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8
108화 뭐가 문제인 거지
“손질부터 치면, 총 조리 시간은 일곱 시간 걸렸어요.”
강형우가 손가락을 펼쳐서 일곱 개를 만들었다.
학생들은 너무 놀랐는지 눈만 꿈뻑거릴 뿐이었다.
“대박, 이거 만드는 데 일곱 시간 걸렸대.”
“진짜?”
“말도 안 돼. 일곱 시간 동안 요리했다고?”
“에이, 사장님, 장난이죠?”
다들 아니라고 농담이냐고 묻는데, 강형우는 웃음이 나왔다.
하긴, 방식을 모르니 오해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 고기에 양념이 스며들게 중간중간 뼈 사이에 칼집을 내요. 숙련자라면 저처럼 한 시간 안 걸리겠지만, 초보 요리사들은 몇 시간씩 걸리거든요.”
“그렇게 오래 걸려요?”
“예. 양을 보세요. 많잖아요?”
여학생인 걸 배려해서 몇 키로인지는 말하지 않았다.
만약 지금 너희들이 먹는 양이 무려 30㎏라고 했으면 큰 충격을 받았을 테니까.
실제로 뼈 무게를 제외하면 1인분은 얼마 안 된다. 그냥 고깃집에서 이 인분 시켜먹고 배 좀 부르다고 할 수 있는 정도인 것이다.
하지만 30인분이니 결코 적다고 할 수 없었다.
“핏물 빼는 것도 오래 걸리고요. 끓는 물에 삶는 데도 20분 이상 걸려요.”
강형우는 그렇게 설명한 다음 수비드로 넘어갔다.
“쉽게 설명하면, 일단 수온부터 맞춥니다. 원래 고기에는 콜라겐 성분이 있는데, 60도에 맞추면 부드럽게 변하거든요. 그리고 단백질 성분도 65도 이하에서 장시간 조리하면 부드러워져요.”
여기서 엑틴이니 미오신이니 하는 성분 이야기는 굳이 할 필요는 없겠지.
검색하면 쉽게 나오는 것이고, 그게 어떻게 작용하는 건지를 설명하려면 시간이 많이 필요하니까.
“폭립 씹어보니까 어때요?”
“진짜 부드러워요. 양념도 잘 배어 있고.”
“예. 막 육즙 같은 거 나오는데, 전혀 안 질겨요.”
여학생들이 평가는 대체로 비슷했다. 게다가 치아 교정기 낀 애가 잘 씹힌다고 할 정도로 연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맞아요. 수비드 조리법이 그런 거예요. 온도만 잘 맞추면 고기가 더 부드러워지고, 촉촉해지거든요. 그 과정에서 양념도 잘 스며들어서 맛이 깊어진답니다.”
족발처럼 삶으면서 고기 누린내를 완전히 잡는다. 이걸, 밑간하듯 양념을 더해서 수비드 조리기에 넣고 기다리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설명하니 다들 이해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부드럽고 촉촉해진 등갈비에다 다시 양념을 발라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오븐에 넣는 거죠.”
온도는 200도에서 10분 정도였다.
양념이 졸아들어서 살짝 그을릴 수준으로만 구워서 내면 진짜 끝인 거다.
“와. 그런데 이거 하나에 그렇게 많은 과정이 필요한 거예요?”
“예. 그래야 맛있으니까요. 여기서 다른 곳에 가서 폭립 먹어본 사람?”
“저요.”
“저두 먹어봤어요.”
손 든 학생은 생각보다 많았다. 거의 절반 정도가 한 번 이상 가봤다고 했던 것이다.
“거기 가면 비싸죠?”
“예. 엄청 비싸요. 식구들끼리 갔는데 팔만 원인가 나왔어요.”
“나도, 친구들이랑 갔는데, 오만 원 깨짐.”
학생들은 서로 돈 많이 나왔다고 말하며 울상을 지었다.
“학생들. 비싼 건 이유가 있는 겁니다. 재료비도 그렇지만, 각 과정마다 손이 많이 가요. 당연히 인건비가 포함하면 폭립이 비쌀 수밖에 없어요.”
구체적인 이야기도 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다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던 것이다.
“자자, 오늘 자리는 박미희 양 어머니께서 맛있는 거 꼭 좀 해달라고 해서 신경 쓴 거랍니다.”
그렇게 시선을 박미희에게 집중시킨 강형우는 추첨 이야기를 잠깐 꺼냈다.
사실, 영수증 응모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몰릴 줄은 몰랐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1등이 30만 원짜리 상품권이기 때문이었다.
“큰 가게들은 오픈할 때, 막 TV나 냉장고, 노트북 같은 걸 상품으로 걸더라고요. 그런데 보시다시피 우리 가게가 작잖아요?”
사람이 얼마 안 될 거라고 생각한 게 그래서였다.
