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1
121화 사귄다고
“자, 시급 5,000원 잡고, 하루 열 시간이니 오만 원. 일한 건 팔 일이니 40만 원이네.”
하지만 최민지와 히토미에게 50만 원을 맞춰주었다.
기분이 좋았던 것도 있지만, 앞으로 계속 같이할 거라는 판단이 서서였다.
그런 뒤, 이제 실질적으로 내 몫으로 돌아올 것에 대한 계산에 들어갔다.
“미쳤네. 미쳤어.”
강형우는 황당해하면서도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장사 망했을 때는, 정산하는 게 지옥이었다.
마이너스, 마이너스, 또 마이너스.
처음 오픈했을 때 장사가 잘돼서 벌었던 돈으로 메꾸고 메꾸고 하다가 나중에는 비용을 최대한 줄여야 했다.
그나마 고집을 부려서 식자재 비용은 유지했다.
음식 퀄리티는 유지해야 했으니까.
하지만, 순이 이모를 내보내야 했고 부족한 인력을 몸으로 때워가며 장사했다. 결국 공지혜랑 단둘이서 해야 했기에 하나부터 열까지 잡다한 일은 전부 다해야 했다.
정산이 즐거워진 건, 장사가 잘돼면서부터였다.
한 달 내내 고생한 보상을 받는 기분이랄까?
물론 중간중간 대략적인 계산은 했었다. 그래서 이번 달 월 수익이 얼마나 되는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예상은 매출 일억 돌파였다.
이렇게 말하면 농담인 줄 아는데, 진짜였다.
지성분식 본점이 매출 삼천에서 오천 사이를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2호점만 해도 칠천에서 구천 사이를 오가고 있었으니 충분히 기대해 볼 만했던 것이다.
사실 저번 달 수익을 명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건, 권리금을 다 갚아버려서였다.
일부 마이너스가 나온 게 그래서다.
“본점 매출이 사천만 원이 조금 넘네.”
여기에 인건비만 대략 천사백만 원이었다.
식자재비가 천만 원 수준이니 거의 절반이 날아간 셈이었다. 여기에 월세 칠십에, 공과금, 전기세, 그 외 기타 잡비하고 세금까지 빼놓고 나니 팔백만 원이 남았다.
중요한 건 2호점이었다.
“매출이 칠천오백이라…….”
두 달 반, 이제 석 달째에 접어들고 있었다.
오픈발도 끝났고 기타 이벤트 효과도 전부 사라졌다. 그러니 수익 안정권이라 봐도 좋았다.
여기에 예상되는 요인까지 계산하면 15% 정도를 마이너스로 잡으면 된다.
그건 본점을 이년 가까이 운영하면서 겪었던 게 있어서였다.
“적어도 월 매출 육천 이상은 확실하다는 건데.”
합치면 거의 일억이었다.
보너스를 넉넉하게 줬음에도, 아직 식자재비와 기타 잡비들이 과하게 나가고 있음에도, 강형우의 수중에 떨어지는 돈이 어마어마했다.
“하, 하하~”
실질적인 첫 정산에 무려 삼천만 원을 벌었다. 본점과 2호점을 합치니 그만큼이나 떨어진 것이다.
강형우는 계산이 맞는가 싶어 무려 세 번이나 반복했다.
카드 수수료만 거의 이백만 원이 나왔다.
돈가스 고기만 팔백만 원 이상 구입했고, 인건비만 삼천만 원 수준이었다.
“그랬는데도 삼천만 원이라니…….”
거의 직장인 연봉이었다.
이걸 한 달 장사 만에 벌었으니 어찌 놀라지 않을까?
물론 그만큼 어마어마하게 노력을 했다.
지성분식 오픈 전부터 치면, 거의 이 년 반이었다.
그동안, 설 연휴와 추석을 빼면 거의 쉬어본 적이 없었다. 무엇보다 가게 망하기 직전까지 갔을 때, 멍하게 앉아서 숨 쉬는 것조차 괴로워서 없는 일을 만들기도 했었던 것이다.
그렇게 버티고 버텨낸 결과가 이거였다.
“삼천만 원이면, 넉 달만 벌면 일억이 넘네.”
이대로 반년만 벌고, 거기에 지금 사는 집 전세금을 합치면 아파트 하나는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방 세 개짜리면 어머니와 영지, 그리고 공지혜도 더 편하게 지낼 수 있겠지.
그렇게 되면 인정둥이 녀석들도 휴가 나와서 내 방에서 난리 치는 일은 없을 터.
“아니지. 차를 한 대 뽑을까?”
몇 달만 참으면 근사한 외제차 사는 것도 가능할 거다.
앞에 커다란 엠블럼 박힌 걸 타고 다니면 예쁜 여자들 꼬이는 것도 쉬워질 테고, 분식집 사장이라고 무시받는 일도 없을 테니까.
