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8
98화 휴가가 며칠이라고
김현우의 당당함에 웃음이 터졌다.
어차피 튀기는 거다?
확실히 그런 관점에서 보면 맞기는 할 거다.
탕수육은 돼지고기를, 치킨은 닭고기에 반죽을 묻혀서 튀기는 거니까.
순간 섬뜩한 기억이 머리를 스쳤다.
전에 혁기 형 때문에 아버님하고 이야기한 적이 있었다. 그러다 태성반점 주방 일을 잠시 견학(?)하게 됐는데, 정말이지 끔찍했다.
그때 실수로 탕수육 반죽을 어떻게 하나고 물었다.
아버님께서 가르쳐 줄 테니까 한 번 해보란다.
자신 있게 ‘예!’했다가 죽을 뻔했다.
감자 50개를 강판에 갈란다. 그렇게 나온 전분에 계란 섞어서 반죽을 만든다고, 곱게 갈라는 거다.
체력에 자신이 있었는데도 정말 고역이었다. 너무 힘주면 뭉개진다고, 곱게 살살 갈아야 한다고 해서 했는데 정말 팔이 빠질 뻔했던 것이다.
보통 사람이라면 한 열 개 갈면 쉬어야 할 정도의 난이도였다. 게다가 뜨거운 화구 옆이라 숨이 턱턱 막혔는데, 거기서 무려 삼십 분을 땀 뻘뻘 흘려가며 일해야 했다.
그렇게 끝낸 뒤, 조심스럽게 물었다.
삶아서 다지거나 잘라서 믹서기로 갈면 편한데, 왜 일일이 강판에 가는 거냐고.
그랬다가 커다란 쇠국자로 맞을 뻔했다.
제일 먼저, 음식에는 정성이 중요하단다.
이후 가르침을 빙자한 잔소리 설교 고문이 이어졌다. 삶으면 수분의 성질이 바뀔 가능성이 크고, 믹서를 쓰면 입자가 너무 갈린다는 것이다.
적당한 덩어리가 있어야 한다나?
그렇게 나온 전분에 밀가루와 몇 가지 가루를 섞고 계란으로 반죽 물을 만들어야 바삭한 식감이 나온다는 것이다.
물론 정말 중요한 비법은 가르쳐 주지 않았다.
어쨌든, 현우 형은 그 개고생 코스를 밟을 가능성이 컸다.
혁기 형 부탁 때문에 가르쳐 주는 거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는 법이니까.
“그럼, 일단 반죽은 오케이네요.”
강형우는 서류에 적힌 그 부분에 체크를 했다.
“이제 튀기는 건데? 어때요?”
“어, 전에 기름 이야기 했잖아. 그렇게 한 번 해보려고.”
김현우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확실히 그런 방식이라면 고객에게 신뢰감을 팍팍 심어줄 수 있을 거다.
그냥 매일 새 기름을 간다는 정도가 아니었으니까.
“좋아요. 그럼 일단 치킨 나가는 것까지는 끝났고, 이제는 양념인데…….”
두 사람은 몇 번이나 양념을 만들어봤다.
사실 치킨집의 기본이라는 매콤 달달한 양념을 만드는 건 어렵지 않았다.
그냥 고추장 한 숟갈에 고춧가루 한 숟갈, 설탕 한 숟갈이었다. 여기에 다진 마늘 팍팍 넣고, 취향에 따라 케첩을 넣으면 끝이었다.
이걸 섞어서 몽글몽글하게 끓인 뒤 식히면 된다.
아니면 갓 튀긴 치킨을 넣고 살짝 볶든가.
어쨌든 그런 식으로 몇 가지 양념을 만들어봤다. 게다가 식자재 마트에 들려 각종 소스를 회사별로 사서 테스트했는데, 역시나 예상하는 맛을 벗어나지 않았다.
“네 말대로, 그냥 시판 소스 그냥 쓰는 건 안 되겠더라. 저렴한 건 물을 섞은 맛이 나고, 비싼 건 단가가 안 맞아.”
“그렇죠. 전부 직접 만드는 건 현실적으로 무리고, 결국은 시판 소스를 베이스로 해서 맛을 추가하거나 조리해서 깊은 맛을 내는 방식으로 해야죠.”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몇 가지 방식을 끄적였다.
지성분식에서 맛간장을 만드는 것처럼 기본 육수를 첨가하는 것.
혹은 시판 양념을 약한 불에 끓여서 수분을 날리고 몇 가지 향신료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일단 이건 좀 미뤄두죠. 어차피 더 급한 건 따로 있으니까요.”
일단 치킨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은 전부 손을 봤다.
사실 처음부터 이런 방식을 선택한 건 아니었다.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에서 김현우가 고민 끝에 고른 방식이 이거였다.
닭은 1.1㎏대의 12호 중닭을 쓰기로 했다.
대부분의 프랜차이즈에서는 10호, 11호를 선호하는데 그보다는 조금 큰 편이었다.
