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68화 (68/251)

# 68

68화 뭐라고 해야 할지

“에이~ 이모, 왜 그래요?”

공지혜가 슬며시 다가와 순이 이모를 끌어안았다.

순이 이모가 눈웃음을 짓는데, 눈가에 조금씩 물이 맺히기 시작했다.

“그러게. 좋은데 왜 이러지.”

손끝으로 눈가를 훔친 순이 이모는 몇 번이나 앨범을 매만졌다.

“내가 식당 일 오래했는데, 이런 적이 처음이어서 그런가 봐. 그냥 사진인데, 대수롭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이러다 펑펑 울 것 같은 분위기였다.

역시 구원투수 공지혜가 나섰다.

“어머~ 이모 여기, 진짜 이쁘게 나왔다.”

앨범 한쪽을 가리키자, 다들 우르르 몰려들었다.

홍태구의 갑작스러운 지시에 강형우가 순이 이모를 번쩍 안아 드는 컷이었다. 당황스러워하는 얼굴이 고스란히 찍혔는데, 바로 옆에 막 웃음을 터뜨린 장면이 이어졌던 것이다.

연속 촬영이 만든 드라마 같은 상황!

강형우는 이미 본 거지만 처음인 척 슬며시 끼어들었다.

“어우, 이거 찍을 때~ 진짜 허리 나가는 줄 알았어요.”

일부러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리는데, 장난스러운 그 엄살에 순이 이모가 등짝을 후려쳤다.

진짜 맞을 때마다 느끼지만 순이 이모는 손이 무지하게 매웠다. 등짝이 얼얼하다 못해 화끈화끈할 정도였으니까.

“근데 지혜 언니도 진짜 이쁘게 나왔네요.”

정은혜가 한쪽을 가리키는데 거기도 강형우가 열일 했다. 홍태구 이놈이 무슨 원한이 있었는지, 이 역시도 공지혜를 번쩍 안아 드는 장면이었던 것이다.

강형우가 다시 허리를 두드리며 엄살을 부렸다.

“이모가~ 진짜 더 편했어.”

그 순간 공지혜가 피식 웃었다.

“그래도 앞자리 달라졌거든요. 이제 오십 대랍니다.”

“오십… 구?”

슬쩍 묻다가 죽을 뻔했다. 순이 이모와 정은혜가 무시무시한 눈빛을 날렸던 것이다.

“오빠, 그러다 진짜 큰일 나요.”

“너 그러다 평생 혼자 산다?”

은혜까지는 감당하겠는데, 순이 이모 말은 섬뜩했다.

반대로 공지혜는 당당하게 가슴을 내밀었다.

“그래도 십사 키로나 뺐거든요?”

“그럼 그 전에는?”

오십 더하기 십사는 육십사다. 근데 거기서 플러스라면… 전에 거짓말을 한 게 된다.

분명 칠십은 안 넘는다고 했던 것 같은데?

강형우가 빤히 쳐다보자 공지혜가 주먹을 들었다.

“올해 안에 사십 대까지 뺄 거라고요.”

“아이고, 그러면 너무 말라서 안 돼. 여자는…….”

갑자기 끼어든 순이 이모는 슬쩍 날 노려보더니 공지혜한테 귓속말을 했다.

내용은 모르겠지만 애 얼굴이 갑자기 벌게졌다.

“험험, 어쨌든 가볍네. 내 몸무게 삼분의 이도 안 되는데.”

나름 위로라고 말했는데도 반응은 더 안 좋았다.

결국 강형우는 만만한 이강석을 불렀다.

“주방 안쪽에 들어가서 망치하고 못하고 챙겨와.”

그렇게 이강석을 보낸 뒤, 박스 아래쪽에 있던 커다란 액자를 꺼내었다.

거의 세 번째인가, 찍었던 사진이었다.

강형우를 중심으로 모인 사진이었는데, 양옆으로 공지혜와 순이 이모가 있었고 양 끝에 인정둥이가 섰다.

