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7
97화 오늘이 최종 점검
치킨 투어는 무려 오 일 동안 계속되었다.
현우 형네 집과 비슷한 형식의 동래 통닭이나, 남포동 거인통닭, 당감동 시장 통닭집도 다녀왔다.
또, 요즘 잘나간다는 체인점과 호프집, 이색적인 맛집도 가봤고 전통 강호라고 불리는 덕천동 소리 주점과 두리 치킨도 갔다.
확실히 한 동네에서 수십 년 장사한 가게들은 달랐다.
나름의 노하우가 있다고 해야 하나?
게다가 맛도 미묘한 차이가 있어, 그 특이점이 손님들을 가득 채우게 했던 것이다.
사실 강형우도 다니면서 정말 많이 놀랐다.
치킨의 길은 정말이지 넓고도 광활했다.
조사하면서 이렇게 많은 가게가 있다는 것도 충격적이었지만, 그냥 튀기는 수준을 넘어서는 조리법도 상당수가 존재했던 것이다.
저온에서 장시간 치킨을 튀기는 경우도 있었고, 이게 치킨인가 하는 것도 있었다.
부산에서 유명한 냉채족발 식으로 튀긴 치킨에 겨자 소스를 뿌려서 야채와 함께 나온단다.
여긴 진짜 궁금해서 가봤다.
지역 케이블 방송에 나왔다고 자랑하던데 진심으로 욕이 나올 정도였다. 그냥 혀를 뽑아버리고 싶을 정도로 충격적인 맛이었던 것이다.
이딴 걸 음식이라고 팔다니.
하지만 정말 맛있는 집도 많았다.
탄두리 치킨을 응용했는지 정말 인도 맛이 나는 집도 있었고, 동남아 식이라면서 얼큰한 국물에 찍어 먹는 집도 있었다.
그렇게 스무 군데 정도의 맛집을 다녀보니 확실히 개안하는 느낌이 있었다.
“끄응, 나도 생각을 바꿔야겠네.”
강형우가 김현우를 돕는 이유 중에 하나가 그거였다.
지성분식이 잘되면, 나중에 치킨집도 한 번 해보고 싶었다. 그 때문에 제대로 알아볼 생각으로 적극적으로 함께한 것이다.
다행히 치킨에 한해서는 김현우에게 배울 수 있는 게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지성분식 본점에서 2호점으로 옮겨놓은 게 있었다. 강신원이 서재로 썼던 다용도실을 개조해서 음식 개발실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여기에 집어넣은 것이다.
그건 저번에 집에 폭립을 만들어갔을 때 썼던 진공포장기와 수비드 조리기였다.
이게 강형우가 생각한 치킨 조리 도구였다.
“하지만, 너무 고퀄리티야.”
성공한 치킨집의 비결 중에 하나가 이거였다.
후딱 튀겨서, 빨리 나가는 것.
정말 장사 잘되는 집 대부분이 저 기준을 지켰다. 손님 아무리 밀려도 20분 이상 걸린 경우가 없었던 것이다.
때문에 수비드 조리법은 개선할 부분이 정말 많았다.
“이건 일단 나중에 생각하기로 하고… 급한 것부터 처리하자.”
오 일간의 치킨 투어는 그나마 있던 여유를 확 잡아먹었다.
그렇다고 마냥 논 건 아니었다.
수시로 공지혜와 통화를 하면서 진행 사항을 확인했고, 알바도 여유롭게 두 명이나 뽑았다.
마지막 한 명은 내일 면접 볼 계획이니 우선적으로 사람 충당은 거의 끝난 셈.
전단지는 설 연휴 지나고 뿌릴 생각이었고, 홈페이지는 홍태구한테 맡긴 상황이었다. 그리고 그 외 자잘한 일들도 어느 정도 마무리 수준이었다.
강형우는 달력을 쳐다봤다.
벌써 2월 4일이었다.
내일 마지막 면접을 보고, 8일 날 전부 불러서 기본 교육을 한 뒤 설 연휴를 보낼 예정이었다.
이후, 이틀간 장사 시뮬레이션을 하고 14일 날 오픈.
그런 뒤 쉬는 일요일에 최종 점검을 끝낼 거다.
이게 지성분식 2호점의 기본 라인이었다.
하지만 그전에 마무리 지을 일이 하나 있었다.
“이제 남은 건 쓴소리인가?”
***
“일단 두 마리 통닭은 버려요.”
“뭐?”
“버리라고요. 저건 안 돼요.”
강형우는 진심이었다.
그걸 알기에 김현우는 반박하지 못했다. 단지 이유가 궁금할 뿐.
“왜?”
“일단 닭이 작아요. 일인 일닭 수준도 못 되거든요. 솔직히 제가 작정하고 먹으면 네 마리도 먹겠어요.”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김현우가 튀겨온 통닭 두 마리를 해체하기 시작했다.
정말 뼈를 다 발라내고, 살만 남기니까 딱 한 손에 들어왔다. 한 마리에서 정말 그 정도 양밖에 안 나왔던 것이다.
