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0
110화 정신 똑바로 차려요
총 공사비가 무려 사천만 원 가까이 들었다.
처음에 이천팔백 정도였는데, 원래 공사라는 게 얼마 정도는 추가로 더 들어가는 법이었다.
하지만, 이번 공사는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다.
치킨집 가득한 찌든 기름 냄새 때문에 벽을 뜯었고, 두께를 더하는 보강 공사까지 했다.
또, 두 번이나 소독까지 했다. 그 위에 다시 미장을 하고 타일을 붙이고 하면서 추가된 것이다.
그건 강학희가 제시한 의견 때문이었다.
“원래 시멘트란 게 처음 5년간은 독소를 빨아들인다네. 그런 뒤 수십 년에 걸쳐서 이걸 내뿜는데 그게 사람 몸에 좋지 않아.”
“그런… 가요?”
“그뿐만 아니지. 이게 대충 20년 넘었는데, 세균 덩어리라고. 벌레나 쥐가 다녔던 길도 있고, 죽은 것들이 말라붙어 악취를 뿜어내기도 하거든.”
강학희는 혐오스러운 이야기를 너무도 태연히 했다.
그걸 듣고 나니 괜히 찜찜했다. 깔끔한 타일 뒤에 동물 시체가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들었던 것이다.
“중요한 건, 잠깐 할 거면 모르지만 앞으로 몇십 년 장사할 거라면 이참에 깨끗하게 하는 게 좋을 거야. 어쨌든 선택은 자네가 하게나.”
김현우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손님들을 위한 건데, 돈 아낄 수는 없죠. 음식 장사할 집이잖아요.”
그 말에 강학희는 환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대신 지인들 중에 최고 전문가를 불러서 처리하겠다고 했다. 유명한 방역회사 출신 중에 은퇴한 사람이 있다면서 믿고 맡겨달라 했던 것이다.
여기에 간판이 바뀌었고, 주방을 완전히 새로 했다.
이건 강형우가 강력하게 주장한 거였다.
“형, 이거 싱크대하고 설비, 무조건 새로 해요.”
“왜? 그냥 청소만 하면 안 되나?”
강형우는 김현우를 데리고 그 앞에 섰다. 그리고 설거지하듯 허리를 숙였다.
“어때요?”
“조금 불편하긴 하지만, 큰 문제는 없어 보이는데?”
“전에 설거지는 누가 했는데요?”
“그게 여자 알바생이 주로 했지.”
“형, 장가는 갈 거죠?”
“그야… 당연히.”
좀 머뭇거렸지만, 꿈을 포기한 건 아니었다.
강형우는 더욱 과감하게 이야기했다.
싱크대와 설비가 워낙 예전 거였다.
그 시대와 지금은 평균 키만 8㎝ 이상 차이가 나니, 형하고는 맞질 않는다.
“이대로, 하루 한 시간만 설거지하면요. 남자의 생명을 포기해야 해요.”
“뭐?”
“허리 나가요.”
실제로 강형우가 지성분식 공사를 할 때, 일부 설비들 높이를 많이 올렸다.
키가 큰 탓도 있었지만 실제로 많은 주방 설비들이 성인 여성을 기준으로 나오기 때문이었다. 특히 가정용 싱크대의 경우가 그랬고, 망한 식당에서 나온 중고품들이 그랬다.
때문에 강형우는 싱크대를 직접 만드는 곳에 찾아가 키에 맞춰서 주문 제작을 했던 거다.
그런 설명에, 김현우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어쨌든 이런저런 추가 덕에 공사비는 예정보다 훌쩍 뛰고 말았다.
그걸 알기에 걱정이 될 수밖에 없었다.
이 형이 성격은 호구지만 나름 알짜였다.
쓸 때는 쓰지만 평소에 짠돌이었고 나름 저축도 꼬박꼬박 하고 있었다.
그렇다 치더라도 추가로 나가는 비용은 적지 않았다.
총 액수가 삼천팔백, 거기에 약간의 추가.
그 정도 돈이면 이 동네, 방 세 칸짜리, 주택 전세금 정도가 된다. 그러니 결코 적은 비용이라고 할 수 없는 것이다.
강형우가 그런 생각하면서 고민하는데, 김현우는 마냥 기분이 좋은지 웃고만 있었다.
“돈 걱정하지 마. 장사 안 되면, 남은 통닭 뜯어먹고 살면 되잖아.”
아오~ 남은 속이 타 죽겠는데 저토록 태연하다니.
사실 강형우 입장에선 이번 일이 단순하지가 않았다.
일단 컨설팅 비용으로 오백만 원을 받기로 한 건, 그렇다 치자.
굳이 안 받아도 상관없지만 일단 장사가 잘돼야 마음이 편할 것 아니겠는가?
그런데 당사자가 저러니 더욱 불편했다.
“괜찮아. 괜찮아.”
“뭐가요?”
