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59화 나만의 개똥철학
장사 철학이라…….
그 말을 듣는 순간, 몸이 굳어졌다.
마치 벼락 맞은 것처럼 짜릿한 뭔가가 전신을 스치고 지나갔다.
동시에 소름이 돋았고, 털이 바짝 섰다.
아!
그 동안 느꼈던 부족함이 이거 같았다.
사실 오뎅국밥을 고민했고, 잠시지만 파스타를 메인으로 내세웠다. 수많은 시행착오 끝에 돈가스까지 만들어냈음에도 끝끝내 뭔가가 아쉬웠던 것이다.
딱 2% 정도였다.
그만큼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있었다.
자신은 있었지만 확신은 가지지 못한 게 그래서였다.
지인들에게 음식을 테스트받고 인정까지 받았음에도 마지막까지 안심하지 못했다.
부족한 건, 신념이었다. 가치관이 서지 않았기에, 장사에 대한 철학이 없었기에 마음 한구석을 불안감에 내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고 애써 변명했다. 그런 걸 생각해 볼 여유가 없었으니까.
지성분식을 오픈하고 초반에는 장사하기 바빴다. 그러다 손님이 줄면서 아등바등했고, 어느 정도 정신이 수습되자 가게를 살리는 데만 집중했다.
오뎅국밥에서 파스타까지는 정말 아슬아슬한 외줄타기나 마찬가지였다. 겨우 돈가스로 극찬을 받고 나서야 지성분식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올랐던 것이다.
여기서 자신감을 얻었고, 도전할 수 있는 수익을 벌었다. 가게를 확장하고 신메뉴를 준비한 게 그래서였다.
때문에, 그런 걸 생각해 볼 겨를이 없었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 뒤, 솔직히 고백했다.
“장사 철학 같은 거, 솔직히 모르겠어요. 이렇게 해보고 싶다, 라는 건 있는데……”
강형우가 몇 가지를 말했다.
남들과는 다른 방식으로, 독보적인 요리로 성공하고 싶다고. 그래서 달인 같은 방송에 나가 당당하게 인정받고 싶다고 했다.
그에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네가 말하는 건 그냥 미래지. 장사 철학이나 가치관이 아니야. 그냥 그렇게 됐으면 하고 바라는 거잖아.”
“그건, 그러네요. 그런데, 대체 그놈의 장사 철학이란 게 뭡니까?”
“나만의 개똥철학이지. 하지만 개똥도 약에 쓰려면 없다고 하잖아.”
“예?”
“지금의 너는 개똥으로 만든 약이라도 필요한, 도취증 환자라는 거야.”
가끔 강주혁의 화법은, 예상과 상상을 넘어 파격적이기까지 했다. 몇백 년을 산 노인네가 뜬구름 잡는 식으로 이야기하는 느낌까지 들 정도였던 것이다.
가장 비슷한 사람을 굳이 찾는다면, 천경 어르신 정도일까?
그러다 강주혁을 보니, 피식 웃고 있었다.
“너, 경주 최 진사 집 이야기 알아?”
갑작스러운 대화 전환이 너무 당황스러웠다. 깜빡이도 없이 훅 들어오니 사고가 마비됐던 것이다.
잠시 생각하던 강형우가 갑자기 노래를 불렀다.
“짜잔~ 건너 마을에 최 진사 댁에 딸이 셋 있는데, 아아싸~ 그중에서도 셋째 따님이 제일 이쁘다든데…….”
갑자기 강주혁이 빵 터졌다.
“아우~ 왜 웃어요?”
“야, 곰이 박수 치면서 재롱부리는데 안 웃기냐?”
“쩝, 그래도 곰은 좀……”
“하하, 어쨌든 그 노래가 틀린 건 아닌데. 됐고, 짧게 이야기해 줄게.”
경주 최 진사댁에는 육훈이 있다고 했다.
자손 대대로 지켜야 할 여섯 가지 가훈이라는 뜻이었다.
첫째,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은 하지 마라.
둘째,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마라.
셋째,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넷째,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다섯째, 며느리들은 시집 온 뒤 3년간은 무명옷을 입혀라.
여섯째,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들어본 적 없어?”
“아! 방송에서 봤는데요.”
처음에는 긴가민가했는데, 들어보니 서서히 기억이 떠오르는 것 같았다. 그래서 손뼉을 쳤는데 강주혁이 한심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거,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거든?”
“그래요? 사실, 졸업한 지 오래됐으니 가물가물할 만도 하죠. 솔직히 곱셈 이상은 봐도 모르는데.”
“하긴, 나도 수학은 할 말 없다. 그건 그렇고, 이 최 진사 댁 관련 내용은 꼭 한번 찾아봐라. 진정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바로 이 집 이야기니까. 그리고……”
강주혁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사람도 없는 가게를 둘러보더니 목소리를 확 낮추었다.