“이게 실제 양인데, 좀 두꺼운 치킨 버거 패티 정도밖에 안 되잖아요. 삼계탕이 들어가는 영계도 이거보다 많을 것 같은데요?”
“그건…….”
김현우도 알고 있었다. 알지만 애써 외면했던 진실이었고, 이게 현실이기도 했다.
“형이 무슨 심정으로 이걸 택한 건지는 알죠. 손님이 없으니 싸고 양 많은 걸로 끌어들이자 해서 한 거니까요. 하지만 이건 사람 몸이 죽어 나가는 방식이죠.”
“맞아. 타산을 맞추려면 하루 백 마리는 나가야 본전이니까.”
“예. 그래서 이 방식을 버리자는 거죠. 그리고, 생닭 납품 업자부터 바꿔요.”
“뭐?”
“제가 알아봤는데, 완전 쌩양아치더라고요.”
강형우는, 평석이 형에게 약간의 정보료(?)를 줬다. 삼겹살에 소주를 배 터지게 먹인 뒤, 알아봐 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역시 업자끼리는 정보 교류가 있었다.
덕분에 강형우의 의심 하나가 해결되었다.
“냉장 닭이 아니라는 거죠. 정확히 말하면 생닭 박스 중간에는 일부 냉동이에요.”
“설마? 나도 다 확인해 봤는데?”
김현우는 절대 아니라는 듯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냉장고 문을 열고 노란 플라스틱 통을 꺼냈다. 거기에는 한 마리씩 비닐 포장이 되어 있었는데 그냥 봐서는 모를 정도로 다 비슷했다.
강형우는 가위를 들고 비닐을 잘라 버렸다.
“사실 위생상 이렇게 하면 안 되는데.”
장갑을 벗고 맨손으로 생닭을 주물렀다. 그런데 만지는 방식이 조금 달랐다. 감싸듯이 쥐고 손가락을 안쪽으로 넣어 뼈를 만진 것이다.
“겉으로는 차갑죠. 일단 냉장 닭이니까요. 하지만 이렇게 확인해 보면 알 수 있어요.”
강형우가 가르쳐주자 김현우도 따라 했다. 그러자 검지와 중지에 뭔가가 걸렸다.
“설마, 얼음?”
“예. 원래 냉동 닭을 냉장실에 넣어놓으면 육질 손실이 적게 해동이 가능하긴 해요. 물론 크기와 냉장실 온도에 다르지만 평균 여섯 시간 이상 걸려요.”
“그렇기는 하지.”
“게다가 비닐 포장에, 박스 중간에 있는 건 더욱 더디고요.”
“흐음.”
김현우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그때 강형우가 정곡을 찔렀다.
“솔직히 형. 맨손으로 생닭 만져서 확인한 적 없죠?”
“그건 위생상 하면 안 되지.”
“그건 변명이고요.”
순간 김현우가 움찔거렸다.
하지만 강형우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위생상 하면 안 되는 건 맞아요. 하지만, 그 위생을 확인하는 것도 사장 책임이라고요. 형이 파는 물건인데 뼈 속에 이렇게 채 녹지 못한 살얼음이 있는데, 이걸 냉장 닭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어요?”
“미안, 몰랐어.”
“형이 전에 그랬죠? 지금까지 튀긴 닭들한테 미안하다고요. 그런데 이건 손님들한테 미안해해야 하는 거예요.”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커다란 칼로 생닭을 반 토막 내버렸다.
“여기 보이죠? 핏물 고인 거? 이게 왜 생겼다고 생각해요?”
“제대로 제거가 안 돼서?”
“예. 형이 봤을 때 이게 위생에 좋아요? 아니면 이렇게 하는 게 더 좋아요?”
강형우는 싱크대 수도꼭지를 돌려서 생닭의 안쪽 뼈 부분을 씻어버렸다.
“어? 그렇게 박박 문지르면 염지가 빠지는데?”
“아뇨, 빠르게 솔질하면 상관없어요. 그리고 형이 착각하고 있는데요. 업자는 형 편이 아니에요.”
“뭐?”
“그 사람은 돈 벌려고 하는 거지. 형 장사 잘되라고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요.”
강형우는 그렇게 말한 뒤, 한숨을 내쉬었다.
지금 김현우는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두 마리 통닭.
그걸 시작해서 초반에는 돈을 많이 벌기는 했다. 그랬기에 많이 믿고 의지했던 모양이었다.
하지만 업자는 업자였다.
“이제 진정이 좀 돼요?”
“어, 고맙다.”
김현우는 믹스 커피 두 잔과 담배 세 개비를 날린 끝에 겨우 안정감을 얻었다.
그사이 강형우는 자신이 들은 바를 알려주었다.
냉장육 업자가 판로가 끊겼다.
온도 조절 잘해도 최대 보관 기간은 일주일에서 열흘 정도였다. 그 기간이 지나면 폐기를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유통 기한 이후에도 섭취해도 상관은 없었다. 병원에 안 갈 자신이 있다면 말이다.
어쨌든 여기서 업자들은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한다.
폐기냐, 아니면 냉동이냐.
