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1
111화 손님 맞이해야죠
“형, 오늘이 최종 점검이에요.”
“미안.”
김현우가 사과를 하자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장사 기본을 다시 잡는 거예요. 형이 한동안 쉰 것도 있지만, 실전처럼 하면서 동선도 익히고 빠뜨린 것도 체크하고 하는 거라고요.”
“알았어.”
“그리고, 오늘 테스트 끝나고 내일 가오픈하면 앞으로는 형 혼자 해야 된다고요. 알죠? 저 여유 없는 거?”
그 말에 김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강형우가 바쁘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았던 것이다.
실제로 강형우의 일과는 초인적이었다.
새벽 5시에 일어나 아침 운동을 하고, 지성분식 본점으로 출근한다. 그런 뒤, 전날 매상을 확인하고, 순이 이모하고 이야기하면서 일정 조율을 하는 것이다.
2호점 출근은 그다음이었다.
공지혜와 같이 문을 열고, 강신원과 함께 부족한 준비를 돕고 나서 오픈 전에 짧은 식사를 하는 것이다.
이후 한바탕 점심 전쟁이 끝나면 브레이크 타임이었다.
이때 늦은 점심을 먹고 약간의 휴식을 취하면서 또 직원들과 부족한 부분에 대한 의견을 나눈다.
다시 저녁 영업을 시작, 마감 후 청소까지 확인하면 그날 장사는 끝이었다.
이때가 평균 밤 10시였다.
김현우는 그 시간에 맞춰 집에서 작업한 치킨을 가지고 와 튀겼다.
동시에 강형우도 틈틈이 작업한 걸 가지고 맛을 본다.
그렇게 서로 의견 교환을 하고 테스트를 하다가 밤 12시가 되어서야 퇴근했던 것이다.
이게 지난 한 달간의 평균적인 일과였다.
사실 일정이 미묘하게 겹쳐 이렇게 됐지만 어쨌든 고생한 건 고생한 거였다. 분점을 새로 오픈했고, 정신없이 바쁜 상황에서도 치킨에 대한 집중력을 잃지 않았으니까.
그랬기에 김현우는 강형우의 다그침이 오히려 고맙기까지 했다.
“좀 더 집중할게.”
“알았어요. 다시 해봐요.”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소스 작업을 멈췄다. 그리고 김현우를 지켜보면서 자신의 계획표를 다시 한번 점검했다.
치이이익.
온도를 올린 튀김솥에 치킨이 들어갔다.
타닥. 타다닥. 취이익.
고요한 가게 안에, 치킨 튀겨지는 소리만 선명하게 울렸다.
띠띠띠띠.
타이머가 울리자 김현우는 치킨이 담긴 튀김 바스켓을 들어서 탈탈 털었다.
잠시 기름을 빼는 사이 타이머를 맞췄고, 옆 튀김기의 온도를 확인한 다음 다시 치킨을 넣었다.
촤아아악. 치이익.
보다 높은 온도에서 튀기자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천장 닥트를 돌렸음에도 냄새를 완벽하게 막지 못했던 것이다.
그게 강형우의 입에 침을 고이게 했다.
곧, 커다란 접시에 치킨 조각이 쌓였다.
“뜨거우니까 조심.”
기름을 빼기 위해 탈탈 털고 잠시 받침망에 놔뒀음에도 치킨에선 김이 모락모락 나고 있었다.
이건 배달 치킨에서는 느낄 수 없는 신선함이었다.
동시에 있는 듯 없는 듯한 묘한 향이 코를 간질거렸다.
완전 새 기름에서는 약간의 냄새가 있는데, 그 때문에 무작정 치킨부터 튀기면 안 된다. 그걸 잡기 위해 대량의 마늘과 파를 먼저 튀겼는데 그 향이 스며들어 치킨에서 났던 것이다.
“자, 포크하고 칼.”
김현우가 건네준 걸 집은 강형우는 조심스레 닭다리를 잘라냈다.
그 부위에서 아직도 김이 피어올랐다.
살펴보니 육즙이 가득했다. 기름처럼 보이지만 말 그대로 고기에서 나온 엑기스였던 것이다.
강형우는 후후 불어서 조심스럽게 한입 베어 물었다.
그런 뒤, 김현우에게 눈짓을 했다.
먹어보라는 뜻이었다.
두 사람은 잠시 동안 말없이 치킨을 흡입했다.
“후우, 정말 맛있네요. 물리지도 않고, 느끼하지도 않고.”
“그러네. 정말 내가 만들었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야.”
김현우는 피식 하더니, 갑자기 실성한 사람처럼 목소리를 키웠다.
“하하, 하하하. 하하하하!”
그냥 웃는 게 아니라 정말 가게가 울릴 정도로 쩌렁쩌렁한 목소리였다.
강형우는 그 기분을 이해할 수 있었다.
어묵 국밥을 만들었을 때, 파스타를 분식집에 맞게 고쳤을 때, 그리고 돈가스를 완성했을 때 그랬다.