“다 잘될 것 같아. 기분이 그렇더라고. 무엇보다, 고생한 보람이 있잖아.”
김현우는 오히려 자신감이 넘친다는 듯 손뼉을 팡팡 치더니 파이팅까지 했다.
그제야 강형우도 조금은 마음이 놓였다.
고생한 보람!
확실히 그게 있었다.
두 사람이 거의 열흘 동안 매달린 치킨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있었다. 몇 가지 세부적인 조정만 끝나면 바로 팔 수 있을 정도로 완성에 가까웠던 거다.
그 과정에서 끔찍한 충격(?)도 있었지만 나름 큰 성과도 있었다.
그랬기에 저리도 환히 웃을 수 있겠지.
피식!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식당은, 음식에 자신이 있으면 된다. 그 노력이 자부심으로 이어지니 어지간한 시련 정도는 가뿐히 넘을 수 있는 것이다.
강형우는 김현우의 손을 붙잡았다.
“형! 오픈은 사흘 뒤, 알죠?”
***
“세 명이나요?”
공지혜는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하지만 강형우도 이미 계산이 섰다.
지난 한 달, 지성분식 2호점은 손님들로 가득 찼다.
오픈발과 추첨, 그리고 학생들의 홍보 덕이었다. 그리고 그렇게 들어온 수익으로 계산을 해보니 직원 세 명 정도는 뽑아도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무엇보다, 강형우의 예상보다 직원들의 피로도가 컸다.
이강석이야 빚 정리 끝났다는 기쁨에, 주방장 진급이라는 뇌물(?)에 눈이 멀어서 정신없이 일했다.
하지만 주방 보조인 이영제는 죽을 맛이었다.
강형우와 강신원이 번갈아 가며 도와주고 있지만 생전 처음 해보는 강행군이었다.
군대에서 유격훈련을 뛰던 생각이 저절로 날 정도라나?
게다가 홍성구도 수시로 불렀고, 시간 많이 걸리는 밑 준비도 지성분식 본점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따지면 준비 부족이라 생긴 삐걱거림이었다.
솔직히 강형우도 테이블 여섯 개가 더 있는 게 이 정도나 힘들 줄은 몰랐다.
막말로 해봤어야 알 게 아닌가?
다행히 모두가 도와준 덕에 큰 사고 없이 버틸 수 있었다. 약간의 불협화음과 위기가 있었지만 어떻게든 버텨냈던 것이다.
해서 직원을 세 명이나 더 뽑을 계획이었다.
“어, 아무래도 알바 한 명하고, 주방 두 명을 더 뽑아야겠어.”
“그럼 사람이……”
강형우도 대충 손꼽아봤다.
본점에 순이 이모와 이은주, 백창호, 홍성구, 정은혜가 있었다. 2호점에는 공지혜와 강신원, 이강석과 이영제, 은선경이 있었으니, 직원만 모두 열 명이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건 이은주였다.
다음 달이면 강주혁이 이야기한 석 달이 다 되어간다. 그러니 대비가 필요했던 거다.
무엇보다 불안한 건, 이강석과 백창호였다.
예상대로라면 올해 입대 영장이 나올 터, 그 전에 대체 인력을 구해야 하는 것이다.
“계획대로 된다면 좋으련만.”
강형우도 바보가 아닌 이상, 생각이 없을 수가 없었다.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우선적으로 알바 두 명을 더 뽑는다고 한 거다.
“일단 광고 올려놓고, 면접부터 봐야겠어.”
“그럼 월급은요?”
“서빙은 100만 원, 주방 보조는 120부터 하면 될 거야.”
시급으로 계산하면, 어지간한 고깃집 알바보다는 많으니 좋은 편에 속했다.
하지만 지성분식에 와보면 바쁘다는 걸 확인할 테니 바로 구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았다.
“일단 지혜야. 이틀만 더 부탁하자.”
“알았어요. 안 되면 영지라도 끌고 올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역시 공지혜가 있으니까, 조금 든든하기는 했다.
***
작은 방 안이었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지 썩 밝지는 않았지만, 둘러보는 데는 문제가 없었다.
김현우는 습관처럼 청소를 하고 화장대로 향했다.
거기에, 오래되어 낡은 두 개의 사진이 있었다.
하나는, 이제는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아버지였고, 또 다른 하나는 작년 가을에 찍어뒀던 어머니였다.
김현우는 기도하는 것처럼 손을 모으더니 고개를 숙였다.
“엄마, 오늘부터 다시 가게 문 열어요. 솔직히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잘될 것 같아요.”
몇 번이나 입술을 달싹거린 김현우는 이내 웃음을 지었다.
“생각해 보니까 저도 참 철이 없었더라고요. 그냥 열심히만 하면 될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더라고요. 전에 같았으면 그냥 받아서 반죽해서 튀기고 하면 됐는데……”
이야기는 한참이나 이어졌다.
