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7
117화 진짜 성질나네
“이 아지매! 진짜 너무하네.”
“뭐라고요?”
“염치가 있어야지. 삼 일 전에도 내 안 된다 캤잖아요. 근데 또 그라요? 진짜 누굴 바보로 아나?”
최민지가 씩씩대니까, 사람들이 전부 그쪽을 쳐다봤다.
그러자 테이블에 앉은 30대 초반의 여자가 버럭 소리를 내질렀다.
“지금 말 다 했어욧?”
“다 못 했어요! 이래된 거 함 깝시다. 삼 일 전에 우리 매니저한테 밥 좀 달라고 했죠. 그래서 공기밥 천 원이라 하니까 그냥 달라고 했잖아요!”
최민지가 따지자 여자는 잠시 멈칫거렸다.
“우리 매니저가 죄송하다고, 안 된다고 사과했어요? 안 했어요? 그래놓고 다른 손님 계산하러 가는 사이, 나 몰래 불러가 또 밥 공짜로 달라고 했잖아요!”
“아니, 그게…….”
“내도 애 키우는 입장이라고, 아가 불쌍해서 몰래 반 공기 갔다가 안 줬어요? 글카면서 다음부터는 절대 안 된다고 했죠! 들키면 내 사장님한테 짤린다고.”
“아줌마!”
“내 아줌마 맞거든요!”
최민지는 고개까지 들고 당당하게 받아쳐 버렸다.
놀란 상대는 입도 열지 못하고, 어버버거렸다.
“내가 어지간하면 이런 말 안 하려고 했는데, 손님들도 좀 보소. 하도 기가 차가.”
주먹으로 가슴을 탕탕 두드리며 말하는데, 진짜 답답한 모양이었다.
“며칠 전에 이 여자가 어쨌냐면… 돈가스 혼자 다 처묵고, 모자라가 라면 시키가 먹고 나서 밥 좀 달랍디다. 그래서 배고픈가 싶어서 몰래 반 공기 줬더니 라면 국물에 말아가 애한테 대충 먹이고 가더라고요.”
“애가 고기를 못 먹잖아요! 라면도 얼마나 자극적인데.”
“못 먹기는요? 아가 몇 살인데 못 먹어요? 우리 아는 네 살 때부터 삼겹살도 먹고 라면도 먹고 다 했거든요. 딱 보이 다섯 살은 넘겠구만.”
여자가 부들부들 떠는데도 최민지는 그치지 않았다. 오히려 기세를 이어가겠다는 듯 바로 쏘아붙였다.
“그래놓고 방금 뭐라 그랬어요? 밥 못 준다고 하니까, 융통성이 없네, 무식해서 제대로 못 배웠네, 이래 장사하면 분식집 곧 망하겠네. 안 그랬어요?”
“내가 언제 그랬어요?”
“하이고, 마. 내 귓구녕이 잘못됐는 갑네. 죄송합니다. 하여간 기분 드르브서 공짜 밥은 못 주니까, 계산하고 가이소.”
최민지는 손을 휘휘 저었다.
정말 시장 바닥에서 오래 장사한 아주머니 같은 포스가 철철 넘치고 있었다.
강형우가 나선 건 그때였다.
사실은 바로 나오려고 했는데, 잠시 멈칫했을 뿐이었다.
그 1, 2분 사이에 최민지가 폭풍처럼 쏘아붙였고, 그걸 듣다가 정신이 멍해지는 바람에 타이밍을 놓쳤다.
때문에 아슬아슬했다. 여자가 열이 받았는지 최민지의 얼굴을 향해 손을 휘두른 것이다.
그걸 강형우가 붙잡았다.
손목 잡힌 여자는 와락 인상을 찌푸리더니 고개 돌렸다가 움찔 놀랐다.
여자도 나름 키가 큰 편이었지만, 강형우에 비할 바가 못 됐다. 게다가 덩치도 산만 했고, 온몸이 근육질이였으니 순간적으로 겁에 질린 것이다.
그때 커다란 체구가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죄송합니다.”
강형우가 손목을 놓고 고개를 숙였다.
여자는 당황했는지, 반응하지 못했다.
“죄송합니다.”
강형우는 고개를 숙인 채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그때 최민지가 강형우의 옷을 잡아당겼다.
“사장님, 왜 그러세요.”
“민지 씨는 잠깐 안에 들어가 있어요.”
“그게…….”
공지혜가 최민지의 팔을 슬쩍 잡아당겼다.
거기에 은선경까지 재촉하자 최민지는 고개를 푹 숙이고 주방으로 들어갔다.
강형우는 또다시 여자 손님한테 고개를 숙였다.
“이유야 어떻게 됐든 저희 직원이 불편을 드려서 죄송합니다.”
“그게요.”
“예. 사과의 의미로, 음식값은 받지 않겠습니다.”
