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1
61화 너한테 배웠다던데
요즘 들어 메모하는 습관이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생각이 점점 많아지더라.
제일 먼저, 나한테 부족한 게 무엇인가를 적었다.
음식을 만드는 실력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내 밥상에서 일하면서 하루 수백 인분 넘게 조리했고, 그렇게 몇 년을 보냈다.
덕분에 어지간한 음식은 다 만들어봤고 외우고 있는 조리 매뉴얼도 최소 백 개는 넘었다.
그러니 요리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문제는 맛의 깊이가 부족하다는 거였다. 뭘 만들어도 큰 특색이 없었고, 먹어보면 꼭 어디서 먹어본 것 같은 느낌이 든다는 거다.
그게 나쁘다는 건 아니었다.
적어도 맛없다고 욕을 먹지는 않으니까.
하지만 음식 장사는 그래선 안 된다. 다시 가게를 찾게끔 하는 부분이 반드시 필요했던 것이다.
“나한테 부족한 게 뭘까?”
곰곰이 생각해 봤지만, 딱히 이거다, 라고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그래서 더욱 답답했다. 마치 문 없는 벽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는 느낌이랄까.
해서 당분간은 무작정 부딪혀 보기로 했다.
***
“야, 너 얼굴이…….”
강형우는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형님네 버거에 들어서자마자 인사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쳐다봤는데, 김민석의 얼굴이 난장판이었다.
“헤헤, 그렇게 됐습니다. 형님!”
김민석이 머리를 긁적거리는데, 심지어 머리카락도 없었다.
“아니, 머리는 왜 그래?”
“그게, 덕수 형님께서 염색한 게 보기 싫다고 해서…….”
“그래도 그렇지. 삭발은 좀 아닌 것 같은데?”
“하하, 남자 아닙니까. 남자! 할 때는 화끈하게 그냥 싸악.”
그러면서 두 손바닥으로 민머리를 쓰윽 문지르는데, 진짜 파리도 미끄러질 정도로 반짝거렸다.
머리에 참기름이라도 바르나?
“근데, 너 또 싸웠냐? 얼굴이 왜 그래?”
강형우가 김민석의 턱을 잡았고 요래조래 돌려보는데, 어디 성한 구석이 없었다. 마치 빵 반죽기에 얼굴을 넣고 돌린 듯, 사방이 멍투성이였던 것이다.
“절대 안 싸웠습니다. 제가 형님들하고 약속한 게 있지 않습니까?”
막장 권투 시합 결과로 인해 석 달 동안 충성을 맹세했다.
그 뒤, 술자리에서 덕수 형과 의형제를 맺었다면서 평생 함께 가자고 주사까지 부렸었다.
그때 신신당부한 게 주먹질하지 말라는 거였고, 김민석은 맞아 죽더라도 싸우지 않겠다고 했었다.
“근데, 왜 그래? 그리고 덕수 형은?”
“형님은 지금 경찰서 가 있습니다.”
“뭐?”
“아, 그게 안 좋은 일은 아니고요. 어제 일이 좀 있었는데요.”
정덕수와 김민석이 문을 닫으려는데, 양아치 녀석들이 떼로 찾아왔단다.
그때 가게 돈 훔친 점장의 친구들이었다.
“우리나라 법이 문제예요, 법이. 액수도 적고, 합의 봤다는 서류하고, 피해자가 선처해달라고 하면 거의 백 퍼 집행유예거든요. 절도죄도 벌금 조금 내면 그냥 나온다는 거죠.”
놈들이 그걸 노렸단다.
합의서를 써달라는 거였다. 거기에 선처해 달라고 쓰라고 협박까지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실 덕수 형님도 적당히 넘기려고 했거든요? 근데 하는 짓이 괘씸하잖아요. 알바들 겁줘서 쫓아내고 형님 없을 때 가게 와서 깽판 치고 그랬으니, 성질나서 못해준다고 그랬죠.”
그다음 전개는 보나 마나였다. 김민석의 얼굴이 사태를 예상하게 해주었던 것이다.
“덕수 형, 많이 다쳤어?”
“푸하하하! 형님. 제가 몸빵 다 했습니다. 이게 영광의 상처죠.”
김민석은 당당하게 자신의 무용담을 늘어놓았다.
무려 5 대 1의 혈투였다. 덕수 형을 피신시키고 혼자서 모조리 제압했다나?
“새끼, 뻥도 적당히 쳐야지.”
“진짜라니까요. 어제 병원에서 진단서 뗐는데 저 전치 6주 나왔습니다. 이거 보라고요.”
그러면서 멍든 얼굴을 내미는데, 글쎄다.
저렇게 만신창이로 터져놓고 이겼다고 하니 믿을 수 있어야지.
“그런데 형님은 어쩐 일로…….”
“덕수 형 부탁받아서 오늘 하루 봐주기로 했다.”
사실은, 장사 어떻게 하는지가 궁금해서였다.
