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9
109화 흐어, 실패다
“끄응.”
입에서 신음이 저절로 나왔다.
이건 정말 심각한 거다.
지금껏 한 가지 음식만 이렇게 남은 적이 없었다. 그리고 맛도 바뀐 게 아니었고 소스도 그대로였다.
혹시나 싶어 이강석에게 다시 만들게 했고, 그걸 직원들과 함께 맛을 봤다.
변한 건 없었고, 오히려 본점에서 팔 때보다 퀄리티가 높았다. 방울토마토 장식에 파슬리를 뿌려서 더욱 먹음직하게 보였던 것이다.
그럼에도 음식물 쓰레기로 저렇게 남았다는 건 문제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유를 모르겠네.”
강형우는 한참을 고민했다.
사실, 지금도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신원이 형의 말대로 폭립을 메뉴로 넣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건 솔직히 메뉴로 내놓고 싶지 않았다.
일단 20인분이든 30인분이든 기본 하루 내내 해야 했다. 직접 한다고 해도 최소 세 시간은 거기에만 매달려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다음이 가격대였다.
돈가스+파스타에 떡볶이 포함 세트가 11,000원이었다.
이게 제일 비싼 건데, 폭립이 이걸 훌쩍 뛰어넘었다. 2인 메뉴라 가정하고 낸다 해도 최소 2만 원 이상은 잡아야 계산이 맞았다.
가볍게 먹고 가는 분식이지만, 퀄리티를 높여서 합리적인 가격에 좋은 맛을 제공한다.
이게 현재 지성분식의 정체성이었다. 이것과 폭립과는 큰 괴리가 있었던 거다.
그 외에도 안 팔리면 바로 폐기였다. 비싸게 만들어서 버리면 그만큼 적자가 커지는 거니까.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다는 점이었다.
가게 방문했던 여고생들이 소문을 퍼뜨렸는데, 그날 먹었던 폭립이 정말 맛있다고 했다.
그 때문에 이삼 일에 한 명씩 물어봤고, 홈페이지를 통한 문의도 끊이지 않았다.
특히 진상 아주머니들이, 대체 어디서 소문을 들었는지 꼭 메뉴에 넣어달라고 협박(?)까지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더 하기 싫었다!
“폭립은 시기상조니까 보류. 문제는 역시 파스타인데…….”
일단 음식에는 문제가 없어 보였다. 맛은 여전했고, 가격도 4,500원에 불과했으니까.
그럼에도 많이 버려지고 있다는 건 기대치에 못 미친다는 거였다.
한마디로, 손님들이 맛없다고 느낀다는 것.
강형우는 그 이유를 찾기 위해 본점으로 향했다.
포스기를 확인한 결과, 판매 비중은 많이 떨어졌지만 나름 팔리고 있었다. 음식물 쓰레기통까지 뒤져가며 확인했지만 많이 남거나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그럼 본점과 2호점의 차이라는 건데…….”
이걸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없었다.
지성분식 기준으로 봤을 때, 많은 메뉴 중에 하나에 불과할 뿐이었다.
하지만 손님에게 나가는 이상 그 음식은 지성분식을 대표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즉, 가게 이미지를 망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그게 뭐 어떠냐 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이건 심각한 문제였다. 그런 마이너스적인 이미지들이 쌓이고 쌓이다 터지면 문을 닫게 되는 법이니까.
그렇다고 바로 메뉴에서 뺄 수도 없는 노릇.
“일단 시간 좀 두고 좀 더 알아보자.”
***
“흐어, 실패다.”
김현우는 기겁을 하며 닭다리를 집어 던졌다. 그런 격렬한 반응이 나올 정도로 맛이 엉망인 모양이었다.
“왜요?”
“치킨에서… 치약 맛이나.”
“헐. 그 정도예요?”
강형우는 설마 싶어서 다른 부위를 물어뜯었다.
바삭한 조직감, 탱글한 살맛에 입안을 촉촉하게 하는 육즙이 느껴졌다.
일단 여기까지는 합격이었다.
그런데…….
“아오, 씨발! 진짜 치약 맛이 나네.”
강형우는 바로 치킨을 내려놓고 싱크대로 향했다.
몇 번이나 입을 헹궜는데도 입안이 떫었다. 마치 쭈욱 짠 치약을 씹다가 뱉은 것처럼 입안이 화악 했던 것이다.
“형, 이거 양이 과했던 모양이에요.”
“와, 그래도 그렇지. 이건 도저히 못 먹겠다.”
“끄응. 진짜 쉽지 않네.”
강형우는 남은 치킨 조각들을 음식물 쓰레기통에 바로 버려 버렸다.
“이게 500g짜리죠?”
“어, 물 양도 2리터라서 좀 적은 편이야.”
김현우는 그렇게 메모한 다음 몇 번이나 고개를 내저었다.
다시 냉장고 문을 연 강형우는 그것보다 숫자가 적은 비닐 하나를 꺼냈다.