전에 보니까 어떤 가게는 신형 자동차를 걸고 이벤트 같은 걸 하기도 했었으니까.
“그래서 고민했는데, 미희 양 어머니께서 많은 걸 알려주셨어요. 그리고 추첨도 도와줬고 그게 고마워서 이렇게 솜씨 좀 부린 거예요.”
강형우가 박수를 치자, 친구들도 박미희를 보고 신나게 박수를 쳤다.
어차피 돌려받은 백화점 상품권은, 강영지의 애교에 넘어간 지 오래였다. 그러니 차라리 이 기회를 홍보로 삼자고 생각해서 좀 과하게 한 거다.
또, 박미희의 이야기도 마음에 들었다.
학년이 올라가면서 반이 달라진 게 아쉽다면서, 친구들과의 추억을 부탁했다.
그게 기특해서인지, 정말 돈이 하나도 안 아깝더라.
그렇게 수다와 식사가 진행된 지 얼마 안 된 것 같은데, 폭립은 순식간에 바닥나 버렸다. 분명 적은 양도 아니었는데, 20분도 버티지 못한 것이다.
“더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마음껏 시키세요. 오늘은 마칠 때까지 해줄 테니까요.”
말 떨어지기가 무섭게 주문이 폭주했다.
하와이안 돈가스가 열여섯 개, 불돈가스가 여덟 개였다.
여기에 파스타와 떡볶이가 추가되었고, 마무리는 밥이라면서 볶음밥도 다섯 개가 더해졌다.
계산해보니 총비용이 30만 원이 넘지 않았다. 그래서 안심하고 있는데, 갑자기 누가 물었다.
“그런데 사장님. 혹시 유명한 레스토랑 요리사셨어요?”
“예?”
“왜 방송 같은데 나오는 셰프들 있잖아요. 머리에 모자 이따만 한 거 쓰고, 하얀 조리복 입고…….”
“아닙니다. 절대 아니에요.”
“그런데 어떻게 그렇게 요리 잘해요?”
순간 학생들의 눈빛이 초롱초롱해졌다.
반대로 강형우는 난감했다.
있는 건 조리사 자격증이고, 식품 회사 경력이 전부였다.
메뉴판에 있는 건, 열심히 만들다 보니 나온 것들이었으니 딱히 뭐라 할 말도 생각나질 않았다.
“오오, 사장님 부끄러워하신다.”
“진짜 방송에 나오신 분 아니에요? 아니면 유명한 가게 셰프?”
“예. 아니 그게 아니라… 작은 데서 좀 일하다가 독립해서 차린 겁니다.”
“그럼 거기 별 한 개, 두 개 이런 거 받는 레스토랑?”
들어보니 미슐랭을 말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그럴 리가 있겠는가?
강형우는 서둘러 화제를 진압하지 않으면 스케일이 커질 것 같은 불안을 느꼈다.
“하하, 학생들이 방송을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은데요. 저 진짜 그런 거 아니에요. 그냥 경력 좀 있고, 독학해서 가게 차린 거거든요.”
“와~ 독학이래, 독학. 혹시 만화에서나 나온다는 요리 천재?”
“아니야, 절대 미각 이런 거야.”
“니들이 잘 모르는데, 요리왕 비룡이라고!”
이렇게까지 중구난방으로 떠드니 포기하고 싶어졌다. 어떤 의미로는 진상 아주머니들보다 더 무서웠던 것이다.
강형우는 진심으로 결심했다.
앞으로 여고생들 단체 손님은 절대 받지 않겠다고.
***
“우와, 많다.”
며칠도 안 됐는데, 홈페이지 접속자들 숫자가 몇 배로 불어났다. 또, 게시판에 글을 쓰는 사람들도 생겨났고 자기 블로그 홍보 링크도 보였다.
혹시나 해서 클릭해서 들어가 보니, 그 애들이 맞더라.
아오, 징글징글하게 귀여운 것들 같으니라고.
진짜 기특해서 뽀뽀라도 해주고 싶었다. 물론 그랬다가는 손목에 어여쁜 은팔찌를 차게 되겠지.
“후후후.”
강형우가 웃는데, 공지혜가 이상한 표정을 지었다.
“오빠, 변태 같아요.”
“뭐?”
“예. 혹시 있다가 경찰 아저씨들 오는 거 아니에요?”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지은 죄가 없는데…….”
“아뇨. 방금 웃은 것만 보면, 사람 여럿 죽였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다고요.”
그러면서 손거울을 쓱 내미는데, 딱히 이상한 건 못 느끼겠다. 하도 웃어서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것 말고는 차이가 없었던 것이다.
하긴, 이게 정상적인 반응이 맞겠지.
사실 애들이 갔다간 이후 난리가 났다. 덕문여고 학생들이 순번 정해서 오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무지막지하게 몰려왔던 것이다.