그 앞쪽에 정은혜와 이강석, 백창호가 무릎을 꿇고 있었다.

막 힘이 빠지기 시작한 터라 표정이 자연스러웠다. 게다가 햇살마저 밝게 빛나고 있어서 조명도 좋았고, 살짝 뽀사시 효과가 들어간 듯한 분위기가 연출되어 있었다.

강형우는 잠시 가게를 둘러보다 적당한 위치를 찾았다.

입구 문 열고 들어서면 약간 왼편으로 오픈 주방의 입구가 보인다. 거기 위쪽에 적당한 공간이 있었는데, 손님들 자리에서 무척 잘 보일 것 같았다.

강형우는 의자에 올라서서 위치를 잡았다.

“여기 괜찮겠어?”

“오빠, 좀 더 왼쪽. 왼쪽.”

“여기?”

“예. 거기요.”

다시 한번 확인을 위해서 돌아보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

강형우는 표시된 자리에 못을 박았다. 그런 뒤 액자를 걸고 아래로 내려왔다.

“흐음, 괜찮네.”

밝은 하얀색 벽에 연한 갈색의 테두리였다.

중심에 지성분식 간판이 보였고, 그 아래 강형우를 중심으로 다들 모여 있었다.

“잘 나왔네.”

제일 먼저 순이 이모가 감상평을 했고, 다들 한마디씩 꺼냈다.

“와! 언니 너무 이쁘게 나왔다. 훨씬 날씬해 보이는데요?”

“그야 한 발 살짝 뒤로 뺐거든. 그리고 오빠 옆에 있으면 다 날씬해 보여.”

“야! 차라리 내가 곰 같다고 해라.”

그 말에 다들 빵 터졌다.

특히 순이 이모가 유독 좋아했다.

“하긴, 나도 처녀적 몸매처럼 나왔네.”

“우리 이모가 제일 예쁜데요? 히잉. 나는 왜 강아지처럼 나온 거지?”

정은혜가 팔짝팔짝 뛰는데 그럴 만도 했다. 이강석과 백창호 사이에 끼어 있어서 유독 조그맣게 보였던 것이다.

어쨌든 다들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괜히 미안해졌다.

이럴 줄 알았으면 진즉 할 것을.

근데 고작 사진 한 장 걸었을 뿐인데, 느낌이 전혀 다르게 다가왔다.

이제 진짜 가족 같다는 그런 기분이랄까?

어떤 소설에서 그러더라.

여행 갔다 오면 남는 건 사진뿐이라고. 근데 그때의 감정을 기록하는 게 바로 사진이라고 했다.

***

“역시 매출이 많이 줄었네.”

공지혜가 열심히 하고 있지만, 전체적으로 손님이 줄었다.

겨울에는 어묵 국밥으로 올렸고, 봄에는 파스타로 쏠쏠하게 벌었다. 여름 전에 돈가스가 폭발했지만 슬슬 오픈발이 마무리되고 있었다.

그럼에도 월 매출 사천은 가뿐히 넘었다. 고정 비용이 올라 이천만 원이 넘게 나갔지만 세금 빼고도 천만 원 이상이 확실하게 남았던 것이다.

이런 수순이라면, 딱 겨울까지만 장사하고 내년에 가게 하나를 더 확장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이미 돈가스는 검증된 아이템이었으니까.

그걸 증명하듯, 오늘도 강주혁이 왔다갔다.

아주 설거지가 필요 없게 소스까지 박박 긁어먹더니 푹 한숨을 내쉬더라.

다른 건 알겠는데, 한약재 성분까지는 모르겠다고.

어지간하면 먹어보면 다 맞추는데 거기까진 아직 무리란다.

정말이지 신의 혀가 이런 건가 싶었다.

어쨌든, 강주혁이 왔다 간 이유가 있었다. 덕분에 난, 내일부터 다른 곳으로 출근한다.

