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8
138화 우리 그거 꼭 해요
“지점 두 개라.”
강형우는 잠시 고민에 빠졌다.
갑작스러운 전화를 받고 강주혁이 나간 뒤에도 한참이나 카페에 머물러야 했다. 그만큼 머리가 복잡했으며 생각할 게 많았던 것이다.
일단 주혁 형은 대략적인 가이드라인을 알려주었다.
어차피 접촉을 하고 있는 가게들도 적지 않았으니 미리 알려준다고 해도 문제가 될 게 없단다.
첫 번째가 맛이 기본 이상일 것!
“이거는 별로 문제가 안 돼.”
실제로 지성분식의 음식들은 하나하나 많은 공을 들였다.
돈가스 하나만 해도 몇 달을 개고생했고, 이후에도 고기를 제주 냉장 흑돼지로 바꿨다.
소스도 퀄리티를 높이기 위해 육수에 과일을 많이 갈아서 맛을 더 끌어올렸다.
김밥도 마찬가지였다.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한다는 소갈비찜 양념을 기준 삼아서 다양한 시도를 했다. 긴 고생 끝에 제대로 된 맛간장을 만들었고, 그걸로 김밥 재료의 맛을 끌어올렸던 것이다.
덕분에 지성분식의 김밥은 하루에도 이백 줄 이상이 포장 판매로만 나갈 정도였다.
안정적으로 팔리는 제육덮밥 같은 종류도, 기본적으로 꾸준히 나가는 라면도, 이번에 만든 냉라면도 가격 대비 퀄리티가 높았다.
또, 사골육수를 끓여서 만드는 만둣국과 음식들도 다른 가게들에 비하면 정성이 많이 들어갔다.
솔직히 분식집에서 이렇게까지 한다는 게 믿기지가 않을 정도였다.
때문에 맛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문제는 그다음 조건이었다.
“흐음, 연 매출 30억이라…….”
최소 그 정도 수준은 되어야 한단다.
사실 어렵다면 어렵고 쉽다면 쉽다.
요즘 알아보니 그럭저럭 유지하는 분식집들이 월 매출 천오백 대였다.
여기에 월세 빼고 인건비 빼고, 기타 공과금을 제외하면 사장들이 백오십에서 삼백오십 사이를 들고 간단다.
좀 되는 가게는 월 매출이 삼천 이상이었다.
하지만 사장이 들고 가는 수익은 천차만별이라고 했다.
얼마나 많은 사람을 쓰느냐, 식자재 마진이 얼마나 되느냐, 혹은 월세에 따라 달라진단다.
계산해 보니 지성분식 본점도 거의 사오천 대를 넘어섰다. 그러니 순수하게 매출로만 따지면 본점과 2호점을 합쳤을 때, 한 달에 일억에서 일억 삼천 사이였다.
많이 깎아서 계산하면 연 매출은 대충 14억 수준.
좀 더 큰 평수에 가게 두 개 정도를 더 낸다면 그 정도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이미 봐놓은 자리가 몇 군데 있었다.
2호점을 얻기 직전, 계약을 하니 마니 했을 때 부동산 삼촌이 추천한 자리였다.
하지만 금액이나 몇 가지 조건이 맞지 않아 고사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장사가 지금처럼만 된다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니, 더 중요한 게 있어.”
강형우는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이미 라떼 잔 속의 얼음이 다 녹아 물이 된 상태였지만 여전히 머리가 복잡했다.
주혁 형이 이렇게 말했다.
“아이덴티티, 즉 지성분식은 정체성이 모호해.”
“예?”
“메뉴 구성도 뭔가 아귀가 맞지 않고, 특히 중요한 게 빠진 느낌?”
“그게 대체 무슨 말이에요?”
“그건 니가 고민해 봐야지. 하여간 지금 규모 이상으로 키우려면 그게 꼭 필요하다는 거야.”
그러면서 명함 한 장을 꺼내 뒷면에 메모를 해서 주었다.
“여기랑 여기를 가봐.”
***
“오빠! 대박!”
이은주가 음식 만들다 말고 이영제를 호출한 뒤, 주방에서 뛰어나왔다.
이게 뭔 일인가 싶었는데 손님들이 많아서 일단 안쪽으로 들어갔다.
“무슨 일인데?”
“아까 우리 사부님 왔다 갔잖아요.”
“아!”
음식에 한해서는 무척 빡빡한 타입이라 들었다. 그래서 살짝 겁을 먹었는데, 정말 예상과 다른 반응을 보였다.
폭립 맛이 어떠냐고 물어봤더니 맥주가 땡긴단다.
그러다 뜬금없이 신원이 형에게 한소리를 했고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다.
