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0
60화 다녀왔습니다
“제가 가게를요?”
공지혜는 의외라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조금만 생각해 봐도 결론은 나와 있었다.
일단 동생 영지의 친구였다. 게다가 우리 집에서 생활하고 있었고, 지성분식의 창업공신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연히 공지혜를 빼고 누굴 생각하겠는가?
“내가 누굴 믿고 자리를 비우겠어?”
“그건…….”
공지혜는 슬쩍 고개를 돌렸다. 아무래도 순이 이모와 이강석을 보는 모양이었다.
“순이 이모하고는 전에 이야기했는데, 주방 관리 이상은 부담스럽대.”
딱 지금 수준이 좋다고 했다.
물론 전날 뒷정리가 밀리면 일찍 출근해 돕기도 했고, 장사가 바쁘면 늦게까지 거들어주기도 했다.
그건 자신이 할 수 있는 선에서 해주는 거라, 돈은 더 안 받아도 된단다. 오히려 장사가 잘돼서 계속 가게에서 일할 수만 있다면 족하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여러 식당들 떠도는 것보다 한 곳에서 오래 일하는 게 훨씬 좋단다. 그리고 김밥천왕보다 지성분식이 백 배나 더 낫다고 했다.
해서 순이 이모의 포지션은 딱 주방으로 한정했다.
하지만 그건 그거고, 고마운 건 고마운 거다. 그래서 몰래 애들 맛난 거 사주라고 월급을 조금 더 넣어주기는 했다.
“이모는 애가 있어서 가게 매이는 거 싫어하잖아.”
“그건 저도 아는데요. 강석이는요? 오빠가 데려다 키우려는 거 아니었어요?”
어감이 조금 이상하긴 한데, 그렇게 보는 것도 무리는 없었다.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지만, 이강석은 내 제자라는 이미지가 있었다. 같이 출퇴근하는 사이이기도 하고, 요리 외적으로 이것저것 가르치기도 했으니까.
“걔는 아직 주방 일하고 요리 더 배워야 해. 그리고 밑준비나 이런 건 너하고 나밖에 모르잖아.”
말 그대로였다.
지성분식을 리모델링한 뒤, 약간의 버거움을 느꼈다. 혼자서 대부분을 처리하는 게 쉽지 않아,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공지혜를 가르친 것이다.
고기 자르고, 소금 후추 간해서 숙성시키는 것부터, 다시마 물로 밥 짓는 것, 소스 베이스 만드는 것과 육수 우리는 법까지, 거의 모든 것을 알려주었다.
그걸 공지혜가 꼼꼼히 메모했으니 맛을 이어가는 건 문제가 없을 터.
“혼자 전부 다하라는 게 아니야. 나도 이삼 일에 한 번씩 가게에 올 거고, 내가 없을 때만 잠시 가게를 맡아달라는 거지.”
“음, 그 정도면 크게 어렵진 않을 것 같아요. 근데, 진짜 제가 맡아도 되는 거예요?”
“당연하지.”
공지혜는 잠시 고민하더니 뭔가를 결심한 듯 고개를 끄덕였다.
“알았어요. 일단 그렇게 해볼게요.”
“고마워.”
영지한테 하는 것처럼 살짝 안아서 등을 두드려 줬다. 근데 의외로 꽉 차더라.
정말 다이어트가 쉽지 않은 모양이었다.
어쨌든 공지혜는 무사히 설득했다.
그다음은 순이 이모였는데, 마치고 들어갈 때 조심스럽게 불렀다.
“이모. 제가 생각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요…….”
가끔 가게를 비울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러는 동안 공지혜가 대신할 테니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의외로 순이 이모의 반응은 덤덤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있으면 되지?”
“예. 근데 이모, 놀라거나 그러지는 않네요?”
“내가 뭘… 다 아는데.”
왠지 뉘앙스가 좀 미묘했는데, 순이 이모가 등을 팡팡 두드렸다.
의외로 손이 매운지 생각보다 많이 아팠다.
“하여간 열심히야. 보통 젊은 사장들은 이 정도 돈 벌면 놀러 다닐 궁리만 하는데, 더 배우려고 한다니 참 사람이 됐어.”
“예?”
“우리가 눈 뜬 장님인 줄 알아? 며칠 내내 고민하는 거 다 봤어. 그리고 강석이가 슬쩍 그러기는 하더라. 뭐가 잘 안 풀리는 것 같다고. 근데 장사는 아주 잘되고 있거든.”
“그, 그거야 그렇죠.”
“그럼 뻔하지. 더 잘되게 하려는 거 아니야.”
“예. 그건 맞아요.”
역시 살아온 연륜이 보통이 아니었다. 대충 말하는 것 같은데도 의외로 핵심을 잘 짚었던 것이다.
맞다.
강주혁의 조언도 있었지만 마음이 그렇게 시켰다.
이대로는 안 된다고, 그리고 스스로도 부족함이 느껴지는 상태였다.
