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149화 (149/251)

# 149

149화 주문하시겠어요

커피, 커피.

아주 노이로제에 걸릴 지경이었다.

애초에 원인은, 손님들 부탁을 다 들어줬던 신원이 형에게 있었다. 그리고 그걸 악용한 되먹지 못한 인간들이 가장 큰 문제였다.

특히 지성분식으로 바뀌었음에도 신원이 형의 모습이 보였기에, 그때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계속해 달라고 졸라댔다.

진짜 상식 이하의 사람들 같으니라고.

무엇보다, 지성분식 오픈한 지 벌써 7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그렇게 안 된다고 했다.

메뉴판에 없는 건 주문이 안 됩니다. 양은 정량 이상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필요한 건 정식으로 주문하시고 계산하시면 됩니다.

그렇게, 안 된다고 단호히 말했다.

그럼에도 지금까지 커피 이야기를 줄기차게 꺼내는 건, 니들이 언제까지 버티느냐 보자는 거였다. 말 그대로, 싸우자는 소리였던 것이다.

하지만 장사하는 입장에선 무조건 시비를 피해야 했다.

때문에 정중히 안된다고 사과하는 방법밖에는 없었다.

어쩌면 저들은, 그걸 보고 싶어서 그 지랄을 하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게 버티는데, 진짜 잊을 만하면 뭐 해달라, 뭐 좀 바꿔달라, 뭐 좀 주면 안 되느냐, 인심이 야박하다.

등등의 이야기를 수시로 꺼냈다.

그래도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막말이 들리기 시작했다.

누군 주고, 누군 안 주냐? 내가 어떤 사람인지 아느냐? 소문내서 가게 문 닫게 해줄까?

왜 내가 하라는 대로 안 하느냐?

그렇게 장사하면 망한다.

까지, 아주 협박이란 협박은 다 들어야 했다.

진짜 장사하면서 세상에 이렇게 미친놈들이 많다는 걸 깨닫게 된 것이다.

어쩌면, 장백호의 기억 속에서 튼튼한 정신력을 얻어내지 않았다면 벌써 스트레스로 쓰러졌을 거다.

그 정도로 무개념한 인간들이 넘쳐났으니까.

하지만, 주혁이 형이 그랬다.

사장은 절대 손님들하고 싸워서는 안 된단다.

아주 좆같고, 지랄 같고,  패죽이고 싶은 원수라도 손님으로 온 이상은 절차에 따라 접대하는 게 맞다고.

정 화를 참기 어려우면, 차라리 밖에 나가서 싸우란다.

아니면, 뒤쫓아가서 으슥한 골목으로 들어갈 때 마주치라고 했다.

그래야 찍, 소리도 못 한다나?

어쨌든 지금까지는 잘 참아왔다.

이제 지성분식은 이 동네에 확실하게 자리를 잡았고, 수익도 안정적으로 나오고 있었다. 약간의 잡음과 헛소문에 흔들릴 수준은 넘어선 것이다.

무엇보다, 그동안 고생고생해 가며 만든 든든한 단골들이 있었다.

미희 친구들부터, 그 어머님들 모임에, 아파트 단지 부녀회까지 우리 가게 팬이었다.

지성분식 앞 큰길 쪽의 사무실 사람들도 세심히 챙겨서 단골로 만들었다.

바로 옆 상가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원래라면 안되는데, 손님이 몰려 가게가 꽉 차면 배달도 해주었던 것이다.

특히 미용실 사장님의 경우, 음식 먹고 설거지까지 해서 주더라. 또, 옆 편의점 사장님은, 가끔 직원들 숫자대로 아이스크림을 주기도 했었다.

나름 이웃 간의 정이라고나 할까?

어쨌든 길고도 긴 시간, 지성분성은 이름 그대로 지성을 다해 손님들을 맞이했다.

그 결과, 이제 준비가 끝났다.

악질 손님들을 내쫓을 때가 된 것이다.

“커피 주문하시겠어요?”

최민지가 웃으면서 묻자 여자 손님들이 당황해했다.

그중에, 김송희는 인상을 찌푸렸다.

처음에는 만만한 카페였다.

잘생긴 사장님 놀리는 재미도 있었고, 이것저것 시키는 것도 나름 즐거움이었다. 그래서 단골이 됐고 아주 편하게 이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갑자기 가게가 분식집으로 바뀌었다. 그래도 사장이 그대로 있으니 이전과 같은 대접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었다.

무엇보다 손님은 왕이다. 그러니 자신의 소소한 부탁(?) 정도는 어렵지 않으리라.

그렇게 생각해서 커피 한 잔 달라고 했다.

