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3
133화 어떻게 생각해
인터넷을 보면 먼저 양념장부터 만들라고 되어 있었다.
제일 먼저 라면스프 반, 여기에 설탕, 식초, 간장을 적당 비율로 섞는다.
강형우는 지성분식의 맛간장을 쓰기에 설탕을 줄이고 식초를 늘렸다. 아무래도 새콤한 맛이 식욕을 자극하기에 냉라면과 맞다고 봤던 것이다.
“여기에 고운 고춧가루가 낫겠지?”
굵은 건 입자가 보이니 잘 안 풀어질 것 같았다.
해서 매운 고춧가루를 한 번 더 믹서기에 곱게 갈아서 섞어버렸다.
이렇게 섞으니 적당히 걸쭉한 양념장이 완성되었다.
“일단 맛을 보면서 고치면 되니까.”
강형우는 고명을 준비했다.
아삭아삭한 오이, 밀면에 흔히 들어가는 무절임은 평석이 형한테 구했다.
“열무는 넣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집에서 박혜숙이 만들어놓은 걸 몰래 조금 들고 왔다.
항상 있는 건 아니지만, 제철이 되면 한 번씩 해서 먹었기 때문이었다.
당연히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한 건 공지혜였다.
“일단 빼자. 열무는 맛이 너무 강해.”
기본이 된 상태에서 열무김치가 맛을 배가시키는 거였다. 그러니 추가로 맛내는 부분은 과감하게 빼기로 한 것이다.
삶은 계란도 마찬가지였다.
이제 육수가 필요했는데, 그 역시 어렵지 않게 해결했다.
맛간장을 만드는 과정에서 야채와 해물로 육수를 낸다. 거기에 적당히 물을 타서 냉동실에 넣어두면 끝이었다.
그다음은 면이었다.
강형우는 지성분식 라면에 나가는 사리면을 끓는 물에 집어넣었다.
2분 30초가 지나 타이머가 울리자마자 집게로 면의 상태를 살폈다.
적당히 꼬불꼬불했고 아직도 탱탱함이 느껴졌다.
누가 그러더라. 라면 고수는 시계 따위는 안 본다고.
그냥 면발만 몇 번 휘저어보면 얼마나 익었는지 대번에 파악한다나?
강형우도 그런 경지였다.
지금껏 만든 라면만 수만 그릇은 넘었으니 그 정도는 쉽게 파악할 수 있었다.
면을 찬물에 비벼 빨고, 냉동실에서 육수를 꺼내 거기에 넣었다.
그 위에 양념장과 고명을 올리니 나름 그럴듯한 한 그릇이 됐다.
젓가락으로 면과 양념장을 풀어서 먹는데…….
“뭐가 잘못된 거지?”
강형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일단 국물의 베이스가 되는 육수는 그 나름대로의 감칠맛이 있었다.
양념장도 라면 스프를 중심으로 섞은 거라서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육수에 양념을 풀었더니 미묘하게 거슬리는 맛이 강하게 났던 것이다.
가장 최악은 면이었다.
분명 익기는 다 익었는데, 정말 면 자체의 밀가루 맛만 강했다.
양념이 배이지 않은 생면을 그냥 먹는 느낌이랄까?
다행인 건, 국물과 고명을 올려서 먹으니 그럭저럭 먹을 만하더라.
“이건 실패네.”
강형우의 기준은 엄격했다. 손님에게 내어갈 수 있는 정도가 아니라, 가격 대비 만족할 수준은 되어야 했던 것이다.
“휴우, 다시 한번 해보자.”
무려 다섯 번이나 시도한 끝에 그럭저럭 괜찮은 맛이 나왔다.
하지만 문제가 많았다.
일단은 면, 그리고 국물과 고명이 완전히 따로따로 놀았던 것이다.
***
“사람을 더 뽑자고요?”
공지혜가 걱정된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가볍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 생각해 봤는데 주말 알바만 두 명 정도?”
“아직 그렇게 빡빡하지 않은데요? 괜찮겠어요?”
“인건비는 충분해.”
6월 말, 결산을 때려보니 대충 2,400만 원 정도가 통장에 꽂혔다. 가게 운영비와 식자재비, 인건비 등을 제외하고 그 정도나 남은 것이다.
본점에서 700만 원 정도가 벌렸고, 2호점에서 1,600만 원이 넘게 남았으니까.
게다가 이미 넉 달 하고 보름이 지났다. 매상이 어느 정도 안정되어 있다고 봐도 되는 것이다.
물론 약간의 들쑥날쑥은 있었지만, 전체적으로는 큰 흔들림이 없었다.
해서 몇 가지를 더 고민했다.
“일단 금요일하고 토요일은 브레이크 타임을 없앴으면 하거든.”
“그건, 저도 괜찮은 것 같아요.”
공지혜는 예전과 달리 자신만의 노하우를 기록한 연습장을 보란 듯이 펼친 상태였다.
