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7
107화 진짜 맛있겠다
“이거다. 받아라!”
정육점 사장 정재일이 여전히 무뚝뚝한 표정으로 냉장실을 열었다. 그리고 커다란 뼈들이 뭉쳐진 덩어리를 가져왔다.
“이야, 실하네.”
강형우는 피식 웃음을 지었다.
로인 립이라 불리는 돼지 등갈비였다.
1인당 1㎏ 잡고 거의 30㎏였다.
가격은 무려 친구 할인 포함해서 22만 원!
하지만 아깝다는 생각은 전혀 들지 않았다. 그냥 보기만 해도 먹음직스러웠던 것이다.
“뼈를 제외하면 대충 서너 조각씩 돌아가겠네.”
이것만 먹일 게 아니니, 충분할 것 같았다.
여기에 돈가스나 파스타, 떡볶이에 라면이 추가되면 대충 50만 원 값어치는 나오겠지.
그때 정재일이 물었다.
“너, 손질은 할 줄 아니?”
“당연하지. 내가 돈가스 고기만 만지는 줄 아는 모양인데, 나름 잘해.”
강형우가 시범을 보이려는 듯 칼을 잡으려 했다.
그 순간, 정재일이 손을 저었다.
“야, 여기 내 가게거든? 하려면 가서 해라.”
“뭐?”
“원래 개인 작업장 한 곳에서 두 사람이 칼 잡는 거 아니라고 배웠다.”
나름 고수들끼리 칼 잡고 경쟁하다 보면 사고가 난단다. 때문에, 그런 법칙이 생겼다는 것이다.
“그럼 전에는?”
“그때는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었잖아. 다른 곳도 스승과 제자가 함께 칼 잡는 건 허락돼. 하지만, 지금은 다르지.”
표정을 보니 정말 진지하게 그렇게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이럴 때는 물러서는 게 만수무강에 좋았다.
가끔은 답답할 때도 있지만, 그게 발골 정형사들의 기준이라고 하니까.
내심 찔리기는 했다. 그냥 모른다고 하고 슬쩍 가르쳐 달라고 할 것을, 괜히 안다고 해서 문제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실제로 강형우는 고기 가지러 올 때마다 모르는 척, 손질하는 법을 물었다. 또, 부위별로 어떤 냄새가 나는지도 들었고 조리할 때의 특징 같은 것도 들었다.
따지면 도둑질로 배우는 셈이었다.
“그래도 내가 고객인데…….”
“그럼 더 위험하지. 손님한테 칼 잡게 하는 건 예의가 아니니까. 무엇보다… 손님이 다 하면, 난 뭐 먹고 사냐?”
“뭐?”
“나 두 달 뒤 결혼한다.”
전에 그런 이야기는 들은 것 같기는 했다. 이 무쇠 덩어리가 연애를 한다는 말에 다들 화들짝 놀랬던 것이다.
문제는 그 상대였다.
“너, 정말 지애랑 하냐?”
“어. 이제 형수님이라 부르도록.”
어이, 친구!
그렇게 말하면서 칼을 잡으면 어쩌란 말이냐?
강형우는 별수 없이, 돼지 등갈비 사러 갔다가 졸지에 청첩장을 받아와야 했다.
***
복잡하면 복잡하고, 쉽다면 쉽다.
음식이란 게 그렇다. 무슨 요리 무슨 요리 이러면 어렵게 들리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단순해지는 것이다.
막말로 탕수육만 봐도 그렇다.
풀어 쓰면 설탕 식초 소스 더하기, 튀긴 돼지고기였다. 이름에 조리법이 다 들어 있는 거다.
그렇게 따지면 돼지 등갈비도 마찬가지였다.
바비큐 폭립이라 들으면 거창할 것 같지만, 그냥 바비큐 소스를 발라먹는 돼지뼈 고기였다.
밑 작업을 한 걸 쪄 먹으면 등갈비찜이고, 구워 먹으면 등갈비 구이인 셈.
“천천히 해보자.”
강형우는 받아 온 고기를 적당한 덩어리로 손질했다.
그다음은 핏물 빼기였다.
그냥 찬물에 담가놓으면 끝이고, 이걸 끓는 물에 한 번 삶아서 불순물을 제거한다.
본격적인 조리는 이제부터였는데, 여기서부터는 족발 삶는 것하고 비슷했다.
큰 통에, 등갈비가 잠길 만큼 물을 붓는다.
예전과 다르게, 미리 만들어놓은 맛간장을 넣고 육수 우리듯 야채를 투하한 뒤 적당히 삶으면 된다.
무엇보다 어차피 한번 하고 말 요리였다.
그래서 강형우는 이것저것 조금씩 다 때려 넣었다.
소주도 넣고, 맥주도 넣고, 콜라도 넣고, 커피 믹스에 된장도 조금 풀었다.
여기에 통후추 팍팍에 배도 두 개나 넣었다.
