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8
118화 이대로 끝내려고
“이 새끼야. 착실하게 살아.”
“아, 그만 좀 때려요.”
“어쭈? 개긴다? 니 덩치에 이게 아프기는 하냐?”
“당연히 아프죠. 때린 데 계속 때리는데.”
“큭큭, 잘 아네. 그래, 맞으면 아픈 거 아는 놈이 애들을 그렇게 팼어?”
“후우, 씨. 아저씨 같으면 열 안 받겠어요? 그 새끼들이 우리 아버지 욕하고, 내 가족 건드린다는데…….”
“잘했다.”
“예?”
“마, 잘했다고. 다른 거 다 필요 없고. 부모 욕하는 놈하고 가족 건드린다는 새끼들은 패 죽여도 돼.”
“아저씨… 형사 맞아요?”
벌써 십 년도 훌쩍 넘은 기억이었다.
그때의 아저씨는 의외로 젊었다.
많이 봐줘야 주혁 형 또래 정도?
그날 병원 응급실에서 긴급 진료를 받고 바로 구치소에 갇혔다. 그런 날 끄집어내서 설렁탕을 사줬고, 경찰서 구석의 숙직실에서 재워줬다.
다친 놈은 찬 바닥에서 자면 병난다면서.
이후, 어차저차 하면서 정당방위로 결론이 났다. 옆구리에 칼이 박혔으니 피해자가 됐고, 여기에 미성년자라는 점에서 그런 판결이 나왔던 것이다.
무엇보다, 내가 싸웠던 애들이 일진이었다.
망미동 일대에서 소문난 양아치들이었고, 몇몇 범죄와 관련되어 있었다.
거기서 끝나는 게 아니라 몇 명은 예비 조폭이었단다.
조직에 있던 선배들이 끌어주기로 했다나?
하지만 그 일로 끈이 떨어져 버렸다. 지원도 못 받고 소년원으로 보내졌던 것이다.
뭐, 그건 그거고.
-야, 너 지금 어디냐?
“독서실인데요?”
-구라 치다 걸리면 잡아간다?
“아놔. 고삼이 이 시간에 독서실에 있지 어디 있겠어요? 와서 확인해 보세요.”
-마, 새끼야. 너 어디야?
“예? 헬스장인데요? 요즘 다이어트 한다고 했잖아요? 민락역 부산은행 옆에 XX 헬스라고 있어요.”
-그래. 열심히 해라. 근데… 너 같은 놈도 살이 빠지긴 빠지냐?
-형우야, 어디냐?
“친구들하고 서면에서 한잔하는 중입니다.”
-야. 팔자 좋네. 이 삼촌은 오늘도 좆같은 놈 잡는다고 짱박혀 있는데… 좋구나.
“저 다음 주에 입대해요.”
-…씨발, 미안하다. 잘 갔다 오고 휴가 나오면 연락해라. 소주 한잔 사주마.
그렇게, 잊을 만하면 한 번씩 통화를 했었다.
이후, 군대 제대하고 나서 연락이 왔는데 그제야 고백을 하더라.
자기가 전화했을 때, 나하고 비슷한 덩치가 사고를 치고 도망을 쳤단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전화를 한 거라나?
한마디로 그때까지는 범죄 용의자 1순위였단다.
“아니, 민중의 지팡이가 애먼 사람을 죄인 취급해도 됩니까?”
“지팡이가 아니라 곰팡이다. 썩어서 고인 물 재탕 삼탕 우리는 거지.”
“와, 진짜 너무하네요.”
“마! 그래도 내가 수시로 연락하니까… 너 임마, 나쁜 길로 안 빠지는 거야. 그게 얼마나 다행이냐?”
“눼에 눼에. 감사합니다.”
이후, 명절 전 후로 한번씩 통화한 게 전부였고, 서로 안부 정도만 묻고 살았다.
그러다가 지성분식 오픈하기 전에 한 번 만났다. ‘내 밥상’ 그만두고 다시 이 동네 정착하기 위해서 준비하던 중에 우연히 보게 된 것이다.
그때 명함 한 장을 받았다.
“이거 뭐예요?”
“야. 세상일이란 게 어떻게 될지 몰라. 사람이 아무리 착해도 사건이 터지는 경우가 있거든. 그러니까 피할 수 없는 교통사고 같은 거라고 해야 하나?”
“예?”
“살면서 경찰서 올 일 없으면 제일 좋지. 하지만 인생이란 게 그런 게 아니거든. 내가 미안한 게 좀 있어서 다른 건 못 해주겠고, 만약에… 진짜 만약에 일 생기면 이 명함 써라.”
당시에는 그 의미를 몰랐다.
하지만, 이번처럼 똥 밟았다 싶은 일이 생기니 그 아저씨 얼굴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역시 전화해 보는 게 맞겠지?”
