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7
147화 아들, 할 말이 있어
“하필, 현우 형이라니…….”
뭔가 매치가 잘 되지 않았다.
나름 순둥순둥 스타일에 호구 옵션을 장착한 형이었다.
외모는 꾸미기 나름이지만 어르신들 기준에서는 공부 잘하는 모범생 둘째 아들 느낌이란다.
대장군인 장남을 보필하는 그런 분위기가 팍팍 풍긴다고나 할까?
반대로 강신애는 선머슴 같았다.
의외로 지저분하고, 격식 같은 거 잘 안 따지고, 성격이 여자 같지 않아서 그냥 여자 사람 친구 같은 느낌?
물론 외모 하나는, 강형우 주변 사람들 중에서는 최고였다.
제대로 화장 풀세팅 장착을 하면 톱스타 연예인으로 착각할 정도였으니까.
그때 공지혜가 그랬다.
너무 예쁜데 질투조차 나지 않는단다. 아예 급이 다르니 감정조차 생기지 않을 정도라는 것이다.
하지만 강형우는 피식 하고 대꾸했다.
그까짓 얼굴이 뭐가 대수라고.
분명히 본심을 말했는데, 아무도 믿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었다.
“그나저나, 믹스 매치지만 어울리기는 하네. 중요한 건 이걸 어떻게 말해야 하느냐인데…….”
요즘 현우 형은 정신이 없었다.
우리 통닭은 리모델링 후, 아주 박이 터지도록 손님이 밀려들고 있었다. 덕분에 원래의 의도와 달리 하루 두 탕(?)을 뛰게 된 것이다.
70마리 팔고 마감!
그랬다가 손님들의 요청이 폭주하는 바람에 두 배로 늘렸다. 기존 레시피는 그대로 하되 튀기는 양만 140마리로 추가한 것이다.
하지만 손님 받을 자리가 부족해서, 가게 맞은편 작은 상가를 인수해 준식이 형한테 맡겨 버렸다.
바로 우리통닭2였다.
하지만 주방 시설이 작아서 치킨은 여전히 우리통닭에서 튀기고 있는 상황이었다.
그리고 거기도 강학희가 인테리어 공사를 맡았다.
“확실히 현우 형이 예의는 바르지.”
놀라운 건, 강학희 아버님이 말하길 첫 만남 때부터 현우 형이 마음에 들었다는 거다.
식당 예약하고 소주 따라줄 때부터 이런 사위 있었으면 했다나?
특히 치매 걸린 어머니를 모시고 힘들게 살았다는 이야기에 이상하게 정이 갔다고 했다. 해서 알게 모르게 자기 인건비도 많이 깎아줬다는 것이다.
확실히 어르신들 눈에는 괜찮은 청년으로 보였겠지.
“나쁜 이야기는 아닌데… 과연 현우 형이 받아줄지 모르겠네.”
친구들 결혼하는 걸 보면 부럽지 않느냐고 했더니, 당분간 장사에만 전념하고 싶다고 했다.
연애는 사치라나 뭐라나?
“뭐, 신애 정도면 돌부처도 돌아앉을 테니 자리만 마련해 주고 빠지면 되겠지.”
강형우는 어렵게 생각하지 않기로 했다.
남녀 사이의 일이란 게,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으니까.
***
추석이라 하지만, 특별한 건 없었다.
아버지 성격에 맞게 소박한 제사상을 차리고, 식구들끼리 식사하면 끝이었다.
또, 외가의 경우 한 번 가려면 이박 삼 일을 잡아야 했기에 쉽지 않았다. 강형우도 가게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도 저녁 늦게 국밥집을 나가봐야 했으니까.
해서 간단하게 차려먹고 나니 딱히 할 일이 없었다.
게다가 집도 조금 허전했다.
항상 집안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인정둥이는 아직도 군대에 있었다. 21개월이 금방 갈 줄 알았는데 내년 설이 지나서야 제대한다는 것이다.
여기에 공지혜도 부모님 뵈러 양산으로 올라간 상황이었다.
이런 적적함 때문에 강형우는 일부러 설거지를 택했다.
잠시 후, 점심 지나서 강영지가 외출 준비를 했다. 곧 있으면 어학연수를 가기 때문에 친구들 만나고 온다는 것이다.
이제 기회가 왔다 싶었다.
“영지야.”
“왜?”
“이거 용돈, 친구들 만나서 맛난 거 많이 먹고 와라.”
오만 원짜리 한 장이 팔랑거리자 강영지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이걸 누구 코에 붙이라고?”
강형우는 잽싸게 두 장을 더 꺼내 내밀었다. 그제야 강영지는 씨익 웃으며 신사임당 세 쌍둥이를 챙겼다.
