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6
96화 자괴감이 들어요
부산 최초의 후라이드 치킨!
언제부터인가, 기름이 저렴하게 공급되면서 닭을 튀겨 먹는 문화가 생겼다고 했다.
그에 맞게 제일 먼저 변화한 집들이 시장 통닭집이었다.
원래 상당수가 생닭을 그냥 팔거나, 그걸 백숙이나 삼계탕으로 팔았다. 그러다 수요가 생기면서 튀겼는데, 그게 통닭집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어쨌든 1977년도에, 첫 치킨 체인점이 생겼는데 그게 림스 치킨이였다.
그 프랜차이즈 부산 1호점이 온천장에 있었다. 부산시청 역점이 1호라고 하는 사람도 있기는 했지만, 대부분 여기를 최초로 봤던 것이다.
사실 정확한 건 강형우가 태어나기 전이니 알 방법이 없었다. 인터넷 조사조차 중구난방일 정도고, 자료도 거의 정확한 게 없었으니까.
“여기야?”
김현우는 버스에서 내리면서 조금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고작 왕복 2차선의 일방통행 도로였다. 거기서 금강공원으로 가는 길 모서리에 작은 가게가 있었다.
“헐, 진짜 오래됐네.”
현우 형이 놀랄 만도 했다. 간판은 바꿨지만, 유리창 쪽은 달랐다. 거의 80년대 영화에서나 보일 듯한 네온사인 글자들이 보였던 것이다.
“형, 여기는 저도 모르는 가게거든요. 그냥 먹고 나올 거니까 그렇게만 알아요.”
“어, 알았어.”
현우 형이 주눅이 들 만도 했다.
고작 10여 분 동안 택시 타고 오면서, 강형우는 많은 이야기를 꺼냈다.
사실 장전동 치킨집 사장님께선 물어보는 것만 가르쳐 주셨다. 그것도 전부가 아니라 일부, 아는 사람은 다 알 만한 것만 일러주신 거다.
일종의 시험이라고나 할까?
강 실장님이 보낸 사람이니 그 정도는 알겠지 하는 게 보였던 것이다.
다만 현우 형을 대하는 게 남달랐다.
사장님은 먼저 어디서 장사하냐 물었고, 어떤 식으로 조리하느냐를 궁금해했다.
이 형은 참 호구라는 별명에 맞게 다 말해 버렸다.
뭐, 들어봐야 대단할 건 없지만 그 직후 사장님의 눈빛이 많이 부드러워진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어쨌든 강형우는 단순한 조리법에서도 많은 걸 찾아냈다.
역시 공부하고 아는 만큼 보인다고나 할까?
압력솥에서 12분을 튀기는데 그래서 속살까지 촉촉했다. 열기와 압력이 빠져나가지 못해, 두꺼운 살 안쪽까지 침투한 것이다.
깨물자마자 뜨거운 육즙이 폭발하는 것도 그래서였다.
무엇보다 첫 집의 장점은 진한 카레 향이었다. 후라이드 치킨의 기름 느끼한 걸 잡아주었고, 식욕이 당길 만큼 자극적이었으니까.
당연히 반죽에 비밀이 있겠지만, 그것까지는 알려주지 않았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자잘한 게 있었다.
깨끗한 기름을 쓴다는 것, 열이 오르면 중간에 불 조절을 하는 것도 있었고 샐러드 양배추를 두껍게 썰어서 식감을 살리는 것 같은 거 말이다.
그런 이야기를 해주자, 그제야 현우 형도 그런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래서 구박을 했다.
공부하러 갔는데 맛에만 빠져서 정작 중요한 건 거의 다 놓쳤던 거다.
“그냥 맛만 보지 말고, 좀 여러 가지를 봐요. 튀기는 방식이나 내오는 거, 손님들이 어떻게 먹느냐도 보고요.”
“아, 알았어.”