확실히 이것저것 많이 넣으니 잡냄새는 확 사라졌다. 게다가 나름 독특한 향까지 나니 근사한 외국 요리 같은 느낌까지 났던 것이다.
이걸, 만들어 놓은 소스와 함께 진공 포장을 하고, 수비드 기계에 넣고 속까지 익혀주면 된다.
“으아아아, 이제 겨우 정리되네.”
강형우는 기지개를 켜며 굳었던 관절을 풀였다.
하지만, 이제 겨우 오전이었다. 할 일이 태산처럼 많았던 것이다.
“흐어, 쉬는 시간 있어서 다행이네.”
강형우는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추첨의 영향인지 요 며칠 간, 점심때 손님들이 많이 몰렸다. 그러다 점점 뜸해지더니, 공식 브레이크 타임 전에는 가게가 완전히 비였다.
맞다.
이제는 오후 3시부터 5시까지는 영업을 하지 않기로 했다.
직원들도 사람이니, 쉬어야 할 게 아닌가?
무엇보다 강형우도 피로를 많이 느끼고 있었다. 아직 홀 직원이 한 명 부족해 양방향으로 뛰어야 했던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이유는, 진상 아줌마들이었다.
혹시나가 역시나라고, 오늘 하루 정도는 지나갈 법도 했는데 그냥은 안 가더라.
“전에 커피 서비스 좀 해달라고 했는데요?”
“죄송합니다. 저희 가게는 커피 판매를 하지 않습니다.”
“아니요. 서비스로 달라고요.”
“죄송합니다. 커피 기계가 없습니다.”
“전에는 있었는데…….”
“가게 좁아서 정리했습니다.”
“그냥 한 잔 주시면 안 돼요?”
진짜 몸속에서 암이 자라는 느낌이었다.
이게 굳으면 사리가 된다고 했지?
보통은 저만큼 이야기했으면 미안해서라도 이해할 법도 하건만, 상대는 전혀 그럴 생각이 없어 보였다. 일부는 짜증까지 내면서 계산서를 툭툭 치기도 했던 것이다.
그럼에도 강형우는 최대한 정중하게 내보냈다.
이건 일종의 기싸움이었다. 한발 물러나면 더한 요구로 돌아올 게 분명했으니까.
솔직히 마음 같아서는 이러고 싶었다.
“안 된다고 이 썅XX~~”
하지만 손님은 손님이었다. 더럽지만 참고 내보내는 수밖에는 없는 것이다.
물론 직원들한테도 철저하게 교육(?)시켰다.
괜히 응대했다가 속 뒤집히면 본인만 손해니까, 저런 손님들 보면 무조건 나를 찾으라고 말이다.
덕분에 진상 전담 마크맨이 됐고, 입에서는 이 말이 자동 재생이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아마도 이런 게 자영업자의 설움이 아닐까 싶었다.
사과할 마음은 십 원 한 푼도 없었지만 먹고살려니 어쩔 수 없지.
그나마 다행인 건, 커다란 덩치와 얼굴 때문인지 큰 사건(?)은 벌어지지 않았다는 것 정도?
“자, 식사합시다.”
마침 강신원이 볶음밥과 반찬을 가지고 나왔다. 그러자 다들 쉬다가 우르르 몰려들어 음식을 초토화 시켜버렸다.
이제 남은 건, 영업 10분 전까지의 휴식이었다.
강형우는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이 정리하는 걸 가만히 쳐다봤다.
사실 지난 삼 주 사이에 가장 많은 변화를 보인 건 강신원이었다.
일단 요리에 재미를 붙인 모양이었다.
갑자기 며칠 전, 브레이크 타임 담당 요리사가 되겠다고 했다. 홀이 바쁠 때 도움이 안 되니 쉴 때는 자신이 다 해주고 싶다는 것이다.
역시 반대 없는 찬성 몰표였다.
덕분에 다른 식구들은 편하게 점심도 먹고, 강신원이 만들어온 커피까지 마실 수 있었다. 그래서 설거지라도 도우려 했더니 이것도 자기가 하겠다고 나섰다.
확실히 좋은 징조이긴 했다. 슬슬 강형우가 다음 계획을 시험해도 될 정도로 여유가 느껴졌던 것이다.
“그건 그렇고, 오늘도 스무 명이나 왔네.”
강형우가 보는 건, 지성분식의 홈페이지였다. 며칠 사이 무려 백여 명이나 방문한 덕에 수시로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홈페이지에 추첨할 때의 동영상을 올린 게 먹힌 것 같았다.
강형우는 느긋하게 생각하기로 했다.
조금 있으면, 홈페이지 방문객을 늘려줄 귀여운 손님들이 찾아올 테니까.
***
“우와아!”
“꺄악!”
비명인지 감탄인지 모를 소리가 연이어 울려 퍼졌다.
물론, 여기는 아이돌 콘서트장이 아닌 지성분식이었다. 테이블 여섯 개 자리를 학생들을 위해 예약석으로 비워놨는데, 거기서 났던 것이다.