하지만 단호하게 거절당했다. 친구한테 잘 아는 가게라고, 다 된다고 호언장담했다가 대차게 까인 것이다.

심지어 사장(?)까지 아는 척을 안 해주니 심통이 났다.

그게 괘씸했다. 이제는 안 된다는 걸 확실히 알고 있지만, 기분이 나빴던 것이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건, 자신이 요구할 때마다 죄송하다며 사과한다는 거였다.

그랬는데…….

“커피 주문하시겠어요?”

“예?”

“저희 가게 리모델링하면서, 카페도 겸하기로 했거든요. 여기 메뉴판 뒤쪽에 보시면 나와 있습니다.”

김송희는 당황해하며 친구를 쳐다봤다.

그건 친구도 마찬가지였다.

“이번에 커피 머신도 교체했고요. 공정무역 원두를 들여와서 로스팅을 하는데…….”

최민지는 교육받은 대로 열심히 설명을 했다.

물론, 실제와는 약간의 차이는 있었다.

강형우는 고민 끝에 근처 카페 사장님과 딜을 했다.

가게에 커피 머신에 맞는 좋은 원두를 제값을 주고 사겠다고.

대신 조건이 있었는데…….

“아니, 무슨 아메리카노를 오천 원이나 받아요?”

김송희가 황당해하자 최민지는 오히려 당당하게 받아쳤다.

“손님들이 하도 커피 달라는 요구가 많아서요. 판매를 하게 되면 저희 가게 입장에선 큰 손해거든요. 거기에 맞춰서 가격을 책정하다 보니 그렇게 됐습니다.”

“아니, 그래도 그렇지.”

“이 주일 전에도 손님께서 그러셨잖아요. 커피 좀 줬으면 좋겠다. 돈가스 먹고, 후식으로 딱이다. 여기서 커피까지 나오면 정말 장사 잘될 거라고 하셨거든요.”

한두 번이 아닌지라, 김송희는 차마 따지질 못했다.

평소 같으면 죄송하다고 사과를 받았을텐데 이제 반대가 된 상황.

“그럼, 커피 두 잔 주문 넣을까요?”

“아, 자, 잠시만요?”

김송희는 친구와 눈빛을 교환했다.

결론은 시키지 말자는 거였다.

이미 최민지는 그 분위기를 읽었는지, 조용히 고개를 숙였다.

“하와이안 돈가스 두 개만, 주문 넣을게요.”

***

“아휴, 속이 다 시원하네.”

최민지가 호탕하게 웃자, 공지혜도 은선경도 진심으로 좋아했다.

방금 전, 브레이크 타임 마지막 손님도 그랬다.

저쪽에 커피 머신 보이는데, 한 잔만 서비스로 주면 안 되겠느냐고.

최민지는 당당하게 메뉴판을 펼쳐서 보여줬다.

결국 그 아가씨 일행은 김밥만 대충 먹고 허둥지둥 나가 버렸다.

그 꼴을 보는데 어찌 웃음이 나던지.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말 어마어마하게 시달렸다. 안 되는 줄 뻔히 알면서도, 계속 요구를 했고 그때마다 사과를 해야 했던 것이다.

속으로는 ‘이런 미친년들’ 욕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그랬는데, 커피 돈 받고 정당하게 판다니까 아무도 시키질 않더라. 심지어 지난 일주일간, 고작 석 잔만 나갔을 뿐이었다.

그것도 객기를 부려서 시킨 경우였다.

“이제 커피 가격 내릴까?”

강형우가 웃는데, 다들 손사래를 쳤다. 그랬다가 무슨 일이 생길지 다들 알았던 것이다.

사실, 이건 일종의 모험이었다.

지성분식은 음식 하나를 팔아서 많이 남기는 구조가 아니었다. 맛을 위해서, 단골들을 붙잡기 위해서 음식 퀄리티에 신경을 많이 썼다.

당연히 하나당 원가는 매우 높은 편이었다.

솔직히 하와이안 돈가스만 해도 식자재 원가가 40% 선이었다.

그 역시도 대량 구매로 할인받아서 겨우겨우 맞춘 거였다.

심지어 하루 스무 그릇, 서른 그릇 정도 나가면 원가는 50%가 넘어간다. 한마디로 박리다매이기에 가능한 가격이었던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커피를 판다?

한마디로 망하겠다는 소리나 다름 없었다.

커피 한 잔 시켜놓고 3, 40분은 기본으로 있는 게 카페였다.

분식집에서 그랬다가는 손님들 더 받을 수 없게 된다. 빠른 회전율이 지성분식의 생명이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그런 위험을 감수하고 커피 판매를 시작했다.

이건 나름 사활을 건 도전이었다.