“저게, 장사에 도움이 되거든. 저것만 지켜도 부자가 될 수 있다고.”
그러면서 천천히 이야기하는데, 무척 황당했다.
첫째, 진사 이상의 벼슬을 하지 마라.
기억하기로, 벼슬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뜻이었다. 권력과 재력 양쪽 모두를 가지게 되면 탐욕에 빠지게 된다고 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객이 전도가 돼서, 돈을 벌기 위해 권력을 스스럼없이 쓰게 된다나?
하지만 강주혁의 해석은 달랐다.
“쉽게 표현하면, 연예인들이 식당 차리는 거라 보면 돼.”
“예에?”
이 무슨 뜬금없는 비유란 말인가?
근데 강주혁은 의외로 진지하게 말했다.
“왜? 부업으로 장사하잖아?”
“그야, 그렇기는 하죠.”
“바로 그거야. 원래 연예인들은 이름값이 있으니까 시장 진입이 쉬워. 하지만 그건 양날의 검이야. 조금만 실수해도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거든.”
만약 유명 연예인 식당에서 벌레가 나왔다 치자.
이때다 싶어 기레기들이 자극적인 기사를 띄운단다.
<유명 연예인 P 모 씨. 식당에서 바퀴벌레가 나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뜬금없이 이름 모를 평론가들이 등장해 한마디씩 물어뜯는다는 것이다.
<돈이면 다 한다는 연예인들. 편법으로 창업!>
<외식 업계에 대한 연예인들의 저급한 인식. 이대로 괜찮은가?>
<요리도 못하면서 식당 주인?>
등등의 이슈를 터뜨린단다.
당연히 대중들은 거기에 이끌려서 손가락질을 할 것이고, 그 결과 바로 망한다는 것이다.
“연예인만 할 때는 괜찮은데, 장사까지 해서 돈 많이 벌면 사람들이 얼마나 부러워하겠어? 쉽게 번다고 생각해서 질투하게 되고, 훨씬 평가를 까다롭게 할 거 아니야.”
그러면서 한 다리 건너 아는 지인 이야기를 하는데, 조금 충격받았다.
중년 배우가 식당을 오픈했는데, 팬들이 수시로 찾아온다고 했다. 결국 얼굴 마담 역할로 카운터를 지켜야 했는데 그러다 탈모 증상이 왔다는 것이다.
공짜로 뭘 더 달라, 양이 왜 이리 적느냐? 가격은 또 왜 이리 비싸냐? 서비스가 엉망이다 등등.
그렇게 매일 불평을 듣다 보니 스트레스가 엄청 쌓였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싸울 수도 없는 게, 자신은 이미지로 먹고사는 연예인이었으니까.
결국 반년 만에 원형 탈모에 걸렸고, 그 충격으로 배역에서 잘렸다고 했다.
게다가 방송에 못 나오니 인기도 떨어져서 식당도 망했다나?
“그래서 하나만 집중하라는 거지. 둘 이상을 가지려고 욕심을 내다가는 둘 다 망친다는 이야기다.”
들어보니 맞는 것 같기도 하면서, 아닌 것 같기도 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형. 근데, 그게 진짜 그렇게 해석이 되는 거예요?”
“당연하지.”
너무 당당하게 말하니 트집 잡기가 어려웠다.
그 뒤에는 더욱 황당했는데, 요약하면 이러했다.
***
재산은 만 석 이상 지니지 말라.
내가 얼마나 버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결코 돈 많은 티를 내지 말라는 거다.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돈 받은 만큼 해주는 건 당연하다. 여기에 추가로 서비스할 경우 기분 좋게 해주어라. 한마디로, 돈 안 드는 건 아끼지 말라는 의미란다.
흉년에는 땅을 사지 마라.
주변 가게들이 장사가 잘 안 되면 무조건 같이 힘든 척을 해야 한다. 싸게 나왔다고 확장하면 안 되고, 저렴하다고 해도 사재기는 금물이다.
무조건 같이 아파하고 공감해 주라는 거다.
그러면서 도울 수 있는 걸 도와주면 적이 되지 않는다. 그래야 업종 변경을 해도 겹치는 쪽으로는 차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며느리들은 시집 온 3년간 무명옷을 입혀라.
일단 근검 절약부터 가르치라는 거였다. 알바가 들어오면 아끼는 것부터 꼼꼼히 알려주어 쓸데없이 돈 나가는 걸 막으란다.
진짜 꿈보다 해몽이다.
강형우가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해석이었다. 그런데 문구만 놓고 보면 얼추 비슷하기는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왜 뜬금없이 최 진사 이야기를 했는지 알 것 같았다.
자신만의 해석, 그리고 거기에 확신을 가지고 행동하라는 의미로 느껴졌다.
“그래, 이게 나만의 장사 철학이라는 거지. 가장 중요한 건 마지막 여섯째야.”