상상은 망상으로 진화되었다.
이렇게 한 이삼 년만 벌면, 건물주도 꿈이 아니야.
번화가 말고 적당한 동네에 건물 하나 사서 일층에 지성분식을 차리는 거야.
이층에는 PC방이나 당구장에 세를 주고, 지하에는 노래방 같은 거 하고, 꼭대기 층에 사는 거지.
거기에 평상도 놓고, 파라솔도 설치하고, 친구들 불러서 고기도 구워 먹고…….
“잘하면, 평생 월세만 받으면서 먹고 놀 수 있잖아.”
그런 상상을 하면서 흐뭇해하고 있는데, 턱을 괸 손에 뜨뜻한 게 느껴졌다.
바로 코피였다.
“아오. 무슨…….”
강형우는 휴지를 뽑아서, 대충 코를 막은 다음 걸레를 가져왔다.
멍하게 있는 사이에 제법 흘렀던 모양이었다.
그렇게 정리를 한 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봤다.
찬찬히 그 얼굴을 살펴보는데 느낌이 미묘했다.
“병신같이,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건물주는 무슨…….”
강형우는 머리를 휙휙 흔들어 잡생각을 날려 버렸다.
그런 뒤 자리로 왔는데, 또 코피가 났다.
“이거 왜 이러지?”
강형우는 휴지로 대충 틀어막고 콧등을 눌렀다.
“헛지랄하지 말라는 신의 계시인가?”
하긴,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불과 재작년까지만 해도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도 힘들었으니까.
정신이 돌아오니 카운터에 놨던 다이어리가 생각났다.
그걸 가져온 강형우는, 첫 장부터 천천히 살폈다.
돈 벌면 해야 할 일!
거기 목록에 차가 있었다.
“그래. 외제차는 무슨, 다음 달 계산해 보고 중고로 짬 스타렉스나 하나 사야겠다. 그럼 청과물 시장이나 돌아보고, 가게 규모에 맞게 직거래나 알아봐야지.”
그다음은 이사였다.
목돈을 들여 자취방에 투자를 했지만, 요즘은 좁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이강석과 백창호가 수시로 들려서 치킨 파티를 벌인 탓이었다.
“아! 창호.”
강형우는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
“짐이 이거밖에 안 되냐?”
이사 도와주러 왔는데, 짐이 달랑 세 박스였다. 이거마저도 택배 불렀다면서 이제 다 끝났다는 것이다.
“빠르네.”
“혼자 사는데 뭐, 치울 게 있나요?”
컴퓨터는 강석이한테 넘겼고 그 외 가재도구는 원래 있던 거란다.
그것 말고는 가방이 하나 있었는데, 그 안에 책이 몇 권 들어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호기심에 열어봤는데 익숙한 게 보였다.
“중식 조리사 자격증?”
“예. 얼마 전부터 공부하긴 했는데 하필 입대가 코앞이라…….”
“왜? 너도 장사해 보게?”
“거기까진 모르겠어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봤는데, 뭐라도 하나 배우는 게 나을 것 같더라고요.”
그러면서 이야기하는데, 아버지가 싱크대 쪽 기술자라고 했다.
하지만, 대기업 대리점인데도 실질적으로는 하청에 하청이란다.
“아버지 도움이 되고 싶어서 따라다니긴 했는데, 그냥 막노동이나 다를 바 없더라고요. 차라리 빨리 기술 배우는 게 낫겠다 싶어서요.”
몰랐는데, 동생이 둘이나 더 있다고 했다.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부산으로 가출(?)한 게 그래서란다.
입 하나라도 줄어야 부모님이 편하지 않겠느냐면서.
“어차피 잘된 거죠. 기왕 갈 군대 빨리 갔다 오면…….”
백창호는 그렇게 말하면서 씨익 웃었다.
왠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강형우는 도피하다시피 입대를 택했고, 그때는 가족들을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새끼, 군대 갔다 와서 갈 데 없으면 와! 내가 너 하나 밥 못 먹이겠냐?”
“정말, 그래도 돼요?”
순간 눈빛이 달라지는데, 뭔가 실수한 게 아닌가 싶었다.
하지만 이미 뱉은 말이 있으니 뻔뻔스러워야겠지?
“그래. 나중 일은 걱정하지 말고. 몸 건강히, 무사히 잘 마치고 와라.”
“진짜죠? 나중에 나왔는데, 가게 없어지고 그런 거 아니죠?”
“뭐? 나 망하라고?”
강형우가 인상을 쓰자, 백창호가 다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그게 아니라 잘돼서 더 큰 데로 옮기고 뭐, 그런 거 있잖아요.”
“그런데?”
“왜 사람이 대박 나면 안면 몰수한다고…….”
더듬더듬 변명이라고 하는데, 귀여웠다.
