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04
104화 형이 왜 나와
“사람 많네.”
처음 이벤트를 계획했을 때, 동의하는 손님에 한해서 전화번호를 받았다.
그걸로 문자를 보냈는데, 무려 400통 넘게 보내야 했다.
사실, 이벤트라고 해서 크게 거창한 건 아니었다.
고작 이박 삼 일 동안, 전단지 가져와서 만 원 이상 먹은 영수증에 이름과 전화번호를 적으면 끝이었다. 그런데 의외로 호응이 좋아 영수증 박스가 꽉 찰 정도였다.
또, 손님들 요구가 너무 많아 날짜가 지난 것도 어쩔 수 없이 받았다.
안 된다고 했다가 맞아 죽을 것 같아서였다.
그만큼 반응이 열렬했다고나 할까?
물론 뿌린 전단지가 팔천 장이니 그에 비하면 적은 편이기는 했다.
대충 5% 정도랄까?
“그래도 그렇지. 이러다 길 막히겠네.”
가게 앞에는 얼핏 세어도 백여 명 정도가 모여 있었다.
근처 편의점이나 카페에 있으면서 지성분식을 보는 사람도 제법 되었고, 놀이터 쪽 그늘에도 아주머니 일곱 분이나 있었다.
지성분식이 한 번에 수용할 수 있는 최대 인원은 70여 명이었다. 보조 의자를 동원해 꽉 채워 앉으면 그 정도까지는 커버가 가능한 것이다.
나머지는 최소 20분 이상은 기다려야 하는 상황.
문제는, 지금 추첨할 계획이 아니라는 거였다. 아직 홍태구도 오지 않았고, 이런저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으니까.
“이거 어쩌나?”
강형우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현재 홀 서빙 겸 카운터는 공지혜였다. 은선경이 보조였고 그 외 서브로 강형우가 움직였다. 좀 애매한 요구를 하는 손님들 위주로 주문을 받았던 것이다.
“선경아, 손님 많지?”
“예. 오픈 날 말고, 이렇게 많은 거 처음 봐요. 진짜 한꺼번에 들어오면 어떻게 하죠?”
“별수 있나? 번호표 뽑고 주문 먼저 받아야지. 아무래도 사람 손이 더 필요할 것 같은데.”
강형우는 주방을 쳐다보며 잠시 고민하다가 결국 안쪽으로 들어가 강신원을 찾았다.
“아무래도 형도 주방 좀 도와야 할 것 같은데요?”
“그럼 육수는 놔두고?”
“예. 일단 불 끄고 잠시 미뤄놔요. 설거지도 바로 하지 말고 일단 쌓아놓고요. 그리고 돈가스하고 다른 건 확실히 여유 있죠?”
“그렇기는 한데, 확신은 못 하겠어.”
강형우는 냉장고를 살피고 대충 계산을 한 다음, 전화를 들었다.
“예. 이모. 아무래도 여기 사람 한 명 더 있어야 할 것 같은데요. 예, 성구 보낸다고요? 알았어요. 그리고 올 때 돈가스 하고 몇 개 박스에 담아서…….”
지성분식 본점에서 여기까지는 택시로 10분 거리였다.
이것저것 준비해서 온다고 해도 넉넉히 잡아 30분, 늦어도 오픈 직후에는 도착할 것 같았다.
“형, 성구 온다니까, 그전까지는 주방 좀 도와요.”
“어? 그, 그래도 될까?”
“다른 건 필요 없고, 주방에서 음식 나오는 대로 카운터까지만 내주고요. 접시만 받아서 들어가요. 괜찮겠죠?”
표정을 보니 고민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강형우는 여유를 주지 않았다.
“손님하고 이야기할 필요도 없고, 저하고 선경이한테만 집중하면 돼요.”
“그래, 그 정도는 괜찮을 거야.”
일단 OK 사인을 받은 강형우는 다시 카운터로 갔다.
“지혜야, 일단 주문 먼저 받을게. 번호표 좀 줘.”
“이미 뽑아놨어요. 그런데, 이걸 또 쓰게 될 줄은 몰랐네요.”
역시 눈치가 빠르니 안 좋아할 수가 없었다.
공지혜가 웃으면서 내미는데, 강형우도 그런 생각을 했다.
오픈 하고 삼 일, 그리고 휴일 뒤, 이틀 정도는 정말 손님이 많았다.
그때는 번호표를 뽑아 미리 주문을 받았는데 이후부터는 아니었다. 그냥 손님 나가면 들어오고 하는 정도였고, 오늘처럼 한꺼번에 우르르 몰려오는 경우는 없었던 것이다.
“손님들이 추첨 언제 하냐 물으면 점심 지나서 두 시 반 이후에 한다고 해줘.”
“알았어요.”
“그럼 주방 준비!”
그 말에 이강석과 이영제가 심호흡을 했다.
“긴장하지 말고, 바쁘면 나 불러.”
어차피 홀에 손님이 다 차면, 돌아다닐 필요는 없었다. 그러니 주방 일을 거들면 되는 것이다.
