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7
127화 가격 올려
이번 주에 김민석이네 애를 보러 가기로 했다.
토요일 홍태구가 프로포즈를 하고, 일요일은 정재일과 지애의 결혼식이었다.
얼마 전에는 창주 형이 신혼집을 구했다고 들었다. 지우 누나가 나이가 있어 서둘러 날을 잡았다는 것이다.
그건 덕수 형도 마찬가지였다.
밥버거집 3호점 근처의 적당한 빌라에 들어가기로 하고 계약금까지 걸었단다.
뭐, 형들이야 나이가 있으니 그러려니 했다. 홍태구 역시 사정이 있었으니 미루기가 곤란했고.
진짜 5월이라 그런가?
온 사방에서 청첩장이 쏟아지고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럴 시기이긴 했다. 문제는 그게 압박으로 다가오고 있다는 것이다.
어머니도 은근히 압력을 넣고 있었고, 주변 사람들도 틈나면 그에 대해 묻고는 했으니까.
하지만, 결혼이라니… 솔직히 상상이 안 되기는 했다.
이제야 겨우 공지혜와 알콩달콩하는 사이었고 아직 사귀는 걸 공개하지 않았다. 게다가 남녀 간의 일이란 게 장담하기 어려운 것 아니겠는가?
잠시 그런 고민하는데, 주혁 형이 불쑥 물었다.
“그래 지혜랑은 잘 사귀고 있어?”
“예. 이제 사귄 지… 앵? 형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강형우가 당황해서 말을 더듬는데, 오히려 상대가 더 놀란 눈치였다.
“오올? 정말?”
“설마? 찍어본 거?”
“빙고!”
강주혁은 킥킥 웃더니 잔에 막걸리를 채웠다. 그리고 요란하게 잔을 부딪혔다.
“축하한다. 너도 곧 지옥문에 들어서는구나.”
“아니, 그게요. 이제 막 사귀기 시작했거든요.”
“원래 시작은 그래. 사귀면서 오빠 오빠 소리 듣다가 아빠 되는 거고, 정신 차려보면 결혼식장인 거야. 그때 귓가에 천사가 속삭이는 거지.”
음흉하게 웃으니 이어질 말이 두려웠다.
하지만 강주혁은 막걸리로 목을 축이고 입을 열었다.
“도망칠 기회는 지금뿐이야! 어서 뛰쳐나가라고!”
“예에?”
“착각인가 싶은데 진짜 그런다니까? 내가 그때 그 말만 들었어도, 지금 이렇게 안 산다.”
강주혁이 투덜대는데, 마침 커다란 파전이 나왔다.
그걸 젓가락으로 찢더니 배가 고팠는지 단숨에 한 뭉텅이를 입으로 가져갔다.
“우움, 오음. 역시 파전은 기름 맛이지. 바로 노릇노릇할 때 먹어야 제맛이라니까.”
강주혁이 젓가락을 흔들어 너도 먹어보라는 신호를 보냈다.
가볍게 웃은 강형우도 젓가락을 들었다.
막걸리를 시원하게 들이켜고 파전을 입에 넣는데, 바로 나와서 그런지 맛이 각별했다. 튀겨진 듯한 파도 파삭파삭했고, 기름 맛도 제법 고소했던 것이다.
“아. 맞다. 형, 지혜랑 사귀는 거 비밀이에요.”
“왜?”
“그게… 제가 사장이고 하니 입장이 좀 그렇잖아요. 때가 되면 이야기할 거지만, 당분간은 모른 척해줘요.”
강주혁-고지우-김창주-정덕수 라인을 통해 순식간에 소문이 전파될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단, 하루면 지성분식 본점과 2호점의 모든 사람들이 알기에 충분했다.
그럼 이강석이 제일 먼저 놀리겠지.
“둘이서 그렇게 하기로 합의 본 거냐?”
“예. 당분간은 사정이 있어서…….”
“알았어. 대신… 이모! 우리 안주 좀 더 시킬게요. 메뉴판 좀 주세요.”
“헉.”
“세상에 공짜는 없단다. 이 정도면 싼 거야.”
강주혁은 피식 웃은 다음, 돼지 두루치기 두부김치와 모둠 생선구이를 시켰다.
두 개 다 이 가게에서 제일 비싼 안주였다.
거기에 비싼 산성 막걸리까지 추가로 시켰다.
“뭐, 상담료 겸해서 먹는 거니까 억울해하지는 말고.”
“크흑, 알겠… 습니다.”
강형우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여야 했다.
“그건 그렇고, 폭립 말이야…….”
***
“아오, 머리야.”
수련을 꾸준히 하면서 어지간하면 숙취 같은 건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어제는 도가 지나쳤다.
“대체 얼마나 마신 건지 모르겠네.”
폰 문자를 확인해 보니 세상에나, 막걸리 집에서 단둘이 마셨는데 결제 금액이 10만 원이 넘게 나왔다.