강형우는 지갑 제일 구석이 있는 명함을 꺼냈다.
전에 김민석이 깽판 쳐서 각서 쓰게 했을 때 이후, 처음 꺼내는 거였다.
연제 경찰서, 형사계 이병선.
나중에 김민석이 이야기하길, 형사반장으로 진급했단다. 처음 봤을 때 거의 초짜 형사였는데 벌써 시간이 그렇게 흘렀던 것이다.
강형우는 폰을 꺼내 전화번호를 눌렀다.
“여보세요.”
막상 목소리가 들리니까 이상하게 말이 나오지 않았다.
-마, 형우냐?
“예. 아저씨.”
-진짜 오랜만이네. 근데, 명절도 아닌데 웬일로?
“그, 그게요.”
뭐부터 이야기해야 하나 싶어 고민하는데, 이병선이 선수를 쳤다.
-야, 마침 잘됐다. 너 어디냐?
“그게, 남부 경찰서인데요.”
-거긴 왜? 뭐, 사고 쳤냐?
“그게요……”
***
“자, 쉽게 가자. 신고자 조인아 씨는 폭행에 대한 증거로 진단서를 가져왔다.”
“예.”
“그럼 신고가 들어왔으니 경찰 입장에선 조사를 해야겠지? 그래서 널 찾은 거고 협조를 요청한 거야. 여기까지는 OK?”
“예. 이해했어요.”
“그럼, 피해자와 가해자의 진술이 다르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게, 보통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면 형사들이 나와서 조사를 하잖아요. 아니면 같이 불러서 대질 심문을 하던…….”
강형우가 더듬더듬 이야기하는데, 이병선은 한숨을 내쉬었다.
진짜 오랜만에 얼굴 보는데도 전혀 낯설지가 않았다. 180㎝가 조금 안 되는 키에 다부진 체격은 여전했고, 눈빛 역시 날카로웠던 것이다.
달라진 건, 갈색 잠바 안의 셔츠가 등산복으로 바뀌었다는 것 정도?
이병선은 담배를 끈 뒤, 고개를 저었다.
“한심한 놈아. 현실과 영화는 달라. 대한민국 경찰 인력이 남아도는 줄 아냐? 이런 건 조사할 건수도 못 돼. 애초에 신고 들어온 것 자체가 웃긴 거지.”
“예? 아니 경찰이 그래도 돼요?”
“뭐, 현실이 그렇다. 할 일은 많은데, 사람이 부족하니까. 그리고 말이 좋아 전치 2주지 손목 삐끗한 거야. 고소감도 안 되는 거, 이거 알아보려고 여러 번 출동하는 것도 못 할 짓이지.”
“그럼 어떻게 해요?”
강형우가 살짝 인상을 찌푸리는데, 이병선이 피식 웃었다.
“너 올해, 아홉 맞지?”
“예.”
“장사는 계속하고?”
“그렇죠.”
“하긴, 먹고사는 게 바쁘니 알 리가 있나? 이런 일로 변호사 찾는 것도 황당할 거고.”
이병선은 그렇게 말한 뒤, 강형우의 등을 팡 쳤다.
“아우!”
“살 많이 빠졌지만, 덩치는 여전하네. 그래, 약삭빠른 것보다 너처럼 순한 게 오히려 낫지. 자! 우리 착하고 멍청한 조카를 위해, 이 삼촌이 쉽게 설명해 주마. 일단 담배나 한 대 물어라.”
시키는 대로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거 다 꺼지기 전에 방법을 가르쳐 줄 테니까. 잘 들어.”
“예.”
“저쪽이 진단서를 들고 왔어. 그럼 어디가 다쳤다는 거지? 그리고 너 때문에 다쳤다고 한 거잖아? 그걸로 폭행죄로 신고한 거고.”
“일단은 그렇죠.”
“그럼 넌, 폭행이 아니라는 걸 증명하면 돼.”
“그래서 아까 진술서 쓸 때, 아니라고 했거든요. 그냥 때리려는 거 막은 것뿐인데요?”
강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이병선은 피식 웃었다.
“그러니까 합의 보라고 한 거지. 어쨌든 접촉은 있었잖아?”
“그게… 그렇게 되는 거예요?”
“그럼 뭐, 경찰이 셜록 홈스라도 되냐? 탐정도 아닌데 앉아서 다 알게? 제일 간단한 건 증거야. 그것만 있으면 이건 뭐, 뚝딱이지.”
이병선은 그렇게 말한 뒤, 강형우를 쳐다봤다.
여전히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 모습이 웃기기도 했고, 반대로 한심하기도 했다.
이병선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너 가게에 CCTV 있냐?”