실제로도 그렇게 했다.
강형우는 홀 보조이자 서브였고, 주방에서 돈가스와 파스타를 제외한 모든 메뉴를 만들었다. 그 외에 카운터도 봤고, 각종 사고(?)의 처리반이기도 했다.
한마디로 전천후 만능 캐릭터인 셈.
강형우는 다시 한번 지성분식을 점검하고 입구로 나갔다.
“죄송합니다. 주문 먼저 받을게요.”
***
“아오, 허리 부러질 것 같네.”
얼마나 숙였는지, 허리 근육이 욱신거렸다.
그 이유는, 대부분 추첨 때문이었다. 분명 문자 보낼 때도 오후에 한다고 했는데 많은 손님들이 계속 그걸 물어봤던 것이다.
그때마다 사과하면서 허리를 숙였더니 근육이 말랑말랑해진 것 같았다.
하여간, 오늘 대박 터지긴 했다.
점심 피크 내내 손님이 끊이질 않았고 재료 상당 부분이 소모되었다. 그래서 저녁 장사를 위해, 주방 보조로 투입된 홍성구를 다시 본점으로 보내야 했다.
“확실히 가게가 두 개니까 이런 게 좋네.”
혹시나 싶어 순이 이모한테 부탁해 놓기는 했다. 주방은 이은주에게 맡기고 어제부터 밑 준비만 우선 해달라고 말이다.
물론 2호점에서도 준비를 많이 하기는 했다.
하지만, 순이 이모와 신원이 형의 실력 차이는 명백히 존재했다. 강형우나 공지혜가 돕지 않았다면 하루치 물량을 만드는 데 종일 걸렸을 테니까.
“그나마 다행인 건, 이틀 쉰다는 거지.”
물론 강형우는 하루 전에 나와서 일을 해야 하겠지만.
“야, 나 왔다.”
“어, 왔구나.”
“그런데, 가게 분위기가 왜 이러냐?”
홍태구는 썩은 표정으로 주위를 둘러봤다.
현재 테이블 다섯 개 정도에 손님이 있었다.
나머지 공간에서 공지혜와 은선경이 쉬고 있었고, 주방 안쪽 구석에는 이강석과 이영제가 구겨져 있었다.
그나마 멀쩡한 사람은 강형우와 강신원뿐.
“손님 밀려와서 한바탕 전쟁 치렀지. 너도 일찍 왔으면 아마… 추첨 기다리는 손님들한테 쥐어 뜯겼을 거다.”
강형우의 목소리를 들었던 것일까?
안쪽에서 식사하던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손을 들었다.
“지금 추첨하는 거예요?”
“아, 좀 있다가 할 겁니다. 일단 공정하게 하려고 녹화할 거거든요.”
“그래요?”
아주머니들이 갑자기 손가락을 바쁘게 움직였다. 문자하고, 톡을 보낸다고 정신이 없었던 것이다.
강형우는 혹시나 싶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런데, 뭐 좀 물어봐도 되겠습니까?”
“예.”
“사실, 저희 가게가 작은 분식집이잖아요. 추첨한다고 해봐야 상품권 몇 개가 다인데, 생각보다 너무 많은 분들이 기대하시는 것 같더라고요.”
“아! 그게요. 호호호.”
한 아주머니가 웃자, 다들 따라 웃었다.
강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아주머니가 말했다.
“사장님이 알고 그런 줄 알았는데, 사실 이 동네가 참 심심해요.”
“예?”
“이런 게 아예 없었어요. 저희가 이 동네 팔 년 살았는데, 이런 거 한 번도 못 해봤거든요.”
아주머니들이 돌아가면서 이야기하는데,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됐다.
이 동네가 큰길에서 약간 안쪽의 주택가였다. 상가들도 적지 않게 있지만, 지금껏 어떤 식당도 이런 이벤트 같은 건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동네 사람들 입장에서 좋은 화젯거리라고나 할까?
심지어 이걸로 내기도 했고, 상품권 걸리면 자기 돈까지 걸어서 회식하겠다는 사람들도 있을 정도였다.
또, 1등 걸리면 로또 사서 주위에 뿌리겠다는 아저씨도 있단다.
“근데 형우야. 어디서 할 건데?”
“그야 카운터 앞에서… 는 안 되겠네.”
아주머니들 카오톡의 위력인지, 입구 근처에 사람들이 몰리고 있었다.
진짜 동네 사람들이 다 오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골목 앞에만 대충 서른 명 정도가 보였던 것이다.
“이렇게 된 거… 아주머니들, 한 번 뽑아보실래요?”
“어머? 우리가 해도 돼요?”
“뭐, 저나, 가게 직원들이 뽑는 것보다는 공정하지 않을까요?”
“그런데, 지금 뽑아요?”
“아, 잠시 준비 좀 해야 하니까, 식사 천천히 하셔도 돼요.”
강형우는 곧바로 가게 앞에 나갔다.