처음 그걸 보여줬을 때, 강형우는 깜짝 놀랐다.
둘이서 지성분식을 운영할 때부터 지금까지, 자잘한 사건들이 빠짐없이 기록되어 있었으니까.
특히 손님들에 대한 내용이 정말 빡빡했다.
“평일은 상관없는데, 확실히 주말 영업이 그렇더라고요. 두 시 넘어서 늦은 점심 드시는 손님들도 많고 브레이크 타임 끝나기도 전에 들어와서 기다리는 분도 계시고.”
연습장 곳곳에 많은 손님들 이름이 적혀 있었다.
공지혜는 그중에서, 특히 근처 사무실 직원들을 펜으로 콕콕 찍었다.
“여기 이분들이 요 앞 오피스텔에서 일하거든요. 근데 금요일 12시 반에 마친대요.”
“마치고 나오면 거의 1시잖아?”
“근데, 일주일에 한 번 대청소하고 완전히 다 정리하고 나면 두 시가 훌쩍 넘는다고 하더라고요.”
들어보니 사장이 참 지독했다.
하루 치 식대를 빼고 근무 시간을 줄이기 위해 다른 회사보다 일찍 마쳤다.
하지만 직원들 노는 꼴 보는 게 싫었는지 매번 마치고 대청소를 시킨다는 것이다.
특히 결벽증 비슷한 게 있어서 상당히 꼼꼼하다나?
“거기 회계 언니가 그러더라고요. 자기는 열한 시에 밥 먹고 와서 꼭 청소시킨다고.”
매일 기본적인 쓸고 닦고는 한다고 했다. 그래서 청결한 편이었는데도 창틀이나 창고 정리, 화장실 락스 청소 같은 걸 매주 해야 한단다.
“참 세상은 넓고 미친놈은 많네.”
“그러게요. 다들 오빠 같으면 좋을 텐데.”
공지혜가 배시시 웃는데, 자꾸 심장이 두근거리네.
사실 지성분식은 식당이기에 청소는 좀 힘든 편이었다.
홀의 경우, 아침에는 테이블부터 바닥, 가게 입구까지 쓸고 닦았고 일주일에 한 번은 창틀이나 손 안 가는 곳을 청소했다.
반대로 주방은 매일 물청소였다.
다행인 건, 강학희 덕에 설치한 고압호스 때문에 일이 많이 편해졌다는 거다.
그냥 쏴악 한 번 돌리고 나면 어지간한 찌든 때는 단숨에 사라졌으니까.
그 외에는 이주에 한 번 냉장고 정리를 했다.
하지만 실제 일은 많지 않았다. 신원이 형이 매일 꼼꼼하게 체크하기에 확인차 검사하는 게 전부였던 것이다.
가장 힘든 건 닥트 청소였다.
한 달에 한 번, 약품을 뿌려가며 찌든 때를 벗겨야 했으니까.
중요한 건, 그 모든 게 근무 시간에 이루어진다는 점이었다.
특히 토요일 같은 경우 영업 끝나면 정리만 하고 바로 퇴근이었다. 휴일 전날, 늦게까지 붙잡아 놓는 건 욕먹을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해서 청소나 정리에 한해서는 직원들의 불만은 없었다.
“하여간 그 회사 언니들이 그러는데, 브레이크 타임 때문에 시간이 애매하대요. 우리 가게 오면 거의 두 시 반인데 눈치 보여서 편하게 못 먹는다나?”
공지혜가 여러 번 괜찮다고 했지만, 매주 그러는 게 미안했던 모양이었다.
손님이 지성분식을 그 정도로 생각해 주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괜히 기분이 좋아졌다.
“그럼 주말 알바 뽑고 브레이크 타임은 없애는 걸로 하자. 괜찮겠지?”
“예. 제가 다 이야기할게요.”
공지혜가 고개를 끄덕이니 한시름 놓였다.
실제로 강형우는 운영에 필요한 외형적인 걸 결정했고, 직원 관리나 내부적인 건 공지혜가 관리했으니까.
물론 직원들이 싫어할 만한 이야기만 하는 건 곤란했다.
그래서 강형우는 이전부터 생각하고 있던 걸 조심스럽게 말했다.
“정말 그렇게 하려고요?”
“어. 정직원은 사대보험 같은 걸 확실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원래 생각하고 준비했다가 한 번 엎어지고 말았다.
보너스 주기 전이었고, 강형우도 미처 준비가 안 되어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항상 내 말에 무조건 찬성하던 순이 이모마저도 쉽게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한 푼이 아쉬운 마당에 매달 십몇만 원씩 나가는 게 부담된다고 했던 것이다.
본격적으로 고민하기 시작한 건 2호점을 시작하면서부터였다.
일단 본점 정직원은 순이 이모와 홍성구, 정은혜가 있었고 2호점에는 공지혜와 강신원, 이은주, 그리고 이번에 수습을 뗀 이영제와 은선경이 있었다.
