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86화 (86/251)

# 86

86화 반갑습니다

“아오! 진짜 바빠 죽겠다.”

아주 죽는 소리를 하는데, 확실히 신기하기는 했다.

강주혁은 놀랍게도 정장 차림이었다.

그레이 톤의 세미 핏 정장에 파란색 넥타이를 매고 있었는데, 그게 묘하게도 잘 어울려 보였다.

“무슨 일 있었어요?”

“일 때문에 대전 출장 갔다 왔다. 목마르다. 빨리 주문부터 하자.”

술집에 들어왔으면 안주부터 시키는 게 예의란다.

강형우는 나름 적당한 메뉴를 골랐다. 닭똥집 튀김에 골뱅이 소면이었다.

곧바로 맥주 오백과 소주 한 병이 나왔다.

강주혁은 뭐가 그리 답답한지, 오백 한 잔을 한 모금 마시더니 소주를 까서 다시 채워 버렸다. 무려 소주 반병이나 말이다.

“형, 시작부터 과한데요?”

“괜찮아. 우리가 소주 한두 병 마시냐?”

“그야 그렇지만.”

“답답해서 그런다. 하여간 대기업 새끼들이 문제야. 거래를 하려는 게 아니라 무조건 공짜로 가져갈 생각만 하니…….”

사신 푸드라고 유명한 회사가 있었다. 업무 제휴로 개발 중인 즉석식품에 필요한 세 가지 중식 소스를 스프 형태로 납품하기로 했다는 것이다.

탕수, 깐풍, 칠리 이걸 만들어서 세 번이나 가져갔는데 결과는 알려주지 않고 시간만 끌었다.

해서 알아보니, 기껏 만들어간 소스를 개발 팀에서 분석하고 있었단다.

“아오! 씹새들.”

“형, 그거 고소해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게… 참 법이 더럽더라. 정식 출시도 아니고 상표 등록도 안 되어 있어. 거기다 중식 소스의 경우 범용성이 인정돼서 특별한 게 없으면 특허 내기도 어렵다더라고.”

문제는 그 특별한 걸 공개할 수 없다는 점이었다. 육수를 우리고, 양념 비율을 맞추고, 여러 향신료의 종류까지 맞춰서 신청해야 했다.

그 순간 돈 맛을 본 인간들이 벌 떼같이 달려들어 카피한단다.

“씨발. 개새끼들 같으니라고. 대기업 좆 까라 그래. 새끼들이 아주 날강도야. 날강도.”

강주혁은 또다시 오백 한 잔을 시원하게 들이켰다.

“근데, 형. 소스 만든 거 액상으로 주잖아요. 그게 카피가 가능해요?”

“못할 건 또 뭐야? 사 년제 대학 나와서 외국 유학까지 갔다 온 놈들 천지인데 못하면 병신이지.”

분석하면 어지간한 건 다 카피가 된단다.

단지 비용이 문제인데, 투자하는 만큼 벌어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결정된다나?

실제 대기업들이 내놓은 제품의 상당수가 하청업체 아이디어를 빼서 만든 거란다.

어쨌든, 그런 쪽 이야기를 듣는데 그놈들 붙잡아다 놓고 믹서기로 갈아버리고 싶었다. 그냥 날로 먹는 표본이 거기 다 있었던 것이다.

공무원들 보다 더한 놈들이라나.

“그래서 어떻게 하기로 했는데요?”

“그냥그냥 안 하기로 했어. 열받아서 살짝 손만 봐주고 나왔지.”

소소하게 회의실 테이블 하나를 못 쓰게 만들었다. 커피 잔 내려놨더니 알아서 깨지더란다.

당황해서 물러서는 척하면서 의자에 힘을 줬는데 알아서 뭉개졌다나?

오히려 아프다고 엄살 부려서 피해 보상금까지 내라 했단다.

그게 오늘 술값이었다.

“시키신 닭똥집 튀김과 골뱅이 소면 나왔습니다.”

안주가 나오자마자 강주혁이 손을 들었다.

“똥집 튀김은 나왔을 때 바로 먹어야 돼.”

“그렇죠. 요즘에는 이만한 맥주 안주가 없어요.”

단돈 칠천 원짜리 한 접시지만, 갓 튀긴 똥집은 몇만 원짜리 치킨이 부럽지가 않았다.

둘은 똥집을 몰살시키면서 순식간에 오백 한 잔을 비우고 추가로 맥주를 시켰다.

“형우야. 그건 그렇고. 정말 미안하다.”

“예? 뭐가요?”

“은주 걔 말이야.”

아! 애초에 그것 때문에 술자리 하자는 거였지?

“형, 그래. 진짜 걔 뭐예요? 확실히 일은 잘하기는 잘하는데, 우리 가게 있을 사람이 아닌 것 같더라고요.”

솔직히, 까마귀 노는 곳에 백로 우두머리가 온 듯한 느낌이랄까?

