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5
125화 형 잘했어요
“형, 준비해요.”
강형우의 주문에, 강신원은 심호흡을 했다.
그런 뒤, 오븐 예열 상태를 확인하고 냉장고로 달려갔다.
폭립 4인분, 돈가스 둘, 불돈가스 둘에 하와이안 돈가스가 네 개였다.
강신원은 거기에 맞게 재료를 꺼내놓고 혼자 조리에 들어갔다.
강형우와 이은주는 그 과정을 천천히 지켜보았다.
현재 시각 8시 15분이었다.
30분에 예약 손님들이 잡혀 있었으니 조금은 서둘러야 하는 상황.
강신원은 폭립을 오븐에 넣고, 기름 온도를 확인했다.
치이이익.
돈가스가 튀겨지는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
강신원은 바로 접시부터 깔았다.
밥을 놓고 샐러드를 올리는 중간중간에, 돈가스를 뒤집고 시간을 확인했다.
그런 식으로 준비하는데, 입구 쪽이 소란스러웠다.
아무래도 오늘의 예약 손님이 온 모양이었다.
강형우는 슬쩍 바깥을 쳐다봤다.
마침 공지혜와 최민지가 손님들 안내를 하고 있었는데, 우와, 진짜 모델들이었다. 얼굴이 조막만 한 데다 하나같이 늘씬늘씬했고, 비율이 장난이 아니었던 것이다.
마침 강신원도 한눈을 판 모양이었다.
“집중해요.”
이은주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강신원이 움찔거렸다.
하지만 이내 정신을 차린 듯 마무리에 들어갔다.
돈가스를 건지고 대신 튀김용 감자를 넣었다.
채망에서 돈가스 기름이 빠지는 사이, 오븐에서 폭립을 꺼내 소스를 발랐다. 그리고 다시 돈가스를 접시에 올려놓고 추가 작업에 들어갔다.
하와이안 돈가스에 오븐에서 구운 슬라이스 파인애플과 후르츠 칵테일을 올렸고, 소스를 부었다. 다른 돈가스도 소스를 부은 뒤, 파슬리와 흑깨, 참깨를 뿌리고 최종적으로 빠진 게 없나 다시 확인했다.
“됐어.”
강신원의 말에, 이은주가 직접 나섰다. 그리고 곧 고개를 끄덕이더니 벨을 울렸다.
손님에게 나가도 된다는 신호였다.
그 직후 강신원은 폭립을 장식하기 시작했다.
폭립을 넓은 접시에 옮기고 바비큐 소스를 부은 뒤, 파슬리를 뿌렸다.
그 옆에 케찹, 간장 소스와 매운 바비큐 소스를 담은 종지를 올렸고, 마지막으로 감자튀김과 구운 파프리카, 그리고 양배추 샐러드를 곁들였다.
이게 지성분식 스타일의 폭립이었다.
“후아, 끝났다.”
강신원이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본 강형우는 흐뭇하게 웃음을 지었다.
정말이지 일취월장이었다.
처음에, 신원이 형이 대인기피증 때문에 홀에 못 나간다고 했을 때 많이 난감했다. 저런 사람을 어디 써먹을까 했다가 한참이나 고민해야 했었던 것이다.
그러다 의외의 장소에서 해답을 얻었다.
정덕수의 형님네 밥버거 본점인, 배산역점 주방에 형제가 일하고 있었다.
그중 형이 한쪽 다리가 불편했다. 목발이나 보조기구의 도움을 받으면 걷는 건 가능했지만 뛰는 건 아예 불가능했던 것이다.
오픈 첫날.
형제가 돌아갈 때 그걸 발견했지만, 사정이 있겠거니 해서 물어보지 않았다. 그러다 나중에 술자리 한 번 했는데 그때 본인에게 직접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군대에서 수색 중, 지뢰 피해를 입었다고 했다. 운 좋게 발목이 날아가지 않았지만 그 부상으로 전역을 했다는 것이다.
이후 후유증 때문에 많이 힘들었단다.
공장 생활도 해봤고, 남들이 못하는 어려운 일도 많이 도전해 봤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비웃음이었다. 일을 못 하게 하는 건 장애가 아니라, 사람들이 시선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던 중, 집 밑에서 직원을 구한다 해서 일단 지원을 했다.
물론 반쯤 포기하는 심정이었단다.
하지만 웬걸?
사장님은 다리 불편한 걸 보고도 딱 두 개만 물어봤다는 것이다.
안 빠지고 잘 나올 수 있습니까?
열심히 할 수 있습니까?
이 형이 엉겁결에 ‘네’ 했는데, 내일부터 출근하라는 말을 들었다는 것이다.
나중에 덕수 형한테, 장애우 같은데 왜 뽑았냐고 슬쩍 물어봤더니 오히려 피식 웃더라.