강형우는 백창호의 어깨를 두드렸다.
“약속하마. 너 올 때까지 안 망할 거니까 걱정하지 말고. 대박 나도 모른 척 안 할게. 됐지?”
“예.”
백창호가 순진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피식 웃은 강형우는 조건 하나를 걸었다.
“대신, 자격증은 따고 와라!”
참 기분이 미묘했다.
창호가 심야버스를 끊어놔서 시간 여유가 있었다. 그래서 강석이를 불러 같이 밥을 먹고 PC방에서 놀다가 배웅까지 해줬다.
막상 보내고 나니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인정둥이들 보낼 때만 해도 이렇지는 않았는데, 가슴이 조금 저리다고나 할까?
고개를 돌리니 강석이도 심란한 모양이었다. 곧 입대가 예정되어 있었던 것이다.
결국 위로를 겸해서 술 한잔 사주기로 했다.
그러다 충격적인 이야기를 들었다.
“뭐? 창호랑 은혜하고 사귄다고?”
“몰랐어요?”
“그, 그건…….”
거의 매일 들리는 본점이었지만, 그런 것까진 몰랐다. 옆에 붙어 있는 것도 아니니 그럴 수밖에.
순간, 조리사 자격증이 머리에 떠올랐다.
“그럼 은혜가 주방 일 배우겠다고 한 게 그래서야?”
“예. 나중에 창호 제대하면 둘이서 장사하자고 했다네요.”
갑자기 괘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묘한 배신감 같은 게 느껴졌던 것이다.
그래놓고 꼭 돌아오겠다고?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보고 싶어서가 아닌 것 같은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안 그래도 요즘 정신이 없었다.
민석이는 애 태어났다고 연락 왔고, 온 사방에서 청첩장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창주 형이 먼저였고, 그다음이 덕수 형이었다.
그런데 창호마저 연애를 하고 있었다니…….
“근데 형, 형은 연애 안 해요?”
“모르겠다. 고민이 안 되는 건 아닌데.”
주혁 형한테 아주 명치를 제대로 맞았다. 쓸데없는 핑계대지 말라면서 말이다.
그 직후 공지혜가 많이 달라 보이기는 하더라.
하지만, 동생 영지를 생각하니 쉽게 말이 안 나왔다.
무엇보다 공지혜는 전여친의 존재도 알고 있었다. 연애할 때 가게에 와서 여러 가지 트러블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진짜 혼자 될지도 모르는데…….”
“뭐?”
휙 고개를 돌리니까, 갑자기 이강석이 말을 더듬었다.
“아, 아뇨. 그런 게 아니라. 봄이잖아요. 꽃 피는 봄이고, 청춘이 파릇파릇한 계절이고…….”
“니가 갑자기 시를 쓴다? 또, 뭐가 있지?”
“있으면 뭐 어때요? 다들 서로 좋아서 만나는 건데.”
“야. 사장 입장에서는 알아야지. 연애하다 깨지면 둘 중 한 명은 가게 안 나온단 말이야.”
버럭 했지만, 이 역시 사실이기도 했다. 실제로 창주 형네 오뎅집에서 그런 일이 생기기도 했던 것이다.
결국 사람이 갑자기 안 나오는 바람에 다른 직원들이 며칠 내내 힘들어야 했었다.
강형우가 그런 이야기 하는데, 이강석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뭐? 성구가?”
***
차라리 안 들을 걸 싶었다.
하지만 듣고 나니 모르는 척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병신인가?”
이상하게 바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그럼 고자?”
그건 아니라고, 머리가 옆으로 돌아갔다.
“아니, 애초에 내가 원하는 게 뭐였지?”
모르겠다. 정말 모르겠다.
사실, 고민할 일도 아니긴 했다.
홍성구하고 공지혜가 따로 몰래 만난단다. 둘이 좋아서 연애하는 거니, 제삼자가 뭐라 할 상황은 아닌 것이다.
하지만 짜증이 확 났다.
“형우야, 형우야!”
“예? 형.”
“너 오늘 좀 이상하다? 몇 번을 불렀는데…….”
강신원은 다급한 손짓으로 육수통을 가리켰다.
가서 보니, 색이 조금 이상했다. 게다가 향도 예상한 거와 너무도 달랐던 것이다.
“형, 믹스 커피… 얼마나 넣었어요?”
“네가 시키는 대로 넣었지. 한 통 다 넣으라면서.”
“예? 제가요?”
강형우는 얼떨떨해하며 눈을 크게 떴다.
“내가 두 번이나 물어봤잖아? 그런데 다 넣으라면서?”
“설마……”
혹시나 싶어 확인해 보니, 옆에 쓰레기통에 껍데기가 수북하게 있었다.
그때 강신원이 한마디 했다.
“너 임마, 주방에서 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