강형우가 몇 번이나 고개를 숙이며 이야기하자 그제야 여자는 화가 풀린 모양이었다.
“종업원 교육 똑바로 시키세요. 씨발, 재수 없어서 미친년 만나가지고.”
여자는 비싸 보이는 백을 잡으려다 인상을 찌푸렸다. 강형우에게 잡힌 손목이 아팠던 모양이었다.
다시 한번 짜증을 낸 여자는 짐을 챙기고 아이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진상 손님을 보냈으나 아직 일은 끝이 아니었다.
강형우는 테이블마다 돌아다니면서 고개를 숙였고, 손님들한테 몇 번이나 사과를 했다.
소란을 피워서 죄송하다고.
그러면서 서비스로 음료수를 돌렸고, 또 고개를 숙여야 했다.
일을 그렇게 마무리 지은 강형우는 주방 안쪽으로 들어갔다.
“민지 씨.”
강형우는 이를 꽉 악문 상태였다.
그걸 본 최민지가 움찔움찔 떨었다.
“사장님, 죄송해요. 제가 그냥 성질을 못 이기가꼬.”
“아뇨. 잘했어요.”
“예?”
“잘했다고요. 아우, 진짜 열받네.”
강형우는 벌벌 떠는 손으로 안쪽 가방에서 담배를 꺼냈다.
하지만 가게 안은 금연이었다. 그걸 알기에 길게 한숨을 내쉬다가 자신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말았다.
“아오, 내 담배.”
무심코 내뱉고 나니, 갑자기 헛웃음이 나왔다.
담배 이게 뭐라고.
“사장님.”
“아뇨, 괜찮아요. 저 정말 괜찮아요.”
강형우는 억지로 호흡을 늘려서 가슴을 진정시켰다.
진짜 멘탈이 튼튼하지 않았다면, 홧김에 그 여자 싸다구를 몇 번이나 날렸을 거다.
“와, 진짜 성질나네.”
“사, 사장님. 제가 잘못했어요. 진짜…….”
이유도 모른 채 최민지가 떨고 있었다.
강형우가 흥분한 게 고스란히 느껴진 모양이었다.
고개를 휙 돌린 강형우는 갑자기 지갑을 꺼냈다. 거기서 뭔가를 찾더니 이번에는 오만 원권까지 더해서 최민지에게 건네줬다.
“미안합니다. 아까 편 못 들어줘서요.”
“예?”
“원래라면 사장은 무슨 일 있어도 직원부터 챙겨야 하는 게 맞아요. 그런데 거기서 그걸로 화내면 그 미친년이 무슨 지랄할지도 모르고, 일 커지면 다른 손님들이 불편해하잖아요.”
강형우가 최대한 말을 아낀 것도 그래서였다.
“일단 빨리 정리하는 게 우선일 것 같아서 그랬어요. 미안해요.”
“아, 아뇨, 사장님. 오히려 제가…….”
“민지 씨는 조금 울퉁불퉁한 데가 있기는 해요. 그건 사람 개성이니까 어쩔 수 없는 거고. 다음부터는 화가 나도 우리 같이, 꼭, 참읍시다.”
강형우가 다독이자 최민지는 더 미안한지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그건 할인 쿠폰인데, 오늘 기분 좀 그렇잖아요?”
최민지는 차마 대답을 못 했다. 아무래도 죄책감까지 느끼는 모양이었다.
“별거 아니고 이 옆에 미용실 사장님이 주신 건데, 쿠폰 가져오면 머리 싸게 해준다고 해서 받아놓은 거거든요. 내일 출근 늦게 해도 되니까 그걸로 기분 전환이라도 하세요.”
“그래도…….”
“제가 지금 해드릴 수 있는 게 그거밖에 없어요. 일단은 그렇게 아시고, 오늘 시간도 다 됐으니까 바로 퇴근하세요.”
“사장님… 저 자르는 거 아니죠?”
“일 잘하는데 왜 잘라요? 그럴 일 없으니까 내일 기분 전환하시고, 오후에 즐겁게 봅시다.”
강형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서둘러 주방 뒤편의 주차장으로 나갔다.
속에서 울컥 하는 게 올라와서 고함이라도 내지르고 싶었다.
사실 고개 손님한테 숙이는 거 별로 어렵지 않았다.
지성분식 본점에 비하면, 이 동네는 큰 사고가 거의 없는 편이었으니까.
전에는 동네 어르신들 술 드시고 와서 해장한다고 라면에 또 소주를 시켰다.
그 경우 열에 하나는 꼭 문제가 생기더라.
서로 멱살 잡고 싸우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고, 어떨 때는 테이블 엎고 서로 뒹굴기도 했다. 그때마다 뜯어말리기 바빴고 어떻게든 정리하려고 애써야 했다.
게다가 그 상태에서 돈까지 받겠다고 그러면 또 싸움이 난다. 가게가 아주 난장판이 되는 것이다.