물론 이유는 있었다.
토막을 많이 내는 옛날 방식의 후라이드 치킨이었다.
때문에 닭이 커도 익는 시간에는 큰 차이가 없었다.
그렇다고 바로 위의 13호 닭을 쓰는 것도 애매했다. 막상 튀겨서 먹어보니 육질이 조금 질겼던 것이다.
실수로 이걸 더 오래 튀기면 씹기가 어렵게 될 가능성도 컸다.
그다음은 염지였는데, 이건 쉽게 말하면 생닭에 밑간을 하는 거였다.
이게 얼마나 중요하느냐?
아예 치킨의 맛이 달라진다.
쉽게 설명하면, 그냥 고기 구워 먹는 것하고 소금에 찍어 먹는 것 정도의 차이가 난다.
김현우는 저번 같은 일을 피하기 위해 염지도 직접 하기로 결정했다.
분명 몸이 피곤하고 일은 더 많아질 거다. 또 과정도 번거로웠고 신경 쓸 일도 늘어난다.
그럼에도 그렇게 결정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일단 그냥 생닭과 염지닭은 가격 자체가 달랐다.
프랜차이즈의 경우 체인점에 납품할 때 1,000원 이상을 더 받았고, 정식 업체와 직거래하면 600~900원 정도를 추가로 지불해야 했다.
이게 백 마리면, 하루 10만 원이었다. 한 달이면 무려 300만 원 가까이가 추가로 더 나가는 것이다.
거의 사람 두세 명 쓰는 인건비와 맞먹는 셈.
물론 돈이 전부가 아니었다.
제일 중요한 기준이 바로 이것이었으니까.
“하루 딱 칠십 마리만 팔라는 거지?”
“예. 다 팔면 장사 접는 거죠. 주말에는 손님들 생각해서 백 마리는 해야겠지만요.”
강형우가 이런 제안을 한 건, 김현우의 말 때문이었다.
자신이 수년간 경험해 본 결과, 50마리 이상 튀기면 기름이 조금 변한다고 했다.
하지만 기름 양을 늘리면 70마리까지는 문제가 없단다. 그래서 신념을 지키기 위해 그렇게 결정한 것이다.
애초부터 김현우가 그랬다.
장사 잘되고 돈 많이 버는 게 목적이 아니었다.
부모님이 물려준 가게이니 안 망했으면 좋겠다. 꾸준히 장사를 계속할 수 있는 게 우선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만든 기준이 두 개였다.
치킨은 딱 한정 수량만 팔 것.
믿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할 것.
그걸 지키기 위해 이런 방식을 선택한 거다. 그리고 그 책임은 온전히 김현우에게 있었다.
강형우는 서류를 덮었다.
“이제 남은 건…….”
그렇게 말한 뒤, 가게를 천천히 돌아봤다.
음식에 대한 건 끝났지만, 그걸로만 장사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무엇보다 우리 통닭이 새로운 손님을 받기 위해선 먼저 처리해야 할 일이 있었다.
***
설 연휴는 정말 정신이 없었다.
전날에는 지성분식의 회식, 그리고 저번 연말 휴가처럼 하루는 사람 만나러 다녔다.
먼저 분석이 형네 집에 들렀는데, 정금희 누나와 남편이자 노예인 병찬이 형이 있었다.
두 형은 강형우를 팔았다.
“어, 우리끼리 사업 이야기가 있어서 말이야.”
“자, 잠시만 나갔다 올게.”
그렇게 분석이 형과 병찬이 형에게 잡혀서 끌려 나왔고, 결국 저녁까지 술 상대를 해줘야 했다.
다음 날은 설날 당일이라 집에서 지냈다.
큰마음 먹고 어머니 용돈도 백만 원이나 드렸고, 강영지한테는 상품권 두 장을 찔러줬다.
그 덕에 그날 하루는 정말 마음 편히 쉴 수 있었다. 먹고, 티비 보고, 자고, 다시 먹고, 좀 쉬다가 저녁은 외식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지었던 것이다.
다음 날도 바쁜 건 마찬가지였다.
전화를 해서 친구들 안부를 묻고, 형들에게도 인사를 했다.
그다음 강학희 아버님께도 찾아뵈었고 마지막으로 박첨기 어르신 댁에도 들렸다.
손님 많다고 요즘 지성분식에 오시지 않아서, 아예 사골 곰국을 만들어 가져간 거다.
덕분에, 임대 계약 연장은 손쉽게 해결할 수 있었다.
어쨌든 연휴는 그렇게 알차게 지나갔다.
이제 지성분식 2호점 오픈이 코앞이었다.
***
“진짜 타이밍 한번 기가 막히네.”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지성분식 2호점의 구성은 이랬다.
일단 밑 작업은 강형우와 공지혜, 강신원이 번갈아가면서 한다.
주방의 메인은 초반에는 강형우와 이강석이었고, 주말에는 홍성구가 틈틈이 왔다 갔다 하기로 했다.
