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5
135화 이게 뭐지
“당연히 팔려고 만든 거죠. 그런데…….”
“왜? 뭐가 문제야?”
이평석은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젓가락을 흔들었다. 그리고 또다시 면발을 집어서 입에 넣고, 국물도 맛을 봤다.
“맛 괜찮은데? 대체 뭐가 문제냐고?”
“그게요. 하, 딱히 뭐라고 하기가…….”
강형우는 일부러 시간을 끌었다.
이평석, 식자재 납품업자이자 일종의 정보상이었다.
실제로 김밥 때문에 고생할 때 정보를 얻었고, 그 외에도 자잘한 소문 같은 것들을 알려줄 때도 많았다.
그만큼 호기심도 강했고, 궁금한 건 못 참는 성격이랄까?
“면이 조금……”
“면이 왜? 이거 흔히 쓰는 사리면이잖아.”
“맞아요. 근데 이상하게 마음에 안 드네요.”
“대체 뭐가 마음에 안 든다는 거냐고? 뭐, 다른 걸로 바꿔줘?”
“있기는 있어요?”
강형우가 떠보듯이 말하자 이평석이 코웃음을 쳤다.
“네가 나를 무시하네. 잘 들어. 예전에는 우뚜기에서만 사리면을 냈거든. 그런데 요즘은 넝심하고 팔또하고 산양에서도 내고 있어. 차이가 뭐냐면…….”
라면 회사들이 처음에는 라면 종류만 팔았다. 그러다 분식 시장이 커지면서 갑자기 사리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특히 부대찌개와 라볶이, 혹은 즉석 떡볶이가 히트 상품이 되면서부터였다.
이때만 해도 대부분 라면의 면만 사용하고 스프는 따로 썼단다.
하지만, 당시 식당 사장들이 수시로 부탁을 했다는 것이다.
안 쓰는 스프랑 건더기 빼고 라면 사리만 따로 팔아주면 안 되겠냐고.
그 대상이 주로 우뚜기였다.
당시 넝심이나 산양이 라면 시장의 대부분을 장악하고 있었다.
우뚜기는 만년 하위였고, 그 때문에 다른 쪽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고민하던 우뚜기는 일반 가정이 아닌 식당을 대상으로 사업 영역을 넓혔다.
업소용 대용량 케첩, 마요네즈, 양념 통닭 소스 등을 출시했고, 카레, 짜장, 아채 스프, 같은 식품들도 식당에 맞게 따로 제작해서 팔기 시작한 것이다.
그 결과, 광범위한 식자재 유통망을 가지게 되었다.
때문에 식당 주인들의 주문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사리면을 출시했는데, 이게 초대박이 터진 것이다.
일반 사람들은 모르는데, 놀랍게도 현재 사리면 시장의 80%를 장악한 게 우뚜기란다.
“근데 이게 꽤 돈이 되는 시장이란 거야. 우뚜기가 30인분짜리 대용량 라면 스프를 팔기 시작한 것도 그래서지.”
산양이 뒤늦게 뛰어들어서 시장의 10%를 먹었다. 마찬가지로 일반 소비자 시장에서 밀려서 그쪽으로 영역을 확장한 것이란다.
팔또 역시 부대찌개 체인점이나 라면 전문점과 손을 잡았고, 후발주자도 마찬가지였다.
황당한 건 넝심이었다.
국내 라면 판매 1위, 하지만 사리면 시장에선 꼴찌였다. 실제 시장 판매량이 1%도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어쩌면 자만심 때문에 그렇게 된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그런 이야기를 들으니 이평석의 모습이 평소와 다르게 보였다.
이 정도면 거의 박사급의 지식이었으니까.
“와~ 형, 대단하네요.”
“먹고살려고 공부하다 보니 알게 된 거지. 아! 그리고 각 회사 사리면마다 특색이 있어.”
우뚜기의 경우, 기존 라면하고 거의 비슷하다고 했다.
팔또는 납품 회사의 성격에 따라 면을 다르게 제조한단다. 부대찌개 회사의 경우는 면이 국물을 빨리 흡수할 수 있게 특정 전분의 비율을 높였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맞춤형 제작에 가깝다고나 할까?
이평석은 그렇게 말한 뒤, 냉라면 그릇을 쳐다봤다.
순간, 뭔가를 깨달았는지 피식 웃었다.
“야. 정보료 달라고 말 안 할 테니까. 결론만 말해.”
“정말요?”
“이거 한 그릇으로 퉁 쳐주마.”
이평석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강형우가 주문했다.
“밀면 식감에, 두꺼운 면이요.”
“쫄면 말하는 거냐?”
“아뇨. 그거보다는 부드러워야 해요. 굵기는 가는 짜장면 정도?”
순간 이평석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강형우도 조마조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전에 식자재 마트를 방문했을 때도 느꼈지만, 음식 장사하는 사람의 지식은 한계가 있었다.
