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71화 싹 버리죠
“뭐? 이걸 버려?”
김창주는 화들짝 놀라 튀김 속을 쳐다봤다.
겉으로 봐선 멀쩡했다. 특별히 이상한 것도 보이지 않았고, 평소와 다를 바가 없었던 것이다.
“뭐가 문제인데? 두부? 아니면 야채가 이상한가?”
“아니, 그게 아니라…….”
솔직히 확신할 수 없었다.
사실, 냉장실에서 막 꺼낸 것만 가지고 구별하기는 무리가 있었다.
하지만 뭔가가 꺼림칙했고 코끝을 간질간질하게 하는 미묘한 냄새가 느껴졌다.
원래 화끈 오뎅의 튀김 속은 이렇게 만든다.
전날, 돼지 뒷다리와 감자탕 집에 납품하고 남은 등뼈 옆 살, 등심과 안심 끝자락, 흔히 마구리라 불리는 갈비 끝의 자투리 같은 잡다한 부위를 받아온다.
여기에 정형하고 남은 비계를 가져와 2.5 대 1의 비율로 섞어서 육절기에 갈아버린다.
그 고기에 으깬 두부, 부추, 당근, 파 등을 비율대로 넣고 비비면 튀김 소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업그레이드가 더 있었다.
꿀과 대추, 사과를 넣어서 끓인 간장 양념을 희석시켜 섞은 뒤, 하루 냉장 숙성을 시켰던 거다.
그렇게 완성된 소를 나눠서 데친 오징어 다리를 토막 쳐 넣으면 고추튀김 속이 되고, 적당히 갈은 천사채를 넣으면 깻잎전 속이 된다.
지금 앞에 있는 건 오징어 다리를 섞기 전이었다. 하루 숙성시킨 건데, 익숙한 그 냄새와 다른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이거, 어떻게 보관했어요?”
“그야… 어제 본점에서 갈아서 여기 냉장고로 옮긴 거지. 대충 오전에 만들었으니 딱 열여섯 시간 숙성시킨 거야.”
“그래요? 근데 좀 미묘하네.”
강형우는 몇 번이나 고개를 갸웃거렸다. 들어보면 딱히 문제는 없는데, 이상하게도 손이 가질 않았던 것이다.
그 머뭇거림 때문일까?
김창주도 고기 속을 유심히 살피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조금 검은 것 같기도 한데… 애매하네.”
“형, 그러면 우리 이거 삼십 분만 놔둬볼까요?”
“뭐?”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거라서 확인이 안 되지만 좀 지나면 알 수 있잖아요.”
그제야 김창주도 무슨 뜻으로 말한 건지 이해했다.
하지만 선뜻 결정하기는 어려웠다.
“알아요. 음식은 신선도가 제일 중요한 거. 하지만 오늘 내일은 가오픈 연습이잖아요. 어차피 다 버린다고 생각하면…….”
순간 김창주가 인상을 찌푸렸다.
“야, 멀쩡한 음식 왜 버려?”
“그럼요? 어차피 만들고, 남은 건 폐기해야죠.”
“그게… 보낼 데 있어서 그래.”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게 있었다.
근처에 배화학교가 있는데, 청각장애인들이 다니는 곳이었다. 전국에서 벚꽃이 가장 먼저 핀다는 학교였는데 배산 맞은편 아랫동네에 위치했던 것이다.
그게 뭐 어쨌냐고 하는데, 작년에 개봉한 영화 중에 ‘도가니’라고 있었다.
청각장애인 학교의 성폭력 사건을 다룬 영화인데 창주 형이 그걸 보고 진짜 큰 충격을 받았단다.
이후 관심 가지고 알아보다, 거기 졸업생들이 봉사모임 하는 곳이 있다는 걸 들었다는 것이다.
김창주는 가끔 거기에 보낼 음식을 따로 만든다고 했다.
그게 생각나서 강형우는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그러면 더 꼼꼼히 확인해야죠.”
잠시 말이 없던 김창주는 곧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옷 벗고 나가자.”
“예.”
***
제대로 한 끼, 아니, 강주혁 형네 회사의 시스템을 적용하고 가장 귀찮은 게 이거였다.
별도의 조리실을 운영하는 것.
김창주는 여기에 가장 흔들렸다. 그래서 2호점에 조리실을 마련하고 여기서 본점과 2호점의 밑준비를 전부 끝내기로 했던 것이다.
일단 반죽 묻혀서 튀기기 직전까지는 거의 다 만든다고 보면 된다. 오뎅 육수도 여기서 제작했고, 떡볶이 양념 같은 것도 마찬가지였다.
때문에 여기 공사가 제일 먼저 끝났다. 청소도 완벽했고, 어제부터는 거의 실사용이 가능할 정도였다.
문제는 귀찮다는 거다.
조리모와 입 가리개를 벗고, 앞치마와 조리복을 벗은 뒤에야 나가는 게 가능했으니까.
만약 담배라도 피우고 들어가려면 더 까다로웠다. 입구 앞 위생실에서 청결제로 손을 씻고, 가글까지 해야 했던 것이다.