“예. 박 형사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이병선은 통화를 끊고, 강형우를 쳐다봤다.
여전히 혼란스러운지 멍한 표정이었다.
“마, 정신 차려. 다 됐잖아?”
“그, 그러네요.”
강형우는 여전히 얼떨떨했다. 정말 담배 한 개비가 꺼지기 전에 답이 나왔던 것이다.
“이 간단한 것을, 왜 미처 생각하지 못한 거죠?”
“원래 사람이 그런 거다. 지은 죄가 없어도 일단 경찰서에서 오라 그러면 오만 생각을 다 하게 되거든. 특히 착하게 산 사람일수록 더하지. 왜냐? 억울하다는 생각밖에 안 들거든.”
“그래… 요?”
몇 마디 주고받지 않았는데, 이병선의 차는 벌써 지성분식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5분도 안 돼서 경찰 두 명이 찾아왔다.
마침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강형우는 먼저 지성분식 식구들부터 안심시켰다. 별일 아니라고 한 뒤, 이병선이 시키는 대로 노트북을 켰다.
“두루 캅? 여긴 어디냐?”
“아, 그거는요. 아는 형네 보안업체거든요. CCTV 관리하는 곳인데…….”
전에 ‘제대로 한 끼’에서 실습하면서 지우 누나한테 들었다.
두루 컴퍼니 가맹점에는 CCTV가 달려 있단다. 매장을 비추는 것뿐만 아니라, 오픈 주방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것 때문에, 건물 한 층을 서버실로 운영하고 있단다.
그때 들었는데 관련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도 따로 만들었다고 했다.
두루 캅.
음식점 전용 CCTV 관리 업체였다. 고객이 낸 비용에 따라 삼 개월에서 육 개월, 최장 일 년까지 데이터를 보관한다는 것이다.
해서, 지성분식 2호점 오픈할 때 가입을 했고, 본점에도 설치를 했었다.
강형우는 두루 캅 홈페이지에 접속해 고객 전용 아이디 비번을 치고 로그인을 했다.
그런 뒤, 어제 날짜 시간대별로 분류된 파일 중 하나를 찾아 실행시켰다.
“바로 나오네.”
화질은 선명하지 않았지만, 이목구비를 알아볼 정도는 되었다. 게다가 강형우의 덩치가 커서 한눈에 들어왔다.
조인아라는 여자가 손을 휘둘렀고, 강형우가 그걸 잡았다.
그 직후 고개를 숙이며 연신 사과를 했다.
이병선은 그걸 확인한 다음 웃었다.
“이게 다야? 뒤에 더 없어?”
“예. 나간 뒤로 다시 온 적 없거든요.”
강형우의 대답에 경찰들도 허탈하게 웃었다.
이병선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하아, 이거 미친년이네. 진짜 별것도 아닌 걸로 일만 키우고 지랄이야. 저기 박 형사님, 이거 확인했죠?”
“예. 뭐, 이 정도면 끝났네요.”
두 경찰은 몇 마디 의견을 더 주고받은 뒤 강형우에게 명함을 건넸다.
“예. 이 주소로 파일 보내주시면 됩니다. 나머지는 저희가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예. 감사합니다.”
“혹시 모르지만, 한 번 더 경찰서에 오실 일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강형우가 공손히 대답하자 경찰들이 돌아갔다. 그런데 갑자기 불안해졌다.
“이거, 제대로 하는 게 맞아요? 괜히…….”
“야. 경찰들도 이게 더 편해. 증거만 있으면 바로 무혐의 처리해서 사건 종결이거든. 이후에 행정 처리하면 끝! 오히려 몇 번 더 안 움직이고 좋지.”
이병선이 말하길 이래야 신고자도 별말 못 한다고 했다. 물론 자기 때문에 편의를 봐준 건 있지만, 법적으로는 전혀 문제 될 게 없다는 것이다.
“하아~”
그제야 마음이 놓였다.
불과 세 시간이었다. 그사이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이나 오르내리는 경험을 해야 했다.
무엇보다 이병선의 말이 맞았다.
억울하고 열받으니까 진짜 아무 생각이 안 나더라. 머리통 한구석에 나무 말뚝을 박은 것처럼 멍해진다고나 할까?
아마 본인 일이 아니라, 남의 일이었다면 쉽게 해답을 찾았을지도 몰랐다.
어쨌든 머리가 식으니까 정신이 돌아오는 것 같았다.
그때 이병선이 어깨를 두드렸다.
“형우. 넌, 이거 업체에 연락해서 파일 보내달라고 하고… 이제 어떻게 할래?”
“뭘 어떻게 해요?”
“그럼, 이대로 끝내려고?”
이병선은 뭔가를 기대하는 눈빛이었다.
피식 웃은 강형우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이거 고소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