진짜 신기한 게, 가끔 다니던 차도 보이지 않고 사람들만 가득 있었다. 그런데 다들 쳐다보니 괜히 민망하기도 했고, 마음까지 조급해졌다.
강형우는 테이블을 놓고, 그 위에 영수증 통을 올렸다.
곧 홍태구가 카메라를 설치하자 아주머니들도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동시에 가게 식구들도 구경하기 위해 입구 근처로 나왔다.
“근데, 태구야. 이거 어떻게 하냐? 나 이런 거 한 번도 해본 적 없어.”
“그냥 하면 돼. 3등 누구누구, 2등 누구 이러면 돼.”
“그렇게 잘 알면 니가 좀 해주라.”
강형우는 그러면서 홍태구의 옆구리를 찔렀다.
역시나 딜이 들어왔다.
“저녁에 술 사면 OK.”
“하여간, 뭐 하나 그냥 해주는 게 없어요. 알았다. 알았다고.”
말 끝나기가 무섭게 홍태구가 폰을 꺼내더니 무슨 스피커 어플 같은 걸 실행시켰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마이크 테스트 중입니다.”
홍태구는 그렇게 말한 뒤, 얼굴이 잘 나오는지 확인하고 카메라를 플레이시켰다.
“자, 저희 지성분식을 찾아주신 손님들께 먼저 감사의 인사를 올리겠습니다.”
홍태구가 꾸벅 고개를 숙이니 황당하게도 박수가 쏟아졌다.
아니, 이게 뭐라고.
“다들 아시겠지만, 여기 지성분식은 제 친구 가게입니다. 정말 맛있어요. 제가 먹다가 배가 터져가지고 수술실만 세 번 갔습니다. 여기 보이시죠?”
그러면서 맹장 수술 자국을 가리켰다.
강형우가 보기에 재미라고는 손톱만큼도 없는데 동네 사람들이 웃어주고 있었다.
정말이지 기이한 상황.
어쨌든 각종 공사에, 행사에, 촬영까지 다닌 덕에 막힘없이 진행하고 있었다.
솔직히 홍태구의 저런 뻔뻔스러운 면은 부러웠다.
“참 많은 분들이 오셨네요. 저기 통장님도 보이고, 제가 쫓아다니던 간호사 아가씨도 계시고, 어이쿠, 우리 할머니도 오셨네요.”
썩은 개그지만, 반응은 나쁘지 않았다. 길 가던 아저씨 몇 분이 걸음을 멈춰 서서 돌아본 것이다.
“서론이 길면 재미가 없다죠? 바로 추첨하겠습니다. 먼저, 여기 동네 주민들 중에 뽑고 싶으신 분 계시면 손 한 번 들어주세요. 아, 저쪽에 노란 패딩 입으신 아가씨. 예, 이쪽으로 오세요.”
강형우는 당황해서 바로 홍태구 옆에 붙었다.
“야. 아주머니들, 아주머니들…….”
“기다려 봐. 다 생각이 있어서 그러는 거야.”
홍태구는 그렇게 말한 뒤, 패딩 아가씨를 불렀다.
“먼저 3등입니다. 무려 열 분이죠. 아가씨는 여기 영수증 넣으셨나요?”
“예.”
“뽑히면 좋겠죠? 근데 전 안 뽑혔으면 좋겠어요.”
“예?”
“제가 1등 뽑아줄라고요.”
하아, 망할 놈의 망할 개그 같으니라고.
그런데 저게 좋다고 다들 웃고 있으니, 뭐라 할 말은 없었다.
그렇게 아가씨가 석 장을 뽑고, 애들이 두 장을 뽑고 또 구경 나온 편의점 사장님이 나머지를 뽑았다.
그중 절반 정도가 가게 앞에 있었고, 나머지 걸린 사람은 문자를 보내기로 했다.
이제 2등 추첨이었다.
“2등 구두 상품권입니다. 십만 원짜리인데, 사실 이 회사 구두가 좀 비싸요. 그런데 튼튼하기는 하더라고. 저도 신고 있는데, 떨어지지 않아서 새 걸 못 사고 있습니다. 예. 딱 십 년 신었습니다.”
그 직후 아주머니가 영수증 하나를 뽑았다.
“이은희 씨, 전화번호 뒷자리는 4407.”
그 순간, 저쪽 구석에서 와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강형우가 고개를 돌려보니, 근처 사무실 아가씨가 보였다.
단골 중의 단골로 벌써 여덟 번 정도 왔다 갔었다. 걸리면 밥 사기로 하고 동료들 영수증까지 모아서 자기 이름을 써서 냈던 것이다.
사실, 날짜 지난 거 안 받아준다고 했는데 많이 아쉬워하더라. 그래서 단골이고 해서 받아줬는데 기어이 걸린 것이다.
그 직후, 아주머니가 또 2등 한 명을 뽑았다.
그런데 이름이 아주 익숙했다.
“어? 형이 거기서 왜 나와?”
홍태구가 당황해하는데, 정말이었다. 저쪽 구석에서 정덕수 형이 손을 들고 나왔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