그걸 무시하고 이대로 장사해도 되지만, 결국 내 꿈과는 멀어지게 된다.
솔직히 언제부터인지는 모른다.
하지만 이왕 장사 시작했으면 끝을 봐야 하지 않겠는가?
이류가 아닌 일류, 그걸 뛰어넘어 명인이나 명장이 되어보련다. 나만의 방식으로 성공해 ‘삶의 달인’이란 방송에 꼭 한번 나가보고 싶었던 것이다.
물론 성공 못 할 수도 있지만, 꿈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될 것 같았다.
그때 순이 이모가 손을 꽉 붙잡았다.
“다른 건 몰라도, 이거 하나만 명심해. 가게 돈 함부로 가져다 쓰는 거 아니라는 걸.”
이 말을 하는 이유가 있었다.
일전에 순이 이모가 전전전에 일했던 식당 일을 꺼냈는데, 오십 넘은 여사장이 장사하는 이야기였다.
남편이 수시로 금고에서 돈을 빼간단다.
자신이 벌지 않으니 돈 귀한 줄 모르고 술과 노름으로 탕진했다는 것이다.
주변에서 이혼을 권유할 정도로 난동을 부렸고, 행패도 심했단다.
그럼에도 여사장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 년 만에 식당이 망했다. 재료 살 돈까지 노름에 날려 버리는 바람에 결국 문 닫게 됐다는 것이다.
그때 순이 이모가 나 들으라는 듯 그랬다.
바깥으로 돌면서 가게 돈 함부로 쓰면 망한다고.
그건 진심으로 날 걱정해서 해주는 말이었다.
“이모, 장사는 당연히 계속할 거예요. 가게 돈 빼가는 일도 없을 거고요.”
“그래. 그래야지.”
순이 이모가 대견하다는 듯 등을 두드리는데, 좀 살살 때렸으면 좋겠다.
어쨌든 그 이야기는 나름 반전이 있었다.
반년 정도 지나 순이 이모가 우연히 여사장을 만났다고 한다. 그래서 어떻게 지내느냐 물었더니 요즘은 아주 행복하게 잘 지낸다는 것이다.
무슨 일이 있었냐 물었는데, 두 달 전 남편이 술병 나서 급사하는 바람에 거액의 보험금이 나왔단다.
그때 순이 이모는 처음으로 여사장이 무섭게 느껴졌다고 했다.
“하여간, 가게 너무 자주 비우지 말고 그래. 지혜가 참 잘하지만 그래도 여자잖아.”
여자도 여자 나름이다.
가끔 보여주는 무시무시한 괴력과 튼튼한 체력을 보면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저도 오래 비울 생각은 없어요.”
순이 이모는 몇 번이나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뒤, 내가 가장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었다.
“그럼 알았어. 내가 지혜 많이 도와줄 거니까 가게 걱정은 안 해도 될 거야.”
***
이 보 전진을 위한 일 보 후퇴라고 생각했다. 아니, 일종의 재정비라 보면 된다.
일단, 짠돌이 소리 듣던 것부터 해결하기로 했다.
우선 집에 있는 애물단지 컴퓨터부터 갈았다.
부팅할 때마다 공장 모터 돌아가는 소리로 존재감을 자랑했던 녀석이었다.
검색하는데, 몇 번 재부팅하더니 갑자기 피시시식거리는 게 아닌가?
당황해서 몇 번 두드렸는데 그 길로 사망 신고를 하고 말았다.
홍태구가 그러더라.
하얗게 불태웠다고.
거의 숨넘어가기 직전인 상태로 무려 반년을 더 썼으니 그 정도면 놓아줄 때가 되었단다.
해서 견적을 받아 아주 고급 사양으로 질러 버렸다.
확실히 비싼 PC는 달랐다. 부팅도 1분이 안 걸렸고, 화면 뜨는 것도 아주 화끈했던 것이다.
그때 느꼈다.
이게 돈쓰는 맛이라는 걸.
그다음으로 옴레기라고 불리는 짝퉁 스마트폰을 바꿨다.
홍태구가 옴드로이드로 변경해 줘서 어플 몇 개 깔아서 그럭저럭 쓰고 있었는데, 무식하면 튼튼하다고 잠결에 힘 잘못 주는 바람에 금이 쩍 갔었다.
그걸 케이스 씌우고 테두리에 테이프 감아서 그냥 썼는데, 다들 바꾸라고 성화였다.
너무 궁상맞아 보인다나?
결국 두어 달 전에 나온 최신 폰, 뻬가레이서 2로 바꿨다.
쓰는데 확실히 빠릿빠릿하긴 하다.
왜 옴레기가 옴레기인지를 여실히 느껴졌다고나 할까?
이게 진짜 스마트폰이었다. 어플 하나하나 깔수록 새로운 신세계를 탐험하는 기분이었던 것이다.
그다음은, 직원들 보너스였다.