예상대로 지난 일주일간, 터무니없는 요구를 하는 손님들 대부분이 떨어져 나갔다.

특히 공기밥 1,000원까지 메뉴판에 써놨다. 그리고 그 옆에, 지성분식은 이른 새벽 직접 도정한 쌀로 밥을 짓습니다, 라고 크게 적어놨던 것이다.

그랬더니 공짜 밥 달라는 소리가 쏙 들어갔다.

진짜, 그전까지는 공기밥값 받는 거 가지고 별의별 소리를 다 들었다.

고기집에서는 찍 소리도 못하면서 왜 동네 분식집에서만 지랄들을 하는 건지.

어쨌든, 손님들의 부당한 요구는 전부 적어서 아예 메뉴로 만들어 버렸다.

애랑 같이 먹는다고 무작정 돈가스 큰 걸로, 많이 달라 하더라.

결국 3,000원짜리 어린이 돈가스 메뉴를 만들었다.

라면도 미취학 어린이 용으로 2,000원짜리도 개발했고, 김밥도 애들한테만 반 줄 판다고도 해놨다.

이 모든 걸, 큰 손해를 감수하면서 시작했는데 확실한 성과가 있었다.

다들 민망했는지 다시는 오지 않았으니까.

특히 강형우가 큰 결심을 하게 된 건,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미희 어머니가 인터넷 카페 하나를 알려준 것이다.

거길 들어갔더니, 미친년들이 널뛰기를 하고 있었다.

-ㅈㅅ 분식이라고 알죠?

-거기 진짜 맛있어요. 근데 서비스는 개판인 듯.

-왜요? 친절하고 좋던데.

-사장님이 가게 바꾸고 나서 인사도 안 해요. 돈 많이 벌었는지 이전처럼 서비스도 안 주고.

-서비스요?

-카페 할 때는 이런 거 저런 거 해달라면 다 해줬는데, 요즘은 신경도 안 씀.

-맞아요. 그때는 우리가 부탁하면 유모차 넣을 수 있게 테이블도 치워주고 그랬어요.

-카페에서 맥주 판다고 항의하니까, 냉장고에서 바로 빼더라고요.

-그때는 정말 그랬음.

-전, 계속 커피 달라고 하고 있고요. 라면 시키고 꼭 공기밥 하나 달라고 해요.

-헐, 미친 거 아니에요? 남 장사하는 가게인데.

-왜요? 손님인데 요구할 수도 있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상식적이지가 않잖아요?

-위에 아줌마가 뭘 몰라서 그런 거.

-맞아요. 우리 동네에서 장사하면, 우리한테 맞춰야죠. 우리가 해달라는 거 안 해주는데 왜 여기서 장사해요?

-하여간 다들 가서 한 번씩 따져주세요. 언제까지 자기 멋대로 장사하나 보게.

-전 어제도 커피 달라고 따지고 사과 받았어요. -_-v

이런 리플들이 거의 백여 개가 달려 있었다.

실제로는 더 험한 이야기가 많았고, 하나하나 읽는데 혈압이 급상승할 정도였다. 진짜, 사장 입장에선 완전히 꼭지가 도는 내용들로 도배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진짜 눈앞에 있었다면, 여자고 나발이고 간에 싸대기 날렸을 거다.

이기적인 인간들 같으니라고!

자기 좀 편하자고 남이 목숨 걸고 장사하는 걸 훼방놓겠다니.

사실 미희 어머니가 원한 건 그게 아니었다.

동네 아줌마들이 이용하는 맘카페니까, 홍보도 좀 하고 인사도 하라는 의미에서 알려준 거였다.

그랬는데 저 글을 보는 순간 흥분하고 말았다.

해서 강형우는 어차피 욕먹을 거, 한 번 붙어보자고 메뉴판을 다 갈았다. 그리고 고민고민해서 새로운 음식 만드는 과정까지를 추가했던 것이다.

물론 이번 승리의 일등 공신은, 최민지였다.

일전의 사고로 조용히 이야기했는데 그날 이후 많이 의기소침했었다. 그래서 공지혜와 고민한 결과 그녀에게 따로 임무(?)를 주기로 한 것이다.

물론 선택은 본인의 몫이었다.

해서 블랙리스트 손님을 집중 마크 해보지 않겠느냐고 제안을 했는데, 오히려 최민지는 좋다고 했다.

지성분식을 지키고자 하는 사명감에 열렬히 불탔다고나 할까?

다행히 아직까지는 무탈하게 넘어가고 있었다.

직원들 얼굴도 환하게 밝아졌고, 오히려 여유까지 생겨 버렸다.

무엇보다 가격을 조금 올렸음에도 따지는 손님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신기한 건, 오히려 매출까지 올라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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