하긴, 정말 예상도 못한 상황이었으니 강형우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1등 당첨자 박미희.
다이어트 소리를 입에 달고 다닌다는데, 그냥 통통해 보이는 정도였다. 강형우가 마음먹고 한 달만 운동시키면 날씬해질 수준은 됐던 것이다.
어쨌든 귀여운 여고생들을 받고 서빙하는 건, 강신원이 하기로 했다.
물론 은선경의 적극적인 추천이 있었다.
1등 당첨자가 식사하고 후기 사진을 홈페이지에 올리기로 했는데, 강형우가 나서면 그림이 안 산다는 것이다.
그래서 내가 사장인데 했더니 씨알도 안 먹혔다.
다행인 건, 신원이 형이 의외로 여학생들은 어려워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진상 손님이 아닌 강신애 또래라고 최면을 걸고 나섰다는 것이다.
잠시 후, 강형우는 커다란 접시 여섯 개를 테이블에 놨다.
그 위에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바비큐 폭립이 있었다.
“우와! 진짜 맛있겠다.”
“야. 사진, 사진.
“오빠도, 사진 같이 찍어요.”
역시나 잘생기고 볼 일이긴 했다. 강신원이 인기 폭발인 가운데, 사장 강형우는 학생들 단체 사진을 찍어야 했던 것이다.
한바탕 포토타임이 끝나고, 본격적인 식사가 시작되었다.
그래서 물러나려는데, 박미희가 손을 번쩍 들었다.
“그런데 사장님, 우리 정말 공짜로 먹어도 돼요?”
“예. 홈페이지 영상 보셨죠? 1등 당첨된 거 맞으니까 맛있게 드시기만 하면 됩니다.”
그 말에 아주 난리가 났다. 꺅꺅거리면서 좋아하더니, 또 사진 찍고 그걸 친구들한테 전송하고 문자 하고 자랑까지 했던 것이다.
그때 다른 여학생이 손을 들었다.
“사장님, 블로그에 여기 글 올려도 돼요?”
“예. 그렇게 하세요.”
“그런데, 그냥 사진만 올리면 안 되잖아요. 이거 어떻게 만드는 거예요?”
강형우는 잠시 머뭇거렸다.
이럴 걸 대비해서 신원이 형한테 알려주기는 했는데, 너무 시달렸는지 지친 표정이었다. 그러니 결국 직접 나설 수밖에 없었다.
“일단 돼지 등갈비를 사서 손질을 해요. 핏물 빼고, 한 번 삶아서 불순물도 제거하고.”
강형우의 말에, 몇몇 학생들이 수첩을 꺼냈다.
“그다음에 족발처럼 삶는 거죠. 보통 등갈비 구이나 찜 같은 거 만드는 집도 대부분 삶은 걸 조리하거든요. 안 그러면 고기 두께가 있어서 속까지 익히기 어려워요.”
“아, 그랬구나?”
“맞아. 등갈비는 초벌 다 해서 나오잖아.”
여학생들의 호응이 좋아서 강형우는 살짝 기분이 좋아졌다. 사진사 역할을 했던 기억이 단숨에 날아갈 정도로 말이다.
“그렇게 삶은 걸 수비드로 조리합니다.”
“그 수비드가 뭐예요?”
“물을 끓여서 낮은 온도에서 장시간 조리하는 거죠.”
“그럼 삶는 거 아니에요?”
사방에서 물어보니 정신이 좀 없기는 했다.
강형우는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손뼉을 두 번 쳤다.
짝짝~
소리가 크고 울림이 있어서 단번에 시선이 집중되었다.
“자, 제가 천천히 설명드릴게요. 먹으면서 들어요.”
수비드 조리법.
사실 얼핏 들으면 뭔가 어렵고 대단한 것처럼 들린다.
하지만 원리는 간단했다. 물을 끓이고, 그 온도로 뭔가를 익히는 것.
강형우는 가볍게 웃은 뒤, 물었다.
“목욕탕 가서 뜨거운 물에 들어가면 어떻게 돼요?”
“당연히 뜨겁죠. 막 얼굴에 열나고.”
“맞아, 맞아. 답답할 때도 있고, 땀도 나도 그래.”
“야! 우리 집 옆에 목욕비 2,000원 한다?”
“헐, 대박.”
학생들이라 그런지 이야기가 옆으로 새는 건 금방이었다.
강형우는 재빨리 말을 자르고 끼어들었다.
“그거 비슷한 원리랍니다. 하지만 물이 직접 닿으면 안 되니까 조리용으로 허락받은 비닐로 감싼 뒤 데우는 거죠. 보통 육류는 60도 전후로, 두께에 따라 두 시간에서 네 시간 정도 요리 하거든요.”
“예? 네 시간요?”
“예. 조리법에 따라 최장 열두 시간 이상 걸리는 것도 있어요. 그리고 그건 57도에서 네 시간 동안 익힌 거구요.”
학생들이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여기에 강형우의 말이 이어지자 다들 입을 쩍 벌리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