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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목식당 리얼갑부-78화 (78/251)

# 78

78화 으으, 맛간장

“며칠 전에 그랬잖아요. 잔소리 막 해도 된다고.”

“쩝, 그랬지!”

강형우는 고개를 푹 숙였다. 자신이 했던 말이 있어서 뭐라 대꾸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따지면 전부 자업자득이었다.

***

최근에 기린 빌딩을 시작으로 인근에 여러 식당들이 새로 생겼다. 누가 신고했는지는 모르겠는데, 위생 검열이 뜬다는 소문이 돌았던 것이다.

해서 며칠 전, 가게 대청소를 했다.

가게 확장한 지 얼마 안 되서 깨끗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생각보다 곳곳에서 찌든 때가 많이 보였던 거다.

그 때문에 잔소리를 많이 할 수밖에 없었다.

얼마나 했냐면, 지성분식 오픈하고 지금까지 했던 것보다 더 많이 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직원하고 사장하고는 입장이 완전히 달랐다.

담당 공무원이 제대로 엿 먹이겠다고 나오면 벌금 몇백만 원이 나오는 경우도 있었고, 그게 누적이 되거나 위생 상태가 정말 엉망이면 ‘영업 정지’였다.

이게 사장한테는 제일 무서운 거였다.

월세는 꼬박꼬박 나가는데 장사를 못 하는 것.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게 아니었다. 위생 불량으로 영업 정지를 맞으면 그걸 공개를 해야 한다.

소위 ‘주홍 글씨’가 남는 것이다.

이 가게는 더럽다!

그런 이미지가 박히면 손님은 뚝 떨어진다. 단골조차 발길 돌리게 만드는 힘이 거기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좀 ‘과’하게 잔소리를 했다.

이거 해라, 저거 해라, 조것도 해라, 여기도 치워라.

문제는 생각보다 일이 많다는 거였다. 막상 시작하니 아예 장사를 하루 쉬고 해야 할 정도로 걸리는 게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하다 보니 더러웠던 이유를 알게 되었다.

바로 확장 공사 때문이었다. 거의 새 가게로 바뀌는 바람에 다들 깨끗할 거라 생각하고 적당히 넘어간 부분이 제법 있었던 것이다.

여기서 또 2차 잔소리가 폭발하고 말았다.

어쨌든, 그날 회식을 하면서 사과하긴 했는데 생각해 보니 좀 심하기는 한 것 같더라.

근데 정확한 내용을 알게 된 건 다음 날이었다.

휴일이지만, 사장한테는 휴일이 아니었다. 그래서 혼자 나와서 못다 한 부분을 청소하고 있는데 놀랍게도 공지혜가 나왔던 것이다.

결국 둘이서 또 하루 종일 청소만 했다.

그러면서 듣게 된 게 있었으니…….

“애들이 별말 안 해요?”

“뭐?”

“그게, 강석이하고 창호가 그러던데요. 귓구멍에 몸살이 났대요.”

“왜? 내 잔소리 때문에?”

“예. 그만큼 어젠 진짜 심했어요. 어지간하면 별말 안 하던 순이 이모조차 짜증을 내더라고요. 시어머니 잔소리를 십 년 묵힌 정도였다나?”

“쩝, 그렇게 심했나?”

어제 노래방 회식 중에 잠깐 화장실을 갔는데, 귓구멍이 미치도록 근질근질거렸게 그래서였다.

“은혜도 아침에 카톡을 보냈더라고요. 무시무시한 악몽을 꿨다던데…….”

“무슨 악몽?”

“그게… 커다란 고릴라가 밤새도록 귀를 붙잡고 랩을 불렀다네요.”

“헐~”

어제 노래방에서, 술김에 되지도 않는 랩을 하긴 했다.

그래도 그렇지, 고릴라라니.

“아니, 진짜! 아무리 생각해도 그 정도는 아닌 것 같은데?”

“그거야 오빠 생각이죠.”

공지혜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진짜 심하긴 심했나 보다.

“근데 너는?”

“저야 뭐, 오빠 잔소리 하루 이틀 듣는 것도 아니고. 이미 면역 만렙이거든요.”

“허이구, 훌륭하십니다. 일 잘하는데 내가 왜 잔소리를 하겠어. 제대로 안 되어 있으니까 그런 거지.”

“그야 그렇긴 하죠. 하지만 사람이 실수할 수도 있는 거잖아요. 솔직히 오빠도 몰라놓고.”

그렇게 말하니 할 말이 없었다.

사실 평소에 늘상 하는 말이 있었다. 장사가 잘되든 망하든 모두 사장 책임이라고.

그건, 관리 감독을 하고 잘못된 걸 고치는 게 온전히 사장의 일이기 때문이다.

솔직히 소홀히 한 건 맞았다.

이것저것 배운다고 한 달이 넘게 가게를 자주 빼먹었던 건, 다름 아닌 자신이었으니까.

그래놓고 직원들이 전부 잘못한 것처럼, 뒤집어씌우는 것처럼 잔소리를 했었다. 딱 그런 부분에서 다들 불만을 가졌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런 생각은 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보였다면 그게 맞는 거겠지.