잘된다고만 들었지, 어떤 식으로 운영하는지 손님을 어떻게 대하는지는 전혀 몰랐으니까.
맞다.
강형우는 이번 기회에 근처 가게들을 전부 돌아볼 계획이었다.
그러면서 부족한 걸 찾으면 좋았다. 그게 아니라도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이런 경험들이 장사에 도움이 될 것 같았던 것이다.
그 첫 번째가, 형님네 버거였다.
“근데, 그 얼굴로 장사가 되겠니? 손님들 다 도망갈 것 같은데?”
“에이, 형님도. 장사 하루 이틀 합니까? 그리고 얼굴마담은 따로 있습니다.”
정말 말이 무섭다는 게 이런 거였다. 곧바로 문이 열리고, 덕수 형과 예쁜 여자 한 명이 가게 안으로 들어왔던 것이다.
근데, 여자 얼굴을 보는 순간 갑자기 거시기가 움찔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 정덕수가 말했다.
“어, 형우 왔었네. 일단 여기는…….”
김민석이 불쑥 끼어들며 여자의 어깨를 잡았다.
“하하, 형님. 제 와이프입니다.”
“아직 아니거든?”
그러면서 김민석의 손을 쳐내는데, 확실히 기억이 났다.
불 돈가스 때문에 싸웠던 바로 그 여자였다.
“그때 너 거시기 깐…….”
“하… 하하. 그게 언제 적인데, 지금은 잘 지냅니다.”
“차였다고 하지 않았나?
“하하! 형님. 원래 인생이 다 돌고 도는 그런 거죠. 어쨌든 우리 같이 살기로 했습니다.”
김민석이 좋다고 웃는데, 여자는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데도 떨어지지 않는 걸 보니 뭐가 있기는 있는 모양이었다.
정덕수는 그런 두 사람을 흐뭇하게 쳐다보며 말했다.
“일단 천천히 이야기하기로 하고, 오픈 준비부터 하자.”
***
“어서 오세요.”
여친 이름이 윤다정이라고 했었다.
딱 보는데, 이전에 봤던 여자가 맞는가 싶었다.
머리카락은 검은색으로 염색을 했고, 화장도 거의 안 한 것처럼 보였다. 조리모를 쓰고 단정하게 뒤로 묶으니 거의 고등학생처럼 보일 정도로 앳된 얼굴이었던 것이다.
나이는 이제 스물이었다.
올해 초 졸업하고 호프집에서 알바하다가 김민석을 만났단다.
좋아서 동거 비슷하게 하고 있었는데, 들어보니 불 돈가스 사건(?) 때는 서로 불만이 끝까지 차 있었다고 했다.
그게 일종의 도화선이었다나?
그때는 웬 미친 커플이 지랄하나 싶었는데, 그럴 만한 사정이 있었던 거다.
어쨌든 김민석이 마음을 비우고 정착을 하자 다시 만나게 됐단다.
그때는 다시는 안 볼 것처럼 하더니만,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었다.
“왕버거 셋 포장요.”
“예. 주문하신 불고기 왕버거 세트 나왔습니다.”
“감사합니다.”
윤다정은 정말 일을 잘했다.
지성분식으로 치면 공지혜의 역할을 하고 있었는데, 알바 경력이 있어서인지 막힘이 없었다.
가장 놀란 건, 김민석이었다.
주문이 들어오고 나갈 때까지 정말 쉴 틈 없이 일했다.
패티를 굽고, 밥버거를 뭉치고, 조리대 청소도 하면서 동시에 자신의 위생까지 신경 쓰고 있었다. 틈틈이 수건으로 땀을 닦는데, 정말 내가 알고 있던 그 김민석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형님, 이거 설거지.”
“그래.”
접시를 받아 드는데, 김민석의 눈은 어느새 조리대로 향해 있었다.
그만큼 장사에 집중하고 있다는 의미였다.
강형우는 주방 잡일을 도와주면서 오후 내내 두 사람을 살폈다.
아주 호흡이 척척 맞는 것이, 마치 십여 년을 함께 장사한 부부 같았다.
“보니까 어때?”
정덕수가 조심스럽게 묻자 강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얘들 일, 진짜 잘하던데요?”
“니가 봐도 그렇지?”
“예. 저 정도면 아예 맡겨도 되겠는데요?”
정덕수는 피식 웃더니 담배를 한 대 내밀었다.
그걸 받아들고 피는데, 갑자기 사레가 걸릴 뻔했다.
“안 그래도 쟤들한테 여기 맡겨볼까 싶다.”
“예?”
“많이 생각해 봤는데 큰길가하고 여기하고 상권이 미묘하게 다르더라고.”
공사는 거의 끝났다고 했다.
지금 알바들 모집하고 있었고, 오픈까지 일주일도 안 남았단다.
그래서 고민이라고 했다. 여길 접고 합칠지, 아니면 그냥 놔두고 계속할지를 말이다.
“왜요? 아예 옮기는 거 아니었어요?”
“그랬지. 그랬는데…….”