그리고 상당수가 냉동을 선택한단다.
오해는 마라. 냉동이 나쁘다는 건 아니다.
중요한 건, 냉동이라고 명확히 알리고 팔아야 한다는 거다. 냉장육이라 속이는 건, 식품위생법상 엄연한 불법인 셈이었으니까.
“그 업자가 한 방식은 이래요. 주문이 들어오면 염지제를 물에 타서 거기에 생닭을 넣어요. 그리고 밀봉한 다음 하루 정도 냉장실에 넣어놓죠.”
이건 어디서나 하는 방식이었다.
문제는 냉장 닭이 아닌 냉동 닭이라는 것!
그러다 보니 안쪽의 뼈 부분 온도가 유달리 낮았고, 거기에 붙은 염지액의 일부가 얼어버리는 것이다.
물론 하루 정도 냉장실에 넣으니 해동이 되기는 한다.
하지만 이렇게 일부가 완전히 해동이 안 되는 경우도 존재하긴 했다.
“업자마다 방식이 다르긴 해요. 염지액을 쓰거나, 가루 파우더 방식으로 하거나. 아니면 수조에 담가서 하거나. 솔직히 말하면 저도 다 아는 건 아니거든요.”
그러면서 설명을 이어나갔다.
실제로 대부분의 업체들은 자신들만의 노하우를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법을 제대로 지켰고, 위생법에 맞게 염지를 해서 납품했다.
하지만 이 업자는 아니었다.
“아마 정식으로 허가받은 게 아닐 거예요. 어디서 들은 방식으로 하는 건데 그래서 싸게 납품하는 거죠.”
“솔직히 나도 그 부분을 의심하기는 했어. 다른 도매상보다 마리당 이백 원 정도가 싸더라고.”
“그런데 받았어요?”
“대량 주문이라고 해서 싸게 넣는 거래.”
틀린 말은 아니니 속을 만도 했다.
하지만, 음식을 파는 것이니만큼 철저한 확인은 필수였다.
강형우는 김현우를 위로했다.
“형, 우리 일단 닭부터 바꿔요. 돈 더 주더라도 기왕이면, 좋은 걸로 하자고요.”
***
“형, 오늘이 최종 점검이에요.”
강형우가 굳은 표정으로 말하자, 김현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알아.”
결의가 너무 강렬해서 생닭도 눈빛으로 튀길 정도였다.
하지만, 의지만 가지고 다 되면 세상 안 되는 게 뭐가 있겠는가?
강형우는 일단 한 뭉치의 서류를 펼쳤다.
“다시 말하지만, 제가 팔 릴만한 통닭을 만들어주는 게 아니에요. 제 포지션은 가이드에 조언자 정도라고요.”
“그 정도만 해줘도 돼.”
이건 미리 못 박은 내용이었다.
좋게 포장하면 푸드 컨설팅이었다. 나쁘게 말하면 잔소리꾼이고.
어쨌든, 오백만 원 받기로 하고 장사 자체를 평가해 주는 일이었다. 개선점을 찾고, 방법을 조언해 주고, 잘못된 걸 고치게 하는 게 포인트였다.
특히 중요한 건 이거였다.
결국 스스로 헤쳐 나갈 사람은 현우 형 본인이라는 것!
이걸 철저하게 인식시켜야 했다.
그 결과 김현우의 의지는 활활 타오르고 있었다.
“일단 처음부터 이야기하자.”
“예. 업자는 바꿨죠?”
“어. 확실하게 이야기했어. 그리고 이번에 받기로 한 곳은 직접 가서 창고까지 가서 확인 다 했다.”
자신 있게 말하니 강형우도 안심이 됐다.
“그럼 우선 재료는 패스. 그다음은 염지인데, 형 정말 제대로 할 수 있죠?”
“어. 해보니까 그렇게 어렵지 않더라. 그리고 설 연휴 지나서 공장에 한 번 가보기로 했어.”
사실, 쉽게 보면 정말 쉽기는 했다.
예전 같았으면 노하우니 비밀이니 하면서 알려주지 않겠지만, 요즘은 인터넷 보면 염지제를 파는 업체들이 적지 않게 나온다.
거기 방식대로 그대로 하면 얼추 비슷하게는 된다.
하지만, 장사하는 사람이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정말 원리부터 제대로 파악하고 배워서 해야 하는 것이다.
그래야 맛의 균일화가 가능했다.
그런 강형우의 조언에 김현우도 많이 알아봤다. 해서 몇몇 공장에 문의를 했고, 의외로 친절하게 방문 허락까지 받았다.
하긴, 미래의 고객이니 그 정도 서비스는 하겠지.
“자! 그럼 재료, 염지, 이제 남은 건 반죽인데요.”
그 말에 김현우는 씨익 웃었다.
“설 연휴 끝나면 혁기네 가게에서 배우기로 했어. 아버님께서 탕수육 반죽을 제대로 알려주겠데.”
“엥? 탕수육하고 치킨은 다르잖아요?”
강형우가 의아해하는데, 김현우는 오히려 당당하게 말했다.
“어차피 튀기는 건 똑같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