원, 천 원 겨우 남는데 인건비 생각하면 가능하면 손님들 많이 받아야 하거든요. 그런데 커피 팔면 그게 어려워집니다.”
“그야, 커피만 마시려고 오는 게 아니니까요.”
“예. 맞습니다. 커피 마시면서 이야기도 좀 하고, 바쁜 일과 중에 잠시나마 여유도 즐기고 하는 거죠.”
강형우가 맞장구를 치니 두 사람도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제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그렇게 하려고 했던 겁니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어쩌다 보니 사회 고발 프로그램 사회자의 말투가 나왔다.
그만큼 강형우의 얼굴은 진지했다.
“제가 참 멍청했더라고요. 그냥 배합한 원두 받아서 커피 내리면 되겠지 했는데, 환경을 생각하지 못한 겁니다.”
원두는 보관 상태에 따라 맛이 천차만별로 변한다.
가장 중요한 건, 공기 중의 노출 상태와 습기였다.
건조한 장소에서 밀폐 용기에 소분해서 보관하는 게 정답이란다.
문제는, 분식집이나 일반 식당 주방이 그런 환경이 못 된다는 거였다. 종일 지지고, 볶고, 끓이고, 삶고 해야 하니 항상 습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틀 동안 비가 엄청 왔지 않습니까? 그래서 원두를 확인해 보니까 대부분 습기를 심하게 먹은 데다가, 썩었다고 해야 하나? 하여간 판매할 수준이 못 되더라고요. 전문가들은 어떻게 살리는 방법이 있다고는 하는데…….”
“아, 그래서 커피 안 된다고 하신 거군요.”
“예. 그런 것도 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까 오히려 안 파는 게 맞겠더라고요.”
“예에?”
“그게 무식한 놈이 열의만 앞서서 일을 벌인 것도 있습니다만, 차마 원두한테 미안해서 못 하겠더라고요.”
좀 표현이 황당했나 보다.
특히 김송희는 자신이 잘못 들었는지 확인하기 위해 친구에게 눈짓까지 했었다.
“상태 안 좋은 걸 어떻게 팔겠습니까? 버려야죠. 그게 손해만 거의 백만 원인데…….”
“배, 백만 원요?”
“예. 손님이 많으니까 일주일이면 그 정도는 팔 수 있을 거라 생각해서 좀 넉넉히 받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팔겠다고 하니 드시는 분이 거의 없더라고요.”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저었다.
순간, 찔리는 게 있는지 김송희도 시선을 슬쩍 돌렸다.
사실 나름 고급 원두 가루였다.
거기에 유명한 바리스타가 공들여 배합을 했기에 절대 저렴한 가격에 들여올 수 없었다. 물론 금액에 대한 건 약간의 뻥이 더해졌지만, 어느 정도는 사실이었던 것이다.
“앞으로도 원두 보관 못 하면 계속 버려야 할 건데, 손해가 늘 게 뻔하지 않습니까? 또, 제대로 관리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개인이 하는 거면 모를까, 이 역시도 장사였다. 손님에게 팔려면 항상 균일한 품질이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설명하니 김송희도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 주문했던 음식이 나왔다.
하와이안 돈가스와 라면과 김밥이 놓이자 강형우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강형우가 주방으로 들어간 뒤, 곧 커피 두 잔을 가지고 나왔다.
“상태 괜찮은 걸로 한 거라서, 맛은 제가 보장할 수 있습니다.”
“근데, 사장님 이거 너무 큰데요?”
김송희가 그런 말을 하는 이유는 있었다.
카페에서 시키는 제일 큰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있었다. 그거보다 2, 30% 정도가 많아 보였던 것이다.
“하하, 제가 덩치가 있다 보니 손이 좀 큽니다. 서비스니까 편하게 드세요.”
“예?”
“지금 있는 거 서비스로 다 드리려고요. 어차피 팔기는 걸렀고 해서, 찾으시는 분들한테는 다 떨어질 때까지 그냥 드리기로 했습니다.”
강형우가 웃으면서 이야기하자, 김송희와 친구는 미안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때 준비된 피니쉬를 날렸다.
“그리고 이건 쿠폰입니다. 이거 가지고 저 밑에 카페 가시면 한 잔당 천 원 할인될 겁니다.”
“진짜예요?”
“예. 카페 사장님하고 합의를 봤습니다. 저희 가게 손님들이 원하면 쿠폰 드리고, 서로 오백 원씩 나눠서 내는 걸로 하기로 했습니다.”
식당이 주차장과 제휴하는 것과 비슷한 거였다.
사실 밑에 카페는 커피 맛으로는 유명했지만 가격이 비싼 편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들어가는 비용이 의외로 많아서였다.