“하나에서 열까지가 아니라, 형이 들어갔다 나올 때까지 모든 걸 기억하려고 해요. 그 정도는 되어야 돈이 안 아깝죠.”
당연하게도 모든 비용은 김현우가 낸다. 그러니 지불한 것 이상의 뭔가를 얻어가야 하는 것이다.
그렇게 단단히 주의를 주자 김현우는 더욱 쪼그라들었다.
피식 웃은 강형우는, 김현우의 등을 팡팡 두드렸다.
“형, 기죽지 마요. 배우는 처지고 이제부터 시작하는 거라 생각하면 되죠.”
“그래. 말이라도 고맙다.”
김현우는 장난처럼 말하고는 가게에 입성했다.
둘은 주방이 보이는 쪽에 자리를 잡았다.
“오리지널 한 마리요.”
그렇게 주문을 하자 김현우가 속삭였다.
“왜? 양념은 안 시켜?”
“먹어보면 알 거예요. 의미가 없음.”
“그래?”
김현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지만 나온 걸 보니 이해하는 듯했다.
진짜 접시 하나에 주먹 크기만 한 네 덩어리가 나왔다. 몸통 두 조각, 다리 두 조각 이렇게 한 마리가 나온 것이다.
“생각보다 좀 작은 것 같은데?”
“그렇지도 않아요. 여긴 반죽을 입히는 게 아니라 가루 파우더를 쓰거든요. 튀김옷이 없어서 그렇게 보일 뿐, 실제로는 양 많아요.”
강형우는 그걸 증명이라도 하듯 집게와 포크로 가슴살을 뜯었다.
정말이지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살덩어리 하나가 툭 나왔다. 그러고도 덩어리는 여전해 생각보다 먹을 게 많음을 증명하고 있었다.
“일단 그냥 먹어보고, 다음에 소금 후추에 찍어서 먹어봐요.”
그렇게 가이드를 주자 김현우가 살을 뜯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몸통 한 조각을 흡입한 뒤, 처음으로 평가가 나왔다.
“이거, 의외로 촉촉하네? 부드럽다고 해야 할까? 아까 갔던 가게…….”
“스톱.”
“왜?”
“기본 매너죠. 치킨집에서 다른 치킨집 이야기는 금지. 그리고 맛 평가도 나중에.”
잠시 멈칫한 김현우도 곧 고개를 끄덕였다.
이후 두 사람은 맛있다는 이야기만 하고, 가게를 나왔다. 그런 뒤 공원 쪽 길로 올라가 재떨이 앞에서 담배를 물었다.
“어때요?”
“솔직히 예상 밖이었어.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부드럽고 촉촉하더라고. 분명히 바짝 튀겼는데 전혀 딱딱하지 않고, 마치 육즙 가득한 군만두 느낌?”
“오올, 형한테서 그런 평가가 나오다니.”
강형우가 웃는데, 반대로 김현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진짜 한숨으로 땅을 꺼뜨릴 정도로 심하게 자책한 것이다.
“그동안 내가 튀긴 치킨한테 미안해질 정도야. 솔직히, 지금까지 뭐 한 건지 모르겠네.”
“왜요? 자괴감이 들어요?”
“어. 정말… 수준 차이가 확 느껴지네.”
김현우는 진짜 자신감과 멘탈이 박살 난 것처럼 보였다.
하긴, 이 두 가게의 퀄리티는 부산에서도 톱급이었으니 괴로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현실을 빨리 파악하는 게 중요했다.
***
“후우, 괴롭다.”
김현우가 한숨을 내쉬는 사이, 택시는 집 앞에 도착했다.
이건 강형우의 선택이었다.
술집에서 대화하면 다 까먹을 수 있으니, 우선 집으로 가자고 했다. 간단하게 마시면서 메모를 하고 정리를 끝낸 다음에 본격적으로 한잔하기로 것이다.