덕분에 창주 형은 담배가 확 줄었다.
술 안 마시면 한 갑으로 거의 사 일을 핀단다.
일어나서 하나, 출근 전에 하나, 점심 먹고 하나, 퇴근하고 하나, 잘 때 하나.
근데 가끔 예외는 있었다. 이상하게 답답할 때, 한 대씩 물곤 했던 거다.
“후우, 하아~ 컥, 크헉. 쿨럭. 컥.”
갑작스러운 흡연이 목구멍을 때린 모양이었다.
김창주는 몇 번 기침을 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이제 끊어야 하나?”
“왜요? 누나가 그러래요?”
“아니, 딱히 뭐라고 하는 건 없는데…….”
김창주의 얼굴이 갑자기 시뻘게졌다.
딱 보니 감이 왔다.
“그럼? 뽀뽀할 때 냄새 난데요?”
“쿨럭, 컥. 커컥. 쿠허허헉. 커헉. 크하하학.”
진짜 숨 넘어갈 듯이 기침을 하는데, 너무 제대로 찌른 모양이었다.
강형우가 등을 두드리자 김창주는 애써 호흡을 가다듬었다.
“헤엑, 허억. 너~ 이 새끼. 아까 봤냐?”
“예? 제가 뭘요?”
얼굴에 철판신공을 펼치면서 모른 척하자, 김창주는 씩씩거리면서도 차마 욕까지는 안 했다.
그렇게 담배 한 대가 다 타들어갈 때까지 서로 말이 없었다. 강형우는 그냥 피식피식거렸고, 괜히 김창주만 속을 앓아야 했던 것이다.
그러다 뜬금없는 질문이 훅 들어왔다.
“근데, 너 선거 나갈 생각 없냐? 잘할 것 같은데.”
“에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해요. 제가 이제 스물여덟인데요.”
“아니, 좀 지나서 통반장 선거나 동대표 같은 거 하면 한번 나가봐라.”
“아니, 갑자기 무슨…….”
강형우가 떨떠름해하는데, 김창주가 피식 웃었다.
“그게, 니 덕에 동네가 많이 좋아졌거든. 작년만 해도 죽을 맛이었는데…….”
“에이, 또 그 이야기 한다. 됐어요. 그만해요.”
사실 들으면 기분 좋기는 했다.
동시에 민망하기도 했고, 부끄럽기도 했으며 분위기도 어색해졌다.
사실, 강주혁이 무슨 생각하는지는 모르겠다.
기린 빌딩에 새로 넣을 상가들을 정하면서 인근 상권 고려를 많이 했다. 조성기와 반대로, 가능한 겹치지 않게 하면서 타 지역 사람들까지 끌어올 수 있게 고민했던 것이다.
그런 뒤, 그 결정에 영향을 준 게 나라고 소문 내버렸다.
덕분에 요즘에는 동네 아저씨, 아줌마들한테 칭찬 아닌 칭찬을 듣고 있었다.
사실 동네 상권이란 게 뻔했다.
한 다리 건너 이웃이니, 치킨집 옆에 치킨집을 차리면 욕을 먹는다. 떡집 옆에 떡집을 차리고, 슈퍼 옆에 마트나 편의점 차리면 개새끼가 되는 거고.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말 동네 장사여서다.
어쨌든, 최근에는 혼란했던 상권이 서서히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었다. 그 덕에 화끈 오뎅도, 형님네 버거도 확장을 선택할 수 있었던 것이니까.
“그런데, 넌 지성분식 하나만 할 거냐?”
“당연히 아니죠. 형이나, 덕수 형처럼 근처에 하는 게 아니라 좀 큰 상권으로 계획하고 있어요.”
“그거… 위험하지 않을까?”
“대신 준비를 철저히 해야죠. 일단 수영 로터리 쪽에 가게 하나 알아보고는 있는데, 우와! 세가 그냥 이백부터 시작하는데 엄두가 안 나더라고요.”
사실 월세 정도는 어떻게든 감당할 수 있었다.
그만큼 유동인구가 많았고, 그걸 감안하면 지금보다는 훨씬 더 벌 수 있었다.
그럼에도 선뜻 나서기 어려운 것이, 지성분식은 아직 많이 부족했다. 그래서 출장 알바를 겸해 다양한 경험을 쌓으려고 하는 것이니까.
그렇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사이 시간이 훌쩍 지났다.
두 사람은 위생실에서 씻고, 조리실로 들어간 뒤 다시 튀김 속을 확인했다.
킁킁. 킁킁킁.
냄새를 맡아보니 확실히 아까보다 향이 진했다. 그런데, 그 마지막에 약간의 시큼함이 느껴졌다.
“형, 맡아봐요.”
김창주 역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 미묘함이 선뜻 느껴지지 않았던 것이다.
“조금 이상하긴 한데…….”
확실하지 않으니 결정 내리기 어려운 모양이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이거 튀겨도 되긴 돼요. 선도가 조금 불안하긴 하지만 맛으로는 거의 구별하기 어려울 걸요?”
“그래서? 튀기자고?”