하지만 카페 사장은 강형우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지성분식에 손님이 많다는 건 익히 알려진 사실이었다. 게다가 1만 원 이상 식사할 경우에만 쿠폰을 주기로 했고 서로 나눠 내는 거라 부담이 덜하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럼 맛있게 드세요.”
강형우가 물러나자, 김송희는 잠시 주저하더니 커피를 맛봤다.
쌉싸름하고 약간 시큼했다. 게다가 진하기도 했으며 뭔가 풍미 같은 게 느껴졌다.
맛을 보던 김송희가 말했다.
“이거, 꽤 좋네?”
멀리서 그 목소리를 들은 강형우는, 마음 편히 웃을 수 있었다.
***
“하~ 그래도 다행이네.”
강형우는 진짜 한시름을 놓았다.
주혁 형과 찐득하게 술을 마신 다음 날, 정말 예상대로의 글들이 올라왔다.
일종의 복수라고 해야 하나?
맘 카페에 몇 개의 글들이 올라와서 지성분식을 비토하는 분위기가 생겼던 것이다.
그중에 몇몇 리플들은, 커피 시켜놓고 하루 종일 죽치고 있겠다는 거였다. 점심시간 때, 테이블 절반만 차지하고 있어도 매상이 반토막 날 거라면서 말이다.
정말이지 그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그 집요함이 충격적이었다.
솔직히 우리가 뭘 잘못했다고 그렇게까지 하는 건지,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하기 어려웠다.
하지만 주혁 형이 그랬다.
손님은 그런 거 모른다.
네가 얼마나 고생하는지, 이 가게에 목숨 걸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를 전혀 생각하지 않는단다.
확실히 그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그래서 강형우는 꽤나 고민을 해야 했다.
물론 해답 비슷한 걸 듣기는 했다.
“인간적으로 다가가야지.”
“예?”
“진상 개꼬장 손님도 사람이다. 내 경우에는 진솔하게 다가가서 이야기하니까 어느 정도는 해결이 되더라고.”
강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매운탕을 덜어 밥까지 말았다.
그걸 본 강형우도 배가 고파 따라하면서 물었다.
“진짜 될까요?”
“한 90%는 되더라. 특히 젊을수록 확률이 높고.”
“그래도 안 되면요?”
“그건 그때 가서 처리하면 되는 거고, 방법이야 많지. 다른 가게로 넘기든가, 그 손님 지인들 이용해서 천하의 개쓰레기로 만들어 버리든가…….”
설명을 듣는데, 정말 무시무시했다.
진짜 나중에는 조폭 동원해서 두들겨 패서 병신 만들어버린다는 말까지 나왔으니까.
물론 농담처럼 말했지만, 눈빛만은 정말 무서웠다.
“너도 인마, 그 정도 각오는 가지고 있어야지. 손님한테 밀리면 장사 망해. 돈 수천만 원 날아가고, 길바닥에 나앉는다고. 독해지란 말이야.”
“예.”
“어쨌든 서로 이야기하면 잘 풀릴 거야. 아니, 그럴 수밖에 없지.”
“진짜요?”
“야. 생각해 봐. 너네 가게 와서, 니 인상 보고도 진상 부렸으면, 다른 가게에서는 얌전했겠냐? 벌써 싸우고 쫓겨났지?”
“헐.”
생각해 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강주혁은 소주 한 잔을 들이켠 뒤, 피식 웃었다.
“보통 그러는 건, 자기 좀 봐달라는 아우성이다. 다 쫓겨나서 이제 마음 편히 갈 데가 없다는 거야. 그러니까 너네 분식집에 더욱 집착하는 거고.”
“해석이… 그렇게 돼요?”
강형우가 얼떨떨해하는데, 강주혁은 자신 있게 말했다.
“야, 사람 사는 거 다 똑같지. 외로우니까 좀 봐달라, 도와달라, 해달라는 거잖아. 그러니까 손님을 적으로 만들지 말고 내 편으로 끌어들여.”
그 말을 끝으로 같은 이야기는 더는 이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강형우는 거기에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도사네, 도사야.”
진짜 진심을 담아, 존경하고 싶다는 마음이 무럭무럭 자라났다. 맘 카페에 올라오던 지성분식에 대한 글의 분위기가 완전히 바뀌었던 것이다.
특히 욕을 많이 하던 아이디 상당수가 호의적으로 돌아섰다.
강형우가 진심으로 하소연을 한 뒤로 말이다.
물론 그것만 한 건 아니었다.
아마 커피만 한 백 잔 정도가 서비스로 나갔을 거다. 게다가 카페 사장님이 연락이 와서 찾아갔더니, 지출 역시 예상외로 늘어날 것 같았다.
대충 계산하니까 일주일에 칠팔만 원 정도는 나갈 것 같았다.
하지만, 그 돈이 아깝지 않았다.
이번 일로 그 이상의 깨달음을 얻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