어차피 밥버거야 한자리에 앉아서 꾸준히 만들기만 하면 되는 것이고, 주방 일도 바퀴 달린 의자 하나 놓으니까 다 알아서 하더라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이거였다.
“내 이름자에 덕이 있잖냐. 사람이 덕을 베풀고 살아야지.”
물론 농담이었지만, 그렇게만은 들리지 않았다. 김민석, 윤다정의 경우만 해도 그랬으니까.
이때 깨달은 바가 있었다.
뭐 때문에 안 된다, 뭐라서 안 된다. 이런 생각을 조금은 버리게 되었으니까.
“형, 잘했어요.”
“진짜?”
“예. 몇 분 오버하긴 했지만, 이 정도면 본격적으로 주방 일 병행해도 괜찮을 것 같아요.”
강형우는 진심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요즘 부쩍 열심히였다.
얼마 전부터는 자기가 주방 안에만 있는 게 미안하다면서 오전 오후 식사를 혼자 해치우고 있었다.
거기에 최근에는 뭘 배웠다고 좀 해보면 안 되겠냐고 부탁을 했다.
강형우는 비용만 무리하게 들지 않으면 상관없다고 했다.
그 결과는 대부분 점심 영업 전의 식사로 나왔다.
뜬금없이 짬뽕밥 같은 게 나오면 당황스럽긴 했지만, 어차피 입으로 들어갈 거라 생각하니 재료비는 아깝지 않았다.
보다 중요한 건, 강신원이 무언가를 향해 열정을 불태우고 있다는 거였다.
이후 이은주에게 정식으로 배웠고, 요즘은 주방 일까지 욕심을 내고 있었다.
맞다. 이건 일종의 할 수 있느냐 없느냐를 보는 테스트였다.
하지만, 아직 강형우의 시험은 남아 있었다.
“이제 손님들한테 인사하고 오세요.”
“뭐? 그런 말은 없었잖아?”
강신원이 당황해하는데, 오히려 강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형. 오늘 예약 손님들이 신애 친구들이잖아요. 신애가 자기 오빠가 음식 해준다고 부른 건데… 실망할지도 몰라요.”
“윽.”
말문이 막히는지 강신원은 고개를 돌렸다.
그때 이은주가 물었다.
“사장님, 꼭 그렇게 해야 해요?”
“아니, 뭐가 어려워? 어, 동생아 맛있게 먹어라. 오오~ 친구분들 다 예쁘시네요. 예. 제가 오늘 대접하는 겁니다. 맛있게 드시고, 솔직한 감상 부탁드릴게요.”
강형우는 아주 평범하게, 정말 동생한테 하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말했다.
“별로 안 어렵잖아요? 그냥, 형 동생인데, 우리 식구들한테 하는 정도로만 해도 되잖아요.”
잠시 생각하던 강신원은, 고개를 끄덕였다.
“형우, 네 말이 맞네. 신애 친구들이면 뭐, 그 정도는 하는 게 맞겠지.”
“예. 가볍게 해요.”
강형우는 그렇게 말하며 강신원의 등을 두드렸다. 그리고 같이 홀로 나가서 따로 카운터에 머물렀다.
“안녕하세요. 신애 오빠, 강신원이라고 합니다.”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는데, 진짜 곳곳에서 탄성이 터졌다.
“꺄아, 오빠. 진짜 잘생겼어요.”
“예. 배우 같아요.”
역시 얼굴이 잘생기니, 1차 관문은 그냥 통과였다.
거기에 강신애의 지원사격이 추가되었다.
“내가 그랬잖아. 우리 오빠 진짜 잘생겼다고.”
“언니가 장난치는 줄 알았죠.”
“근데 오빠, 여자 친구 있어요?”
질문이 훅 들어왔음에도 강신원은 당황하지 않았다.
“아뇨. 없습니다.”
“어머어머, 어떡해? 그럼 저희 어때요?”
그러면서 단체로 모델 포즈를 취하는데, 평범한 남자들이라면 심장이 터질 정도였다.
하지만 강신원은 태연했다.
“예. 모델 하시는 분들이라고 들었는데, 다들 예쁘시네요.”
“그게 다예요?”
“하하, 제가 낯을 좀 가려서요.”
강신원은 그렇게 말한 뒤, 가볍게 몇 마디를 주고받았다.
그때 강신애가 나섰다.
“형우야, 너도 와봐.”
“나?”
“내 친구들하고 동생들인데 인사해야지.”
강형우는 망설이지 않고, 그 앞으로 나섰다. 미래의 고객이라면 이 정도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까.
“자자, 조용. 이쪽은 내 친구고 여기 사장이다. 앞으로 근처 올 일 있으면 수시로 들려서 팔아주도록.”
“지성분식 사장 강형우입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강형우가 고개를 숙였다.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몇몇이 힐끔거리긴 했는데, 신경 쓰일 정도는 아니었던 것이다.