확실히 지금까지 보지 못한 스타일이기는 했다.
그때 이은주가 호들갑을 떨었다.
“전, 사부님이 사모님 음식 포장해 가는 거 처음 봤어요.”
“뭐?”
“그게 그러니까요.”
이은주가 말하길, 요리 학원 원장이며 유명한 요리 연구가란다.
이름이 임해진이라고 했다.
순간 강형우도 화들짝 놀랐다.
“설마, 그 임해진 선생님? 연예인 신혼부부한테 요리 강습하는 TV 프로그램에 나오는?”
“맞아요.”
순간 덜컥 겁이 났다.
자주는 아니지만, 방송에서 여러 번 봤다. 진짜 국가 공인 ‘한식 조리 명인’이었던 것이다.
게다가 동래의 유명한 한식당 사장님이기도 했다.
그런 사람이 지성분식의 김밥을 평가한다니, 달리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떠오르지 않았다.
“사부님이 원래 집에서는 음식 잘 안 하시거든요. 사모님 입맛이 예민한 편이라서 중식을 별로 안 좋아해요. 그런데 우리 김밥 가져갔어요.”
“진정하고, 그러니까 그건…….”
“예. 사모님 입에 맞는다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가게 음식이 인정받았다는 거죠. 그리고…….”
이은주는 주방 안쪽을 쳐다본 뒤,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여간 좋은 게 좋은 거라는 거예요.”
“아니, 그게 무슨 말이야?”
사실,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강주혁이 무턱대고 약속을 잡았고, 형수님까지 대동해서 왔다. 김상일은 뜬금없는 맛 평가를 하면서 기행까지 벌이고 사라졌던 것이다.
물론 이유를 듣기는 했다.
거지 같은 음식 때문에 열받아서, 심신의 정화가 필요했단다. 그래서 다소 무리한 주문을 한 거라나?
동시에 아까 주혁이 형이 공적인 자리가 될지도 모른다고 했던 게 떠올랐다.
바로 아까의 그 제안 때문이었다.
“흐음, 이백억이라……”
무심코 나온 말에 이은주가 화들짝 놀랐다.
“어? 설마 같이 나갔다 온 게…….”
“엉?”
“자, 잠깐만요.”
갑자기 이은주가 소매를 잡아끌었다. 그리고 급한 사람처럼 서둘러 주방 뒷문을 열고 주차장 쪽으로 끌고 갔다.
“그거 주혁 오빠가 말해 준 거예요?”
“뭐가?”
“내년 벡스코!”
“어? 너도… 알아?”
강형우가 당황해하는데, 이은주가 고개를 끄덕이더니 갑자기 설명을 하기 시작했다.
두루 컴퍼니는 나름 큰 기업이었다.
하지만 메이저로 진출하지 않아서 크게 알려지진 않았다.
외식 산업의 전체 규모는 대략 200조.
그중 외식업을 제외한, 식품 제조업의 규모는 절반이 넘었다.
그걸 10대 메이저 대기업들이 나눠 먹고 있었는데 그 규모만 거의 50조에 가까웠다. 일반적으로 마트에서 사는 식품 대부분을 저들이 공급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 큰 규모는 인터넷이었다. 대기업들이 오프라인 시장을 장악하는 바람에, 중소 규모 식품 제조 회사들이 인터넷으로 몰려간 것이다.
그 시장이 무려 20조란다. 나중에는 대형 유통사가 달려들었고, 식자재 공장들이 들어섰으며, 개인 업체들도 끼어들어서 이렇게까지 성장한 거다.
그 외 30조 가까이가 납품 전용 식자재들이었다.
가장 큰 건 프랜차이즈 전용 제품이었다.
치킨에 피자, 보쌈, 족발 같은 음식들에 필요한 것들이 대부분 공장에서 만들어져 납품되었던 거다.
그 외 나머지가 소위 식당용 제품들이었다.
여기에는 PC방이나 노래방, 소규모 체인점에 한식당, 중국집, 술집, 유흥주점 등등이 포함된다.
음식의 식자재 원가를 30% 전후로 보는 게 이것 때문이라 말하는 사람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어쨌든 이런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두루 컴퍼니는 무려 2% 정도의 시장 점유율을 가지고 있었다. 외식업과 식품 제조를 포함해 매출만 2조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 외 중국, 일본, 대만의 해외 법인 수익을 더하면 상당하다고 볼 수 있었다.
문제는 국내시장이었다.
두루 컴퍼니가 자본 논리로 시장에 파고드는 순간!
그 일대 상권과 업종이 크게 출렁거린다. 치킨 사업이면 치킨 업종이, 피자 사업이면 관련 회사들이 큰 영향을 받는 것이다.
