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6
106화 한번 해볼까
생각해 보니 어릴 때는 그랬다.
고깃집이나 돼지국밥, 혹은 큰 식당 카운터 앞에는 설탕 범벅 박하사탕이 있었다.
아주 고급이 아닌 싸구려라 치아에 쩍쩍 달라붙긴 했지만, 싸한 향이 입을 개운하게 해줬다. 특히 기름기 많은 음식을 먹었을 때는 제법 상쾌하기까지 했던 것이다.
요즘은 목캔디나 수입 사탕들이 많이 들어와 인기가 시들해졌지만, 그래도 박하사탕은 꽤나 친숙했다.
그걸 증명하듯 우리 통닭 카운터에도 있었다.
강형우는 뚜껑을 열고, 그 안의 작은 집게를 들어 사탕 하나를 입에 넣었다.
놔둔 지 오래된 탓일까?
제일 먼저 느껴진 건 찐득함이었다. 이후 달달하다가 이내 화한 향이 입안에 퍼졌다.
“형, 어머니가 박하 사탕 좋아했어요?”
“어. 많이는 아니지만, 일 마치고 정리할 때 한두 개씩은 드셨던 것 같아.”
“그래요?”
강형우는 뭔가를 느꼈는지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가게 정리를 마무리하자 어느덧 시간이 늦은 오후가 되었다.
“어떻게 할래? 우리 집 가서 저녁 먹을래?”
“집에서요?”
“어. 어차피 아무도… 그냥 내가 의논할 것도 있고 그래서 그런다.”
김현우의 제안에 강형우는 시간을 확인했다.
모처럼 쉬는 날이기도 해서 좀 늘어지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일할 팔자가 맞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천경 어르신도 그러셨다.
넌, 천상 사람들과 함께 해야 할 팔자란다. 기질이 외로운 것도 있지만 그게 행복하다나?
“그러죠, 뭐.”
대수롭지 않게 대답한 강형우가 손을 씻는데, 마침 전화가 왔다.
“어라, 덕수 형?”
뭐, 여기까지는 그런가 했다. 그런데 곧 창주 형과 혁기 형도 전화를 하는 게 아닌가?
용건은 간단했다. 통닭집 치운다고 들었는데, 뭐 도와줄 게 없느냐는 것이다.
형들의 마음이 참으로 고마웠다.
하지만 일찍 전화하지, 일 다 끝나고 연락할 게 뭐란 말인가.
강형우가 그렇게 투덜대려는데, 김현우가 웃었다.
“그래, 간만에 다 같이 한번 보지.”
***
이 무슨 우중충한 분위기란 말인가?
모인 장소는 현우 형네 집이었다. 게다가 저녁을 겸한 안주는 혁기 형이 가져온 탕수육에, 화끈 오뎅의 튀김과 김밥이었다.
유부남 한 명과 예비 유부남, 그리고 연애 중인 한 명에 일 년 솔로와 모태 솔로가 한 방에 있었다.
그러니 홀아비 냄새가 진동할 수밖에 없지.
어쩌면 누가 발을 안 씻고 온 건지도.
어쨌든 그렇게 배를 채우고 술 마시면서 이야기하는데, 이상하게 덕수 형만 조용했다.
“형, 뭐 해요? 잔 받아야지.”
“어? 아 그래.”
“왜요 무슨 일 있어요?”
“형우야, 어제 그 돈가스 있잖아.”
뜬금없이 추첨하는데 왜 왔느냐 했는데, 용건이 그거였다. 영수증 넣을 때 같이 왔던 아가씨가 맛있다고 해서 포장해 가려고 왔던 거다.
“예. 왜요?”
“그거, 연희네 가게에서도 판다며?”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형도 팔아보게요?”
강형우의 말이 핵심을 찌른 모양이었다. 잠시 당황해하던 정덕수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게, 내가 하는 게 아니고, 우리 이은 씨 가게에서 했으면 하는데… 아무래도 좀 그렇겠지?”
“이은… 씨요?”
누구인지 모르니 저절로 고개가 갸웃거려졌다.
그때 혁기 형이 슬쩍 끼어들었다.
“덕수가 만나는 아가씨. 백이은이라고 하는데, 너랑 동갑인가 그럴걸?”
“그래요? 그런데 무슨 돈가스를…….”
“그게, 호프집 매니저인데 장사가 잘 안 되나 봐. 덕수가 도와주려고 같이 이것저것 알아보는 중이라는데…….”
이혁기가 말끝을 흐렸다.
아무래도 뭔가가 있는 것 같았다. 저 형이 어렵게 말할 사람은 아니었으니까.
“뭔데요? 좀 속 시원하게 말해봐요.”
강형우는 정덕수를 쳐다봤다.
결국 용기를 낸 정덕수는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윤다정의 소개로 만난 여자가 백이은이었다.
요즘 낮에는 밥버거 집 일을 도왔다. 윤다정이 벌써 임신 9개월이었고, 알바 한 명을 쓰고 있지만 일이 많아서 도움이 필요했던 것이다.