“후~ 진짜 몇 번째인지.”
강형우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면서 기름 온도를 체크했고, 김현우는 또다시 치킨을 튀겼다.
지금 두 사람이 뭘 하고 있느냐?
진짜 옛날 통닭을 만들고 있었다. 우리 통닭에서 팔던 예전의 그 맛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이다.
발단은 홍태구의 말이었다.
어머니가 튀긴 치킨에서는 미묘한 청량감이 느껴진다고 했다. 그리고 기름의 느끼함이 적어서 거의 물리지 않고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거기서 고민하다가, 문득 박하사탕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설마설마 했다. 그러다 우리 동네 사총사 형들과 술자리를 하면서 혹시 그런 게 있느냐고 물어봤다.
혁기 형이 말하길, 중식에도 그런 조리법이 있다고 했고 창주 형도 가능하다는 말을 꺼냈다.
그게 강형우의 도전정신을 불태웠다.
해서, 장사 마치면 김현우를 불러다가 지성분식 2호점에서 실험을 거듭했던 것이다.
일단, 시작은 박하사탕을 끓였다.
뜨거운 물을 조금 섞고 중탕을 해서 녹였는데, 마쉬멜로우도 아니고 뭔가 이상하고 끈끈한 껌 같은 게 됐던 것이다.
향은 확실히 남아 있었다.
그래서 염지액과 섞어서 생닭을 숙성시켜 봤다.
튀겨보니 약간 설탕맛 통닭이 되었다. 육즙에서 달달한 맛이 느껴져 두 조각 먹기도 전에 물려 버렸던 것이다.
혹시 양의 문제일까 싶어서 몇 번이나 테스트해 봤는데, 결과는 거의 비슷했다.
이유는 금세 파악할 수 있었다.
박하사탕의 주성분은 설탕, 물엿이었고, 여기에 멘솔 향과 합성 착향료 약간에, 사이다 향이 들어갔다. 어찌 되었건 맛을 내는 주성분이 설탕이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 도전한 것이, 한약재로 쓰이는 박하였다.
약방 어르신한테 물어보니 구하기는 그리 어렵지 않다고 했다. 국산과 중국산이 있기는 한데 비싼 편도 아니고, 요즘 요리에 사용하는 경우도 많다는 것이다.
강형우와 김현우는 그걸 구입해서 몇 번이나 실험(?)을 반복하고 있었다.
“휴우, 이거 진짜 양 잡기가 쉽지가 않네요.”
“그러게. 허브 개념으로 가면 괜찮을까 했는데, 전혀 다른 상황이야.”
처음에 반죽에 조금 섞어서 튀겨봤다. 그랬더니 뜨거운 기름에 홀라당 다 타서 쓴 향기만 가득 했고, 씹었더니 입안에 남았던 것이다.
해서 그 방법은 패스.
그다음은 염지 과정에 박하 향이 스며들게 하는 거였다.
믹서기에 갈아서 염지 가루와 함께 물에 섞었는데, 맛이 제멋대로였다. 어떤 부분은 짭쪼롬하면서 화한 느낌이 강했고, 또 어떤 데는 변화가 없었던 거다.
다시 고민한 끝에, 가루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이제 남은 건 물이었다.
박하 향을 녹인 물에 염지 가루를 섞은 뒤, 그걸로 생닭을 숙성하는 것!
문제는 그 정량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점이었다.
해서 염지된 비닐에 표시를 하고 숙성시킨 뒤 튀기는 걸 반복하고 있었다.
“그래도 방향은 맞으니까 다행이네요. 향만 좀 죽이면 어떻게든 될 것 같은데요.”
“몰라, 난 모르겠어. 이거 먹을 때마다 꼭, 지뢰를 입에 넣는 기분이라고.”
김현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튀긴 통닭을 꺼냈다.
분명 김이 모락모락 나는 것이 먹음직스럽기는 한데, 글쎄다.
솔직히 이번에도 자신이 없기는 했다.
하지만, 이런 과감한 실험 끝에 명품이 나오는 것 아니겠는가?
특히 이 방법이 되기만 하면 대박이었다. 적어도 다른 사람들이 따라 할 일은 없었으니까.
강형우는 또 다시 치킨을 한 입 베어 물었다. 그리고 천천히 씹은 뒤, 김현우를 보고 물었다.
“형, 어때요?”
김현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 가그린 맛인데?”
***
“오! 깔끔하네요.”
강형우는 깨끗하게 바뀐 우리 통닭을 보고 진심으로 감탄했다.
일단 입구부터 많이 바뀌었다.
오래된 낡은 간판을 떼고 하얀 바탕에 붉은 아크릴 스카시로 ‘우리 통닭’ 글자를 박았다. 그리고 그 옆에 since 1999년을 달았다.
황당한 게 원래 장사 시작은 그보다 훨씬 이전이었다.
