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2
72화 치킨한테 미안하지 않니
“하나에 정신, 둘에 통일.”
“예?”
“푸시 업, 이십 회. 실시.”
“시… 실시.”
이강석과 백창호는 잠시 눈치를 보다가 결국 바닥에 엎드렸다.
이어진 건 달밤의 운동이었다.
두 사람은 영문을 몰라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강형우의 표정이 심각하니, 무조건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
이유 없이 그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잘 알기 때문이었다.
“기상!”
“기상.”
“어쭈 늦다? 다시 푸시 업, 이십 회. 실시.”
“실시.”
그렇게 서너 번 시키자 이제야 동작이 빠릿빠릿해졌다.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쉰 뒤, 물었다.
“냉동실에 치킨 봉다리, 누구 짓이냐?”
“아!”
그제야 이유를 파악한 이강석과 백창호는 잠시 머뭇거렸다.
강형우는 망설이지 않았다.
“다시 푸시 업, 이십…….”
“얘, 얘가 그랬어요.”
“아닙니다. 강석이가 나중에 치우면 된다고 했습니다.”
동시에 변명하는데, 웃음이 나올 정도였다.
“이것들이 정신 못 차렸네. 내가 얼마나 빡쳤는데. 다시 푸시 업, 이십 회 실시.”
“시, 실시.”
두 사람은 울먹이는 목소리로 대답한 뒤 다시 팔굽혀펴기를 했다.
거의 백이십 회가 넘어가자 숨소리가 거칠어졌다.
그때 저 아래쪽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실로 오랜만에 강석이 어머님 김복희 여사님께서 등장하신 것이다.
“형우 총각, 이 밤에 뭐 해?”
“예. 애들 운동시키고 있습니다.”
강형우가 웃으며 대답하자 김복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옆집에 박 씨 아주머니가 그러더라고. 얼마 전에 고성방가 때문에 이 근처에 경찰 왔다 갔다면서?”
그 말에 이강석과 백창호가 움찔움찔 떨었다.
강형우는 잠시 망설이다 대답했다.
“예. 그런 일이 있었죠.”
이 애들이 범인이라는 말은 애써 참았다. 표정을 보니 정말 모르는 눈치였던 것이다.
그 일 있었을 때, 이강석이 그랬다.
우리 김복희 여사님은 잘 때 누가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푹 잔다고. 그러니 무조건 비밀로 해달라고 했던 것이다.
“운동도 좋은데, 너무 시끄럽게만 하지 말아줘. 요즘 그것 때문에 난리거든.”
“하하, 하하하. 당연히 그래야죠.”
“그럼 형우 총각만 믿고 내려갈게.”
김복희가 웃으며 내려가려는데 이강석이 일부러 죽는 소리를 냈다.
“어~ 엄마.”
“왜?”
“그게…….”
이강석이 눈짓으로 강형우를 가리켰다. 어떻게든 말려달라는 간절한 애원을 담아서 말이다.
돌아온 건 이거였다.
짝~
“아욱.”
이강석이 바닥을 뒹굴었다.
김복희 여사의 초강력 등짝 스매싱 때문이었다.
동시에 찰진 구박이 이어졌다.
“이놈 새끼, 사기 당하고 병신 짓 하는 거, 사람 만들어줬으면 죽었다 생각하고 할 것이지. 어딜 눈치를 줘! 이놈아. 짐승 새끼도 은혜는 안다.”
그러면서 또 등짝을 후려치려 했다.
“아이고, 어머니. 제가 잘 알아서 하겠습니다.”
강형우가 다급히 말리지 않았다면 이강석은 오늘 엎드려서 자야 할지도 몰랐다.
어쨌든 김복희는 정중히 고개를 숙이면서 말했다.
“하여간, 내 형우 총각만 믿어.”
“옙. 제가 책임지고 열심히 운동시키겠습니다. 어두운 밤길 조심히 살펴 가십시오.”
강형우가 구십 도로 고개를 숙이자 곧 김복희가 사라졌다.
그 직후 강형우가 씨익 웃었다. 그걸 본 이강석은 몸을 부들부들 떨었고.
“기상.”
“기상.”
“뭘, 잘못했는지 알지?”
“예.”
이강석과 백창호가 고개를 푹 숙였다.
“인간들아, 내가 한두 개면 말을 안 한다. 먹었으면 치워야지.”
“죄, 죄송합니다.”
“죄송이고 나발이고, 대체 몇 마리나 잡아먹은 거냐?”
강형우가 발견한 검은 봉지만 열 개가 넘었다. 그 외 확인 못 한 것들도 적지 않았고.
솔직히 냉동실에 그렇게 많은 치킨이 들어 있을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최근에는 거의 집에서 음식을 안 해먹었기 때문에 냉장고에 있는 건 물과 우유, 맥주 캔 몇 개가 전부였던 것이다.