“알았다. 천천히 올게.”
강영지가 나가자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참 희한했다. 독심술 쓰는 것도 아닌데, 어찌 저리 눈치가 빠른지.
그렇게 강영지까지 보낸 뒤, 강형우는 심호흡을 했다.
“엄마.”
“왜, 우리 아들. 뭐, 할 말 있어?”
“그게…….”
강형우는 지은 죄도 없는데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입술을 열었다.
“나, 지혜랑 사귀고 있거든요.”
“그래?”
그 대수롭지 않은 반응에 강형우는 당황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박혜숙은 몸을 돌리더니 장롱을 뒤지기 시작했다.
나온 건, 투명한 비닐 케이스였다.
“이거 가져가.”
“뭔데요?”
“니가 생활비 하라고 준 거, 고대로 모아놨어.”
“아니, 그러니까 뭐냐고?”
강형우가 다시 묻는데, 박혜숙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만나는 거야 처음부터 알고 있었고, 이제 둘이 결혼한다는 거 아니었니?”
“예에?”
“안 그래도 니 아버지 돌아가시기 전에 그 이야기 했어. 너 장가 보내려면 적금도 들어야 할 텐데 하면서…….”
박혜숙이 천천히 이야기하는데, 강형우는 뒤통수가 얼얼했다.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들이라서 충격을 제대로 받은 것이다.
십 년 넘게 낡은 주택 이 층에서 살았다. 방 두 칸에 거실 하나인 좁은 집에서 어머니와 나, 영지, 인정둥이 이렇게 다섯이서 아등바등 지냈던 것이다.
그런데, 이사를 안 간 이유는 돈이 없어서가 아니란다.
“너 장가 보내고, 영지 시집 보내려니 악착같이 모아야 될 것 같더라고. 어차피 너도 군대 가겠다. 나도 집에 잘 없으니 큰 집이 필요할까 싶었지.”
인정둥이가 군대를 서둘러 간 것도 그래서란다. 빨리 독립할 계획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건 네 앞으로 들어놓은 적금이고, 하나는 네가 지금까지 준 거 넣어놨어. 그 정도면 적당한 전세 하나는 얻을 수 있을 거야.”
그러면서 비닐 속에서 통장을 꺼내주는데, 강형우는 많이 당황스러웠다.
박혜숙의 말은 진짜였다.
하나는 만기가 된 적금 통장이었다.
액수는 사천만 원이었다. 지난 팔 년간, 매달 빠지지 않고 입금한 내역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던 것이다.
“많이는 못 모았어.”
“아니, 엄마…….”
“하나도 마저 봐.”
그 말에 강형우는 천천히 손을 움직였다.
통장의 입금 내역은 들쑥날쑥했다.
처음 입금 날은, 군대 재대하고 공장에서 첫 월급 받은 다음날이었다.
액수는 50만 원이었다. 당시 빠듯한 공돌이 월급의 거의 절반이었던 것이다.
그 다음달은 60만 원과 80만 원이었다.
야근 수당이 더해지고, 3교대가 2교대가 번갈아가며 바뀌어서 주말까지 일해야 했었다.
그렇게 30만 원에서 60만 원 사이를 왔다갔다 하다가 안정적으로 60만 원이 찍혔다.
분석이 형네 회사인 ‘네 밥상’에 취직하면서 부터였다.
이때는 거의 돈을 안 쓰고 살았다.
식사는 공장에서 해결하고, 잠도 분석이 형이 얻어준 근처 원룸에서 지냈다. 그렇게 차비조차 아껴가며 회사에 붙어서 기생했던 것이다.
유일한 지출은 한달에 한 번 집에 들렸을 때, 그리고 주말에 한 번씩 친구들과 만날 때였다. 가게 차릴 돈을 모으고 집에 생활비 보낸다고 정말 쪼들리게 살았던 것이다.
심지어 영업용 정장조차 없어서 분석이 형이 사줬을 정도였으니까.
가만 생각해 보면, 아마 이때가 인생에서 가장 찌질하지 않았나 싶었다.
그렇게 삼 년, 그다음은 거의 다섯 달이 비어 있었다.
지성분식을 차리기 위해 준비하던 기간이었다.
이후의 첫 입금은 지성분식 오픈하고 두달 뒤였다.
기억하기로 200만 원이었는데, 그 금액에서 10원 한 장 안빠지고 고스란히 입금되어 있었다.
다음 달은 150만 원, 그 뒤부터는 꾸준히 100만 원이었다.
하지만 넉 달 이후 또 다시 끊겼다. 장사가 안 되서 파리 날리기 시작했던 때였다.
그렇게 또 몇 달이 지났고 다시 입금이 시작되었다.