특히 소규모 식당을 운영하는 경우 객관적인 자료가 많이 부족했다. 한마디로, 식자재 중개업자한테 전적으로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문제는 대부분의 업자들이 주먹구구식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었다.
나를 믿어라. 내 안목을 믿고 주문해라. 그러면 후회하지 않는다.
뭐가 필요하냐? 그럼 이 회사 제품을 써라. 이게 최고다.
대부분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믿고 의지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이었다.
만약 사장이 특정 상품에 대해 잘 알고 거래처를 알면 직거래를 하면 된다.
족발집이라든가, 치킨집의 경우 메인 재료가 정해져 있기에 그게 가능했다.
하지만 일반 분식집은 달랐다.
일단 취급하는 게 많고, 필요한 것도 많았다.
기본적으로 쌀부터 시작해 파, 양파, 마늘, 시금치, 당근, 무, 배추, 생강 등등의 아채가 필요했다.
그 외 당면, 국수, 라면, 햄, 떡, 만두 같은 사리 종류도 있었으며, 공장 팩 제품으로 감자탕, 육개장, 갈비탕 같은 것도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만약 그걸 각 업체마다 직접 하나씩 주문한다 치자.
종류만 백 개가 훌쩍 넘는다. 수량도 정해야 하고 이런저런 고민하다 보면 아무 것도 못 하고 하루가 훅 가버리는 것이다.
때문에 중개업자, 혹은 식자재 납품업자의 도움은 필수였다.
문제는 대부분의 업자들이 이걸 귀찮아한다는 점이었다.
적게는 하루 서너 군데, 많게는 수십 군데를 들려야 하는데 언제 그런 이야기를 다 들어주고 있겠는가?
맞다.
냉라면을 먹이고, 뜸을 들인 건 평석이 형을 도발하기 위해서였다.
괜히 자존심을 건드린 게 아니란 거다.
역시나 예상대로의 반응이 나왔다.
이평석은 수첩을 마구 뒤지기 시작했다.
“흐음, 어렵네. 비슷한 종류가 칠갑께 있고, 평성께 있기는 한데 거기는 냉면 위주고. 윌풀이나, 자연풀의 경우 탄성이 너무 적으니까, 가장 비슷한 느낌이…….”
정말 1분도 안 돼서 업체 이름만 열 개가 넘게 나왔다. 게다가 식당 이름까지 줄줄이 나오니 놀라웠다.
“형. 방금 말한 거, 정말 다 아는 거예요?”
“너 나 무시하냐? 내가 그래도 사장이거든? 밑에 직원만 스무 명에 업자만 여섯이다.”
“예? 형… 규모가 그렇게 컸어요? 난 혼자 하는 줄 알았는데.”
“돌았냐? 그럼 가격 경쟁 힘들어서 안 돼. 그리고 나 혼자 무슨 수로 그 많은 업체 관리하냐? 분석이 형 때문에 너니까 임마, 특별히 신경 쓰는 거지.”
이건 정말 몰랐던 거였다. 나름 수완이 좋고 아는 게 많다 싶었는데, 벌써 업계에서 자리를 잡았다는 것이다.
이평석은 수첩에서 뭔가를 메모하더니 한 장을 부욱 찢었다.
“됐고. 여기랑 여기 가봐라.”
“뭔데요?”
“니가 말한 게 범위가 너무 넓어. 가서 먹어보고 맞으면 가장 비슷한 걸로 가져다주마.”
강형우는 가게 상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 북청밀면 비빔하고… 부자네 밀면, 쫄칼국수요?”
“아냐?”
“예. 하나는 아는데, 하나는 모르겠는데요?”
“그럼 가보고 전화 줘.”
이평석은 시계를 확인하더니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말문이 터지다 보니 예상보다 시간을 많이 잡아먹은 게 분명했다.
황당한 건, 바쁘다면서 남은 냉라면 국물을 모조리 후루룹 마시고 가는 게 아닌가?
***
“흐음, 쫄칼국수라…….”
이름을 들어는 봤다.
이 가게 이야기도 한 다리 건너 듣기도 했고, 몇 번 먹어본 적도 있었다.
원래 부산시청 옆 거제리에서 오랫동안 밀면 장사하던 집이었다. 그 일대가 재개발까지는 아니고, 주요 상권으로 부상하면서 부전시장으로 이전한 것이다.
문제는 들어선 자리였다.
바로 앞집에도 밀면을 팔았고, 그 옆 골목에도 30년 전통의 한방 밀면 집이 있었다. 게다가 직선거리로 100m 안에 비슷한 가게들만 대여섯 곳이나 됐었다.
한마디로 엄청나게 경쟁이 무지하게 치열한 곳이었다.
“그러니 밀면만 팔아서는 힘들겠지.”