지성분식은 현재 밑준비가 끝나면 조리 과정의 70%가 끝이었다. 그걸 그냥 튀기거나 볶거나 해서 나가면 되는 시스템인 것이다.

그건 최대한 편하게 조리하기 위해서 노력한 결과였다.

놀랍게도 이은주는 불과 이틀 만에 나머지 30%를 완벽하게 습득해 버렸다.

하지만 요령이 좋은 건지, 경험 때문인지 절대 그 이상은 파고들지 않았다.

거의 자기 할 일만 우선적으로 끝내고 다른 사람들을 돕는 걸로 자신의 포지션을 정한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건 사실이죠. 무엇보다 강석이하고 창호 실력이 쑥쑥 늘고 있어요.”

특히, 괄목적인 성과는 정은혜였다.

요즘이야 김밥 자르다 손 다치는 일은 없었지만, 칼질이 부쩍 능숙해졌다.

이전까지는 겁먹고 조심하던 스타일이었다면, 이젠 자신감이 붙었다고나 할까?

덕분에 기본기가 부족했던 아이들이 실력이 부쩍 좋아지고 있었다. 게다가 손님 오기 전에 준비하는 시간이 부쩍 줄어 식사도 편해졌다.

강형우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걔, 주방 경력만 십 년이야.”

“예? 십 년이요? 이제… 겨우 스물여섯인데요?”

“그러니까 영재 교육받은 애라는 거지.”

들어보니 아버지가 원래는 중식 요리사였다. 일 도우면서 기초부터 배웠다가, 고등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격증 따기 전에는 견습으로 보조만 하다가 스물한 살 때부터 본격적으로 팬을 잡았단다.

“헐, 대단하네요. 그런데 그런 애가 왜 우리 가게에 온 거죠? 이해가 안 되는데?”

“그게, 술자리에서 네 이야기를 한 적이 있거든. 커험.”

몇 번이나 헛기침을 하는 걸 보니, 좋은 이야기는 아니었나 보다.

“뭐라고 했는데요?”

“그게… 꽤 꼼꼼하고 섬세하다고 했거든.”

“형, 그 사이에 무슨 말이 빠진 것 같은데요?”

“그러니까, 애가 좀 선머슴 같은 타입이라서 음식을 거칠게 하거든. 아무래도 우락부락한 남자들 사이에서 큰 것도 있고…….”

이 형 참 너무하네.

말하기 어려운 척하면서도 전부 말하는데, 이게 욕인지 칭찬인지 구별이 가지 않았다.

원래 주혁 형이 하는 모임이 있었다. 두루 컴퍼니 초창기 멤버를 주축으로 하는 건데, 그중에서도 2세들끼리의 모임이 있다는 것이다.

거의 일 년에 서너 번 하는데 오다가다 내 이야기를 몇 번 했다는 것이다.

생긴 건 드라마에 나오는 임꺽정인데, 의외로 꼼꼼하고 섬세하고, 남자치고는 야무지다고 했다.

그 말에 몇몇 멤버들이 이은주를 놀려댔고 거기에 발끈했다나?

그러던 차에 사건이 터졌다.

“그러니까, 정략결혼?”

“따지면 비슷한 거지. 앙숙이라 자주 만나다가 정이 들었다고나 할까?”

황룡 체인 중에서 가장 라이벌 의식을 느끼는 두 가게가 있었다.

바로 서면의 태화점과 롯데점이었다.

두 가게는 큰 도로를 두고 서로 다른 상권에 있었는데 지역 특성상 매출 가지고 수시로 싸움을 했다.

특히 태화점이 PC방을 차리면 롯데 점주가 따라 했고, 또 영업하던 건물을 매입하니 그것도 똑같이 했다.

심지어 제대로 한 끼 체인조차 동시에 시작했단다.

그러다 어느 순간 의기투합을 하더니 형 동생 하다 서로 사돈 하자는 말까지 나왔다.

마침 태화점 사장한테는 아들 하나 딸이 둘이었는데, 롯데점 사장 외동아들하고 나이가 맞았다는 것이다.

“헐, 세상이 어떤 세상인데… 무슨 선보는 것도 아니고……”

“그러게. 하여간 은주가 그게 싫어서 가출한 거야. 그러다 너 이야기 생각났는지 나한테 묻더라고. 혹시 거기 사람 구하냐고.”

이게 우연인지 인연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내 입장에서는 도움이 되는 건 사실이었고, 과분한 인재를 얻은 셈이니까.

강주혁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하여간 엄한 데로 도망가서 연락 안 되는 것보다는 낫거든. 그러니까 당분간 부탁 좀 하자.”

“일단은 뭐, 그렇게 하죠.”

“근데 조심해라.”

“왜요?”

주혁 형의 표정이 갑자기 심각해졌다.

