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2
112화 만오천 원이라
“흐음.”
신음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가 들렸다.
강주혁은 몇 번 고개를 가로젓더니 다음 조각을 입으로 가져갔다. 그리고 눈을 감고 찬찬히 씹다가 또 한 조각을, 또 한 조각을 집어넣었다.
그렇게 5분이 지나자 후라이드 대부분이 사라졌다. 별로 먹는 것 같지도 않았는데 혼자서 그만큼을 처리한 것이다.
말 그대로 은밀하고 위대(?)하게 라고나 할까?
강형우가 감탄하는데 강주혁이 손을 들었다.
“왜요?”
“형우야, 손님이 부르는데 왜요는 무슨 왜요냐? 오늘 실전 같은 연습이라면서?”
강주혁은 노골적으로 불만스럽다는 표정을 지었다.
피식 웃은 강형우는 바로 고개를 숙였다.
“죄송합니다, 손님. 무슨 일이십니까?”
“어. 하나 더.”
“예?”
“한 마리, 더 튀겨달라고.”
순간 잘못 들었나 싶었다.
물론 남은 후라이드는 두 조각밖에 없었다.
하지만 양념은 하나도 먹지 않은 상황.
“형, 아직 반도 안 먹었잖아요. 양념은 손도 안 대놓고.”
“양념 먹고 나면 또 후라이드 먹기가 그래서. 알잖아? 나 까다로운 거!”
하긴, 그런 쪽으로는 강형우가 아는 사람 중에 최고였다.
진짜 저렴한 것 중에서도 맛있는 것만 찾아 먹는 사람이었으니까.
게다가 맛에 대해 더럽게 까다로웠다.
“그럼 하나 더 시킬 건데… 다 먹을 수는 있어요?”
“너도 먹어야지.”
“저 바쁜데.”
“그러면 이야기해 줄 건 없고. 이것만 먹고 일어나련다.”
강주혁은 그렇게 말하면서 손가락을 닦았다.
아오, 이 아저씨가 진짜!
부른 이유를 뻔히 알면서 이러는 걸 보니, 살짝 짜증이 올라왔다. 물론 나름 유쾌한 반응이기도 하지만, 괜히 약점 잡힌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알았어요. 한 마리 더?”
“아니.”
“또 왜요?”
“어허, 손님한테 왜요라니?”
“그럼요?”
“추가 주문. 두 마리 튀기고 한 마리는 포장. 물론 후라이드다.”
“헐, 포장은 또 왜요?”
“니 형수님, 주문이다.”
그러면서 폰으로 카오톡을 하는데, 못 볼 걸 본 것 같았다.
이름이 여신님으로 되어 있었다.
“형, 혹시 공처가?”
“애처가란다. 그리고 울 마눌님은 나 없으면 죽거든.”
설마 싶었는데, 그럴 수도 있다 싶었다. 주혁 형 의존증인가 하는 치명적인 병이 있다고 들었으니까.
“알겠습니다. 고객님. 후라이드 두 마리 들어갑니다.”
“올 때, 오백 두 잔 더 가지고 와라.”
손짓을 보니, 하나는 내 거라는 의미였다.
강형우는 카운터로 향했다. 그런 뒤, 준식이 형한테 추가 주문을 넣고 가게를 둘러봤다.
가게가 꽉 차 있었는데 다들 치킨 뜯는 데 여념이 없었다.
강형우는 막간의 틈을 이용해 공지혜 앞에 앉았다.
“맛은 어때?”
“맛있어요.”
“그게 다야?”
“흐음, 뭐라고 해야 하나? 이건 그냥 치킨인데요. 진짜 본질에 충실한 맛? 딱히 그렇게 말고는 표현할 말이 없어요.”
그렇게 말했지만 감상은 끊이지 않았다.
처음에는 바삭하고, 입안에선 촉촉하고, 뭔가 씹을 때 고소한 즙 같은 게 느껴진단다. 게다가 물리지 않는 향긋함 같은 게 있다나?
그 잠깐의 이야기를 하는 동안, 공지혜는 무려 세 조각을 먹어치웠다.
“근데 진짜 양 많네요. 거의 한 마리 반 같은데요?”
“한 마리 맞아.”
“그래요? 무슨 토종닭을 튀겼나?”
그 순수한 감탄에 웃음이 나왔다.
생각해 보니 그럴 만도 했다. 일반 프랜차이즈나 치킨집들이 쓰는 것보다 컸고, 토막을 많이 쳐서 훨씬 양이 많게 보이니까.
실제로 시장 통닭이나, 오래된 옛날 스타일의 치킨집들은 대부분 이런 방식으로 튀겼다. 양도 많아 보이고 실제로도 엄청 푸짐했던 것이다.
강형우는 공지혜와 맥주 한 잔을 마신 뒤, 테이블을 옮기면서 감상을 물어봤다.
순이 이모는 옛날 연애할 때 생각이 난다며 좋아했고, 이강석과 백창호는 배달 치킨과는 급이 다르다고 평가했다.