일단 이들한테는 사대보험을 넣어주고 싶었다.
물론 본인 의사가 제일 우선이었다.
싫다고 하면 수습으로 돌리고 일정 기간마다 재계약을 하면 되니까.
하지만 그렇게 되면 보너스를 줄 수 없게 된다.
어쨌든 개인 의사를 확인한 뒤, 절차대로 진행하면 한 사람당 추가로 나가는 금액이 대략 15만 원 정도였다.
한 달에 대략 130만 원.
거기다 그 영향에 따라 세금을 더 내야 할지도 몰랐다.
아마 건강보험이라든가 하는 게 부쩍 오를 것 같았다. 그리고 미처 몰랐던 여러 가지 손해를 보겠지.
하지만, 그 정도를 감당할 만한 충분한 수익이 들어오고 있었다.
“한번 정식으로 신청해 보려고.”
“반대하는 직원들이 있다면요?”
“그럼 어쩔 수 없지.”
정식으로 운영하는 기업이 아닌 이상 강제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으니까.
물론 말은 안 했지만, 정직원의 경우 그 부분을 감안해서 월급을 조금 올려줄 생각이었다.
안 그래도 2호점 이후, 매출이 두 배가 훨씬 넘게 올라갔다.
순수익은 거의 세 배나 됐으니 그 정도는 해주어도 부담이 없을 것 같아서였다.
또, 세금 문제도 있어서 이대로는 안 되겠다는 위기감까지 느껴졌던 것이다.
“일단 알바 뽑고, 금토 브레이크 타임 없애고, 대신 사대보험 넣는 걸로?”
“어.”
강형우가 말하자 공지혜가 꼼꼼하게 메모했다.
그런데 갑자기 궁금해졌다.
“지혜야.”
“예. 오빠.”
“내가 지금 하는 거, 지혜는 어떻게 생각해?”
나름 진지하게, 고민스러운 표정 연기까지 해가며 물었다.
공지혜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히히, 제가 왜 생각해요. 그냥 오빠만 쭈욱 따라가면 되는데.”
대답은 당황스러웠지만, 솔직히 기분은 좋았다.
***
“와, 정말 쉽지가 않네.”
정말 머리에서 쥐가 나는 것 같았다.
솔직히 냉라면을 너무 쉽게 봤다.
인터넷에 떠도는 무수히 많은 레시피를 보면 금방이라도 뚝딱 해결될 것 같았다.
하지만 의외로 첩첩산중이었다.
면발 괜찮다 싶으면, 국물하고 섞이지 않았다. 탱글탱글해질수록 아예 맛이 배이지 않았던 것이다.
또, 국물이 잘 나왔다 싶으면 양념장이 따로 놀았다. 몇 번이나 해봤음에도 제대로 풀리지 않아 맛이 들쑥날쑥했던 것이다.
어찌어찌 밀도를 조절해 적당히 섞이게 됐다 싶었는데 맛이 완전 썩었다.
다시다 가루를 씹으면서 커피를 마시는 느낌이랄까?
정말 거지도 안 먹을 그런 맛이 창조(?)된 것이다.
“하아, 정말 재능이 없는 건가?”
강형우는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만화나 소설에 나오는 무적의 치트키 ‘신의 혀’ 라든가, 무슨 음식이든 만들면 다 맛있어진다는 ‘환상의 손’ 같은 건 없었다.
지금까지는 계속 만들어보고, 고치고, 수정하고, 하면서 맛을 만들어냈고, 그게 결국 성공했던 것이다.
그 첫 번째가 어묵국밥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어릴 때의 경험이 큰 도움이 되었다. 기억 속의 맛을 찾아가는 식으로 힌트를 얻어서 만들어냈던 것이다.
그다음은 파스타였다.
이건 솔직히 짝퉁이었다.
제대로 배운 것도 아니고, 단지 그 동네에 여자들이 좋아할만한 메뉴가 없어서 시작한 것이니까.
그래서 정말 엉망이었다.
까르보나라와 크림 파스타조차 명확히 구분하지 못했기에 중간 과정이 완전 개판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주혁 형의 도움도 있었고, 열심히 하다 보니 결국 완성했다.
김밥도 마찬가지였다.
맛집 사장님의 힌트가 아니었으면 정말 오래 헤맸으리라.
가장 난이도가 높았던 건 돈가스와 치킨이었다.
이건, 정말 밑바닥부터 시작한 셈이었다.
마트에서 파는 걸 맛보고 식당용 제품도 사서 먹어보고, 인기 있다는 집도 며칠, 몇 주를 돌아보고 겨우 실마리를 잡을 수 있었다.
심지어 돈가스 때문에 고기 다루는 것까지 수련(?)해야 했을 정도였으니까.
그랬기에 냉라면을 가볍게 보았다.
하지만 이놈도, 그렇게 만만한 놈이 아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