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7
137화 그거 오해다
“메뉴판.”
“예?”
“메뉴판을 주게나.”
순간 뭐지 싶었다.
뭔가 맛 평가가 나오거나 좋다 나쁘다 하는 말이 나올 줄 알았는데, 뜬금없이 메뉴판이라니.
그래서 당황해하는데 공지혜가 빠르게 움직였다.
“여기 있습니다.”
“고맙네.”
김상일은 메뉴판을 받자마자 신유리를 쳐다봤다.
“먹을래?”
“당연하죠.”
그 대답에 김상일은 바로 주문에 들어갔다.
“일단 돈가스 하나, 그리고 하와이안 돈가스 하나, 폭립은 지금 되는가?”
“예, 돼요. 그런데 돈가스랑 같이 드시기에는 양이 많을 듯합니다.”
“괜찮네. 폭립도 같이 주고 김밥과 라면도 부탁하네.”
정말 순식간에 주력 메뉴들을 전부 주문했다.
강형우는 잠시 망설였지만, 강주혁이 웃는 걸 보니 그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설마 떼어먹기야 하겠는가? 게다가 제자라는 이은주까지 있는데 말이다.
강형우는 신속하게 말했다.
“형, 미안한데요, 폭립 좀 준비해 주세요. 은주는 바로 돈가스, 영제는 라면, 히토미는 최민지 씨 김밥 하는 거 도와주고.”
평소라면 혼자 다 했을 테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어쩔 수가 없었다.
강형우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들 부산스럽게 움직였다.
제일 먼저 김밥이 나가고 곧이어 라면까지 준비되었다.
걸린 시간은 대략 5분 정도였다.
그 직후 돈가스가 이어졌고, 다시 5분 뒤에 폭립까지 마무리되었다.
그사이 강형우는 보조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했다.
이영제가 라면을 끓이는 사이 쟁반과 수저, 김치와 단무지, 부추 무침을 준비했다.
돈가스가 튀겨지는 사이 접시에 밥과 샐러드를 놓았으며 소스까지 대기시켜 놨고, 폭립도 접시에 올리기만 하면 나갈 수 있게 세팅을 마쳤다.
그랬기에 일체의 딜레이 없이 음식이 착착착 나갔다.
“라면 나왔습니다. 앞 접시 드릴까요?”
“하와이안 돈가스 나왔습니다. 소스 부족하시면 말씀하세요.”
“폭립 나왔습니다. 이쪽으로 칼집이 나 있으니까 나머지 부분만 잘라 드시면 됩니다.”
강형우는 음식을 내가면서 설명을 덧붙였다.
다행인 건, 김상일의 반응이었다.
“라면에 고추기름 하고 파기름이라. 농도가 딱 적당하군. 그리고 버섯이 의외로 많네?”
“예. 전에 제가 인터넷 기사를 봤는데…….”
일종의 오기였다.
모 라면 회사 제품을 국내 판매용과 수출용으로 비교한 게 있었는데, 건더기 스프의 양 자체가 달랐다.
중요한 건 회사의 변명(?)이었다.
한국 사람들이 건더기 많은 걸 싫어한다나?
진짜 갈아버릴 새끼들 같으니라고.
오히려 건더기가 적으니 하나씩 집어 먹기 불편해서 잘 안 먹는 거지 더 주는 걸 누가 싫어하겠는가?
해서 강형우는 양파와 버섯, 파를 큼직큼직하게 넣었고 그 자체만 먹어도 맛을 느낄 수 있게 했다.
물론 강주혁의 영향도 컸다.
장사가 잘되면, 음식에 더욱 투자하라고 했다.
덕분에 지성분식의 라면은 초창기와 많이 달라졌다. 스프와 국물 맛에만 집중하지 않고, 건더기까지 넉넉하게 넣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가격은 아직 3,000원이었다.
이 내용을 최대한 순화시켜서 이야기하니, 김상일이 씨익 웃었다.
“김밥도, 흐음… 간이 아주 딱 좋네. 이 정도면 외식 잘 안 하는 우리 와이프도 사 먹을 것 같은데, 특히 향이 참 좋아.”
“감사합니다.”
“농담이 아니라네. 그러니까 세 줄만 포장해 주게.”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공지혜가 카운터로 달려갔다. 곧 수신호를 보냈고, 최민지가 김밥을 말기 시작했다.
강형우는 순간 이은주가 당황해하는 걸 놓치지 않았다.
아무래도 뭔가 있는 것 같은데, 분위기상 나중에 물어봐야 할 것 같았다.
“돈가스 고기는 좋은 걸 썼군. 두드려 펴는 것도 적당해서 씹는 식감이 확실히 살아 있어. 그리고 소스는…….”
김상일은 몇 번 맛을 보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다 강주혁을 쳐다보더니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푸하하하, 너 이 자식! 그때 호명이 굴릴 때, 뭐 하나 했더니만…….”