강신원은 경기도의 전국 5대 치킨이라는 한성 통닭이 생각난다고 했다. 차로 한 시간 가서 포장해서 먹었는데 거의 그 정도 수준이라는 것이다.
제일 황당한 건, 이은주였다.
“저 솔직히 이런 치킨은 처음 먹어봐요.”
“뭐?”
“아버지가 치킨을 왜 사 먹냐며, 먹고 싶다고 하면 튀겨줬거든요.”
정신이 아득해졌다.
하긴, 중국집 딸내미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런데 이야기를 들어보니 한술 더 떴다.
“닭 정육을 탕수육처럼 튀겨 주더라고요. 부먹, 찍먹 이런 게 아니라 중식 소스로 볶아서 먹었는데 솔직히 어지간한 배달 치킨보다는 더 맛있었어요.”
“그래?”
이야기를 들어보니 귀가 솔깃했다. 중국집 깐풍기 개념이긴 한데 살짝 군침이 돌았다.
생닭에 칼집을 내서 최대한 펼친다. 밀가루와 계란 흰자를 넣은 반죽에 식용유를 붓고 섞어서 입힌 다음 바로 튀겨낸다는 것이다.
그걸 식힌 뒤, 채 썬 고추와 다진 마늘 팍팍 넣고 간장과 굴소스, 야채와 함께 센 불에 볶아낸단다.
마지막에 고추기름 돌리고 견과류를 뿌리면 끝.
이게 이은주네 집안의 치킨 노하우라고 했다.
언제 한 번 해 먹어봐야지 생각하는데, 누가 불렀다.
고개를 돌려보니 박기태였다. 치킨 한 접시에 맥주 두 잔을 든 채로 눈짓을 했던 것이다.
“저쪽에서 불러요.”
“그래?”
고개를 돌려보니, 역시나 강주혁이었다.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치킨과 맥주 두 잔을 받아 들었다. 그리고 올 게 왔구나 하는 심정으로 이동했다.
“늦다, 늦어. 음식 나왔는데 손님 기다리게 하는 건 매너가 아니란다. 내가 너 그렇게 안 가르쳤잖아?”
뭐라 말하려다 참았다. 감히 사부님한테 대꾸한다고 욕먹을 것 같아서였다.
“죄송합니다.”
“됐고. 앉아. 일단 한잔하자.”
강형우가 맥주잔을 들자 강주혁이 짠 하고 쳤다.
둘이 시원하게 들이켜는데, 잔을 놓자마자 강주혁이 말했다.
“지혜랑 사귀냐?”
“풉.”
“에이씨, 더럽게.”
강주혁은 인상을 쓰더니 물티슈를 꺼내서 내밀었다.
그걸로 대충 수습한 강형우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왜 그 이야기가 먼저 나와요?”
“그냥 그래 보이길래.”
“아직 안 사귀어요. 그리고 그런 사이 아니거든요.”
“오호라, 아직이라.”
강주혁이 입가를 비틀어가며 웃는데, 왠지 무서웠다.
“됐고요. 형, 감상이나 이야기해 줘요. 그러려고 부른 거 알잖아요.”
“쯔, 말 돌리는 거 하고는. 빨리 잡아. 착하고 예쁘잖아. 그리고 어리고 잘 모를 때 납치하고 세뇌해야 성공하는 거야.”
“헐, 형은요?”
“나? 나는 내가 당했지. 울 마눌님이 나 처음 보자마자 찍었거든. 맨날 옆에 붙어서 내 거라고 하는데, 방법이 없더라고.”
웬일로 이 형이 연애 이야기를 꺼냈다.
스무 살짜리 알바를 뽑았는데, 미친년인 줄 알았단다. 교복 치마 입고 앞돌기 뒷돌기를 하는데 돌았냐 싶었던 거다.
그런데, 계속 옆에서 일하다 보니 달고 다니게 됐단다.
비공식 비서가 됐다나?
“그래서 결혼한 거예요?”
“별수 없잖아? 다른 여자가 없는데.”
첫사랑이 마눌님이 됐다. 그런데 그게 싫지 않았다는 것이다.
자세히 들어보니 염장질이었다.
형수님 이쁘다는 이야기는 솔직히 여러 번 들었다.
특히 분석이 형이 한눈에 넋이 나갈 정도로 세기의 미녀라고 했다. 어지간한 연예인은 싸다구 왕복 열 번 정도 후려갈길 수준이란다.
게다가 취미가 코스프레인데, 팬클럽만 십만 명에 트위터 팔로워가 삼십만 가까이 된다는 것이다.
그쪽 세계에서는 대모라고 불린다나?
“뭐, 첫째 봄이 낳고 한 달도 안 되서 지스타 모델했으니 대단하긴 하지.”
진짜 세뇌당한 게 맞기는 한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카오톡으로 사진을 보여주는데, 진짜 대박이긴 하더라.
순간, 슬쩍 고개가 돌아갔다. 공지혜도 그에 못지않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던 것이다.
“쯔, 너 그러다 나중에 후회한다.”
“아니, 그게… 동생 친군데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예?”