제일 좋은 건, 일단 바깥으로 보내는 거였다. 무조건 사과하고 보낸 게 그래서였다.
하지만, 그 어떤 손님도 그런 말은 하지 않았다.
“가게… 망한다고?”
이게 제일 열받는 거였다.
지금의 지성분식을 만들기까지 얼마나 고생을 했던가?
잠도 줄였고, 쉬는 날도 쉬는 날이 아니었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일해서 망해가던 본점을 살렸고, 힘들게 2호점까지 냈던 거다.
그런데 가게 망하란다.
특히 힘들게 장사해서 자리 잡은 사장들의 경우, 저 말을 제일 싫어했다. 진짜 칼부림 나고 싶으면 해도 되는 것이다.
“후우, 진짜 열받네.”
기분 같아서는 뭐라도 잡고 두들기고 싶었다.
하지만, 뭐라도 부셨다가는 강학희한테 혼날 것 같아 편의점으로 달려갔다.
줄담배 세 개비째를 피우고 한숨을 내쉬는데 뒷문이 열렸다.
“아우, 담배 냄새.”
“어? 미안. 하도 답답해서.”
공지혜가 인상을 찌푸리자 강형우는 서둘러 담배를 끄고 쓰레기통에 넣었다.
“왜? 무슨 일 있어?”
“아뇨. 그냥.”
“안에는?”
“정리하라고 시켜놓고 나왔어요.”
공지혜는 잠시 말이 없더니,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빠, 화 많이 났죠?”
“조금.”
“에이, 딱 보면 아는데… 사실 저도 들었거든요. 장사 망하라고 말하는데 확 가서 한 대 때려주려다 참았거든요.”
순간 움찔했다.
공지혜는 다이어트한다고 별의별 걸 다 했다.
그럼에도 정체가 왔는지, 최근에는 좀 과격한 운동까지 배운다고 들었다.
그런 애가 아줌마 때리면, 합의금 무시 못 할 텐데?
“하여간 오빠, 잘 참았어요. 아까 고개 숙이기 직전에 살인나는가 싶어서 조마조마했거든요.”
“나, 사람 안 때려. 얼마나 착한데, 진짜 법 없이도 살 사람이 나다.”
“무인도에서?”
“어? 그런가?”
강형우가 피식 하자, 공지혜도 웃었다.
이렇게 실없는 농담이라도 하고 나니, 그나마 속은 좀 풀리는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오빠. 진짜 저런 손님들 계속 받을 거예요?”
“당연히 아니지. 하지만 무턱대고 거부할 수는 없잖아.”
사실 이걸로 공지혜와 여러 번 이야기했다.
비밀이긴 한데, 이미 공지혜는 진상 손님 리스트를 어느 정도 완성시킨 상태였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손님 가려 받는 게 소문나면 장사하기가 쉽지 않았으니까.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가 조용히 말했다.
“사실은 아까 민지 씨 보고 생각난 게 있는데…….”
***
“실례합니다.”
가게 입구로 들어선 건, 경찰이었다. 오픈까지 한 시간 정도 남은 상황인데 불쑥 찾아온 것이다.
강형우는 앞으로 나서자 경찰이 움찔했다.
“무슨 일이시죠?”
“혹시 사장님 되십니까?”
“예. 제가 사장입니다만?”
그 말에 경찰 두 명이 눈치를 살폈다.
“신고가 들어와서 그런데, 협조 좀 부탁드리겠습니다.”
“예?”
“그러니까, 아침에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어제 여기서 폭행당했다면서…….”
경찰이 뭐라 뭐라 이야기하는데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머리에서 열이 확 났던 것이다.
“죄송합니다. 일단 서까지 가서 조사받으셔야 합니다.”
“우와, 진짜 사람 돌겠네.”
답답해서 한숨을 팍 내쉬는데, 경찰 두 명이 동시에 뒤로 물러났다.
아마, 살기를 느꼈나 보다.
강형우는 담담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예. 갑시다.”
전치 2주.
그 미친년이 가져온 진단서가 그렇단다.
경찰은 신고가 접수됐으니 조사하는 게 당연했고, 그게 의무였다.
그걸 알기에 강형우는 고분고분 묻는 말에 대답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 시달린 끝에, 겨우 바깥으로 나올 수 있었다.
“와. 살다 살다 이런 일도 다 겪는구나.”
이건 뭐, 발암 덩어리가 아니라 터진 원자로 수준이었다.
한마디로 속이 타들어가는 기분이랄까?
“으으으, 열받아.”
경찰 이야기를 들어보니 고소감도 안 된다고 했다. 이 정도면 손목 삐끗한 정도라나?
그러면서 하는 말이 적당히 사과하고 합의 보라는 거였다.
대체 왜? 내가 뭘 잘못했는데?
진짜 억울하고 답답했다.
짜증 나서 연거푸 담배를 피는데, 갑자기 한 사람이 떠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