최근 두어 달 사이, 강형우와 함께 여러 치킨집을 돌아다녔다.
그러면서 많은 걸 먹어봤고 오래 장사한 집들마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왜 치킨집이 쉽지 않은지,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았다.
단순히 튀긴다는 게 전부가 아니었다. 하나하나의 과정에서 생겨나는 작은 변화들이 최종적인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게 쓰는 물일 수도 있고, 가루일 수도 있으며 반죽에 들어가는 맥주일 수도 있었다.
또, 염지제를 어떤 회사 것을 쓰느냐, 튀김 기름을 어떤 걸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달랐고, 초벌 튀김과 온도에 따라 식감과 맛이 천차만별이었다.
프랜차이즈는 그 노하우를 공식화해서 팔았다.
그 과정의 노력을 생각하면, 요즘처럼 마냥 욕할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래도 처음에는 막막했는데, 형우가 도와줘서 어느 정도 답을 찾았어요. 엄마가 만든 맛도요…….”
결과를 떠올리니 씁쓸한 웃음이 나왔다. 확실히 사람들의 입맛이 변화하고 있다는 걸, 깨달았으니까.
“차라리 그때 고집 부려서라도 엄마한테 제대로 배울 걸 그랬어요. 그랬으면 이렇게 고생 안 했을 텐데. 그런데 그때는 안 그랬거든요. 엄마 아프다니까 그냥 가게 못 나오게 하는 게 최선인 줄 알았죠.”
짧게 한숨을 내쉰 김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아들, 여기까지 올 정도로 열심히 했어요. 이제 당당하게 장사 시작해도 될 것 같고, 단골손님들도 다시 가게 와줄 것 같더라고요. 진짜 그때는 왜 몰랐는지……”
치킨 맛이 어쩌고저쩌고 하면서, 이전 같지 않다는 손님들의 불만을 마냥 무시하기만 했었다.
하던 대로만 하면 다 될 줄 알았던 거다.
하지만 그 마음이 바뀌었다. 확실히 배우고, 알고 나니 보는 눈이 달라졌던 것이다.
김현우는 그렇게 길고 긴 고백을 내쏟은 뒤 고개를 들었다.
사진 속 어머니는 여전히 웃고 있었다.
마치 괜찮다고 말하는 것 같았다.
가까스로 마음을 잡은 김현우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평소처럼 조용히 인사했다.
“엄마, 다녀올게요.”
“형! 정신 똑바로 차려요!”
강형우가 호통을 쳤다.
화들짝 놀란 김현우는 겨우 정신을 붙잡았다.
“어? 어. 알았어.”
“뭐에 정신 팔린 거예요? 타잖아요. 빨리 빼요.”
“그, 그러네.”
김현우는 다급히 튀김 망을 들어 치킨을 확인했다.
겉으로 봐서는 큰 문제가 없어 보이는데도 강형우는 단호했다.
“48초 오버쿡.”
“그, 그렇게나?”
“일단 기름 뺀 다음 갈라 봐요.”
강형우의 지시에, 김현우는 서둘러 기름을 털었다. 그런 뒤, 접시에 놓고 칼로 잘라 단면을 살폈다.
“보기에 큰 문제는 없는데?”
“그거야 그렇죠. 먹어봐야 아는 거니까.”
강형우는 가장 두꺼운 가슴살 부위를 입에 넣었다. 그리고 잘근잘근 씹더니 살짝 인상을 찌푸렸다.
“보통 사람은 잘 모르겠지만, 먹다 보면 표가 나요. 우리가 정한 기준이 25초였죠?”
“어.”
김현우의 대답에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치킨이라는 게, 두께도 다르고 반죽도 일률적으로 코팅되는 게 아니었다.
해서 딱 몇 분 이렇게 명확히 정해지지 않는다.
하지만 두 사람은 수백 번의 시행착오를 거쳐서 적정한 시간대를 찾아냈다.
그걸 타이머로 맞춰서 튀겼고, 치킨 수량과 기름 양에 따라 가감하는 방식까지 모두 정해놨다.
문제는 지금이었다.
큰 기름통에, 달랑 치킨 한 마리였다. 타이머가 울렸음에도 다른 생각을 하는 바람에 거의 30초 넘게 더 튀겨 버린 것이다.
김현우는 살이 적은 날개 부위를 찾아 입에 넣었다.
와그작, 와그작.
“어때요?”
“많이 바삭하긴 한데, 살이 조금 질기네.”
김현우의 평가에 강형우도 같은 부위를 먹어봤다.
“아니죠. 좋게 표현하면 바삭하게 튀겨진 것이고, 나쁘게 말하면 탄 거죠. 이렇게 팔면 안 돼요.”
강형우는 더는 볼 것 없다는 듯, 바로 그릇을 들고 음식물 쓰레기통에 부어버렸다.
괜히 미안해진 김현우는 눈치를 살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