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8
148화 결론은 뭐예요
“내가 팔 년 동안 이틀 이상 쉰 적이 없어. 계속 안 빠지고 가게 나가는 게 그래서라고.”
관리하는 사람이 게으르면, 어떤 회사든 어떤 일이든 엉망이 된단다. 잔소리를 해서라도 항상 같은 수준이 되게 하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처음에 내가 직접 청소하고 설거지 하고, 가게 앞에 나가서 전단지 뿌리고 그랬거든.”
기억하기로 박혜숙은 당시에는 거의 가게에 살다시피 했었다.
강영지가 본격적으로 살림을 떠맡고 인정둥이를 돌보게 된 게 그때였다.
“너 군대 가고 없었으니까 몰랐겠지만, 어휴~ 그때는 하루하루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강형우도 지성분식을 운영해 봐서 누구보다 잘 알았다. 음식 장사는 정말 힘든 일이라는 것을 말이다.
“그전까지는 부엌데기 취급하다가 한 달을 가게 구석구석 청소하고 하니까, 주방 아줌마들이 인정해 주더라고. 그러고 나서부터 한 딱가리 했지.”
“예?”
“내가 명순이한테, 동업자라는 거 말하지 말라고 했거든.”
“헐.”
박혜숙은 일부러 인력소개소를 통해 들어온 주방 아줌마로 위장했다. 그러다 어느 정도 인정받고 함께 어울리게 된 뒤, 일억이나 투자한 사장임을 밝혔다는 것이다.
“아니, 왜 그랬어요? 그냥 처음부터 내가 사장이다 그러지?”
“네가 어려서 잘 몰라서 그래. 그때는 좀 그랬거든. 여자들끼리는 일종의 텃세라고 해야 하나? 기싸움 같은 게 있거든.”
그러면서 말하길, 갑자기 굴러온 돌이 사장이라고 이것저것 일시키면 반감만 크다고 했다. 인정받고 어울린 뒤에야 조금씩 간섭하는 게 된다는 것이다.
뭐, 십 년 전에는 그랬다고 하는 그게 맞는 건가 싶었다.
“그렇게 몇 달을 지지고 볶고 하면서 정이 들었는데, 결국 일년도 안 돼서 싹다 내보냈지.”
“예? 왜요?”
“알고 보니 장사가 안 됐던 게 아니라 도둑이 많았던 거야.”
“헐. 진짜요?”
박혜숙은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고기가 없어지는 건 예사였고, 정산이 안 맞는 것도 하루 이틀이 아니었단다. 아주 금고의 현금을 자기 돈처럼 챙겨갔다는 것이다.
“그걸 몰랐다고요?”
“요즘에야 카운터마다 카메라가 있지. 옛날에 그런 게 어디 있었어? 잠시 명순이가 볼일 보고, 내가 시장 갔다오면 현금이 확 줄더라고.”
알고 보니 전부 한통속이였단다. 그러니 손님이 많아도 적자를 볼 수밖에 없었다나?
“근데, 명순이 이모도 그걸 몰랐어요? 카운터 지키면 돈 빠지는 거 알텐데?”
“알아도 별수 없었지. 고기 삶는 거 아무나 하는 거 아니거든.”
들어보니 좀 황당했다. 그런데 이해가 되기도 했다.
원래 장사가 좀 되던 국밥집이었는데, 명순이 이모가 인수를 했다. 남편 퇴직금과 저축한 돈, 거기에 대출까지 받아서 사버렸다는 것이다.
문제는 음식에 대해 아는 게 많지 않다는 거였다.
그러다보니 국밥집에서는 고기 삶는 아줌마가 갑이었다. 하루라도 쉬어버리면 장사를 못 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사장이 눈치를 보기 시작하니 주방 아줌마들이 조금씩 텃세를 부리기 시작했단다.
명순이 이모 역시 알면서도 모른 체 할 수밖에 없었다.
조금 손해 보더라도 장사를 계속하는 게 남는 거였으니까.
무엇보다 대출까지 걸려 있어서 하루라도 쉬면 손해가 더 컸단다.
“그래서 사장이란 걸 안 밝힌거지. 주방에 일하면서 두어 달 눈짐작으로 삶는 거 훔쳐봤는데, 사실 별거 없더라고.”
말은 쉽게 하지만 아니란 걸 알고 있었다.
어머니가 하는 국밥집은, 국물이 특히 진했다. 부산에서 유명한 조방 앞 돼지국밥 골목 스타일이어서 걸쭉함이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우리면서 잡내를 제거하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연히 강형우도 모르는 비법이 있을 터.
