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
145화 미안하게 됐네
“그러니까, 정식 의뢰라는 거죠?”
“어.”
“아니 무슨…….”
강형우가 황당해하는데, 정분석의 표정은 진지했다. 피우던 담배를 끄고 다시 하나를 빼어 문 것이다.
“휴우, 나도 감이 많이 녹슬었나 봐. 사실 우리 회사하고 내가 하고 있는 일이 언더잖아.”
언더는, 일종의 돌려 말하는 표현 중에 하나였다. 표면상에 드러나는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물론 그 말이 맞기는 했다.
분석이 형네의 ‘네 밥상’은 신평공단, 무지개 공단 일대에서는 제법 알려져 있었다. 최근에 식품공장도 이전했고 거래처도 많이 늘어서 하루에도 거의 오천인 분 이상을 만든다고 들었던 것이다.
여기에 학교 급식 사업까지 치면, 하루에 몇만 명이 먹는 음식을 만드는 셈이었다.
하지만, 그런 회사를 누가 알겠는가?
차라리 동네마다 있는 김밥천국이 더 유명하지.
해서 업계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을 돌려서 언더라고 말하곤 했다.
“오버로 한 번 나가보려고 했어.”
“예? 형네 야식 체인 있지 않아요?”
“그걸 오버로 보기에는 좀 무리가 있어. 말 그대로 야식집이니 상호로 유명한 건 아니잖아. 그리고, 좀 많이 힘들기도 하고.”
분석이 형이 야식으로 한참 돈을 벌 때와 지금은 많이 다르다고 했다.
요즘은 치킨집도 새벽 두 시까지 한단다. 동네 곱창집도 배달 서비스를 시작했고, 족발, 보쌈에 이어 햄버거까지 배달에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일부 지역에선 돼지국밥조차 24시간 배달이 된다고 했다.
“사업이 조금씩 축소되는 것도 있고, 무엇보다 동생들도 지쳤지. 번 돈보다 병원비가 더 걱정될 지경이니까.”
야식 사업이란 게 그렇다.
평균 기상 시간은 오후 3시였다.
저녁 먹고 장을 보고 저녁 8시부터 준비해서 아침 6시까지 장사한다. 그런 뒤 마치면 밥을 먹고 9시 넘어서야 겨우 눈을 붙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오 년 넘게 하니까 동생들이 죽으려고 하더라. 다들 나이보다 몇 년씩 더 들어 보인다는 말에 충격도 많이 받았고.”
“그래서요?”
“적당한 가격에 인수한다는 사람 있어서 협상 중이야.”
문제는 그 이후였다.
분석이 형 성격도 그랬지만, 동생들도 가만히 노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잠깐 휴식을 할지언정 마냥 놀기만 할 생각은 없었다는 것이다.
“솔직히 다들 가게 차리고 싶어 하더라고. 그래서 이래저래 알아봐서 식당 하나를 만들었는데…….”
분석이 형은 잠시 뜸을 들이다 쓰게 웃었다.
“음식 맛은 평균 이상은 된다고 봤어. 그리고 자본이나 인력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노력도 나름 많이 했거든. 그런데 실패했다.”
“예? 실… 패요?”
“어.”
담담하게 말하는데, 의외로 표정이 좋지 않았다.
들어보니 제법 거하게 말아먹었다.
부산에서 기장으로 빠지는 외각에 큰 고깃집을 하나 열었단다.
공사비와 인건비까지 해서 5억이나 투자했는데, 끝내 접고 말았다. 매출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얼마 전에 폐업 신고를 했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언더에만 있다 보니까, 손님 대하는 감이 떨어진 모양이야.”
“그게, 조금만 하면 될 것 같은데…….”
“그래서 될 것 같으면 계속했지. 테이블 오십 석짜리 가게가 일주일에 두 팀 들어오는데, 매달 적자만 삼천만 원이 넘더라고.”
다행이 건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있어서 팔고 나오는 바람에 절반을 겨우 건졌단다.
“그래서 너한테 의뢰하는 거다. 정식으로.”
“아니, 제가 무슨 깜이 된다고 그래요?”
“야, 평석이가 그러더라. 자기 거래처가 수십 군데인데, 성장률만 따지면 네가 탑이랜다. 장사 이 년 반 만에 거래 물량이 너만큼 늘어난 사람이 없다더라고.”
확실한 데이터를 가지고 말하니 반박할 말이 없었다.
솔직히 분석이 형한테 도움이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성분식의 기틀을 잡아준 사람이고, 선물로 받은 냉동고도 여전히 잘 돌아가고 있었으니까.