그때 누가 불쑥 물었다.
“사장님, 여자 친구 있어요?”
“예. 저는 있습니다.”
혹시나 싶어, 가게 사람들에게는 이미 면피용으로 대답하겠다고 해놓은 상태였다. 실제로 아주머니들이 짓궂게 물어본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던 것이다.
무엇보다, 없다고 하면 공지혜한테 미안했다.
“혹시, 여자 친구가 신애 언니?”
“하하, 아닙니다. 얘는 그냥 여자 사람 친구죠.”
강형우가 너무 당당하게 말하자 다들 놀랐다.
오히려 강신애가 피식 웃었다.
“야, 니들. 내 이름 대고 공짜로 먹으려고 그러지?”
“어? 어떻게 알았어요?”
“역시 언니 눈치가 대박!”
그렇게 웃고 떠들고 하는 사이 강신원은 인사를 하고 주방으로 향했다.
강형우도 적당히 분위기를 맞춰준 뒤, 공손히 물었다.
“그런데, 맛은 어떠신가요?”
***
“일단 계산은 나왔네.”
아주머니들과 단골손님들 반응을 봤고, 신애 동료들한테도 평가를 받았다.
이후 며칠 동안 데이트 핑계로 공지혜와 여러 곳을 돌아다니면서 다른 가게 조사도 대충 끝낼 수 있었다.
나가서 먹는 폭립은 평균 일인 만오천 원 정도였다. 홈쇼핑이 만이천 원대, 인터넷으로는 만 원대였고, 양이 넉넉한 경우는 좀 더 가격이 나갔다.
해서 강형우는 직접 주문해서 먹어봤는데 오히려 인터넷에서 파는 게 더 나았다. 홈쇼핑은 사은품을 빼고 나니, 내용물이 너무 부실했던 것이다.
결론은, 제대로 된 걸 먹으려면 나가서 사 먹는 게 더 낫다였다.
그런 의미에서 지성분식의 폭립은 충분한 가능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혼란스러웠던 건, 나이대에 따라 평가가 많이 갈린다는 점이었다.
30대 후반부터는 많이 비싸다고 했다.
식사로 먹기에는 부담스럽다나?
반대로, 젊은 손님들은 저렴한 가격이라고 했다. 특히 여자 손님들은 1인분 만 원 이내라면 반드시 다시 들리겠다고 했던 것이다.
생각해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많이 접해본 사람들만이 이 가격이 적절하다는 걸 눈치챈 것이니까.
“문제는 심리적인 저항선인데…….”
현재 세트를 제외하고 제일 비싼 게 육천 원이었다. 게다가 폭립 하나만 먹는 경우가 없다는 걸 계산하면, 가격은 조금 더 낮춰도 될 것 같았다.
그러다 문득 의문이 들었다.
“근데 일 인분 칠천 원 하면 남긴 남나?”
개인적으로 해주는 음식이라면 양을 넉넉하게 잡는다.
하지만 파는 경우는 그래선 안 된다. 철저한 원가 계산에 맞춰서 가격을 정해야 하니까.
그렇게 따지면 좀 더 명확히 계산을 해야 할 것 같았다.
무엇보다, 항상 그렇듯이 최종 결제자는 따로 있었다.
“바쁜데 자꾸 오라 가라 할래?”
“에이, 결국은 이렇게 왔잖아요”
강형우는 환하게 웃으며 두 팔을 벌렸다.
반대로 강주혁은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며 손을 저었다.
너의 관심과 사랑보다는, 음식이 중요하다는 의미였다.
“뭐, 듣기는 들었는데… 진짜, 미친놈 같으니라고. 누가 분식집에서 폭립을 먹냐?”
“형도 그렇게 생각하죠?”
“당연하… 아니, 당연한 게 아니네. 이 인테리어를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강주혁은 그렇게 말한 뒤, 자리에 털썩 앉았다. 그러자 강형우도 슬쩍 맞은편에 자리를 잡았다.
“전에는 바빠서 꼼꼼히 확인 못 했는데, 확실히 이렇게 보니 폭립도 어울릴 것 같다. 아니, 차라리 독립 브랜드로 진행시켜도 괜찮을 것 같은데.”
“예?”
“우리 회사야, 저렴하게 많이 파는 게 기본이잖아. 당연히 안 맞지. 하지만 여길 개조해서 단가 높은 레스토랑 음식을 팔아도 나쁘진 않을 것 같아.”
강주혁은 저번과 다르게 꼼꼼하게 인테리어를 살폈다.
그러다 와락 인상을 쓰면서 강형우를 노려봤다.
“배고프다. 음식 내와라. 먹어야 욕이라도 하지.”
피식 웃은 강형우는 벌떡 일어나 고개를 숙였다.
“잠시만 기다리십시오. 고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