실제로 부산의 대부분 밀면집들은, 아주 대박 가게를 제외하면 다양한 메뉴가 있었다. 짜장면이라든가, 만두 같은 것도 팔았고 겨울에는 칼국수나 국밥 같은 걸 팔기도 했던 것이다.
그건 이 가게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쫄칼국수라니 대체 뭐지?”
대충 예상이 되긴 했지만, 그렇다고 확신하기는 어려웠다.
강형우는 가게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테이블만 서른 개는 넘어 보였다. 게다가 80% 이상이 손님으로 꽉 차 있었고 카운터를 제외하고 홀 서빙 직원만 무려 네 명이나 있었던 것이다.
“우와, 급이 다르네.”
들어보니 여기 주방장이 사장이라더라.
게다가, 강형우의 꿈 중에 하나였던 ‘삶의 달인’에 출연한 장인이라고 했다.
그러니 손님이 이렇게 많은 거겠지.
강형우는 자리에 앉자마자 쫄칼국수를 주문했다.
가격은 겨우 2,500원.
밀면과 짜장면, 만두도 같은 가격이었고, 심지어 소고기 국밥도 3,000원밖에 하지 않았다.
“진짜 대박이네.”
확실히 손님이 바글바글할 만했다.
강형우가 가게를 둘러보는 사이, 정말 5분도 안 돼서 쫄칼국수가 나왔다.
언뜻 봐서는 우동 비슷했고 고명도 단출했다. 부추에 유부, 김에다가 깻가루가 넉넉히 뿌려진 게 다였던 것이다.
일단 국물부터 맛을 봤다.
멸치 육수 맛도 나고, 찐득한 손칼국수 느낌도 났다. 중요한 건 깊은 맛이 부족하다는 거였다.
적당히 밸런스를 잘 잡은 맛이라고나 할까?
만약 2,500원이라는 가격만 아니면 굳이 다시 찾을 필요가 없을 것 같았다.
그랬는데, 면을 먹어보니 달랐다.
“헐. 이게 뭐지?”
정말 어디서 많이 먹어본 맛이었다.
하지만 딱 이거다, 라고 할 수 있는 면도 아니었다.
일단 밀가루 면의 쫀득함과는 달랐다. 게다가 쫄면을 쫄깃한 맛과도 달랐으며 그렇다고 어색하지도 않았다.
딱, 국물하고 잘 맞는 면이었다.
가장 중요한 건, 이게 강형우가 찾던 면발이라는 것!
면, 국물, 고명.
라면, 혹은 면 요리의 대부분은 크게 저 세 가지의 성격에 따라 구분이 되었다.
그중, 국물은 어느 정도 나왔다.
사골 육수를 기반으로 닭발 육수를 섞는다. 다행히 농도가 연해서 의외로 재료비는 많이 들어가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육수에 식초와 설탕을 넣고, 라면 스프 맛이 좀 더 강한 매콤한 양념장을 푼다.
이걸로 냉라면 국물은 완성이었다.
고명 역시 마찬가지였다.
강형우는 곰라멘 집에서 먹었던 것처럼, 샐러드를 푸짐하게 올렸다.
중요한 건 색상이었다.
양배추와 적양배추, 새콤한 맛을 추가하기 위해 무절임과 단무지도 얇게 채 썰어서 올렸다. 또 오이와 청양고추까지 넣으니 보기만 해도 군침이 흐를 정도였다.
마지막은 역시 삶은 계란 반쪽이었다.
40분 정도 끓는 물에 푹 삶아서 찬물에 담갔다가 벗겨서 자르면 끝.
하지만, 국물과 고명의 완성도가 높은 반면에 면발은 초라하기 그지없었다. 사리면을 끓여서 찬물에 제대로 씻어서 냈음에도 한참 모자란다는 느낌이 강했던 것이다.
해서 강형우도 몇 가지 시판 제품을 사용해 봤다.
너구려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그걸 찬물에 넣으니 중간의 심이 너무 단단해져서 먹기가 불편했다.
라면 종류가 아닌 비빔면으로도 해봤는데, 역시나 얇아서 많이 없어 보였다. 포만감이 특히 부족했고 아쉬움이 너무도 많았던 것이다.
강형우가 이평석을 살살 꼬신 것도 그래서였다.
그 결과, 가장 적당하다 싶은 면을 찾았는데 심각한 문제가 있었다.
“역시 쫄칼국수 면발 이야기할 것 같더라. 그런데 어떡하냐. 그건 업소용 제품이 없어.”
“예?”
“너 냉라면 얼마에 팔 건데?”
“그게… 4,500원요.”
“그럼 안 되겠다. 가장 비슷한 게, 짬뽕용으로 나온 제품이 있는데 단가가 1,200원이야.”
“헐.”
이걸 좌절감이라고 해야 하나?
파는 제품이 없다고 하니 순간적으로 막막함이 느껴졌다.
그때 수화기 너머로 이평석이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