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55화 나한테 팔아라
“구조를 바꾸니까 훨씬 좋네요.”
공지혜가 통로를 가볍게 뛰어다녔다.
살이 좀 빠진 것처럼 보였는데도 아직 체형이 통통했다. 그럼에도 공간이 넉넉해 이전처럼 몸을 틀지 않고도 그냥 다녔던 거다.
사실, 이것 때문에 며칠 골머리를 앓았다.
원래 계획이라면 딱 주방을 뒤로 미는 것만큼 테이블 두 개를 더 놓는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많은 게 바뀌고 말았다.
지성분식은 애초에 이삼십 년 전의 구조였다.
셔터를 열면 유리문이 있고, 안으로 들어서면 손님 받는 홀이 있었다.
가운데 연탄난로가 놓이고 그걸 중심으로 테이블이 있었으며 거길 지나야 주방이 나오는 식이었다. 그 너머로 생활하는 방과 작은 뒷마당이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정겨운 옛날 식당 느낌이었다.
영도의 골목분식집과 비슷했는데, 그걸 옆으로 틀어 놓은 형태였던 거다.
그럼에도 가격 대비 평수가 넓었고, 건물주 박첨기가 인테리어는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된다고 해서 들어온 거였다.
해서 계약하고 공사를 시작하는데, 문제가 생겼다.
화장실은 밖에서 볼 때와 다르게 무척 좁았다. 쪼그려 앉는 변기였는데 좌우 폭이 부족해서 무척 힘들었던 것이다.
커다란 덩치 때문에 앉으면 몸이 뭉개지는 기분이랄까?
흡사 볼일 한 번 볼 때면 감옥에 들어갔다 나오는 갑갑함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해서 처음에는 구조 변경은 거의 못했다.
한정된 예산 때문에 화장실과 주방만 집중적으로 고쳐서 들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벽체를 뜯고 공간이 확장되자 너무 다양한 선택지가 생겨났다.
강형우는 무척 고민했다.
강주혁과 정분석에게 도움을 청했고, 인터넷으로 비슷한 평형대의 식당들도 찾아봤다.
또, 연제도서관에서 자료를 뒤지기도 했다.
그 결과물이 지금 가게였다.
전에는 입구에서 봤을 때, 가로 형태로 테이블이 있었다.
4인 테이블 둘, 셋, 셋. 이렇게 여덟 자리였는데 이번에는 세로로 바꾼 것이다.
오른쪽 벽을 따라 여섯 자리가 길게 쭉 있었고, 반대쪽은 네 자리였다.
덕분에 단체손님 받는 것도 가능해졌다. 전에는 중간 통로 때문에 둘 이상 붙이기 어려웠지만, 이번에는 최대 여섯 개를 붙어도 문제가 안 생겼던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되니 손님들 자리 지정하는 일도 한결 수월해졌다.
무엇보다 가장 마음에 드는 건 따로 있었다.
정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이 카운터였다.
그 뒤로 ‘ㄷ’ 자 형태의 공간이 있었는데, 거기 ‘ㄴ’ 자 형태로 혼밥 자리가 있었다.
위쪽 공간은, 아래는 꽃장식이 벽에는 먹음직스럽게 촬영된 하와이안 돈가스 사진이 크게 출력되어 있었다.
여기에 문구가 추가되었다.
제주 무항생제 흑돼지.
24시간 냉장 숙성.
지성분식만의 정성 가득한 특제 소스.
등등이 부각되었고, 그 아래 설명을 넣었다.
중요한 건, 바깥 창을 통해서도 그 사진이 선명하게 보인다는 점이었다.
그냥 골목길을 걷다가 고개만 돌려도 확 눈에 띌 정도였다.
그것뿐만 아니라 홍태구를 부려서 몇 가지를 더했다.
확실히 인맥이 많으니 좋긴 좋았다. 인테리어와 디자인, 출력소 관련 알바들을 종종 뛰다 보니 유니폼 업체까지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해서 연한 레몬색 셔츠와 검은 앞치마로 단체복을 주문할 수 있었다.
우선은 여름용과 봄, 가을용만 맞췄는데 그 차이가 컸다.
입어보니 정말 괜찮았다.
그 까다로운 강영지가 산적두목에서 사람으로 보일 정도라고 했으니까.
유일한 문제는 공지혜가 한 치수를 줄이겠다고 우긴 거였다.
“오빠? 왜 그렇게 쳐다봐요?”
“엉? 아니. 유니폼이 잘 어울린다 싶어서.”
다행히 지금은 그렇게 빡빡해 보이질 않았다.
아마도 꾸준히 노력했겠지?
강형우가 피식 웃자, 공지혜는 무척 좋아했다.
“근데 진짜, 이렇게 바뀔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 테이블 작업할 때만 해도 좀 크다 싶었는데, 이렇게 놓으니까 딱 맞네요.”
공지혜는 서빙을 생각하며 주방과 홀 사이를 몇 번이나 왔다 갔다 했다.
그때, 조금 늦게 순이 이모가 들어왔다.
“조금 늦었지?”