메뉴 하나를 만들기 위해 찾아보고, 먹어보고, 연구하고, 또 실패도 해보고… 그런 과정을 수십 번이나 반복한 끝에 겨우 생각하던 완성품을 만들 수 있었다.
이때의 성취감과 희열감은 정말 ‘짜릿’했다. 그랬기에 저런 반응이 나오는 것이다.
마치 세상을 다 가진 듯한 기분이랄까?
“후우, 하~”
김현우는 길게 숨을 내쉰 뒤, 강형우를 쳐다봤다.
“우리… 맞지?”
“예. 맞아요.”
강형우도 순순히 인정했다.
지성분식이 아닌, 리모델링한 우리 통닭에서 제대로 튀긴 첫 치킨이었다. 계산했던 맛이 제대로 나왔던 것이다.
사실, 이 치킨 하나 때문에 얼마나 개고생을 했던가?
특히 박하에 꽂히는 바람에 정말 다양한 시도를 해봤다.
그 결과 어머니의 맛과 거의 흡사한 것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실패였다.
지금에 와서 먹기에는 향이 강했다. 약간 쓰거나 떫은 맛도 느껴졌고 어떤 건 짜갑기도 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었다.
이미 치킨 프랜차이즈가 성황을 보이면서 튀김 기름도 많은 발전을 거듭했다. 팜유에서 콩기름, 카놀라유와 올리브유까지 튀김용 기름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그 기름들을 섞은 것도 존재했다.
대기업 프랜차이즈들이 자신들의 노하우로 만들었다는 합성유가 바로 그거였다.
여기에 반죽도 다양하게 발전했고, 튀김 기계도 온도 맞추기가 훨씬 좋아졌다.
또, 인터넷으로 염지제를 주문할 수 있을 만큼 접근성까지 편해진 상황.
하지만 어머니가 만들던 시절은 달랐다.
강한 기름 냄새, 두꺼운 튀김옷, 소스라고는 매콤달콤한 양념 하나밖에 없었다. 때문에 물리지 않게 먹으려면 염지를 강하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어쩌면, 어머니가 자신의 노하우를 알려주지 않은 이유가 그래서인 것 같았다.
바뀐 시대에 맞게 적응하라고.
“형, 일단 두 마리만 더 튀겨봐요.”
“어, 알았어.”
두 사람은 다시 튀긴 닭을 맛을 봤다.
역시나 앞서 튀긴 것과 차이가 거의 없었다.
하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못해도 몇십 마리 이상은 만들어봐야 평균치를 낼 수 있을 테니까.
그래서 강형우는 준비를 했다.
***
“어서 오세요.”
“주문하시겠습니까?”
“예. 주문 확인하겠습니다. 반반에 맥주 한 병, 조은데이 맞으시죠?”
“후라이드 하나, 오백 두 잔에 씨원 하나. 알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세요.”
강형우가 보는 앞에서 세 명의 알바생들이 실습을 하고 있었다.
서로 번갈아가며 알바와 손님 역할을 했고, 주문에서 치킨 나가고 마지막 계산할 때까지를 여러 번 시켰다.
“선아야, 다시 해봐. 목소리가 너무 약해. 여기는 어르신들도 많이 오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면 잘못 알아듣는 경우가 생기거든.”
“박기태, 정신 차려. 3번 테이블 주문하고 5번 테이블하고 헛갈리면 어떻게 해?”
강형우의 주문에 알바들은 열심히 움직여야 했다.
무엇보다 김현우가 놀란 건, 처음부터 끝까지를 다 해본다는 것에 있었다.
일단 세 사람 중 한 명인 이준식은 직책이 ‘현우 보조’였다. 주방도, 서빙도 아닌 사장 대리로 찍어버린 것이다.
원래 이준식은 김현우가 알던 동생이었다. 그런데 얼마 전에 회사 망했다는 소리를 듣고 끌어들였다.
그 이야기를 들은 강형우는 바로 찬성했다.
서른한 살, 딸 하나 아들 하나 있는 애 아빠였다. 가장의 책임감이 있으니 김현우를 적극적으로 도울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본인의 의지였다.
이준식은 석 달째 일자리를 못 구하고 있었다. 게다가 김현우한테 신세 진 것도 있어서 와이프 허락이 떨어지자마자 바로 하겠다고 했다.
강형우는 그런 약점(?)을 알기에 과감하게 부려먹었다.
“준식이 형, 형은 거기서 그러고 있으면 안 돼요. 귀는 주방, 시선은 홀, 위치는 카운터.”
“귀는 주방, 시선은 홀, 위치는 카운터.”
“눈으로는 홀과 손님들을 봐요. 누가 손들거나 하면 선아를 부르고 일은 기태한테 시켜요. 그리고 현우 형이 치킨 나온다고 하면 바로 받아서 나갈 준비 해요.”