형님네 버거 본점은 윗동네 학생들이 내려오면서 많이 사서 올라간다고 했다.
반대로 2호점은 도로가에 있어서 거리가 좀 있었다. 학생들이 내려왔다 다시 올라가기에는 아무래도 부담스럽다는 것이다.
강형우는 진지하게 말했다.
“그럼 수익이 쪼개질 텐데요? 게다가 사람 더 쓰는 만큼 인건비도 많이 나갈 테고요.”
“나도 알아. 그리고, 그럼 어때? 애들 열심히 살겠다고 하는데, 좀 도와줄 수도 있는 거잖아.”
표정을 보니 진심이었다.
고작 한 달 남짓한 시간 동안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들어보니, 민석이 이 새끼도 참 불쌍한 놈이더라고. 중학교 때까지 왕따였데.”
맞는 게 무서워서 근육을 키웠다고 했다. 그러다 싸움판에 휘말리게 됐고, 어쩌다 보니 일진들 패거리와 함께하게 됐다는 것이다.
그 뒤는 뻔하디 뻔한 스토리였다.
선배들을 만나 취직이 됐는데, 그게 조폭 똘마니였다. 그러다 대신 죄를 뒤집어쓰고 전과자가 됐다는 것이다.
덕수 형이 고민하는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마치 본인의 과거를 보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 테니까.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어차피 형, 마음속으로 벌써 정한 거 아니에요?”
“사실은 며칠 전까지도 고민했었는데, 어제 일이 있고 나니까 나름 확신이 서더라고.”
“아! 경찰서… 그거 잘됐어요?”
“잘됐지.”
정덕수는 또다시 담배 한 대 빼어 물고 불을 붙였다.
후우~ 하면서 연기를 뿜어내는데, 표정을 보니 속이 후련한 것 같았다.
일단 경찰서 가서 절차대로 마무리 지었단다.
점장과 그 친구 일당들은 현재 구치소에 있었다. 절도, 협박, 폭행, 기물 파손에 마지막으로 공무집행 방해죄가 추가되어서였다.
그러면서 어제 일을 이야기하는데, 김민석이 사기를 쳤다.
5 대 1? 영광의 상처?
다 개소리였다.
일단 놈들이 시비를 걸자, 덕수 형과 김민석은 주방으로 피신한 뒤 경찰에 신고를 했단다.
그걸 막기 위해 양아치들이 달려들었는데 다행히 주방 입구는 무척 좁았다. 거기서 후라이팬과 냄비를 들고 버텼고, 그렇게 대치하던 중에 경찰차 사이렌이 울렸다는 것이다.
“그 새끼들이 도망치려는데, 갑자기 민석이가 튀어나가는 거야. 한 놈이라도 붙잡겠다고 바짓가랑이를 잡고 늘어지는데…….”
그러다 신나게 쥐어 터졌단다. 밟히고 차이고 하면서 피멍이 들었다는 거다.
“아니, 왜 그랬데요?”
“이 동네가 좀 그렇잖아. 차 못 들어가는 골목도 많고, 일단 도망치면 잡기 어렵거든.”
“그거야 그렇지만.”
덕수 형 말대로였다.
이 동네는 골목도 복잡하고 가로등도 없는 곳이 많아 구석에 숨으면 찾기가 어려웠다. 그러다 근처 집에 들어가서 숨기라도 한다면 경찰도 손을 놓아야 하는 것이다.
“어쨌든 민석이가 잡고 늘어진 덕에 겨우 다 붙잡을 수 있었어. 그 과정에서 경찰 두 명이 다치기도 했으니, 깜빵 확정이지.”
이후의 일은 경찰들이 알아서 다 처리하기로 했단다. 그래서 야밤에 병원 가서 진단서 끊고 오늘 아침에야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근데, 그래도 그렇지 두들겨 맞으면서까지 잡고 늘어지다니 무척 의외인데요?”
“그거, 너한테 배웠다던데?”
“예?”
이게 무슨 개소리란 말인가?
그렇게 황당해하고 있는데, 정덕수가 피식 웃었다.
“한 놈이라도 붙잡아야 가게 집기 박살 난 거 보상받을 수 있다고 하더라고. 기물 파손인가? 그래서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 거래.”
“아!”
그동안 김민석을 애물단지 취급했었다. 쓰기도 버리기도 애매한 그런 놈이었던 것이다.
그래도 다행이었다.
적어도 겪은 건 써먹을 줄 아는 놈이었으니까.
***
고작 이틀이지만 강형우는 여러 가지를 배울 수 있었다.
음식 만들기? 장사? 손님 대하는 거?
그런 것도 중요하기는 했다.
하지만, 그 이상의 뭔가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정덕수는 필요한 재료만 준비해 주고, 가게 전반적인 상황만 확인하고 나갔다.
그다음은 윤다정이 주문을 받고, 김민석이 만든다.
크게 보면 이런 단순한 과정이 전부였다.
그런데, 확실히 지성분식과는 미묘하게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