순간, 강형우와 공지혜는 못 알아볼 뻔했다.
“순이 이모? 맞아요?”
“왜? 이상해?”
순이 이모도 조금은 어색한지 머리카락을 매만졌다.
원래는 시커먼 파마머리였는데, 그걸 머리 수건으로 가리고 일을 했었다.
하지만 지금은 완전히 달라졌다.
연한 갈색 생머리를 단정하게 뒤로 묶어서 왔고, 평소와 다르게 연하게 화장까지 한 상태였다.
불과 며칠 전보다 십 년은 어려 보일 정도로 파격적으로 변신한 거다.
“그게 오픈 주방이잖아. 손님들 얼굴 보고 일해야 하는데, 좀 그렇더라고.”
그러고 보니 며칠 전 했던 말이 떠올랐다.
새로 바뀐 주방은 절반이 오픈식이었다. 실제 밑 준비나 재료 손질은 안쪽 주방에서 다 하고, 튀김과 볶음 등의 조리만 오픈된 곳에서 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원래 닥트시설을 뜯어서 연결한다고 개고생 했다.
하지만 해 놓고 나니 보람은 있었다.
특히 순이 이모가 무척 좋아했다.
처음으로 오픈 주방에 서 본단다. 맨날 좁은 식당 구석에서 일하다가 밝은 곳에서 음식하려니 아무래도 기분이 묘하다나?
“돈 좀 들였는데, 이상해?”
본인도 어색해하니, 강형우도 말이 나오질 않았다. 사실 그쪽으로는 경험이 없어서 뭐라 해야 할지 몰랐던 것이다.
그때 공지혜가 다가가더니 이렇게 말했다.
“와아~ 이모. 이제 언니 해도 되겠는데요?”
“그래?”
순이 이모가 환하게 웃으니, 강형우도 자연스레 칭찬이 나왔다.
“진짜 훨씬 젊어 보여요. 진작 파마 풀고 그러고 다니시지…….”
“아이구, 그건 형우가 몰라서 그래. 원래 식당 일 할 때, 어려 보이면 무시당하거든. 특히 일당으로 며칠씩 다닐 때는 괄시도 많이 받아.”
그러면서 설명하기를, 젊은 식당 이모가 오면 단골 어르신들이 많이 추근거린단다.
그래서 여사장들이 싫어한다나?
또, 어려 보이면 음식 솜씨가 없다는 편견까지 가져서 일명 빠꾸 먹는 일도 많다고 했다. 그래서 다른 아줌마들처럼 파마하고 다녔다는 거다.
조금은 이해가 가면서도, 어렵기는 했다.
아무려면 어떤가?
지성분식 입장에서 좋은 일이면 됐지.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것이다.
마침 이강석이 들어왔고, 곧이어 김민석과 정은혜도 왔다.
강형우는 우선 유니폼을 갈아입게 한 뒤 장사 시뮬레이션에 들어갔다.
몇 번 테스트 한 결과,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았다.
딱, 한 놈. 김민석을 제외하면.
***
딱~
김민석의 뒤통수에 또다시 불이 났다.
“아~ 씨!”
“뭔~ 씨?”
“아닙니다, 형님.”
고개를 숙이는데, 저절로 손이 가려는 걸 참았다.
정말이지 이 애물단지를 어떻게 해야 하나?
노가다로 까기는 했지만, 아직 받기로 한 돈이 백만 원이 넘었다. 그래서 사람 구할 때까지 한 달만 쓰기로 했는데, 양아치 근성은 어쩔 수 없나보다.
제 버릇 개 못 준다고, 툭하면 이강석에게 시비를 걸었다.
정은혜한테 찝쩍거리기도 했고 가끔 공지혜 말도 무시를 했다.
그나마 순이 이모 말을 잘 듣는 게 의아했지만, 어쨌든 강형우가 보기에는 구제불능이었다.
그렇다고 그냥 보내기에는 하는 짓이 너무 괘씸했다.
딱 보니까, 쫓겨나고 싶은 거다.
내가 열 받아서 내보내면 오히려 이득이라고 계산한 건지도 몰랐다.
어쨌든 일부러 깽판 치려는 듯한 행동들을 수시로 했다.
그때마다 진짜, 분노조절 장애가 생길 것 같았다. 그래서 저걸 어떻게 할까 고민하는데, 의외의 제안이 들어왔다.
“걔, 나한테 팔아라!”
“예?”
“담배 한 대 같이 피면서 들어 보니까, 빚 때문에 일한다던데?”
순간 약간의 배신감이 들었다.
확실히 미운 정도 정이기는 하나 보다.
강형우가 잠시 고민하는데, 정덕수가 피식거렸다.
“그 돈 내가 줄게. 지금 나한테 딱 저런 새끼가 필요하거든.”
그러면서 사연을 설명하는데 전에 일하던 직원 하나가 소문을 냈단다. 사장이 전직 조폭이라면서, 월급도 안 주고 쫓아냈다는 것이다.
“당연히 사실이 아니지. 너도 알잖아?”