중요한 건, 내 인생에 있어 이만큼 날 생각해 준 사람이 드물다는 거였다.
무엇보다, 약속한 게 있었다.
반드시 성공해서 보답하겠다고, 그때 제대로 밥 한 끼 사겠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그리고 오늘도 얻어먹기만 했다.
그게 미안해서라도 도울 수 있는 일이면 진심으로 돕고 싶었다.
“그래서요? 제가 뭘 하면 되는데요?”
“사업자 등록은 있을 거니까, 일단 사무실부터 얻어. 아니면 따로 회사를 차리든가.”
“예?”
강형우가 얼떨떨해하는데, 정분석이 웃었다.
“형우야, 이거 비싼 의뢰다.”
***
“이천만 원이라…….”
처음에는 잘못 들었나 싶었다.
하는 일에 비해 액수가 과하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일단 메인 메뉴는 정해져 있었다.
물건 받는 업자들도 기존 거래처라 물건은 상품으로 준다고 했다. 음식에 한해서는 강형우가 개입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어쩌면 그게 당연한 건지도 몰랐다.
분석이 형네 회사가 음식 하는 회사니, 가게의 핵심이 되는 맛을 남에게 넘길 리가 없었으니까.
실제로 강형우가 해야 하는 일은 다른 거였다.
오로지 손님하고 관련된 부분.
가게 상호와 디자인에 대한 조언, 손님 대하는 서비스 교육, 그 외에 필요한 시설물을 추가한다던가 하는 부분에 대해 조언을 해주면 되는 것이다.
따지면 말 그대로 참견쟁이가 되라는 소리였다.
해서 강형우도 물었다. 고작 그거해서 이천만 원이나 받는 건 좀 많지 않느냐고 말이다.
하지만 정분석은 오히려 어이가 없어했다.
결코 아니란다.
이미 수억을 깨먹은 입장에서 이천만 원은 큰 비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자신에게 필요한 건, 직접 손님을 대하는 노하우와 객관적인 시선을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니 충분히 그만큼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들어보니 맞는 말 같기도 했는데, 솔직히 명확한 판단을 내리기는 어려웠다.
이후에 정분석이 덧붙였다.
내년 초에 공사 시작할 거니까, 여유 있게 준비하란다. 하다가 포기해도 좋으니 일단은 긍정적으로 받아줬으면 좋겠다는 것이다.
결국 강형우는 생각해 보겠다고 말했다.
띠띠띠띠~
“이런.”
벌떡 일어나 시계를 보니, 슬슬 나가야 할 시간이 다 됐다.
강형우는 서둘러 일어나서 씻고 냉장고를 열었다.
“시간이 남아도는 모양이네만?”
올해 여든이란 나이가 무색하게 목소리에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말투와는 다르게 표정이 어딘가 어두웠다.
“일단 들어오게.”
“옙.”
강형우는 집 안으로 들어가자마자 커다란 가방을 내려놓았다. 그리고 그 안에서 사골 육수를 꺼내 냉동실에 넣었고, 하나는 바로 그 자리에서 끓이기 시작했다.
“굳이 번거롭게 안 해도 된다니까…….”
“괜찮습니다.”
강형우는 사골만둣국을 끓이면서 잠시 집 안을 살폈다.
최근에 사람이 온 적이 없었는지, 적막했다. 분명 거실의 가족사진에는 아들과 손주들까지 사람이 적지 않았건만 온기가 느껴지질 않았던 것이다.
강형우가 청소까지 하려는 듯 움직이자, 박첨기가 말렸다.
“저녁에 아들놈 오기로 했으니까, 쓸데없이 손대지 말고… 일단 식탁이나 펴게나.”
“예.”
강형우는 상을 펼치고 밑반찬을 꺼냈다. 그리고, 형수한테 받았던 오단 도시락을 열어서 전을 부치고 나물을 꺼내었다.
그사이, 얼린 사골국이 녹아서 끓기 시작했다.
그것까지 가져와 놓는데 박첨기가 술을 한 병 가져왔다.
“오래 잡아둘 생각은 없네만, 이왕 차린 거 같이 들겠나?”
“예.”
박첨기가 술을 들자 강형우가 잔을 내밀었다.
사실, 좀 이상한 느낌이 들기는 했다.
순이 이모가 말하길 손님들이 늘면서 집주인이 들리질 않게 됐단다. 그러다 길에서 마주쳤는데 어딘가 불편해 보였다고 했던 것이다.