“계산해 보니까, 자기들끼리 한 달에 가져가는 돈이 월급만큼이나 되더라고.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전부 콩밥 먹이고 싶었는데, 그래도 몇 달 같이 지냈다고 그렇게까지는 못하겠더라고.”
결국 각서를 받고 전부 해고하는 걸로 결정을 내렸단다.
이후, 어머니는 국밥집 가마솥을 지켰다고 했다. 그러면서 조금씩 삶는 방법을 공부하셨고 지금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국밥집은 너무 일이 많아서 힘들어. 누가 하래도 안 하는 거고, 우리는 기본만 지키자 해서 지금까지 버티고 있는 거지.”
크게 벌리는 건 없지만, 평균으로 계산하면 손해 보는 것도 없다고 했다. 열심히 하면 먹고 살만큼은 벌어간다는 것이다.
“그 돈으로 니들 다 키웠다. 적금도 부었고.”
박혜숙은 그렇게 말하면서 소주를 연거푸 들이켰다.
지난 세월을 생각하니 가슴에 멍울이 많았었나 보다. 그걸 씻기 위해서 마시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박혜숙의 잔에 소주를 채우다가 고개를 돌렸다.
이제 동태전은 고작 두 개밖에 안 남은 상황.
“안주, 더 가져올까요?”
“됐어. 이제 더 할 이야기도 없는데.”
박혜숙이 손사래를 치는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근데, 엄마. 왜 그런 거 한 번도 이야기 안 했어요?”
술이 올라서일까?
분명히 웃는데, 표정이 미묘했다.
“원래라면 이야기 할 일이 없지. 그런데 우리 아들 장가간다 하니까, 다 컸다는 생각이 드니까 하는 거야.”
순간, 가슴 한구석이 저려오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도 철없는 아들인데…….
잠시 후, 박혜숙은 졸린지 고개를 꾸벅꾸벅 거렸다.
강형우는 어머니를 안고 안방에 눕혔다.
그런 뒤, 상을 치우는데 갑자기 눈물이 나기 시작했다.
살면서, 처음 겪은 감정이었다.
***
연휴는, 정말 어휴~ 소리 나게 바쁘게 지나갔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만났고, 동네 형들과도 술자리를 함께했다.
정말이지 술을 얼마나 마셨는지 모를 정도였다.
남자 여덟인데, 서비스 안주가 세 번이나 나올 정도였으니 박스 하나는 비웠다 싶었다.
마지막 날에는 공지혜랑 데이트도 하면서 바람도 쑀고, 평소보다 일찍 들어왔다.
너무 피곤했던 탓이었다.
그렇게 방 안에 누워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데, 평소와 다르게 가슴이 묵직했다.
일단 지성분식 본점은 여름까지만 장사한다고 보면 된다.
2호점은 며칠 간단히 공사를 하고, 메뉴판 나오는 대로 가격을 올릴 예정이었다.
이후, 인수인계가 끝나면 머리를 식힐 생각이었다.
공지혜랑 여행도 하고, 주혁 형이 알려줬던 가게도 가보고, 무엇보다 사무실을 하나 차리고 싶었다. 분석이 형의 일도 일이지만, 무언가 독립된 공간의 필요성이 느껴졌던 것이다.
그건 창주 형과 덕수 형, 그리고 현우 형 때문이기도 했다.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나가자.”
그렇게 생각하며 눈을 감았는데, 이상하게 심장 박동이 선명해졌다.
자려고 하면 할수록 누군가가 위쪽으로 끌어당기는 느낌이랄까?
사실 이번 연휴에는 정말 일이 많았다.
박첨기 어르신과의 식사.
강학희 아버님의 부탁을 가장한 협박.
이전까지는 몰랐던 어머니의 이야기.
그런 일들을 겪고 나니까 한없이 아쉬웠다. 지금까지 헛살았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순간, 현실을 냉정하게 돌아봐야겠다는 마음의 소리가 들렸다.
맞다.
나는 잘나가는 분식집 사장이었다.
한달에 무려 삼사천을 벌고, 직원도 열 명이 넘었다.
통장에 일억이 넘게 있었으며 공지혜라는 예쁜 여자 친구도 있었다.
그렇게 따지면 또래에 비해 무척 성공한 인생이기는 했다.
하지만 단지 그것뿐.
뭔가 인간적으로 부족하다는 느낌이 강렬하게 들었다. 마치 충족되지 않는 갈증 같은 게 목을 매이게 했던 것이다.
대체, 나란 인간은 뭐지?
“어, 개똥철학이라고 해야 하나?”
“예?”
“내 대학 철학과 동기 중에 한 놈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거든. 인간이란 무엇이냐? 사랑이란 무엇이지? 그러면서 책 한 권을 추천해 주더라고.”