이게 가능한 액수인가 싶었는데, 얼추 맞긴 맞더라.
강형우는 자리에서 일어나 대충 세수를 했다. 그리고 밖으로 나가 새벽 공기를 마시자 겨우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평상에 앉아 담배를 물자 그제야 어제 일이 스멀스멀 떠오르기 시작했다.
“대충은 이해는 되는데, 어렵네.”
강주혁은 1인분에 12,000원, 하루 20인분 한정을 권했다.
반대로 강형우는 1인분에 8,000원을 생각했다.
무려 가격 격차가 4,000원이나 났다.
그렇게 정한 건, 어느 정도 손해를 감수할 생각에서였다.
1인분 재료비는 삼천 원이 조금 넘는 수준.
하지만 기본이 2인분이었다. 한 접시가 나가면 확실히 팔천 원 이상은 떨어지는 것이다.
그렇게 말했다가, 정말 어마어마하게 혼났다.
“너 바보냐? 주방에서 개고생해서 20인분 만드는데, 하루에 달랑 팔만 원 남기겠다고?”
“그래도 25일 영업하잖아요. 한 달로 계산하면 거의 200만 원이나 버는 셈인데.”
“그럼 그게 전체 수익의 몇 퍼센트나 되는데?”
“대충 5~7% 정도는 될 거예요. 그럼 해볼 만한 거 아닌가요?”
강주혁은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규모가 다르니 쉽게 계산이 안 되는 모양이었다.
“확실히 수익이란 측면에선 나쁜 건 아니야. 하지만 그렇게 장사하면 안 돼.”
“왜요? 확실하게 남는 건데?”
“야. 그렇게 해서 돈 언제 벌래? 그리고, 이제 밥은 먹고 살잖아?”
“예?”
이야기가 뜬금없는 방향으로 나가니 조금은 당황스러웠다.
강주혁은 막걸리를 잔에 채웠다.
“형우야, 이제 3년 차지?”
“예. 벌써… 그렇게 됐네요.”
“그럼 세상을 좀 넓게 봐야지. 너 혼자 장사하는 게 아니잖아. 야, 일단 한 잔 마시면서 들어.”
짧게 한숨을 내쉰 강주혁은 단숨에 막걸리를 비웠다.
“가격이란 건 생물과도 같은 거야. 무턱대고 올리면 손님들한테 욕먹기 좋고, 그렇다고 낮추기만 하면 근처 장사하는 사람들이 싫어해.”
“그야. 그렇죠.”
“그래서 문제지. 음식 가격은 정해진 게 없으니까. 라면 하나를 팔아도 내가 만 원 받고 싶다면 그렇게 팔면 돼. 그런데 왜 그렇게 하는 사람이 없을까?”
“안 팔리니까 그런 거죠. 누가 라면을 만 원이나 주고 먹어요?”
“있어. 의외로 많다고.”
만 원짜리 라면도 존재하긴 한다. 기내식 사발면의 경우 3, 4,000원이나 하며 호텔 룸서비스의 경우 그 정도를 받는다는 것이다.
또, 여름 성수기 휴가철 바가지 역시 그러했다.
손님에 따라 가격이 널뛰기를 한다나?
물론 말 그대로 특수한 경우였다.
“비약이 좀 심하긴 하지만, 결론은 상황에 따라 가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거야.”
“그 정도는 저도 이해해요.”
강형우가 고개를 끄덕이자, 강주혁은 심호흡을 했다.
“너, 전에 파스타 이야기 했지. 2호점에선 안 팔게 됐다고. 그때 말한 거 기억하냐?”
“예? 그건…….”
당시 강형우는 꽤 오래 고민했어야 했다.
안 팔기로 결정한 뒤, 강주혁과 이야기를 했는데 그때 나온 결론이 이거였다.
음식 가격은 맛으로만 정해지는 게 아니었다. 인테리어나 가게 분위기, 기타 서비스 같은 것들이 포함되어 결정되는 것이다.
물론 지성분식 2호점의 경우, 본점과 달리 인테리어가 훨씬 고급스러웠다.
또, 강신원이 직접 음악을 골라 부드러운 분위기를 만들었으며 직원들 태도 역시 훨씬 정중했다. 고급 레스토랑까지는 아니지만, 시장 바닥처럼 떠들만한 분위기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손님들의 기대감이 한껏 올라간 상태였다.
하지만 파스타의 맛과 퀄리티는 그 수준에 맞추지 못했다. 4,500원이라는 가격에 맞춰서 나갔기에 기대 이하의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일부 손님들이 실망한 건 그래서였다.
한마디로 밸런스가 맞지 않았던 것!
“내가 그랬잖아. 처음에 무슨 분식집에서 폭립을 파냐고? 그런데 가게를 둘러보니까 미처 못 봤던 게 보이더라고.”
“인테리어 말하는 거죠?”