그래서 맥주 여섯 캔만 사 가지고 집 안으로 들어섰다.
역시나 혼자 사는 남자 집이라 썰렁했다.
“작은 방으로 가.”
김현우는 그렇게 말하고는 잠시 안방에 들어갔다 나왔다.
얼핏 문 사이로 보니 아직 어머니 짐 정리를 안 한 것 같았다. 기저귀 박스와 걷기 보조기구가 있었고, 화장대 위에 수많은 약통들이 보였던 것이다.
강형우는 모른 척 작은 방에 들어가 밥상을 펼쳤다. 그리고 거기에 노트북을 올린 뒤 부팅을 했다.
잠시 후, 김현우가 김과 오징어를 가져왔다.
“형, 한잔해요.”
“좋지.”
맥주는 아직 시원했다. 둘은 크게 한 모금 한 뒤 끄어억 하고 신나게 트림을 했다.
“일단 메모 준비하고요. 첫 집 어땠어요?”
“확실히 카레 향이 인상적이었어. 양념은 평범했지만, 압력솥에 튀긴 게 특히 대단했지.”
그렇게 장전동 치킨집에 대해 한 십여 분을 이야기했다. 그러다 두 번째 치킨집으로 넘어갔다.
“그 집은 두 번 튀기더라고요. 일단 백육십 도 정도의 낮은 온도에서 한 번, 백팔십 도 이상에서 한 번.”
강형우의 말에 김현우는 화들짝 놀랐다.
“그걸? 봤어?”
“예. 제 쪽에서 딱 보이던데요? 튀김기도 두 대고, 온도도 표시되어 있더라고요.”
“그럼 시간은?”
“한 팔구 분 정도? 그랬다가 다시 고온에 확 튀겨서 나오더라고요. 아마 껍질이 바삭한 게 그래서 같아요.”
김현우는 고개를 끄덕인 뒤, 또다시 메모를 했다.
반죽물 대신 가루 파우더가 비결이었다.
그 때문에 튀김옷이 거의 없어서 양은 적어 보였지만 대신 특유의 식감이 살아 있었다. 껍질은 바삭했고, 그 부위의 살들은 쫄깃했으며 안쪽 속살은 촉촉했던 것이다.
“마지막 집은 어땠어요?”
“그게… 참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네. 확실히 예전 우리 가게하고 비슷하기는 한데, 다르더라.”
김현우는 정말 솔직하게 감상평을 내놨다.
맞다.
마지막 집은 거제리 시장 통닭 중에서 두 번째로 유명한 집이었다. 첫 번째로 유명한 집은 장사가 너무 잘돼서 맛이 변했다는 말이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게 사실이었다.
강형우가 먹어봤는데, 예전 그 맛이 아니었다. 뭔가 좋게 개량하려고 한 건 알겠는데 느낌이 전보다 못했던 것이다.
해서 두 번째 집에 갔는데 여기가 거의 원조의 맛에 가까웠다.
닭 한 마리를 수십 조각을 내고, 무식하게 두꺼운 튀김옷을 입힌다. 이걸 쇠 소쿠리에 담아 바싹하게 튀기는데, 토막을 많이 쳐서인지 속까지 금방 익었다.
강형우가 기억하기로 주문하고 15분 만에 나왔다. 그러니 실제로 튀기는 시간은 그 이하일 터.
무엇보다 이 집을 마지막에 넣은 가장 중요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우리 통닭의 원조 가게였으니까.
“솔직히 아버지가 할 때는 기억이 잘 안 나. 그냥 기름 맛이 강했던 것 같거든. 고소한 게 참기름 냄새도 났던 것 같았어.”
“형, 그건 아니에요. 제가 알아봤는데, 참기름에 치킨 튀기면 단가가 안 맞아요. 일본처럼 튀김 한 접시 몇만 원 하는 가게나 참기름 쓰지, 한국에는 없어요.”
강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맥주 캔을 들었다.