이유를 몰라 다들 쳐다보는데, 강주혁이 대답했다.
“연구 차원에서 그런 거죠. 아시잖아요?”
“연구는 무슨! 우리가 돈가스 체인 낼 것도 아닌데… 딱 보니까 이게 그때 그 소스잖아.”
“학교 급식 사업과 관련해서 필요한 부분이 있어서 몇 번 만들어본 겁니다. 오해 마세요.”
여전히 강형우는 대화의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
하지만 짐작은 갔다.
주혁이 형은 몇 번이나 돈가스를 먹으면서 바닥까지 삭삭 핥아 먹었다. 거의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깔끔하게 말이다.
그러다가 고백하더라. 소스의 대부분은 알겠는데, 한약재 성분까지는 모르겠다고.
고민하던 강형우는 결국 비밀을 풀고 말았다.
돈가스 소스에 쌍화탕을 넣었다고.
그때 주혁 형이 황당해하던 표정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느냐는 그런 얼굴이었던 것이다.
김상일이 웃으며 고개를 저었다.
“그때, 무슨 미친 짓인가 했지. 기껏 만든 돈가스 소스에 왜 쌍화탕을 붓느냔 말이야.”
“아니, 그게…….”
강주혁이 당황해하며 강형우의 눈치를 살폈다.
놀란 건 강형우 역시 마찬가지였다.
설마설마했는데, 그걸 진짜 해보다니.
물론 나중에는 솔직히 이야기해 줬다. 쌍화탕을 넣는 게 아니라, 거기에 들어가는 한약재인 계피, 감초, 생강을 졸여서 추가했다고.
그런데 그사이에 그런 일이 있었다니…….
“형우야, 그거 오해다.”
“예. 형, 오해로 알겠습니다.”
“너 그러다가…….”
강주혁이 바로 공지혜를 쳐다봤다.
약점이 잡혀 있으니 이쯤에서 웃음을 참아야 할 것 같았다.
“큼, 큼. 알겠습니다. 근데 맛은 어떠신지?”
김상일은 폭립을 한 점 뜯더니 살코기 덩어리를 입안에 우겨넣었다. 그러고는 우물우물 씹더니 딱 한마디를 꺼냈다.
“맥주!”
***
“내가 살 테니까, 뭐 마실래?”
“형이 웬일로?”
“법카.”
“헐, 그럼 그렇지.”
강형우가 피식 웃자 강주혁은 고개를 저었다.
“야. 이것도 일이야. 많이 돌아다니고, 많이 먹어보고, 경험해 보는 게 얼마나 큰 도움이 되는데.”
정말 귀가 닳도록 들은 말이었다.
강형우는 바로 말했다.
“전 아이스 아메리… 아이스 바닐라 라떼요.”
“오케이.”
강주혁은 그렇게 말한 뒤, 발음하기도 어려운 아포카토와 아이스 바닐라 라떼를 시켰다.
맞다.
지금 둘은 지성분식 근처의 카페로 이동한 상황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냐면…….
갑자기 김상일이 기행을 벌였다.
대뜸 폭립 누가 만들었냐고 부르더니 강신원을 보자마자 한마디 하더라.
네가 그놈이냐고!
다들 무슨 분위기인 줄 몰라서 어버버버 하는데, 김상일이 씨익 웃었다. 그런 뒤, 공지혜를 불러 음식 계산을 마치고서 포장한 김밥을 들고 사라졌던 것이다.
신유리도 마찬가지였다. 병원을 들렸다 가야 된다면서 주혁 형 볼에 뽀뽀를 하고 사라졌다.
정말이지 폭풍 같은 상황이랄까?
그 직후 주혁 형이 잠시 나가서 이야기 좀 하잔다. 그래서 카페로 온 것이다.
“미안한데, 궁금한 게 많을 거야.”
“아주 많습니다. 정말요.”
강형우는 진심으로 묻고 싶은 게 많았다.
갑자기 쳐들어온 것도 당황스러웠지만, 약간은 막무가내 식의 느낌도 많았으니까.
“일단, 오전에 일이 좀 있었어. 거기 들려서 맛을 보고 왔는데, 우리 이사님께서 실망을 좀 하셨거든.”
퓨전 분식이라고, 궁중 갈비 떡볶이가 메인이라고 했다.
거기에 매운 비빔잡채라는 이색 메뉴가 인기였고, 튀김도 대왕오징어를 써서 크게 판단다.
“이름은 거창한데 그냥 갈비찜 떡볶이더라고. 거기에 한 사람당 작은 갈비살 두 점씩 나오는데…….”
1인분에 6,000원이란다. 조리 시간도 15분이 넘게 걸렸고, 맛도 엉망이었다.
가장 놀란 건, 어이없게도 식혜 한 잔에 6,000원이나 받는다는 거였다.