“사방 백 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이제 다 아네? 큭큭, 근데 이건 참 장사하는 입장에서 애매한 이야기긴 해. 난 먹고 돈 없다고 배 째라 하면, 그냥 째버리거든.”
무전취식은 무조건 신고란다.
하지만, 배고파 보이는 애들이나 어르신들 보이면 거짓말을 해서라도 식사부터 먹인다고 했다.
“가난은 나라님도 구제 못 한다는 말이 있잖아. 그렇다고 일개 개인이 할 수 있는 일도 없어. 그래서 내가 정한 건 그냥 보이면… 마음 가는 대로 하면 된다는 거야.”
“마음… 가는 대로요?”
“그래. 사실 나도 어려울 때 좀 그랬거든.”
장사 밑천 벌려고 악착같이 아껴 살았다.
특히 보세로 2, 3,000원 하는 허름한 작업복을 입고 다녔는데, 뜬금없이 어떤 할머니가 부르더란다.
당황해하는데 무조건 식당에 들어와서 밥부터 먹으라는 거다.
“그때 진짜 배고팠지. 밥 두 공기 비우고 나니까, 할머니가 우시더라고. 그래서 조심스럽게 물었는데……”
아들이 객지에서 굶어 죽었단다. 돈 아끼기 위해 라면만 먹다가 몸살이 났는데, 크게 끙끙 앓더니 영영 일어나지 못했다는 것이다.
사인은 영양실조란다.
“그때 내 작업복이 아들이 죽었을 때 입던 것과 똑같다고 하더라고. 그래서 밥부터 먹였던 거래. 그러면서 아들이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제육볶음에 미역국이라는데…….”
“아!”
순간 떠오르는 게 있었다.
제대로 한 끼.
이 가게의 메인은 제육볶음이라 할 수 있는 고추장 불고기였다. 정식에 나오는 국이 미역국과 콩나물국이란 게 머리를 스쳤던 것이다.
그런 강형우의 생각을 읽었는지, 강주혁이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내가 제대로 한 끼를 시작한 게 그래서야.”
가능하면 저렴한 가격으로, 영양가 있는 음식을 제공한다.
수익은 박리다매 형식으로 취한다.
장사를 유지할 수 있다는 확신이 들면, 수익의 절반 이상을 원재료에 투입한다.
그 결과 양질의 음식이 저렴한 가격에 제공된다.
다시 손님이 몰려들고, 수익이 늘어난다.
“이게 내가 생각하는 선순환의 장사 철학이야. 그리고 거기에 확신을 가진 건…….”
강주혁은 조심스럽게 속삭이듯 말했다.
“나중에 성공하고 나서 할머니 찾아갔는데, 이미 돌아가셨더라고. 평생 식당 해서 번 돈으로, 배고픈 사람들 밥 먹이며 사시다 편하게 가셨대.”
돈 한 푼 안 남기고 돌아가셨는데, 장례식이 무척 거하게 치러졌다고 했다. 모인 사람만 무려 삼백 명이 넘는다는 것이다.
그때, 심지어 전임 대통령까지 방문했단다.
“음식 장사하면서 존경받는 삶. 그게 내 인생 목표니까.”
***
“나만의 장사 철학이라…….”
강형우는 생각하고, 고민하고, 고뇌했다.
궁리하고, 연구하고, 끝내는 머리카락을 쥐어뜯을 정도로 괴로워했다.
깨달은 건 하나였다.
“하아~ 역시, 난 머리가 좋은 편은 아니구나.”
침울한 표정으로 한숨을 내쉰 강형우는, 역시 방법은 하나밖에 없다는 걸 느꼈다.
일단 몸으로 부딪혀 보는 거였다.
다행이 방법은 강주혁이 일러주기는 했다.
“장사 철학과 신념이 없으면, 결코 일류가 될 수 없어. 그걸 넘어서야 명인이 되고, 명장이 될 수 있는 거야.”
“그럼 일류가 되는 방법은 뭐죠?”
“우선 과거를 돌아봐. 거기서 네가 애초에 무얼 하고자 했는지를 찾아보라고.”
정말 뜬구름 잡는 이야기였지만, 이상하게 확신이 들었다.
벼락 맞은 그 느낌이 현실로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랄까?
그래서 강형우는 결정을 내렸다.
***
“오빠, 정말?”
공지혜의 눈이 진짜 어마무시하게 커졌다.
그만큼 많이 놀란 모양이었다.
“아니, 완전히 쉰다는 게 아니라. 잠시 휴식이 필요하다는 거지.”
며칠 고민해 보니 답이 나왔다.
지금의 지성분식은, 자신이 없어도 된다. 당장 장사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으니 며칠에 한 번씩 와서 확인만 하고 가도 충분한 것이다.
“그래서 부탁하는 건데, 잠시 가게 좀 맡아줄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