50만 원, 100만 원을 왔다갔다 하다가 조금씩 오르더니 작년 말부터 거의 200만 원씩을 찍었다.
총 액수는 무려 5,380만 원이었다.
순간, 가슴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속에서 뭔가가 울컥하고 올라와 목구멍을 잡아 묶었던 것이다.
뭔가 말을 하려고 했는데 목소리가 나오질 않았다.
강형우는 억지로 길게 한숨을 내쉰 뒤, 다시 통장을 살펴봤다.
이건 일종의 기록이었다. 군대 재대하고 취직해서 지금까지 지내오면서 남긴 삶의 발자취였던 것이다.
고작 입금액과 날짜가 지난 오 년 간의 과거를 생생히 떠올리게 할 줄은, 정말 꿈에서라도 상상하지 못했다.
“네가 번 돈이니까, 네가 가져다 써.”
“아니… 엄마, 그게 아니라…….”
강형우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거렸다. 멈추면 그대로 울 것만 같아서였다.
떠올려 보니, 지금껏 집에 돈 가져다주는 걸 자신의 의무라고 판단했다.
자신이 장남이었다.
돌아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집안을 이끌 가장이라 생각했었다. 그랬기에 쉬지 않고 일했고, 형편에 따라 입금했던 것뿐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형우야.”
“어, 엄마.”
강형우가 고개를 드는데, 박혜숙이 말했다.
“냉장고에 소주 있다.”
***
엄마랑 단둘이서 술 마시는 게 아마 처음일 거다.
아버지하고는 고등학교 때 처음이었고, 대학 합격하고 몇 번 더 있었다.
이후, 아버지가 돌아가셨다. 그래서 군대를 갔다가 바로 공장으로 들어가 지금까지 일했으니 이럴 기회가 단 한 번도 없었다.
안주는 강영지가 미리 부쳐놓은 동태전이었다.
박혜숙이 잔을 내밀자, 강형우가 소주를 따랐다.
“방금 전화 했으니까 오늘 가게 안 나가도 돼.”
강형우가 묻기도 전에 박혜숙이 선수를 쳤다.
해서 강형우는 연거푸 세 잔을 따랐다.
살짝 취기가 오르는지 박혜숙이 말했다.
“너희 아버지 돌아가시고, 참 막막하더라고. 애는 넷이나 되는데 벌어놓은 돈은 없고, 니들이 입으로 들어가는 돈도 한두 푼도 아니고…….”
생각해 보니 그랬다.
강형우야 성인이고 대학생이니, 자기가 벌어서 생활하는 건 가능했다.
하지만 강영지는 중학생, 인정둥이는 초등학생이었다.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돌봐야 하니 남은 시간이 적지 않았던 것이다.
박혜숙은 동태전 하나를 들어 반쯤 배어문 뒤, 또다시 소주 잔을 비웠다.
“막막하고 답답했지. 애 넷 딸린 여자가 일하기도 쉽지 않은 시절이었으니까.”
고민하고 또 고민했단다. 취직 자리를 백방으로 알아보고 공장이라도 다닐려고 결심했는데, 때마침 보험금이 나왔다는 것이다.
“그게 겨우 일억이야. 너희 아버지 목숨값이지. 도둑놈 같은 보험 회사가 안 주려고 하는 거, 네 아버지 상사라는 사람이 도와줘서 겨우 받아낸 거야.”
한 모 부장인가, 하던 분인데 이름은 정확히 기억이 나질 않았다.
어쨌든 그분은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에도 종종 연락을 하셨다. 그러다 강형우가 군대 갔다온 뒤 소식이 끊겨 버렸다고 했다.
“수중에 쥔 돈을 아껴쓴다고 해봐야 몇 년이나 갈까 싶더라고. 그러다가 친구가 어렵다고 해서 도와달라는데…….”
이건 강형우도 모르는 거였다. 아니, 어머니의 삶에 대한 이야기는 거의 들은 게 없었다.
한심했다.
어머니도 사람인데, 그냥 어머니라고만 생각했던 게 너무도 미안했던 것이다.
“국밥집에 투자하는 대신, 내가 관리를 맡기로 했거든. 그것 때문에 친구 년이랑 지지고 볶고 싸웠는데…….”
어머니께서 표현하기를, 애 넷 딸린 독기만 남은 여자와 장사조차 제대로 못했던 여자가 붙었다.
승자는 당연히 전자였다.
해서 친구는 카운터를 맡고 물건 받아오는 일을 하기로 했고, 박혜숙이 주방을 차지했단다.
그 때문일까?
바닥을 치던 매상이 조금씩 올라가기 시작했다.
돼지국밥집치고, 청소도 잘되어 있고 깔끔하다고 소문이 난 덕이었다.
박혜숙은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