돈으로 주기는 좀 그렇고, 그렇다고 선물 사주려니 아는 게 없었다. 그래서 백화점 상품권을 돌렸고 특별히 순이 이모와 공지혜, 정은혜한테는 마사지 쿠폰까지 줬다.
강석이는 술 한잔 먹이는 걸로 해결했고.
그다음은, 승압 공사였다.
폭탄 맞은 전기세 때문인지 공사비 백만 원이 아깝지 않았다. 게다가 투자라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지기까지 했다.
동시에 효율 좋다는 쌔끈한 에어컨도 새로 질러 버렸다.
역시 신상품이 좋기는 좋았다.
이전에는 20분 정도 지나야 시원해졌는데, 이건 10분도 안 돼서 온도가 뚝뚝 떨어지더라.
그럼 고물 에어컨은 어디로 갔느냐?
바로 자취방으로 들어갔다.
업소용이다 보니 잠깐만 돌려도 엄청 시원했고, 선풍기까지 합세하자 빙하기가 온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은근슬쩍 이강석이 내 방에서 자고 갈 때가 있었다. 거기에 새로 뽑은 알바 백창호 녀석도 슬쩍 꼽사리를 끼었던 것이다.
물론 녀석의 주 목적은 게임이었다.
이 집에서 ‘블레이드 소드’가 돌아가는 PC는 내 거밖에 없다나?
덕분에 한 번씩 치킨값이 굳기는 했다.
어쨌든 그렇게 살건 사고, 정리할 건 정리하느라 며칠을 바쁘게 보내야 했다.
통장이 살짝 원망하긴 했지만, 전혀 아쉽지가 않았다.
오히려 진즉 처리하지 못한 게 바보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이제 남은 건 딱 하나였다.
“감사합니다. 고객님.”
회수 팀 팀장 이해일은 거의 구십 도로 고개를 숙였다.
강형우도 마주 인사한 뒤, 서로 악수를 나눴다.
“그동안 고마웠습니다.”
“아닙니다. 저희가 한 게 뭐 있다고…….”
그렇게 몇 마디 대화를 나눈 뒤 철진 기획을 나왔다.
손에 들린 서류를 보니 느낌이 정말 미묘했다.
대출 약관 변경한지 팔 개월 만이었다. 그동안 낸 돈도 있었고, 다음 달 운영비를 제외하고 탈탈 터니까 딱 남은 금액이 맞춰졌던 것이다.
그래서 잔금을 화끈하게 다 갚아버렸다.
이제 통장이 텅텅 빈 텅장이 되었다. 그런데도 무언가가 꽉 찬 듯한 든든함이 느껴졌다.
“하아~ 진짜 속이 다 후련하네.”
정말 십 년 묵은 변비가 펑 하고 터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런 기분으로 가게로 향했는데, 간판을 보자 묘한 울렁거림이 생겼다.
‘지성분식.’
단 네 글자뿐이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울컥거리는지 모르겠다.
“후우. 하아~”
길게 숨을 내뱉고 나서야 무언가 정리되는 기분이었다.
천천히 문을 열고 들어가니, 막 점심 피크가 끝난 모양이었다.
순이 이모와 이강석은 한쪽 벽에 앉아 있었고, 정은혜와 백창호는 설거지 중이었다.
공지혜는 카운터에서 뭔가를 메모하다가, 반사적으로 말했다.
“어서 오세요.”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더라.
강형우는 피식 웃은 뒤, 다시 한번 가게를 돌아봤다.
대출을 다 갚았으니, 보증금은 온전히 내 것이었다.
그건 이 가게 역시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인지, 지성분식이 평소와는 너무도 다르게 보였다. 잊고 있었던 무언가가 가슴을 파고들었던 것이다.
그건 소중함이었다.
강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조용히 중얼거렸다.
“예. 다녀왔습니다.”
***
“하아~ 이거 휴가 아닌 휴가네.”
강형우는 갑자기 생긴 휴일이 당황스러웠다.
어제 조금 늦게 지성분식에 나갔는데, 의외로 할 일이 없었다.
주방이야 순이 이모하고 이강석이 알아서 잘하고 있었다.
정은혜는 이게 경험이 있다 보니 무척 능숙했고, 새로 뽑은 백창호는 원래 이쪽 경력자였다.
격투기 선수, 최홍민이 운영한다던 부킹 호프집에서 일하다 내려왔단다.
그 덕에 말발이 기가 막혔는데, 다행이 공지혜의 협박(?)이 먹히고 있었다. 예쁜 여자 손님들만 오면 껄떡거리던 버릇이 많이 사라졌던 것이다.
어쨌든 가게는 무척 잘 돌아갔다.
문제는 공지혜가 잘해도 너무 잘한다는 거였다. 주방에 들어가니 아예 할 일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며칠 나오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렇게 사장이, 직원한테 강제 휴가를 받았다.
“참 황당하긴 한데…….”
마침 잘됐다 싶었다. 그래서 그동안 전화로 소식으로만 들었던 곳부터 방문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