그래도 다행인 건 있었다.

만약 그런 상황에서, 그래도 내가 사장인데 해버렸다면?

아마 공지혜도 이런 걸 알려주지 않았을 거다.

다들 입을 다물었을 것이고, 그 순간부터 우리가 가지고 있던 신뢰에 금이 갔을 게 분명했다.

그리고 머지않아 다들 그만두겠지.

아니면 불만을 안고 모른 척 지내든가.

“어쨌든 알려줘서 고마워. 앞으로도 내가 실수하면 꼭 옆에서 말려주라.”

“말 안 해도 그럴 거거든요? 하여간 오빠도 실수하기만 해봐요. 아주 잔소리를 퍼부어줄 테니까.”

***

“잘못했죠?”

“예. 반성합니다.”

강형우는 두 팔을 번쩍 든 상태였다. 엄마한테 잘못해서 벌받는 아이처럼 말이다.

사실, 이런 우리 사이가 남들한테는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었다.

직원이 감히 사장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다니.

근데 이게 맞았다.

가게를 자주 비우게 되면서, 공지혜에게 부탁을 했다.

혹시나 자기가 실수하거나 잘못하게 되면 따끔하게 지적해 달라고, 그래야 지성분식이 오래갈 수 있다고 신신당부를 했던 것이다.

맞다.

공지혜는 지금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고 있었다.

그걸 증명하듯 저 간신 모리배 같은 이강석과 백창호가 박수를 치고 있었다.

사실, 변명하자면 저 곰팡이 범벅 팬티의 존재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그날따라 고물 세탁기가 미쳤는지 한 번에 팬티 세 장이 빵꾸가 나버렸다. 그것도 딱 중요한 부위가 있는 부분이 시원하게 뚫려 버렸던 것이다.

그때 버렸어야 했는데, 귀찮아서 적당히 말린 뒤 비닐 안에 집어넣어 버렸다. 같이 버릴 구멍 난 양말하고 한데 묶어서 말이다.

대충 계산해 보니 처박아놓은 지가 무려 반년이나 지난 상황.

그러니 곰팡이 꽃이 알록달록하게 핀 거다.

그걸 봤으니 공지혜가 기겁을 하며 잔소리 폭탄을 퍼부은 것이고.

“하여간 저거 꼭 버려요!”

“알겠습니다.”

“그럼 손 내려요.”

“옙!”

강형우가 팔을 내리고 보니, 특히 두 녀석이 아주 후련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날의 원한(?)을 이렇게라도 푸는구나 하는, 그런 감정이 고스란히 보였던 것이다.

하여간 니들은, 내일부터 진짜 몸짱으로 만들어주마.

“근데, 진짜 이 집 김밥이 그렇게 맛있어요?”

“예. 그런데 제 입맛이 정답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가게 최고의 김밥 전문가님을 이 누추한 곳으로 초빙한 겁니다.”

강형우가 넙죽 엎드리면서 말하니, 공지혜가 풋 하고 웃었다.

“진짜 인정둥이들 오빠긴 하네요. 정말 똑같았음.”

그러면서 엄지를 척 내미는데, 기분이 묘했다.

어쨌든 그렇게 분위기를 바꾼 뒤, 은박지 포장을 풀었다.

사람은 네 명, 김밥은 열 줄 정도 됐다.

원조 김밥이 넉 줄, 제일 잘나간다는 땡초 김밥이 석 줄에 참치 김밥과 소고기 김밥, 돈가스 김밥이 있었다.

일단 한 줄까지는 큰 문제는 없었다.

두 줄 먹고 나니 목이 좀 메이면서, 라면 생각이 간절해졌다.

그건 다들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결국 강형우는 라면을 네 개나 끓여야 했다.

그러면서 품평회를 하기 시작했는데, 의외로 다들 날카로웠다.

“원조 김밥 이거 있잖아요. 많이 짜지는 않은데 간이 조금 센 것 같아요.”

“저도 그 생각했음. 이상하게 입에서 침이 많이 나오더라고요.”

“여기 장점은 가성비 같아요. 크기도 큰데, 이게 천오백원이라니.”

이 집에서 제일 비싼 게 한우 소고기 김밥이었는데, 이천오백 원이었다.

그걸 제외하면 전부 이천 원 수준.

“확실히 그렇게 따지면 압도적이긴 하네.”

참치 김밥의 경우, 참치가 눈에 확 들어올 정도로 많이 들어 있었다. 돈가스 김밥도 두툼한 게 느껴질 정도였고 김치 김밥도 식감이 좋았다.

마치 내가 이 김밥이다 하는 것처럼 존재감을 잔뜩 자랑했던 거다.

문제는 내가 이 맛을 낼 수 있느냐 없느냐였다.

“이 양념 맛을 모르겠네. 대체 어떻게 이런 맛이 나는 거지?”

강형우는 속재료 하나하나를 풀어가면서 맛을 봤다. 우엉, 당근, 맛살, 계란, 시금치, 햄 등등이 보였는데 어떤 건 싱겁고 어떤 건 아예 아무런 맛도 나지 않았던 것이다.