글라스에 얼음 세 개 넣고, 시중에 파는 음료에 물 붓고 설탕 타서 내왔다나?
“완전히 겉멋만 든 가게더라고. 사장 나이가 이제 서른인데 개량 한복 입고 서빙하고, 음식에 비해서 가격도 완전 개판이더라.”
“그래서요?”
“그 가게 추천한 직원 감봉 조치했어. 물론 그걸로만 끝낼 생각은 없지.”
회사 자체 감사 팀이 움직일 거라고 했다.
아주 탈탈 털어서 건미역 상태가 될 때까지 쪼아버릴 거라나?
“헐, 너무 가혹한 거 아니에요?”
“야! 연봉 삼천 주고, 법인카드 주고, 한 달에 절반을 맛집 투어 시키는데, 저딴 가게를 추천한 게 더 어이가 없지. 미친 새끼도 아니고.”
“그런 직장이 있어요?”
회사 돈으로 맛있는 거 먹으러 다니면서 돈을 벌다니, 속으로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연봉 삼천이면 상당한 액수이기도 했고.
“우리 회사에서 운영하는 팀 중에 그런 게 있어. 주로 인터넷 맛집이 절반에, 나머지는 역사가 오래된 집 위주로 다니거든. 그런데 블로그는 믿을 게 못 되네.”
주혁 형은 바이럴 마케팅 사기꾼들 때문에 아주 외식업계가 개판이 됐다고 했다.
진짜 이름 그대로 악성 바이러스 같은 놈들이라나.
“음식 장사도 사업이니까, 홍보도 필요하긴 하지. 하지만 기본이 됐을 때나 그래야지. 맛도 거지 같고, 어디서 이상한 콘셉트로 꾸미기만 하고, 정말 날강도 같은 개새…….”
지이잉, 지이잉.
호출 벨이 적절한 타이밍에 울려서 욕설을 막았다.
강형우는 잽싸게 일어나 아이스 바닐라 라떼와 아포카토를 가져왔다.
“마시면서 들어. 사실, 우리 회사가 큰 프로젝트를 하나 준비하고 있거든.”
“어떤… 건데요?”
“내년에 벡스코 행사장 빌려서 이벤트할 거야. 부산 지역의 유행 음식을 파악하고, 프랜차이즈나 외식계의 흐름을 홍보하는 거지.”
강주혁이 천천히 이야기하는데, 스케일이 의외로 컸다.
일종의 부산 음식 박람회였다.
이름이 알려진 프랜차이즈는 일단 제외였다.
전국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면 의미가 퇴색되니까.
해서 부산을 기반으로 시작한, 막 성장하고 있는 식당들을 중심으로 한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그 가게들을 지원하기 위한 프로젝트였다.
“중요한 건, 이거 이백억짜리 프로젝트다.”
“헐.”
이백억. 무려 이백억이라니…….
갑자기 그 단위가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좋은 식당 발굴해서, 제대로 된 가치가 있다면 우리가 투자해서 프랜차이즈화시키는 거지. 물론 우리 회사 통제 아래 들어온다는 조건이 달리지만.”
설명을 들어보니 이해는 되었다.
다른 사기꾼 같은 놈들이 설치는 걸 볼 바에야, 시장에 직접 개입하겠다는 게 목적이였다.
실제로 프랜차이즈 계약은 가맹점주들에게 절대 불리했으니까.
하지만 강주혁은 그런 걸 싫어했다.
두루두루 더불어 잘살자고, 회사 이름도 두루 컴퍼니로 지었으니까.
“우리 이사님도 버럭버럭 한 게 그거 때문이야.”
비싼 돈 들여가면서 운영한 맛집 투어 팀에서 정말 개 같은 식당을 소개했으니, 어찌 열 안 받겠는가?
그걸 풀어주기 위해서 지성분식으로 데려왔다고 했다. 맛있는 음식만 먹으면 화가 풀리는 성격이었으니까.
“일단 후보는 열 곳 정도가 추려졌거든. 대부분 긍정적인 반응이고. 그래서 하는 이야기인데… 너, 한 번 도전해 볼 생각 없냐?”
“예? 제가요?”
솔직히 당황스럽기는 했다.
마찬가지로 강주혁도 그렇게 여유로운 표정은 아니었다.
“물론 조건이 까다롭기는 해. 지성분식이 아직 그 정도급은 아니니까.”
“그야 그렇죠.”
다른 후보들 이름을 들어보니 확실히 차이가 났다.
어떤 가게는 부산에 직영점만 다섯 곳이 있었고, 어떤 가게는 오히려 가맹점을 피했다.
하지만 메뉴만 들어도 아! 그 집이구나 할 정도로 유명했다.
그런 쟁쟁한 가게들과 경쟁을 해야 한다니…….
그때 강주혁이 말했다.
“너, 지점 두 개만 더 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