“아뇨. 무조건 폐기해야죠. 괜히 애들 배탈이라도 나면 안 되니까요.”
“끄응.”
김창주는 한숨을 내쉬었다.
강형우의 말이 맞다는 건 알고 있지만, 이것만 돈이 십만 원이었다. 게다가 이걸로 고추튀김을 만들면 그 배는 벌 수 있었다.
하지만 고민은 길지 않았다.
일단 수상하면 무조건 폐기였다. 그 방식을 납득했기 때문에 이렇게 확장한 거다.
“이건 버린다 치고, 다른 건?”
“다 확인해 봐야죠.”
강형우는 곧바로 냉장고를 열어서 재료들을 다 꺼냈다.
다행이 크게 이상 있는 건 없었는데, 문제는 냉동실 안쪽의 재료들이었다. 전부 제대로 땅땅하게 얼어 있었는데 이상하게 바닥에도 물기가 얼은 흔적이 있었던 것이다.
“어라? 이거… 설마?”
강형우는 어이가 없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더니 냉동실 안쪽을 꼼꼼하게 살피기 시작했다.
반대로 김창주는 조금 헛갈려 했다.
“뭔데?”
“그게, 아무래도…….”
강형우는 확인을 하기 위해 또다시 조리복을 벗고 바깥으로 나갔다.
잠시 후, 그 원흉(?)을 찾을 수 있었다.
강형우가 데려온 사람은 현장 목수였다.
“하이고, 죄송합니다. 저희는 그것도 모르고. 아, 원래 공사 일이란 게 그렇지 않습니까?”
그러면서 설명하는데, 일리가 있기는 했다.
공사 현장에선 공구와 자재들이 많이 굴러다닌다. 해서 마치면 싹 정리하고, 혹시나 있을 누전 때문에 차단기까지 전부 내리고 나간다는 것이다.
이건 정석이었다.
문제는 그게 원인이라는 거다. 전원을 끄는 바람에 아침까지 조리실 냉장고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는 그것뿐만이 아니었다.
공사 반장이 말하길, 어제 화끈 오뎅 본점에서 재료를 가져오면서 잠시 뒷문 쪽에 방치가 됐단다.
큰 짐이 오가면서 통로가 막혀 바로 조리실로 넣지 못했다나?
그 이야기를 들은 김창주는 버럭 화를 냈다.
“이훈이, 이 자식을 그냥!”
“왜요?”
“그게, 내가 어제 바빠서 재료 옮기는 걸 맡겼거든. 당연히 알았으면 그렇게는 안 했지.”
가을이 코앞인데도 부산의 낮은 뜨거웠다. 그러니 음식 장사 하는 사람들은 특별히 주의해야 했다.
낮에 잠시만 밖에 뭘 내놔도 금세 상하기 일쑤였으니까.
“에이~ 그래도 잘된 거죠. 사람 입에 들어가기 전에 찾은 게 어디예요.”
“그야 그렇기는 하지만…….”
김창주는 튀김 속을 보더니 아쉬워했다.
강형우는 그걸 보면서 속을 확 긁어버렸다.
“형, 이참에 냉장고 안에 것도 싹 버리죠?”
***
“운이 좋다면 좋은 거지.”
강형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밤늦게 아까 했던 작업을 다시 진행했다. 지성분식에 와서 냉장고를 싹 털어버린 것이다.
불과 몇 달 전 공사할 때 새로 정리했지만, 혹시나 빼먹은 게 있을까 봐서다.
근데 진짜 있기는 있었다.
“윽! 이건 뭐야?”
강형우가 검은 봉다리 몇 개를 꺼내 공지혜에게 내밀었다.
살짝 풀어본 공지혜는 화들짝 놀랐다.
“어머, 이게 여기 있었네요?”
“그니까 뭐냐고?”
“그게, 초읍에서 유명한 만두인데… 포장해서 가게 가져왔거든요.”
사람 수대로 사왔는데, 의외로 양이 많아서 남았다. 그럼 버리면 되는데 나중에 먹겠다고 잠시 넣어놨다가 까먹었다는 것이다.
근데, 그런 게 한두 개가 아니었다. 냉동실 안쪽까지 뒤지자 거의 열 봉지가 넘게 나왔던 것이다.
그걸 본 공지혜는 살짝 겁먹은 표정을 지었다.
강형우는 피식 웃더니, 배운 걸 고대로 써먹기로 했다.
“앞으로 냉동실 넣는 건 전부 투명한 비닐만 쓰고, 밀폐용기나 저 옆에, 진공 포장기만 써. 바로 확인할 수 있게.”
“예.”
“그리고 냉동실은 매주 한 번씩 확인하고 청소하는 걸로 하자.”
말 끝나기가 무섭게 공지혜가 메모를 시작했다.
그렇게 지성분식의 냉장고를 해결한 강형우는, 집에 와서 자취방 냉장고를 열었다.
씨발!
먹다 남은 치킨 조각들을 모아보니, 닭 농장을 차려도 될 정도였다.
범인(?)은 당연히, 이강석과 백창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