그래서 혹시나 하고 열었다가 큰 충격을 받았다. 냉동실이 음식물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때 얘들이 걸렸으면, 진짜 이 정도로 끝나지는 않았을 거다.
내일 당장 치과를 방문해야 할 정도로 만들었을 테니까.
“니들, 치킨한테 미안하지 않니?”
“그게…….”
둘이 애써 변명을 하는데, 기가 막혔다.
한 마리는 양이 적고, 두 마리는 조금 많단다. 그러다 보니 약간 남아서 나중에 한꺼번에 처리하자고 냉동실에 처박았다나?
“감히 일인 일 닭 시대에 그런 망발을 하다니.”
“그게 진짜 그렇다니까요.”
“됐고. 숭고하게 희생한 치킨을 위해서 애도를 해라. 남은 치킨 개수만큼 푸시 업이다.”
“예?”
“뒤에 공 하나 붙여서 앞으로 딱 이백 개만 더해.”
“끄으응.”
둘이 죽는 소리를 해도 강형우는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그래서 매서운 눈빛으로 노려보니 알아서 푸시 업을 시작했던 것이다.
겨우 숫자를 채우고 일어서자 강형우가 말했다.
“이게 다 니들 잘되라고 시키는 거야. 어깨 넓어지고 근육 커져서 몸짱이 되면, 여자들한테 인기도 많아질 거 아냐?”
“저희는 형 같은 근육 덩어리가 되고 싶지는 않…….”
“뭐?”
“아닙니다.”
“다 들었지만, 오늘은 참아주마. 그리고 먼저 냉동실 정리부터 시작해. 경건한 마음으로. 실시!”
이강석과 백창호는 부들부들 떨리는 팔로 냉장고 청소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내일 아침, 어머님 식사 차려드리고, 출근 전에 각자 냉장고 깨끗이 정리해서 사진 찍어 보내. 확인할 거니까.”
이틀 뒤인가?
김복희 여사님께서 참으로 고맙다면서 해장국을 끓여서 가져다 주셨다.
***
팡, 팡팡.
행사는 참으로 요란했다.
고작 식당 두 개가 오픈한 생긴 건데, 화환만 서른 개가 넘었다.
다섯 개는 화끈 오뎅 거였고, 나머지는 제대로 한 끼였다.
“그렇게 보내지 말라고 했는데…….”
강주혁은 진심으로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강형우 입장에선 부럽기만 했다. 처음 지성분식 오픈할 때가 떠올라서였다.
그때 정분석이 하나를, 배산회에서 하나를 보냈다. 어머니가 국밥집 이름으로 하나를 더해서 전부 세 개에 불과했던 것이다.
그때 강영지가 장난 삼아 이런 문구를 적었다.
<이거 망하면 우리 오빠 장가 못 가요.>
그 때문인지, 참으로 공교롭게도 망하기 직전에 미진이한테 차였었다.
얼마 전 홍태구와 오연희를 통해 소식을 듣기는 했는데, 썩 좋은 상황은 아니라고 하더라.
돈 많은 남자를 사귀었는데 알고 보니 유부남이였다나?
어쨌든 그 새끼 마누라한테 두들겨 맞아서 보름을 선글라스 끼고 다녔단다.
통쾌하다기보다는 좀 씁쓸했다.
“어이, 우리 오픈 주방장님.”
강주혁이 갑자기 손을 잡더니, 정체 모를 사람들 무리에 끌고 갔다. 나이 지긋하신 분들이 적지 않았는데 어쩌다 보니 그 옆에서 사진을 찍게 된 것이다.
“형, 뭐예요?”
“우리 회사 높은 사람들. 정확히는 내 사람들이지.”
그러면서 씨익 웃는데, 왠지 말리는 느낌이랄까?
어쨌든 제대로 한 끼 오픈 기념사진을 찍는데 그 중앙에 서게 된 거다.
가만, 그럼 나도 주혁 형네 사람인가?
순간적으로 드는 망상에 피식 웃음이 나왔다.
잠시 후, 정식 오픈 하자마자 손님들이 미친 듯이 밀려들었다.
이날 강형우는 제대로 한 끼의 성공을 실감했다.
주방 일을 관리 감독하면서 음식 만드는 것도 도왔는데, 그러면서 대충 숫자를 세었다.
오늘 하루만, 거의 800인분 정도가 나가더라.
“아! 그런 시스템이군요.”
이른 아침, 전날 떨어진 재료 때문에 혹시나 싶어 일찍 나왔는데 그게 헛수고였다.
고지우가 설명을 다 해주더라.
포스기로 주문이 들어가면 재고 수량까지 알아서 표시가 된다. 그리고 저녁 마감 버튼을 누르고 정산을 하면, 그 즉시 나간 수량만큼 자동으로 공장에 발주가 된다는 것이다.
전날 진공 포장한 게 아침에 출발해 오전 중에 배송까지 완료였다.