강형우는 혹시나 싶어 바로 전화를 드렸다. 매달 월세를 부치면서 안부를 물었지만, 그것과 다르게 조금 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돌아온 말은 돈이나 열심히 벌라는 거였다.
열심히 벌어서 월세만 잘 내주면 그만이라나?
그랬는데, 얼마 전 박첨기에게서 전화가 왔다. 시간 날 때 집에 한 번 들려달라는 것이다.
해서 추석에 안부 인사 할 겸 약속을 잡았다.
“일단 먹지.”
두 사람은 말없이 식사에만 집중했다.
박첨기는 사골 만둣국이 입에 맞는지 정말 한 그릇을 뚝딱 비워냈다.
그러면서 소주도 반 병이나 비웠고.
곧 식사가 끝나고 상을 물리려는데, 박첨기가 손을 내저었다.
“내가 오라고 한 건 다름이 아니라… 흐음, 이거 어디서부터 이야기를 해야 하나?”
분위기가 가볍지 않아 강형우는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계약 기간도 일 년 반이 남았고, 무턱대고 나가라고 할 사람이 아닌 것도 알았지만 느낌이 그랬던 것이다.
“사실, 좀 망설이긴 했어. 하지만 이것도 순리라 생각할 수밖에 없더라고.”
박첨기는 짧게 한숨을 내쉬더니 말을 이어나갔다.
결론은 간단했다.
“재개발 구역은 아닌데, 그쪽으로 도로를 낸다고 하네. 결국 건물을 팔기로 했어.”
“예?”
“내 최대한 기간을 넉넉히 잡았는데도, 앞으로 일 년 이상은 무리더구먼.”
순간 머리가 멍해져서, 술에 취했는가 싶었다.
박첨기는 말없이 기다린 뒤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게 됐네. 아마 내년 여름 지나서, 건물이 헐릴 것 같아.”
사실, 재개발 이야기는 몇 년 전부터 나왔다.
때문에 인근 땅값도 들썩이고 있었고, 나중에는 부산시 개발 계획도 찾아봤을 정도였다.
하지만 지성분식 자리는 그 바깥에 있었다. 이후 꾸준히 장사해서 아파트 단지가 들어올 때까지만 버티면 괜찮을 거라고도 봤던 것이다.
“그만한 대단지 아파트가 들어서니 도로 확장은 필수지. 그런데 나 혼자 안 팔겠다고 버틸 수 있는가?”
이미 지성분식 라인이 거의 다 팔렸다고 했다. 80%가 넘은 상황이라 자신도 어쩔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박첨기가 협상한 건 그때까지는 지성분식이 장사할 수 있게 마지막에 무너뜨려 달라는 거였다.
“확정은 났지만, 아직 시간은 있다네.”
“그럼. 그 일대가 다 팔렸다는 건가요?”
“아마, 연말 즈음이면 집주인들이 연락을 할 거야. 원래 그렇게 하기로 했는데, 자네한테만 미안해서 먼저 말하는 거라네.”
“예. 감사… 합니다.”
“그러지 말게나. 오히려 미안한 건 나라네. 엄연히 임대차 계약서도 약속인 것을, 지키지 못하게 됐으니까.”
“아닙니다. 미리 알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박첨기는 연이어 한숨을 내쉬더니, 조용히 말했다.
“자네가 원하면 보증금은 언제든지 돌려주겠네. 그리고 그때까지 장사해도 좋고.”
이게 박첨기가 해줄 수 있는 최대한의 배려였다.
그걸 알기에 강형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
지성분식.
월급을 아끼고 아껴서 모은 돈으로 가게 자리를 알아볼 때 뭔가 끌림 같은 게 있었다.
딱 저기가 내 가게 자리다 하는, 그런 느낌 말이다.
하지만 돈이 모자랐다.
결국 포기하고 근처 다른 가게를 알아보는데, 조성기가 동업을 제안했다.
그때, 지금 자리가 딱 운명처럼 느껴졌다. 한 번 미련을 버리고 마음을 비웠음에도, 신기하게도 다시 그 앞에 서게 되었던 것이다.
그 때문일까?
강형우는 공사하는 내내 가게를 떠나지 않았다.
직접 타일을 나르기도 했고, 시멘트 묻혀가며 인부들을 돕기도 했었다.
화장실에 비데를 놓을 때만 해도 무척 기뻐했고, 주방 시설이 들어설 때마다 마음이 차곡차곡 채워지는 착각까지 느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이거였다.
지성분식.
그 간판을 달 때 진짜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그랬는데, 그랬는데…….
그 건물이 헐린다니 어찌 마음이 편하겠는가.
잠시 생각하던 강형우는 고개를 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