오후부터는 호프집 매니저였다. 그런데 들어보니 조금 요상했다.
사촌 오빠가 사장인데, 실제 일은 백이은이 다 한단다. 알바 두 명을 돌려가며 새벽까지 장사한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명의는 오빠 건데 그냥 가게 하나 받아서 운영하는 거야. 월급 없이 수익만 70% 정도 가져간대.”
문제는 그게 월 백만 원도 안 된단다. 비슷한 컨셉의 가게들이 많이 생겨서 경쟁이 치열하다나?
“설마 봉자네 비어? 그런 종류예요?”
“어? 어떻게 알았어?”
다들 놀라는데, 반대로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전에 강주혁과 뻥구 비어에서 술 마시면서 몇 가지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다.
음식 장사를 하면서 절대 하면 안 되는 것 중에 하나가 유행의 막차를 타는 거라고 했다. 특히 라이트한 가게들이 그랬는데, 한꺼번에 우르르 생겼다가 다 같이 망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예를 든 게 동네 술집 컨셉의 저 가게들이었다.
처음에는 다들 잘될 것 같아서 시작했다.
맥주 한 잔에 3,000원.
여기에 감자튀김이 메인이고, 쥐포나 치즈스틱, 간단한 주전부리가 안주의 대부분이었다.
그 저렴한 가격에 손님들이 몰렸고 마진도 제법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주류업계의 편의점이라 불리는 게, 그런 가게였다. 큰돈 벌기도 어려웠고, 경쟁까지 더욱 치열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거기서 돈가스를 해보겠다는 거죠?”
“어, 일단은…….”
정덕수가 고개를 끄덕이는데, 근본적인 문제가 있었다.
“거긴 체인이잖아요. 본사 허락 없이 메뉴 함부로 못 넣을 텐데요?”
“그게 체인점은 맞는데, 또 아니기도 하거든.”
그 사촌 오빠가 체인 사업을 하는 오너였다. 그래서 지점 네 개를 운영하면서 하나를 넘겨줬는 거다.
“한마디로 가족 직영점이네요.”
“그렇지. 그러니까 알아서 운영해도 된다고 하더라고.”
그중 하나는 광안리 외각에 있는데, 황당하게도 낙지회까지 판다고 했다. 그러니 돈가스 정도는 큰 문제가 안 된단다.
강형우는 곰곰이 생각했다.
까짓거 돈가스 가르쳐 주는 건, 문제가 안 된다.
상대도 덕수 형과 결혼을 생각하고 있었고, 김민석과 윤다정을 돕고 있었다.
문제는 체인이라는 거였다.
만약 돈가스가 잘돼서 강형우가 알려준 게, 그 사촌 오빠한테 전해진다. 그래서 다른 체인점도 같이하게 되면 이래저래 곤란해지는 것이다.
“아! 생각 잘못하고 있었네요. 형, 그거 가르쳐 줘도 그 가게에서는 못 팔아요.”
“어? 왜?”
“연희네는 어떻게 파냐면요.”
요즘은 하루 스물다섯 개 정도만 한정해서 판다. 홍태구가 일이 없을 때 이삼 일치 돈가스를 준비하고, 소스도 일주일에 두 번 작업해서 만든다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돈가스에만 의지하지 않는다는 거다.
홍태구가 본격적으로 참여하면서 몇 가지 안주들이 더 추가되었고, 그 역시 호평을 받았으니까.
“알바들 가지고는 택도 없어요. 하루 꼬박 날 잡고 해야 하는 건데, 그런 체인 방식에는 맞지 않아요.”
“그래?”
“가르쳐 주는 거야 어렵진 않지만, 한 번 우리 가게 와보라고 하세요. 할 수 있는가 보게.”
농담이 아니라 진심이었다.
강형우의 방식은 많은 시간을 들이는 거였다.
음식 하나하나의 퀄리티도 높았고, 준비 과정에서 손도 많이 갔다. 남들이 보면 기겁할 정도로 복잡했으니 라이트한 호프집과는 맞질 않는 것이다.
이건 지성분식만의 경쟁력이었다.
누가 따라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차별화가 여기서 나온다.
“흐음, 그럼 네 생각은 어떤데?”
“장사요?”
“어. 이걸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하고 있거든.”
정덕수가 진지하게 물으니, 역시 진지하게 대답해 주는 게 인지상정이겠지.
“저라면 업종을 바꾸던가, 접을걸요? 가장 중요한 건 일단 돈이 안 된다는 거예요. 그다음으로 돈이 될 가능성도 없다는 거죠.”
이야기 듣고 분석해 보니, 고작 열두 평의 작은 가게였다.
오후부터 장사한다 쳐도 평균 8시간 정도.
술집이니 테이블 회전도 오래 걸리고, 하루 수용할 수 있는 손님은 최대 60명 정도였다.