강신원은 나름 진지하게 상담을 받아주고 있었는데, 뭔가 억지로 웃음을 참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궁금해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그, 책 이름이 뭔데요?”
“톨스토이,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아! 읽어봤어요.”
땅에 내려온 천사 이야기였다.
줄거리는 간단한 편이었는데, 강형우가 기억하는 건 마지막에 있는 역자의 평이었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사랑이 있고, 허락되지 않는 건 자신의 죽음을 아는 거였다.
마지막으로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로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였다. 서로가 서로를 아껴주고, 사랑해 줌으로 비로소 존재의 가치가 인정받는다는 그런 내용이었던 것이다.
왜 이렇게 잘 기억하냐면, 또라이 같은 군대 고참 새끼 때문이었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졸라 갈구고 괴롭히더니 뜬금없이 저 책을 읽으라고 했던 것이다.
읽고 나니, 고참이 이런 말을 했다.
“사람은 사랑으로 사는 거야. 그러니까 휴가 같이 나가면 니 여동생 좀 소개시켜 주라. 내가 니 관물대 사진 봤는데 졸라 이쁘더라고?”
“예?”
“야. 내가 잘되면, 니 군생활 풀리게 해줄게.”
순간 머리에 피가 쏠렸다. 당시 강영지는 고등학생이었으니까.
결국 그날, 강형우는 그 개 같은 고참 새끼를 의무대에 실려가기 직전까지 두들겨 패버렸다.
아마 동기들이 안 말렸다면 송장 하나 치뤘으리라.
이후, 그 이야기가 알려지자 그 고참은 연대 주임 상사한테 불려갔다. 그리고 저 산속에 있는 창고병으로 보직 변경되서 부대에서 쫓겨났다.
다행이 강형우는, 일주일 완전군장을 도는 것으로 끝이났다.
그건 주임 상사가 딸바보여서였다.
갑자기 씁쓸한 기억이 떠오르자, 강형우는 고개를 내저었다.
“근데 형, 결론은 뭐예요?”
강신원은 심드렁하게 말했다.
“뭐긴 뭐야? 그냥 하루하루 열심히 잘살자는 거지. 천사들이나 그런 거 찾을 여유가 있다는 거야.”
“예? 아니, 결론이 왜 그렇게 돼요?”
“원래 소설이란 게, 사람마다 받아들이는 게 다르잖아.”
“헐.”
“참고로 그 책을 추천한 철학과 친구는 학교 때려치우고 절에서 스님 한다.”
이 역시 황당한 반전이었다.
어쨌든 신원이 형의 결론은 단순했다.
그런 개똥철학 같은 소리 할 시간에 빗자루질이나 한 번 더하라는 말이었다.
그런 뒤, 담배 피우면서 한마디를 더 해줬다.
“그거 서른 병이다. 중이병보다 무서운 거야.”
***
남자 나이 스물아홉.
특히 가을에 잘 걸린다는 병이었다.
신원이 형이 말하길 자기도 서른 전에 그런 적이 한 번 있었단다.
일종의 우울증 같은 거라나?
갑자기 김광석 노래가 좋아지고, 가을 바람에 가슴이 싱숭생숭해지고, 라디오를 듣게 된다고 했다.
또, 개그프로그램을 봐도 웃음이 안 나오고 뜬금없이 일기나 시를 쓰고 싶어진다는 것이다.
그런데 딱 서른 살 새해를 맞으니까, 아무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동안 했던 삽질들이 얼마나 찌질한 거였는지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결론은 남자 나이 서른,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다. 그저 열심히 일하다 보면 해결되는 것이란다.
그냥 여유가 있으니 드는 잡생각이라나?
결국 강형우는 그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지성분식 2호점 공사를 이틀 동안 도왔더니 정말 밥만 잘 먹고, 잠만 잘 오더라.
어쨌든 새로 바꾼 메뉴판도 왔고, 가게 장식도 멋들어지게 고쳤다.
또, 주방에 거치적거리던 기구들도 이참에 싹 정리했고 거의 가오픈 급으로 대청소까지 마친 상황.
내일부터 새로운 장사를 시작하기만 하면 된다.
특히 강형우가 기대한 건 따로 있었다.
***
“어서오세요.”
공지혜가 손님을 받고, 눈짓을 던졌다.
그 순간, 최민지가 따라붙었다. 평소처럼 여자 손님 두 분을 안쪽 자리로 안내한 뒤 메뉴판을 건넨 것이다.
잠시 후, 여자 손님들이 주문하기 시작했다.
“여기 하와이안 돈가스 두 개 주세요.”
“예. 주문받았습니다.”
최민지는 바로 메모하더니, 몸을 돌리려 했다.
그때 단골 여자 손님이 물었다.
“근데, 여기 진짜 커피 안 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