여기에 강주혁의 뛰어난 기획력과 두루 컴퍼니의 능력이 합쳐지면 시장 장악은 일도 아니란다.
식품 개발부에 중식 장인과 외식업계의 스타가 있었고, 신의 혀라 불리는 천재가 포진해 있었으니까.
그 외 방송국과의 라인도 있었고 원하면 유명 연예인들도 동원할 수 있었다.
문제는 그 결과였다.
두루 컴퍼니가 새 업종에 뛰어들면, 그 피해는 본사가 아닌 대부분의 점주들과 직원들이 보게 되어 있었다.
그 때문에 강주혁은 다른 길을 개척하는 걸 원했다.
여기까지는 강형우도 들어서 알고 있는 이야기였다.
그때 이은주가 눈을 초롱초롱 빛내면서 말했다.
“기준에만 맞으면 최대 열 개, 최소 세 곳 이상은 뽑는다고 들었거든요. 한 가게당 무려 이십 억 이상을 투자한다는 거예요.”
“근데, 네가 그걸 어떻게 알아?”
“우리 아버지가 힘이 좀 있잖아요.”
이제는 감출 것도 없다는 듯, 이은주가 말했다.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이미 두루 컴퍼니의 모든 사업에 한 발씩 걸치고 있었고 초창기 창업 공신들하고 친했다. 게다가 점주 모임을 이끌고 봉사도 많이 다녔고, 신입 점주들을 많이 가르치기도 했다.
한마디로, 본사 편에 가까운 가맹점주라고나 할까?
그러니 그런 정보를 미리 듣게 되는 것도 이상하지는 않았다.
“오빠. 우리 그거 꼭 해요!”
“엉?”
“좋은 기회잖아요. 그리고… 흠흠. 전 오빠라면 할 수 있다고 봐요.”
얘가 갑자기 왜 이러나 싶었다.
물론 자세한 건 좀 더 알아봐야겠지만, 확실히 좋은 기회인 건 맞았다. 실패하더라도 도전해보는 게 결코 손해는 아닌 것이다.
하지만, 이은주의 표정을 보니 뭔가 내막이 있는 것 같았다.
***
“어우, 시원해.”
여기저기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신메뉴 냉라면 때문이었다.
일단 맛에서는 강주혁에게 검증을 받았고, 조리 과정도 확실히 정리가 되어 있었다.
쫄면보다 굵으면서 이빨로 가볍게 끊을 수 있을 정도의 탄력 있는 면발이었다.
이걸 삶아서 찬물에 비벼 빤 뒤, 물기를 뺀다.
그릇에 담고 매콤한 양념장을 올린 뒤, 샐러드처럼 보일 정도로 야채를 푸짐하게 올린다.
그런 다음 시원한 얼음 육수를 넣으면 끝이었다.
이렇게 보면 간단하지만, 몇 가지 비법이 있었다.
바로 양념장과 육수였다.
“우와, 이거 진짜 맛있네요. 게다가 기름이 떠 있는데 전혀 느끼하지 않고 깔끔해요.”
미희 어머님의 감탄사에 같은 테이블 아주머니들도 고개를 끄덕였다.
정식 판매는 다음 주 월요일부터였다. 그 전에 손님들 반응을 보기 위해 서비스로 낸 것이다.
그러고 보면, 이 아주머니들하고도 참 가까워졌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애초에 입맛 자체가 지성분식의 평균 기준에 가깝다고나 할까?
덕분에 오늘도 신원이 형이 고생하게 생겼다.
“사장님, 이거 어떻게 만든 거예요?”
“제가 좀 바빠서요. 대신 주방 총각 불러드릴게요.”
강형우의 말에 아주머니들이 기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쳇~
언제는 내가 해주는 걸 좋아하더니, 어느 순간부터 신원이 형을 보는 걸 더 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역시도 계산된 거였다.
애초에 대인기피증을 고치기 위해 시작한 거였다.
이제는 동생 강신애의 지인들과 종종 이야기했고, 미희 친구들과도 친하게 지냈다. 그러다 단골손님들과 종종 인사를 하기 시작하더니 이제는 홀에도 가끔 나왔던 것이다.
키 크지, 인물 잘생겼지.
여기에 백화점 영업직으로 있을 때의 경험까지 더해지니, 이제는 말도 술술 잘하고 있었다.
해서 강형우는 아예 이쪽 일을 강신원에게 맡겨 버렸다.
물론 최종 계획은 카운터였다.
저 얼굴로 가게 입구에 있기만 해도, 매상이 쑥쑥 올라갈 테니까.
신원이 형이 웃으며 고개를 숙었다.
“예. 궁금하신 거 물어보세요.”
“이거… 어떻게 만든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