아무래도 식감 때문에 넣은 것 같았다.

“일단 간장 베이스는 맞아. 근데 끓인 간장이 아니라 뭔가를 달이거나 졸인 것 같은데…….”

“근데 형, 끓인 간장하고 졸인 간장이 무슨 차이가 있어요?”

이강석이 묻자, 시선이 일제히 강형우에게 집중되었다.

“그건, 일단 간장을 끓이는 경우는 불순물을 날리기 위해서 하는 경우가 많아. 졸이는 건 재료의 맛을 배이게 해서 깊은 맛을 낼 때 쓰지.”

대략적으로 설명했지만, 쉽게 이해하는 표정이 아니었다.

강형우는 잠시 고민한 뒤 말을 이었다.

“간단히 생각하면 이런 거야. 우리가 찌개를 먹잖아. 김치찌개 같은 경우 뜨거운 열로 팔팔 끓여서 원래 김치가 가지고 있는 맛을 국물로 빼는 거지.”

고열을 가함으로써 재료의 본 성질을 바꾸는 거였다.

쉽게 표현하면, 날달걀이 계란 후라이가 되는 것처럼 된다고나 할까?

반대로 졸이거나 달이는 건 경우가 달랐다. 원재료의 형태가 거의 보존이 되니까.

물론 시간과 온도, 압력에 따라 결과물은 전혀 다르게 나온다.

마치 한약처럼 오래 달이게 되면 맛의 성분이 물에 녹아 나오게 되고,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 하는 절임의 경우 간장의 맛 성분이 오히려 재료에 스며드는 것이다.

강형우의 설명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까 대충 짐작하면 이런 거야. 우리가 모르는 어떤 재료, 가령 버섯이나 멸치 같은 걸, 장시간 간장에 달인 거지. 그렇게 만든 맛간장으로 우엉을 졸인 거고, 당근을 볶은 것 같거든.”

“오, 그럴듯한데요?”

“오올, 우리 사장님 대박!”

이강석과 백창호가 극찬을 했다.

어쨌든 설명하다 보니 대충 해법이 나왔다.

문제는 무슨 재료로 어떻게 했느냐는 건데, 그건 이제부터 해봐야겠지?

사실 이 과정이 제일 힘들고 거지 같은 거였다.

무엇보다 돈 낭비도 심했고, 맛을 찾아가는 과정이 지난하고 지겨울 정도였다.

하지만 강형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

“으으으, 맛… 간장!”

하도 맛을 보다 보니 혀가 아렸고, 콧김을 내뿜을 때마다 간장 향이 느껴질 정도였었다.

벌써 며칠째인지 모르겠지만, 강형우는 원조 김밥의 깊은 맛을 분석하기 위해 무수히 다양한 시도를 했다.

크게 육류와 해산물, 그다음은 버섯과 과일이었다.

일단 닭 육수와 사골 육수를 간장에 섞어서 뭉근한 불에 달여봤다.

비율이 잘못된 건지, 시간을 잘못 맞춘 건지 이틀 내내 해봤음에도 실패였다.

미끄덩하고 끝에 누린내가 살짝 나는 간장 맛이라고나 할까?

원래 예상은 고기 육수의 감칠맛이 배는 거였는데 정반대가 된 거다.

해서 일단 육류 쪽은 포기했다.

사실, 가장 큰 이유는 공지혜의 지적 때문이었다. 재료비가 너무 많이 들어간단다.

그다음이 버섯이었다.

말린 표고와 양송이를 넣고 끓였는데, 확실히 향은 좋아졌다. 그런데 양이 적었는지 맛 차이는 거의 나질 않았다.

결국 몇 번이나 고민한 끝에 재료를 왕창 쏟아붓고 끓여봤다.

결과는 아주 짭조름한 밥도둑, 훌륭한 버섯 간장조림이 탄생했다.

당연하게도 간장에는 이상한 향만 나서 바로 하수도로 보내 버렸다.

“하아, 간장 하나 만드는 게 이렇게 어려울 줄이야.”

강형우는 인터넷에 떠도는 맛간장 레시피가 거의 대부분 사기라는 걸 절실하게 깨달았다.

아니, 냉정하게 평가하면 사기는 아니었다. 조리 시간과 재료의 비율, 그리고 어떤 브랜드로 어떻게 쓰는지 같은 그런 핵심들이 빠져 있었던 것이다.

그걸 경험과 노하우로 해결해 보려 했지만 만족도는 70%가 넘질 못했다.

“하긴, 그 사장님도 삼 년이나 고생했다는데, 그게 쉽게 될 리가 없지.”

다행인 건, 어느 정도 감을 잡았다는 거다.

단순히 짜기만 한 간장이 아니었다. 약간 달달하고 고소한 향이 감돌면서 마지막에는 감칠맛이 느껴지는, 그런 방향으로 해보기로 한 것이다.

강형우는, 재료비만 무려 백여만 원을 넘긴 시점에서야 가까스로 완성시킬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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