확실히 이런 시스템이면 장사하는 사장 입장에선 완전 땡큐였다. 거의 신경 쓸 것도 없었고, 할 일도 딱 하나뿐이었으니까.
그게 뭐냐?
마치고 돈 세는 거다.
“쩝, 이게 프랜차이즈 방식이라는 거네요. 확실히 대단하기는 해요.”
“그것 말고도 많아. 가령, 냉장고나 주방 가전을 원격 제어한다거나…….”
자체 개발한 어플을 통해서 무선 인터넷으로 전부 확인할 수 있다고 했다. 물론 스마트 시스템이 적용된 일부 주방기기에 한정해서지만 말이다.
만약 이걸 빨리 알았다면, 얼마 전 튀김 속을 버려야 했던 참사는 벌어지지 않았을 텐데.
창주 형은 그 일 이후에 직원들을 전부 모아놓고 단단히 일렀다. 조금만 상하거나 더러워져도 무조건 폐기라고, 더욱 꼼꼼하게 관리하라고 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충격적인 건 적지 않았다.
우선 주방의 실시간 오픈이었다. 인터넷 접속만 된다면 주방에 설치된 카메라를 통해 현재 조리 상황을 바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물론 두루 컴퍼니 멤버십 가입자에 한해서였다.
과정은 조금 번거로웠다.
일단 두루 컴퍼니 멤버십에 가입해야 하고, 홈페이지에 접속해 개인 코드를 넣고 로그인을 해야 한다. 그런 뒤, 프랜차이즈 브랜드를 선택하고 지점을 선택해 주방 카메라를 골라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강형우가 놀란 건 그 이유 때문이 아니었다.
주방을 실시간으로 인터넷에 공개한다는 건 정말 어마무시하게 어려운 거였다.
요즘에야 오픈 주방이 유행하지만, 예전에는 철저히 비공개였다. 조리법의 유출을 떠나서 일단 위생과 청결이 완벽하지 않아서였다.
누가 그러더라.
그 집 주방을 보면 절대 음식 먹으러 가고 싶지 않다고.
몇 해 전까지만 해도 그런 가게가 적지 않았고, 지금도 일부가 존재할 정도였다.
특히 위계질서가 빡빡한 요식업종의 경우 폭언이나 구타도 종종 일어난다. 때문에 주방은 손님들 입장에서는 일종의 금지 구역이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강주혁은 시스템으로 그걸 깨버렸다.
아무리 과감하다 해도 그렇지 24시간 실시간 오픈 주방이라니.
그러다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럼. 제가 조리하는 것도 다른 사람들이 볼 수 있겠네요?”
“그럴걸? 실제로 우리 회사 유명 셰프의 경우, 일하는 시간에는 평균 접속자만 이백 명이 넘더라고.”
“유명 셰프요?”
강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자 고지우는 피식 웃었다.
“임경윤이라고 알아?”
“당연히 알죠. 거의 아이돌 급 인기 셰프인데. 방송도 종종 하고, 전에 보니까 광고도 찍고 하던데요.”
“맞아. 그분이 지금 프랜차이즈 황룡 본점에서 요리하고 계시거든.”
“헐, 대박!”
황룡이 무지하게 크다고, 엄청 유명하다고 듣기는 했다. 그런데 그런 셰프가 일할 줄은 상상도 못했다.
“강 실장님이 구상 중인데, 조만간 유투부하고 연결해서 수익 내는 것도 생각하고 있더라고. 그걸로 셰프 보너스 주는 식으로 말이야.”
이야기하면 할수록, 들으면 들을수록, 그리고 배우면 배울수록 여기는 진짜 다른 세상 같았다.
스마트폰 나오기 전의 피처폰, 그중에서도 제기차기해도 안 깨진다는 초창기 걸리버를 쓰는 기분이랄까.
어쩌다 보니 보름 정도 일하기는 했지만, 그게 아쉬울 정도였다.
진짜 본사에 들어가서 제대로 배운다면?
하지만 그런 생각은 길지 않았다.
강주혁의 제안대로 회사에 들어가게 되면, 지성분식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무엇보다 나한테는 그런 방식이 맞지 않는다고도 했다.
추구하는 방향이 다르다나?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갑자기 전화가 울렸다.
공지혜였다.
“오빠, 가게 좀 와줄 수 있어요?”
“당연하지. 근데 무슨 일인데?”
“그게…….”
이야기를 들어보니 왈칵 짜증이 났다.
하지만 해결할 건 해야 하니, 어쩔 수가 없었다.
고지우한테 양해를 구하고 강형우가 나가려는데, 마침 강주혁이 들어왔다.
“왜? 무슨 일인데?”
“그게요. 하아! 누가 가게 앞에 차를 대놨다고 하더라고요. 문도 못 열 정도로 바짝 대놨다는데.”
강형우는 빡침을 참아가며 겨우 말했다.
그 모습을 본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그럼 가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