“맞아. 그냥 그럴듯하게 꾸민 게 아니라, 좋은 원자재가 가지고 있는 맛이 있어. 싸구려 필름지 같은 걸로 덮은 게 아니라 깊이 있는 느낌이 확 다가오더라고.”
강주혁은 설명을 이어가다가 안주가 나오자 막걸리 두 병을 추가로 시켰다.
아무래도 이야기가 길어질 거라 생각한 모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외형적으로 보이는 것에 큰돈을 투자하는 게 그래서야. 그걸 보고 기대치가 올라가는 거지. 이 정도로 꾸몄으면 맛은 어느 정도 있겠지 하는 거.”
프랜차이즈 대부분 그러했다.
아주 맛있다고는 못하지만, 그 금액을 투자한 만큼의 맛은 나올 거라 생각한단다.
본사가 인테리어에 공을 들이고 TV광고를 하는 게 그래서였다. 지명도를 올림으로써 불특정 다수를 고객으로 끌어들일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쉽게 표현하면 진입 문턱을 낮추는 거지. 거부감을 줄이고 접근성을 올리는 거야.”
“저도 계속 공부하니까 조금은 알겠더라고요. 사실 지금 가게는 원래 보증금 오천에 권리금 사천짜리 가게였거든요. 운이 좋게 조정을 하긴 했는데… 그 돈 주고 들어왔어도 안 아까울 것 같았어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그래서 폭립 가격을 더 받으라는 거지. 그리고 그게 맞는 거고.”
확실히 강주혁의 설명은 이유가 있었다.
파스타의 경우가 그랬고, 결국 음식물 쓰레기 무더기를 보지 않았었냐?
하지만 폭립은 다르다.
음식의 훌륭한 맛에 긴 조리 시간만큼 정성이 들어갔다. 거기에 분위기까지 적당했고, 무엇보다 손님들은 그걸 즐길 권리가 있었다.
그런데 가격이 저렴하면 손님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겠는가?
“일단 음식에 대해 의심부터 하겠죠.”
“그래, 바로 그거라고.”
“결국은 기대감에 맞게 가격을 정해야 더 맛있게 느껴진다는 거죠?”
“어!”
강주혁은 강하게 고개를 끄덕인 뒤, 또다시 막걸리 병을 잡았다.
“그리고 중요한 건, 장사가 어느 정도 되는 집이 적정 가격대를 잡아줘야 한다는 거야.”
“예? 그건 들어본 적이 없는데요?”
강형우는 재빨리 수첩을 꺼내 메모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야기를 듣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이 아저씨가 어느새 상권 조사를 끝낸 모양이었다.
아파트가 몇 개 있고, 빌라가 얼마나 되며, 원룸 시세가 어느 정도다.
집의 규모나 상권 형태가 중산층에 맞는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조금 여유 있는 사람들이 사는 동네라는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일대 음식점들의 평균 가격을 쉴 새 없이 불렀다.
번화가 끝에 물려 있다는 이유로 평균보다 비싸다는 것.
더불어 거기에 이질적인 가게가 지성분식이라고 했다. 맛은 떨어지지 않는데 가격이 저렴해서 손님들이 끊이질 않는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는 짐작하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상세하게 분석해 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너 때문에 근처 분식집 두 군데가 곧 문을 닫으려고 해. 그런 건 생각 안 해봤지?”
“진짜예요?”
“당연하지. 우리 회사에 상담이 들어왔거든. 국수집 하고 싶다고, 그런데 거절했어.”
“왜요?”
“빨리 망하는 게 오히려 돕는 것 같아서.”
노력 없이 상권 덕을 보면서 장사하고 있었단다.
물론 그게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매상이 기울어지자 본성이 드러났다는 것이다.
음식 가지고 장난을 치기 시작했다나?
“기본이 안 되어 있으니까 그런 거야. 그런 가게들은 업계를 위해선 망하는 게 좋아. 그리고 빨리 망할수록 돈 투자 안 하니 오히려 이득인 셈이지.”
확실히 이럴 때는 누구보다 냉정한 게 강주혁이었다.
“어쨌든 형우야. 생각 잘해서 가격 올려라. 안 그러면 욕먹는다.”
막걸리 열 병에 사만 원.
여기에 소주 네 병 추가해서 만이천 원이었다.
안주 값이 오만 원이나 들었으니, 술 한잔 마신 것치고는 확실히 과하기는 과했다.
하지만, 그 이상으로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전까지는 내 가게만 보고 장사를 했는데, 앞으로는 상권에 대해 좀 더 신경 써야 할 것 같았다.
가장 무서운 건 그거였다.
주혁 형이 말하길, 내가 가격을 올려야 그 두 가게가 오래 버틴다는 것이다.
조금씩 손해 보면서 장사하다가 보증금까지 다 털어먹고 구석까지 몰리게 된다나?
그때, 두 가지 선택이 있었다.
절치부심 노력해서 가게를 새롭게 바꾸거나, 폐업을 하거나였다.
후자의 경우, 다시는 음식 장사할 엄두를 못 내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