그때 본점은 순이 이모와 이은주가 메인이 된다. 어차피 매출이 안정적이었고, 백창호와 정은혜도 실력이 부쩍 늘어서 크게 무리가 되는 게 없었던 것이다.
사실, 마지막에 면접 온 알바는 하루 만에 못 하겠다고 연락이 왔다.
사람 구하다 보면 흔히 겪는 일이었다. 그러니 크게 상처받을 건 없었다.
문제는 서빙 알바로 구한 한 명이 주방 보조 경력자라는 것.
강형우는 고민 끝에 본인 의사를 물어봤다.
일단, 월급 십만 원 더 줄 테니 주방 일 배워보지 않겠느냐고 말이다.
왜냐?
주방 보조 경력자는 정말 구하기 힘들었다. 거의 보름 가까이 구인광고를 냈음에도 지원자가 없었던 것이다.
실제로 많은 가게에서도 그렇게 했다.
처음에는 그냥 알바를 구한다. 그리고 서빙 일을 시키다 주방 일을 조금씩 거들게 하고, 그러면서 보조까지 겸하게 하는 것이다.
이럴 때는 보통 월급을 올려주는 게 맞았다.
그만큼 일의 난이도가 다르니까.
해서 강형우는 급하지 않지만, 주방을 먼저 채우기를 원했다.
홀 서빙 인원이 갑자기 넘쳐났으니까.
“충성. 일병 강인우.”
“일병 강정우. 정기 휴가를 명받았습니다.”
인정둥이가 씩씩하게 신고를 하자 순이 이모가 다가가 안아주었다.
“에구, 우리 둥이들 고생했어.”
“이야, 벌써 일병 휴가야? 그때 와서 몇 달이나 됐다고.”
이강석과 백창호가 투덜거리는데, 인정둥이가 주먹을 불끈 쥐었다.
“군대하고 사회하고는 시간이 다르게 흐른단다.”
“진짜 정신과 시간의 방이지. 하루가 일 년 같고, 한 달이 백 년 같거든. 전역 날짜는 보이지도 않고.”
“그런데 우리 큰형님과 지혜 누님은 어디 계시냐?”
강정우의 말에 정은혜가 손뼉을 쳤다.
“아, 연락 못 받았어? 지금 2호점에 가 있을 텐데?”
순간, 인정둥이가 굳어버렸다.
“2호점?”
“설마? 가게 하나 더 낸 거야?”
동시에 순이 이모와 이강석, 백창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정은혜는 바로 전화를 걸었다. 당연하게도 상대는 강형우였다.
“예. 오빠. 여기……”
그 순간, 인정둥이는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아무래도 불길함을 느낀 모양이었다.
하지만, 정은혜가 조금 더 빨랐다.
수화기 너머에서 들린 말은 하나였다.
“오늘 밤 노숙하기 싫으면, 빨리 튀어와라.”
***
“아휴, 귀여운 것들.”
강형우는 자랑스러운 두 동생을 쳐다봤다.
반대로 인정둥이는 똥 씹은 얼굴이었다.
“그래, 휴가가 며칠이라고?”
“옙. 팔박 구 일입니다.”
강인우의 대답에 순간 강정우가 움찔했다.
그 찰나를 놓칠 강형우가 아니었다.
“어? 나 때보다 많이 줄었네? 거의 보름 정도 나왔던 것 같은데?”
“군복무 기간이 줄어서 휴가도 그렇게 조정됐습니다.”
“오호, 그래? 그런데, 너네 포상 못 받았니?”
역시나 인정둥이는 대답하지 않았다.
하지만 잠시 눈치를 보는 사이 이마에서 땀이 삐질 나왔다.
저건 분명 식은땀이었다.
강형우는 눈치챘음에도 모른 척, 지갑을 꺼냈다.
“우리 동생들 휴가 나왔으니 푹 쉬어야지? 이 형님께서 용돈 좀 주려고 하는데…….”
“역시 우리 형님이 최고입니다.”
“감사하오. 장군.”
인정둥이가 밝게 웃으며 손을 내미는데, 강형우가 주춤했다.
“팔박 구 일이니까. 구만 원이면 되겠네? 하루 만 원씩이니까. 둘이 합치면 하루에 치킨 한 마리씩은 먹겠어?”
“예?”
“왜 팔박 구 일이라면서? 아, 내려오고 올라가는 날짜 빼면 칠만 원이면 되겠구나.”
강형우가 만 원짜리 두 장을 도로 집어넣었다.
동시에 인정둥이가 말했다.
“십일박 십이 일을 명받았습니다.”
“포상휴가 더해서 그렇게 됐습니다.”
그 직후, 인정둥이는 서로를 쳐다봤다.
강형우는 진심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군대 가면 머리가 돌이 된다더니, 이런 단순한 수작에 넘어갈 줄이야.
“사랑하는 동생들아. 감히 이 형님을 속이려 들어?”
“죄송합니다.”
“죽을죄를 지었습니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대가리 박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