현재 일 매출은 15만원 수준, 한 달 내내 해봐야 남는 것 하나 없었다. 게다가 옆에, 또 옆에 비슷한 가게들이 있는데 장사가 잘되겠는가?
강형우가 냉정하게 지적하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경험이 있으니 비슷한 가게들끼리 출혈 경쟁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를 깨달은 것이다.
“이럴 때 보면, 형은 참 답답하다니까요. 거기 위치가 어디인데요?”
“어? 그게 연제 예식장 쪽인데…….”
“그럼 딱이네. 형 거기 3호점 내요.”
강형우의 한마디에, 다들 멍한 표정을 지었다.
황당하게도 정덕수가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형답지 않게 유레카를 외쳤다.
이후, 강형우는 여러 가지를 물었다.
이 과정에서 현우 형네 장사 방식이 의논되었고, 그 외에도 몇 가지 이야기 같은 게 나왔다.
또, 강형우가 생각하는 조리법에 대해서도 한참이나 대화가 이어졌다.
역시 음식장 사하는 사람들이라 많은 도움이 되었다. 각자 분야가 다르니 다양한 접근 방법들이 나왔던 것이다.
“일단 결과는, 불가능은 아니라는 거죠?”
“그래. 우리도 진피나 팔각 같은 건 쓰니까. 솔직히 가루로 된 걸 사다 쓰면 편하기는 한데, 아버지가 싫어하셔서.”
혁기 형이 그렇게 말하면서 어향 소스 만들 때 우린 걸 쓴다고 했다.
그때 창주 형도 끼어들었다.
“우린 전용 허브 가루가 나와. 물론 실제 맛에는 큰 영향이 없지만, 시각에 크게 작용을 하지.”
튀김반죽에 그게 들어간다고 했다. 강주혁이 소개한 걸 적용했는데, 보기에도 훨씬 좋다는 것이다.
그건 덕수 형도 마찬가지였다.
“밥새우가 의외로 비싼데, 내가 계속 쓰는 건 그것 때문이야. 다른 밥버거집에서 못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일단 맛있어 보이잖아.”
그렇게 여러 이야기를 듣고 나니, 어느 정도 감이 잡히는 것 같았다. 접근 방식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보면 되는 것 아니냐는 결론까지 내릴 수 있었던 것이다.
해서 강형우는 틈틈이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다.
***
“헐, 일이 점점 커지네.”
강형우는 조금 난감했다.
1등 당첨!
그 학생네 반 아이들이 며칠 뒤 예약을 했다. 단체로 와서 먹겠다고 연락이 왔던 것이다.
몰랐는데, 한 반에 서른 명이 안 된단다.
강형우가 학교 다닐 때 마흔 가까이였던 걸 생각하면 확 줄은 셈이었다.
“그런데, 30만 원어치 먹이려면 뭘 해야 하나?”
고민은 바로 이거였다.
박미희. 현재 고등학교 2학년, 그리고 이번 달에 3학년이 된다.
영수증에 ‘2학년 1반 친구들 사랑해’라고 쓴 게 그것 때문이었다.
전부는 아니지만, 일부는 반이 갈린다는 거다.
그 마음을 생각하니 평소처럼 팔던 걸 해주기가 조금은 미안했다. 그래서 통화를 했는데, 뭐든지 괜찮단다. 친구들하고 추억을 공유할 수만 있으면 충분하다는 것이다.
그 아주머니도 딸의 아픔을 알았으니 그런 제안을 한 거겠지.
“진짜 뭘 해줘야 하나?”
강형우가 고민하고 있는데, 공지혜가 해답을 내줬다.
“오빠, 전에 해준 거, 그거 만들어요. 왜, 폭립인가 있잖아요. 돼지 등갈비로 만든 거.”
생각해 보니 그걸 해서 집에 가져간 적이 두어 번 됐다. 최근에야 일이 많아 외식으로 때웠지만, 가끔은 부탁받아서 만들어 먹었던 것이다.
“그게 괜찮을까?”
“애들이라면 환장할걸요? 솔직히 오빠가 만든 게 삡스보다 더 맛있더라고요.”
삡스는,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가족 외식 레스토랑이었다.
비슷한 걸로 프라이데이스나 아웃빽 같은 게 있었는데 메인이 스테이크와 폭립이었다.
그런데 거기보다 맛있다고 하니, 기분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가격이 1인분에 평균 이삼만 원 선이었다.
그 정도면 50만 원 어치 해준다 생각하고 만들어도 될 것 같았다.
“그런데, 정말 괜찮을까?”
“진짜 좋아할 거라니까요?”
공지혜가 몇 번이나 응원해 주니, 왠지 모를 자신감이 생겼다.
역시 여자들 입맛은 여자가 잘 알겠지.
무엇보다, 본점에서 가져온 진공 포장기와 수비드 기계가 외로워하고 있었다. 먼지 한 번 닦아 준 뒤로 손 한 번 댄 적이 없는 것이다.
“그럼 한번 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