“동생 친구라서 안 되고 친구 동생이라서 안 되면, 그래서 결혼한 놈들은 죄인이냐?”
“아니, 그건…….”
틀린 말이 아니라는 생각이 드니, 차마 뭐라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됐고요. 여기 치킨 어때요?”
“말로 해야 하냐?”
그러면서 강주혁이 치킨이 종이봉투를 흔들었다. 한마디로 맛이 좋아서 포장까지 해간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그걸로는 부족했다.
“사부님, 진짜 솔직한 평가를 부탁드립니다요.”
“알아. 이거 니가 한 거.”
“아니요. 제가 한 게 아니죠. 현우 형이 다한 겁니다.”
“구라 까네. 그러다 손모가지 날아간다. 딱 보면 아는데 뭘.”
마치 영화 타짜의 아귀가 강림한 모습이었다. 저렇게까지 확신을 걸고 말하니 괜히 쫄아들었던 것이다.
“같이한 거예요. 같이.”
“풋. 내가 니 스타일 알거든. 이게 딱 그거야.”
그러면서 치킨 한 조각을 들고 입에 넣는데, 형 그거 뼈 있어요.
그런데, 황당하게도 그 직후 뼈 두 조각이 입에서 튀어나왔다.
입안에 발골기라도 있나 싶었다.
“아직도 그러니까 문제라는 거지. 나는 좋은 걸 싸게 팔고, 돈 벌어서 음식에 투자하는 타입이야. 가격 저렴한 게 내 스타일이고, 거기서도 최고의 음식을 만드는 거지.”
“저는요?”
“넌, 음식 장인이지. 꼼꼼하고 까칠하고 양보 없고, 그리고 그걸 기능적으로 포장한다는 게 문제고. 요즘에서야 돈맛을 좀 봐서 바뀌긴 했지만, 근본이 그래.”
이건 또 새로운 평가였다. 그래서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강주혁의 입은 쉬질 않았다.
잠시 생각하는 사이, 후라이드 두 조각을 사라지게 한 것이다.
진짜 먹성 하나는 타고났다고 해야 할까?
강주혁은 몇 번이나 치킨을 음미한 뒤 말했다.
“미친놈 같으니라고.”
“왜요?”
“이걸 만이천 원을 받는다는 게 미친 거지. 나라면 여기에 삼천 원 더 붙인다.”
그러면서 또 닭다리 하나를 집어 들었다.
“그 정도 해도 돼요?”
“병신아, 치킨집이 뭐로 버는데. 솔직히 물어보자. 이거 원가가 얼마냐? 한 마리 팔면 얼마 남느냐고?”
“그게 아마 천 원 정도?”
“하루 70마리 팔면 7만원이네. 딱 노가다 일당이구나.”
“술로 남잖아요. 그래도 한 달에 이삼백은 벌어가는데…….”
“이게 가르쳐 준 거 또 까먹었네. 그게 많이 버는 거냐? 치킨에 이렇게 공을 들여서 장사하는데, 적어도 그 열 배는 벌어야 남지.”
“그래요?”
갑자기 강주혁은 연거푸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 또 치킨 하나를 먹고 고개를 저었다.
“됐고, 궁금한 거나 물어보자.”
“예.”
공손히 대답한 게 실수였다.
역시나 강주혁은 외식업계의 신이 맞나 보다. 질문이 명치를 제대로 때렸던 것이다.
“녹차, 깻잎은 알겠다. 다른 건 뭐냐?”
***
“만오천 원이라.”
다른 사람이 아닌 강주혁의 평가라면, 저 가격이 맞는 거겠지.
그래서 더욱 고민스러웠다.
게다가 저가로 팔면서 수량까지 한정 지었다고, 욕을 바가지로 먹었다.
“확실히 맞는 것 같기는 한데……”
반 마리 8,000원에 팔란다. 한 마리 시키면 할인해서 15,000원 받는 게 맞다는 것이다.
양도 적당했고, 무엇보다 튀김과 속 작업이 예술이라나?
솔직히 그 이야기할 때, 뜨끔했다.
사실 현우 형과 가장 고민을 한 게 그거였다.
바로 박하였다.
하지만 치약과 가그린 맛이 폭발하는 바람에 몇 번이나 좌절을 겪어야 했다.
해서 적절히 중화시키고자 많이 알아봤는데, 대구에 깻잎 치킨이 유명하더라.
강형우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몇 가지 작업을 했다.
깻잎을 녹즙 형태로 우리니 색이 조금 문제였다.
하지만 박하랑 섞으니 의외로 조합이 잘되었다. 그래서 몇 가지 실험을 거듭한 끝에 결과를 찾았던 것이다.
바로 녹차였다.
녹차와 박하를 끓인 물에 깻잎 즙을 섞어서 염지제에 사용하는 물로 썼던 거다.
정말이지 충격적이었다.
치킨 맛을 보고, 이걸 알아챌 줄은 꿈에도 몰랐으니까.
한참을 고민하던 강형우는 결국 이 비결을 이야기해 줬다.
대신, 얻은 게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