“흠. 이런 시스템이군요.”

반은 충격, 반은 실망이었다.

현재 ‘제대로 한 끼’가 오픈 준비가 한창이었다.

곧 있으면 화끈 오뎅 확장 공사가 끝난다. 거기에 맞춰서 동시에 오픈할 거라고 예행 연습 중인 상황인 것이다.

현재 기린 빌딩은 이전과는 다르게 많이 바뀌었다.

홍화반점이 없어지고, 조가네 떡볶이와 합쳤다.

그 자리에 화끈 오뎅이 들어서면서 전반적으로 시스템도 많이 변했다.

원래 화끈 오뎅은 밖에서도 주워 먹고, 안에서 시켜먹고, 포장해서 들고 가는 방식이었다.

하지만 2호점은 거의 맥도X드 식이라 보면 된다.

안에 들어가 메뉴판을 보고 카운터에서 주문하면 음식이 나오는 형태로 바꾼 거다.

그건 제대로 한 끼도 마찬가지였다.

원래 김밥천왕도 컸는데, 강주혁이 단단히 결심했다.

짝퉁으로 운영하던 번개 치킨을 없애고 더 크게 확장해 버린 것이다.

고작 메뉴 세 개인 가게를 이렇게까지 하다니.

솔직히 될까 싶었는데, 막상 주방에 들어와 일을 배워보니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다시 한번 해볼래?”

고지우 누나가 지시를 내렸다.

현재 이 누님께선 화끈 오뎅 2호점과 제대로 한 끼 40호점의 총괄 매니저였다. 두 가게의 모든 시스템을 꿰고 있었고, 사람을 구하고 재료 수급하는 등의 관리 일을 담당했던 것이다.

맞다.

현재 강형우는 일종의 인턴 사원이었다. 강주혁의 제안을 받아, 좀 더 제대로 된 시스템을 배우고 공부하기 위해서 들어온 것이다.

일종의 예외 인원이라고나 할까?

물론 서로 윈윈 하는 거였다.

강형우는 체계화된 방식을 배우고, 강주혁은 사람 펑크 날 때를 대비해 비상 인력을 늘리는 식이었으니까.

“일단 주문이 먼저 들어오면, 여기 주문표가 나오고요.”

강형우의 말에 고지우가 카운터로 향했다.

거기서 포스기를 만지자 주방 천장의 기계가 주문표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강형우는 그걸 받아서 메뉴부터 확인했다.

“간장 하나, 고추장 둘, 오겹살에 해물된장.”

표를 읽자마자 고지우가 움직였다.

우선 일인용 나무 트레이 세 개를 주방 앞쪽에 놓았다. 그리고 세 칸짜리 반찬 그릇을 들더니 깻잎 장아찌와 김치, 무말랭이 식해를 덜어서 담았다.

또 세 칸짜리 반찬그릇에 편 마늘과 썬 고추, 쌈장을 담았다.

그렇게 기본 반찬이 나가는 사이 강형우는 조리에 들어갔다.

“우선 오 인분 팩.”

냉장고에서 5인분짜리 팩을 세 개 꺼냈다.

본사에서 나오는 고기 전용 팩이었는데, 평소에는 5인분짜리를 쓰고 마칠 시간에는 2인분짜리를 꺼냈다.

시스템 자체가 일단 개봉한 건, 안 나가면 무조건 폐기였다. 그 로스를 줄이기 위해 따로 두 종류로 나오는 것이다.

“제일 먼저 찜기.”

강형우는 제일 오른편에 있는 가스에 불을 붙였다.

오겹살 수육 팩은 700g짜리였는데, 일 인분은 130g이었다.

한두 조각씩 더 나갈 걸 감안해 50g이 더 들어 있었는데, 전자저울에 여덟 조각을 올려놓으니 딱 133g이 나왔다.

우선 그걸 찜기에 넣고 뚜껑을 덮었다.