웃긴 건, 여학생들이 많이 온다는 소문이 퍼지니까 남학생들도 늘어나기 시작했다는 거다.
해서 점심에는 근처 사무실 직장인과 동네 아주머니들, 원룸촌 사람들이 가득했고, 저녁에는 학생 손님이 절반 이상이었다.
중요한 건, 매출이었다.
분명 브레이크 타임이 있음에도 수익은 거의 줄어들지 않았다. 오픈 발 효과가 추첨으로, 거기서 여학생들 효과로 이어졌던 것이다.
무엇보다, 덕문여고 애들이 어떻게 알았는지 본점으로도 몰려가고 있었다. 덕분에 재료가 떨어져 일찍 마치는 일까지 생겼던 것이다.
“지혜야.”
“왜요?”
“나 돈 많이 벌 거야.”
“근데요?”
“아니, 그냥 그렇다고.”
진짜 입이 근질거렸지만 차마 말하기가 어려웠다.
정말 한 달이 조금 안 됐는데, 매출이 팔천을 넘겼다. 여기에 본점 수익까지 더하면, 모자랐던 권리금이 한 방에 다 해결되는 거다.
정말이지 어마어마한 수익이라고 할 수 있었다.
물론 몇 달 지나면 다르겠지만, 적어도 지금은 이 행복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때, 신원이 형이 진지하게 불렀다.
“형우야.”
“예. 형.”
“너 무슨 약 같은 거 하니?”
“예?”
“그게, 요즘 보니까 좀 사람이 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나 할까? 좀 그래.”
너무 심각한 표정으로 말하니까, 조금 당황스러웠다.
“내가 며칠 전에 그랬잖아. 폭립하고, 파스타… 어떻게 할 거냐고.”
“아! 맞다.”
참 장사라는 게 그렇다.
뭐가 하나 해결됐다 싶으면, 문제가 또 하나 생기더라. 그런데 그게 하필 파스타라니 골치가 아팠다.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는데요. 좀 더 생각할 시간이 필요할 것 같아요.”
“정말 생각하고 있는 거 맞아?”
“예. 그런데 제가 사장이잖아요. 메뉴를 추가하고 없애는 게 쉽지가 않아요. 단순히 내놓는 게 아니라 조리 과정을 세분화해서 조정하고, 누구나 만들 수 있게 해야 하는데…….”
정말 농담이 아니라,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잠깐 안 팔린다고 넣고 빼고 한다면, 가게의 정체성에 문제가 생기는 거다.
“형우야, 잠깐 와볼래?”
“예.”
강형우는 강신원을 따라 주방 뒤편의 주차장으로 향했다.
“나도 직원 입장에서 쉽게 할 말은 아닌데, 네가 전에 나한테 그랬잖아. 믿고 맡긴다고.”
“그랬죠.”
“그래서 심각하게 이야기하는 거야. 이거 직접 확인해 봐.”
강신원이 가리킨 건, 음식물 쓰레기통이었다.
생각해 보니 어느 순간부터 보질 않게 됐다.
주방 막내 이영제의 몫이었고, 가끔 이강석과 강신원이 도와서 치운다는 것 정도로만 확인하고 있었으니까.
강형우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열었다.
순간 시큼한 냄새가 확 올라왔다. 그나마 다행인 건 초봄이라서 조금 덜하다는 것 정도였다.
하지만 충격적인 건 그게 아니었다.
음식물 쓰레기는 그래도 적게 나온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서빙하면서 많은 빈 접시를 봤고, 설거지가 필요 없을 정도로 깨끗한 그릇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게 뭐란 말인가?
“형. 이거 진짜?”
“어. 다른 건 안 그런데, 파스타가 제일 많이 남아. 그리고 내가 소스 만드는데, 버려지는 게 너무 많더라고.”
순간 강형우의 표정이 심각해졌다.
음식물 쓰레기의 절반이, 파스타였다. 하루 나가는 비율이 10%도 안 되는 걸 생각하면 결코 있을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어째서 이런…….”
“나야 모르지. 그런데 거의 이 주일째 이래.”
“정말요?”
강신원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짧게 한숨을 내쉰 강형우는 바로 카운터로 달려갔다.
요즘 포스기는 잘 되어 있어, 각 메뉴별로 매출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최근 사흘간 팔린 파스타 매출은 50만 원 선이었다. 대충 100그릇 정도가 나간 셈이었다.
“안 팔리는 것도 문제지만, 저렇게 많이 남는다는 것도 심각한데.”
강형우는 혹시나 싶어 주방으로 들어갔다.
소스 맛을 보고, 직접 면을 삶은 뒤 볶아서 아예 한 그릇을 뚝딱 만들었다.
확실히 맛에는 크게 차이가 없었고, 그래서 더욱 혼란스러웠다.
“그럼 대체 뭐가 문제인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