하지만, 구청에 확인해 보니 정식으로 등록한 게 저때였다. 그전까지는 무허가로 장사한 게 되는 것이다.
“그래도 이쁘게 나왔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1999년 위의 작은 글자였다.
<우리 동네, 우리 통닭! 고객들과 함께합니다!>
“비싸게 들었어. 글자 파는 것만 20만 원에, 외부 조명하고 설치비까지 해서 백오십 나왔다.”
홍태구가 피식 웃자, 현우 형이 정면을 가리켰다.
“난 이게 제일 마음에 든다.”
“이 유리요?”
홍태구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가게 입구 왼편은 완전히 통유리였다.
주방에서 조리하는 게 보일 정도였는데, 문제는 그 앞이었다. 따로 선반을 짜서 뭔가를 올려놓게끔 되어 있었던 것이다.
물론 강형우와 김현우는 그 용도를 알고 있었지만, 홍태구는 아니었다.
“이게 왜요?”
“어, 그런 게 있어.”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입구 쪽으로 향했다.
노트북 화면으로 봤던 거와 다르게, 인테리어는 정말 깔끔하게 나왔다.
사실 돈이 부족할까 싶어서, 홍태구가 제시한 모델 중에서 저렴한 걸 골랐다.
하지만 강학희의 실력이 좋아서인지 디자인이 잘 나와서인지 의외로 훤했다. 게다가 청소를 쉽게 하기 위해서 벽에 타일을 대기로 한 건데 의외로 예뻤던 것이다.
전체적으로 녹색인데, 중간중간 주황색 타일로 포인트를 줬다. 그리고 허리 쪽 라인 위로 거울을 대니 가게가 더욱 넓어보였다.
그것뿐만이 아니라 카운터와 조리대, 주방까지 한눈에 볼 수 있게 바뀌었다.
무엇보다 인테리어의 키포인트는 이거였다.
“처음에 들었을 때는 이상했는데, 나름 잘 어울리네요.”
홍태구가 가리킨 건, 가게 한쪽 벽면에 있는 거였다.
예전에 쓰던 낡은 간판이 거기에 있었다.
꼭 80년대 영화나, 옛날 세트장 같은데서나 볼 법한 그런 거였다.
타일 장식 대신 집어넣은 거였는데, 깨끗이 청소한 다음 이 앞에 커다란 유리를 붙여서 가게 어디에서도 볼 수 있게 해놨다.
홍태구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확실히 느낌이 사네.”
“내 아이디어야. 내 아이디어!”
강형우가 어깨를 으쓱하자, 홍태구가 피식거렸다.
“재수지. 실력이냐?”
“결과가 실력이다. 그리고 딱 봐도 있어 보이잖아.”
원래 새 간판 대신 기존 간판을 꾸며서 해보려고 했었다.
그랬는데, 강학희가 딱 잘라 말했다.
일단 어울리지 않는단다. 그리고 오래됐다고 다 좋은 게 아니라 버릴 건 버려야 한다고, 그래야 새 가게의 수명이 오래 간다고 했다.
무엇보다, 리모델링은 조화가 중요하단다.
저 낡은 간판이 그걸 방해한다는 거다.
잠시 고민하다가 벽 장식으로 하면 어떠냐 했더니, 오히려 그건 좋다고 했다.
앞으로는 더욱 보기 힘들어질 거니까, 그 자체만으로 시선을 끌기 충분하다나?
그래서 넣은 건데, 정말이지 신의 한 수였다.
강형우는 피식 웃은 뒤, 가게를 둘러봤다.
“테이블 열다섯 개면 삼사 십이니까, 최대 육십 명까지 받을 수 있고, 피크 시간을 다섯 시간 정도 잡으면…….”
치킨집은 술을 파니까 회전율이 느린 편이었다.
그걸 따졌을 때, 한 자리당 만이천 원 잡고 시간당 18만 원이 나온다.
그럼 다섯 시간 60만 원인 셈이다.
“이걸 25일로 계산하면… 아니지. 어차피 물량이 정해져 있으니까.”
강형우는 다시 계산기를 두드렸다.
“만이천 원 곱하기 칠십 마리는… 팔십사만 원인가? 그럼 이걸 25일로 계산하면… 이천백만 원이네.”
이제 여기서 월세, 인건비, 기타 등등을 빼고 하면서 계산하는데, 김현우가 등을 툭 쳤다.
“뭐 하냐?”
“그냥 보니까, 하게 되네요.”
자영업자의 습관 같은 거였다. 언제부터인지 새로운 식당을 가면 본능적으로 수익 계산부터 하게 된 것이다.
하지만 김현우가 더 빨랐다.
“이미 전에 다 해봤잖아? 술 빼고 한 달에 백만 원.”
“아! 그렇게 나왔죠.”
뒤늦게 아차 싶었다.
사실 강형우가 꼼꼼하게 다시 계산한 이유는 인테리어 비용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