강형우가 생각한 포지션은 일종의 관리자였다. 김현우가 치킨에만 집중할 수 있게 카운터와 전체를 두루 살피도록 가르쳤던 것이다.
“첫째가 뭐라고요?”
“자리 치우는 거?”
“아니죠. 전제가 잘못됐어요. 손님을 받는 게 최우선이죠. 그래서 자리를 먼저 치우는 거예요.”
“아! 그랬지.”
이준식은 수첩을 펼쳐서 곧바로 메모를 했다.
강형우는 잠시 기다린 뒤,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잘 들어요. 우리가 지하철 탈 때, 먼저 사람이 내리고 타잖아요.”
“어.”
“마찬가지로, 손님 계산해서 먼저 보내고 오는 손님 받아야죠. 그사이에 뭘 해야 한다?”
“아… 그러니까 먼저, 들어온 손님한테 자리 치울 동안만 기다려 달라고 양해를 구해야지. 그 사이 기태보고 치우라고 하고, 나가는 손님들 계산해서 보낸 다음에 선아한테 안내를 시켜라.”
“맞아요. 그렇게만 하면 돼요.”
이준식의 대답에 강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한두 시간 정도 연습하자 다들 어느 정도 능숙해졌다.
김현우는 그걸 지켜보면서 정말 많이 놀랬다.
이미 정덕수에게 듣기는 했었다.
하지만 이렇게까지 꼼꼼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했다. 어느 정도냐면, 아예 직원들이 해야 할 일을 시간대별로 다 외울 정도였던 것이다.
아침 10시, 김현우 출근.
점심 전까지 두 시간 동안 내일 쓸 양을 염지.
1시 이준식 출근.
두 사람은 샐러드에 들어갈 양배추를 손질하고, 치킨무와 뻥튀기 과자, 기타 손님들에게 나갈 모든 음식들을 확인!
그다음 소스 만들기에 돌입.
2시 30분, 오픈 준비.
김현우는 새 기름을 붓고 마늘과 대파 향이 배이게 튀김.
그 기름통을 받아 이준식은 날짜를 크게 적고, 밖에서도 잘 보이게 전면 유리 쪽에 비치함.
3시, 김선아 출근. 이준식과 함께 테이블 최종 확인 후 가게 오픈.
5시, 박기태 출근.
9시, 김선아 퇴근. 이후 영업 상황에 따라 청소 시작.
10시 전원 마감.
이게 요약한 거였다.
그걸 세세하게 강형우가 풀어서 이야기하자, 김현우는 소름이 돋았다.
세상에, 사장인 나보다 속속들이 더 잘 알고 있다니.
하지만 강형우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가게 두 개 운영하는데, 그 정도는 당연한 거란다. 게다가 앞으로를 생각하면 익숙해져야 한다는 거다.
김현우는 그런 이야기를 듣고 나서야, 김창주와 정덕수가 했던 말을 이해할 수 있었다.
아울러 친구들끼리 계획하고 생각했던 걸, 해봐도 좋을 것 같았다.
물론 강형우가 허락하는 게 우선이겠지만.
그런 생각하면서 가게를 돌아보는데, 강형우가 불렀다.
“형, 시간 봐요.”
“어?”
피식 웃은 강형우는 손뼉을 쳤다.
“슬슬, 손님 맞이해야죠!”
***
“반반 치킨 나왔습니다.”
김선아가 테이블에 커다란 접시를 내려놓고 나왔다.
그걸 본, 강주혁은 본능적으로 코를 가져다 대었다. 그리고 개처럼 킁킁거리며 향을 맡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실장님?”
“아! 잠시만.”
강주혁은 그렇게 말한 뒤, 폰을 꺼냈다. 그리고 요리조리 사진을 찍은 다음 카오톡으로 보내고 나서야 한 조각을 접시에 덜어갔다.
“형수님한테 보낸 거?”
“별수 있나? 시키면 해야지. 어, 바로 왔네. 맛있으면 포장해 오라는데?”
강주혁은 피식 웃은 뒤, 신중하게 맛을 봤다.
그걸 유심히 지켜보는 사람이 바로 강형우였다. 많은 사람들을 초대해, 홀이 꽉 찼음에도 제일 신경 쓰였던 것이다.
실제로 우리 통닭은 북적거렸다.
일단 지성분식 식구들이 무려 세 테이블을 차지하고 있었다. 여기에 혁기 형네 식구들이 한 자리를, 창주 형네 화끈 오뎅 가족들이 두 자리였다.
정덕수 형은, 미래의 형수님과 정병수, 그리고 여친을 데려왔다.
윤다정이 입원하는 바람에 김민석도 불참했다. 그래서 한 테이블을 채우기 위해 둘을 더 불렀던 것이다.
맞다.
오늘은 가오픈 겸 실전 테스트 자리였다.
그중에서도 제일 중요한 건 맛을 평가받는 것이고, 최고 심사 위원이 강주혁이었다.
강형우가 지켜보는데, 강주혁이 고개를 들었다.
동시에 시선이 마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