“은주 아버지 무서운 사람이다. 괜히 찝쩍거리거나 실수로 사고라도 치면… 니 몸에 중식도가 박힐지도 몰라.”

***

“흐음, 로미오와 줄리엣인가?”

생각해 보니 그건 아닌 것 같았다.

처음에는 원수로 시작했지만, 어쨌든 두 가문(?)은 지금 잘되고 있었다. 그러니 자식끼리 결혼시키자는 이야기까지 나왔겠지.

문제는, 그 상대가 틀렸다는 거다.

주혁 형이 말하길, 은주 동생 은희하고 그 남자가 부모님 몰래 사귀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대뜸 은주보고 결혼하라고 하니 난감해할 수밖에.

“길어야 석 달이야. 그 안에 그 집 아들하고 은희하고 알아서 하기로 했어.”

주혁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 묘한 미소를 지었다.

그 알아서 한다는 게 아무래도 속도위반 사고(?) 같았다.

하긴 혼수로 애를 준비한다고 하는 세상이니, 어떻게든 되겠지.

“왜 그렇게 봐요?”

“엉?”

“아니, 계속 제 얼굴 보기에…….”

이은주는 그렇게 말하면서 슬쩍 주방 안쪽을 쳐다봤다.

“아, 아니. 뭐 생각할 게 있어서… 그건 그렇고 참 복닥복닥하네.”

“예?”

“아니, 가게에 사람이 이렇게 많았나 싶어서.”

강형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었다.

현재, 주방 안쪽에 공지혜와 순이 이모, 그리고 백창호가 있었다. 육수 끓이는 걸 확인하면서 수시로 맛을 보고 메모를 하고 있었던 것이다.

오픈 주방에는 이은주와 이강석, 정은혜가 있었고, 홀에는 강형우 혼자였다.

처음 네 명이서 시작했다가, 나중에는 공지혜랑 단둘이 됐다. 그런 가게를 일으키기 위해 열심히 일하다 보니 어느새 일곱 명이나 된 것이다.

진짜 작년 이맘때만 해도 상상도 못 할 일이었는데.

“그나저나 오빠는 누구 찍을 거예요?”

“뭘 찍어?”

“모레가 대통령 선거잖아요.”

“아!”

달력을 보니 2012년 12월 17일이었다. 모레가 18대 대통령 선거일이었던 것이다.

진짜 정신없이 살다 보니,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글쎄? 쥐새끼 생각하면 저 당은 안 찍어야지.”

“오빠도 그렇죠?”

“당연한 거 아냐.”

강형우가 그렇게 생각하는 건 이유가 있었다.

주혁 형이 욕이란 욕은 그렇게 다하더라.

임기 동안 온 나라를 다 파헤쳐서 돈 빼돌리고, 있는 나랏돈조차 외국에 투자한다고 다 꼴아박았단다.

가장 중요한 건, 대기업과 결탁한 거다. 골목 상권에 대한 제재를 푸는 바람에 서민 경제가 파탄이 났다는 것이다.

동네마다 대기업에서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가게가 없는 곳이 없었다. 그 때문에 맛이 획일화되었고, 개성적인 식당들이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조금씩 바뀌고는 있지만, 한 번 조진 걸 복구하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단다.

“뭐, 나야 무식해서 잘 모르지만, 다들 그렇게 말하더라고. 그러니까 저 당은 안 찍을 거야.”

그렇게 말하는데, 문이 열렸다.

-딸랑.

정은혜가 반사적으로 달려갔다. 그러다 시계를 보더니 정중하게 말했다.

“손님, 죄송합니다. 저희 아직 영업시간 전이라서요.”

상대의 반응이 놀라웠다. 마치 위험물을 보는 것처럼 움찔하더니 두어 걸음을 물러난 것이다.

그런 뒤, 잠시 심호흡을 하며 말했다.

“사장님 뵈러 왔습니다.”

마침 오픈 주방 쪽을 보던 강형우가 고개를 돌렸다.

“어! 형, 왔네요.”

“어. 그래…….”

강신원은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눈치였다. 주방 안쪽에서 공지혜와 순이 이모, 백창호가 나왔는데 그 덕에 모든 시선이 집중되어서였다.

강형우는 재빨리 다가가 소곤거렸다.

“형, 영업용 미소, 영업용 미소.”

“어, 그래.”

강신원은 잠시 심호흡을 하더니 고개를 똑바로 들었다.

그러곤, 지성분식 식구들을 향해 허리를 숙였다.

“반갑습니다. 이호점 주방 보조를 맡게 된 강신원이라 합니다.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렇게 식구 한 명이 또 늘었다.

그런데 사람들 반응을 보니, 갑자기 알 수 없는 불길함이 느껴졌다.

특히 모든 여자들이 신원이 형과 내 얼굴을 번갈아 가며 보더라.

제기랄! 빌어먹을 외모지상주의 같으니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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