오히려 과거 때문에 더 잘해 주고, 일이 힘들어서 월급도 많이 준다는 걸로 알고 있었다.
특히 덕수 형은 항상 웃고 다니려고 노력했다. 행여 구설수가 생길까 봐 여자 알바하고는 실수로라도 부딪히지 않기 위해 피해 다닐 정도였으니까.
하여간 사정을 들어 보니 이해는 됐다.
장사가 아주 잘 되고 있었다. 그걸 기반으로 안정적으로 메뉴와 수량을 늘렸는데, 그래도 수요를 못 따라간단다.
해서 근처에 적당한 가게 하나를 얻었다.
“거기서 한 두어 달 정도 하면, 지금 가게 정리해도 될 것 같더라고. 그래서 당분간 집중하려고 점장 하나 구해서 맡겼는데…….”
이 새끼가 장난을 친 거다. 보름 사이에 매출이 20% 가까이가 빠졌다는 것이다.
거의 현금 장사라서 그게 가능했다.
학생들이 카드가 있을 리가 없었다. 그래서 천 원, 이천 원씩 받는 건데, 매번 현금이 조금씩 모자랐단다.
혹시나 싶어 중간 결산을 해 보니 매출이 확 줄었다고 했다.
“그래도 신사적으로 해결하자 생각했거든.”
정덕수는 먼저 경찰을 불렀다.
그런 뒤 CCTV 까고 마감 때 금고에서 돈 꺼내는 장면까지 확인한 다음 정식으로 고소를 했다.
황당한 건, 그 점장의 행동이었다.
적반하장 격으로 아는 사람들을 우르르 끌고 와서 고소 취소하라고 협박했다는 거다.
“하필이면 그중 한 녀석이 날 알아보더라고. 그날 곱게 물러가긴 했는데, 그래서 소문이 난 것 같아.”
그 때문에 사람 못 구해서 애먹고 있단다.
실제로 알바하겠다고 두어 명 찾아왔는데, 대부분 이틀 만에 관뒀단다.
짐작하기로 덕수 형이 없을 때, 점장 쪽에서 찾아와 협박한 모양이었다.
“남자가 좀 깡도 있고, 쌈도 좀 하고, 배짱도 튕기고 해야지. 하나같이 기가 약해서……. 하여간 그 정도는 되어야 믿고 맡길 수 있을 것 같거든.”
정덕수가 공사판에 왔다가 김민석을 눈여겨 본 게 그래서란다.
전직 조폭이니, 조폭 지망생 똘마니들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나?
“근데, 형. 감당 되겠어요?”
“오히려 편하지. 살아온 습성이 있는데…….”
그런 애들 다루는 건 일도 아니란다.
오히려 단순하기 때문에 질서만 정해지면 훨씬 편하다고 했다.
“안 그래도 생각한 게 있거든.”
정덕수가 피식 웃으면서 이야기하는데, 대체 이게 무슨 쌍팔년도 계획인가 싶었다.
황당한 건, 그게 먹힌다는 거였다.
***
“진짜 남자가, 한입으로 두말하기 없어요!”
김민석이 눈알을 부라리며 말하는데, 강형우는 어이가 없었다.
“그래, 그래. 하기로 했으니까. 넌, 어떻게 할래?”
“저야 당연히 좋죠.”
이 새끼 표정이 이렇게 밝아지는 건 처음이었다.
그게 너무 괘씸했다.
하지만 그 선택의 결과를 알기에 오히려 한숨이 나왔다.
“알았다. 그렇게 이야기할게.”
강형우는 김민석을 보낸 뒤, 정덕수한테 전화를 했다.
“예. 걔가 하겠대요.”
빰빠빠, 빠바밤. 빠밤~
무슨 정식 경기도 아닌데, 낡은 체육관 스피커에서 스포츠 중계 음악이 나왔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며 정면을 쳐다봤다.
작은 사각의 링.
거기에 두 선수가 글러브를 낀 채 마주 보고 있었다.
청코너 정덕수, 홍코너 김민석이었다.
서로 자신 있다면서 헤드기어는 착용하지 않기로 했다는데 아무래도 누구 하나는 골로 갈 것 같았다.
어쨌든 왜 이런 상황이 되었느냐?
표면적으로는 정덕수가 김민석을 스카웃하는 거였다. 그 비용을 대신 내주고 데려가기로 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로 내기를 했는데…….
남자답게 한판 붙어 보잔다.
정덕수가 이기면, 무조건 삼 개월만 충성할 것!
대신 김민석이 이기면, 빚 없는 걸로 하고 바로 자유의 몸으로 풀어 주기로 했다.
이 무슨 무식한 내기인지는 모르겠는데, 당사자들이 저렇게 열을 내고 있으니 할 말이 없었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며 관장을 쳐다봤다.
그 역시도 내용을 듣더니 몇 번이나 한숨을 내쉬더라.
어쨌든 주의사항을 알려 준 뒤, 관장이 뒤로 물러났다.
“자, 파이트!”
강형우가 지켜보는 가운데, 결과는 불과 1라운드 만에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