“참기름 이만큼에 돈 만 원이고, 들기름은 더 비싸죠. 그리고 예전 기름보다 지금 기름이 더 잘 나와요.”
“아, 맞다. 그런데 모 체인점에서 올리브유 쓴다는데, 그게 정말 좋나?”
“그야 모르죠. 사실 몇 번 시켜먹어 보긴 했는데, 일반 소비자가 느끼는 차이는 거의 없어요. 그냥 심리적으로나 좋다 뿐이지. 아! 딱 하나, 돈 더 비싸게 받아 처먹는다… 정도?”
나름 서민적인 평가에 김현우도 피식 웃었다.
“어쨌든, 기름은 지금처럼 써요. 매일 새 기름으로 갈 것.”
“그렇게는 했지. 사실 이건 비밀인데…….”
경험상, 치킨은 50마리 정도 튀기면 기름이 조금씩 변한다고 했다. 이걸 버리고 새 걸 써야 하는데, 실제로는 그렇게 안 한다는 것이다.
장사가 어느 정도 되어서 매출이 올라와야 그게 가능하다나?
그래도 자신은 나름 양심적이라며 하루 세 번이나 갈았다고 했다. 그 이상이 되면 기름 냄새 때문에 치킨에서 요상한 냄새가 난다는 거다.
“그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 일단 후라이드 색이 짙게 변하고, 왜 군밤에서 나는 탄 냄새 같은 게 나거든.”
“오올, 역시 치킨집 사장님.”
“사실, 닭 상태가 좋아도 기름이 안 좋으면 망이야. 실제로 시장 통닭집들은… 아니, 아니다.”
“왜요? 우리 둘밖에 없는데.”
강형우가 그렇게 말하면서 맥주 캔을 들었다.
또 다시 시원하게 한 모금 한 뒤, 김현우가 말했다.
“그게 비결이라면서, 전날 썼던 기름을 또 써.”
“에앵? 그게 무슨…….”
“그러니까 하 루종일 치킨 튀긴 기름 있잖아. 원래 버려야 하는 건데, 그거 반에 새 기름 반을 섞어서 장사하는 거지.”
그냥 새 기름은 깨끗하긴 한데, 치킨 맛이 달라진다. 게다가 어제 튀겼기 때문에 치킨 맛이 기름에 남아 있다. 그걸로 튀겨야 더 맛이 좋다는 것이다.
일부 사장들이 이렇게 말한다고 하는데…….
“전부 개소리지!”
“그래요?”
“어. 결론은 하나야. 기름값 아끼려는 수작일 뿐.”
호구 형이 이렇게 단호하게 말할 정도면, 정말 그게 맞는 거겠지 싶었다.
그러면서 가장 악질적인 집은 기름에 산화방지제 종류로 나온 식품 첨가물을 뿌린다고 했다.
그걸 거르면 찌꺼기 같은 걸 잡아서 시커먼 기름 색을 투명하게 해준다나?
거의 사기에 고객 기만 수준이었다.
“헐, 심하네.”
“보통 장사 안 되는 집에서 그런 걸 많이 하지. 어쨌든, 마지막 시장 통닭집은 그래도 기름 좋은 거 쓰는 것 같더라. 일단 후라이드 색부터가 선명한 노란색에 전체가 균일했거든.”
“그건 그랬죠.”
“오래된 기름 같은 경우 탄 찌꺼기 같은 게 조금씩 묻어나오거든.”
김현우는 그렇게 이야기하다가, 뭔가를 떠올린 모양이었다. 갑자기 워드 화면을 띄우고 마구 타이핑하기 시작한 것이다.
강형우가 보니, 의외로 좋은 아이디어 같았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 다시 장사 시작할 수는 없는 노릇.
무엇보다 김현우에게 필요한 건, 쓴소리였다. 정말 바닥까지 떨어지고 처절하게 깨져야 새로 일어설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