그사이 고지우는 밥 세 그릇을 퍼서 트레이에 올렸다.

이제 남은 건 국하고 고기뿐.

강형우는 고추장 불고기 팩을 뜯어 270g을 맞췄고, 동시에 팬도 불에 올렸다.

그다음, 미리 그릴에 구워 놓은 양파를 담고 한 번 볶아놓은 당근과 길쭉하게 채 썬 파를 집어넣었다.

참기름과 식용유를 섞은 향미유를 뿌리고 야채를 볶다가 고기까지 투하.

이걸 강불에서 3분만 볶으면 된다.

그렇게 고추장 불고기 2인분이 준비되는 사이 간장 불고기 만들기에 들어갔다.

이것도 130g을 맞춰서 야채와 볶으니 금방이었다.

그다음 접시에 각각 나눠서 담으면 끝.

오겹살도 마찬가지였다.

조리하는 사이에 다 쪄져서 이미 촉촉했다. 그걸 접시에 예쁘게 담고 흑깨를 일렬로 뿌리면 된다.

고지우는 그사이 국까지 다 담았고, 해물 된장을 준비하고 있었다.

정량 국자를 가득 채우면 거의 물 480㎖였다.

그걸 붓고 미리 공장에서 만들어져 나온 해물 블록과 된장 스프를 넣은 뒤, 이제 가게에서 준비한 두부, 양파, 파를 넣고 끓이면 된다.

정말이지 조리가 이렇게 간단할 수가 없었다. 주방장도 필요 없었고, 알바들한테만 가르쳐도 한 시간이면 충분했던 것이다.

물론 짧은 시간 내에 나가려면 숙련된 경험이 필요했다.

하지만, 이건 조리사의 범위가 아니었다. 오히려 기능공에 가까운 것이다.

“휴우~ 그래도 대단하긴 하네요.”

조리가 잘됐는지 확인하기 위해 냄새를 맡았다. 그런데 불고기에선 불 향이 났고, 수육에선 솔 향까지 선명했다.

“진짜 냄새 작살이네요. 맡기만 했는데 군침이 나는 걸 보니…….”

“본사에서 조리 다 해서 가져오는 거니까.”

HACCP, 일명 햇썹이었다.

청결 인증 받은 공장에서 엄선된 고기를 선별해 우선 숙성에 들어간다. 그걸 규격대로 커팅해 양념을 입힌 다음 타이머에 맞춰서 조리한다는 것이다.

그걸 훈연기에 집어넣고 향을 입힌 뒤, 습식으로 온도를 식힌 후 진공 포장을 한다.

그다음은 각 지점 냉장고까지 냉장 배송이었다.

물론 여기에도 규정이 있었다.

진공 포장의 냉장 유통은 최장 열흘이었다.

냉동 보관 시 반년 이상도 가능하지만, 얼린 고기는 맛이 떨어진다. 그래서 무조건 냉장으로 가는데, 회사 자체적으로 신선함을 유지하기 그렇게 정한 것이다.

즉, 가게 들어가서 일주일 안에 안 팔리면 이 역시 전량 폐기라는 의미였다.

확실히 이런 부분에선 꼼꼼하긴 했다.

어쨌든 가게에서 할 일은 야채를 준비하고 미리 조리해 놓는 게 전부였다.

양파의 경우 소금 후추로 간을 한 뒤, 그릴에서 살짝 그을릴 때까지 굽는다. 당근이나 파 같은 것도 딱 식감이 남을 정도까지 반 조리해 놓는 것이다.

즉, 신선해야 하는 부분만 작업하고 나머지는 팩을 그냥 조리하면 끝인 셈.

“근데 참… 뭐라고 해야 할지.”

이런 방식이 잘못됐다는 건 아니었다.

어쩌면 이게 당연한 것일지도.

하지만 지금까지 음식 했던 경험 같은 게 있어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그런 강형우의 표정을 본 고지우는 씨익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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