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52화 이런 미친
“뭘 어떻게요? 그냥 잘~ 하는 거죠.”
웃으면서 말하는데, 강주혁은 고개를 저었다.
“그냥 잘~ 은 초등학생들 대답이고. 너도 그런 게 있을 거 아냐? 어떤 가게를 해보고 싶다거나? 이러이러하게 한 번 살아보고 싶다는 거나. 그런 거 있잖아?”
“그야 있기는 하죠. 일단, 지금 가게 잘 되면 번화가 쪽으로 한 번 나가 보고 싶어요. 지성분식 이호점이 목표긴 한데…….”
“아니, 그게 아니라고.”
강주혁은 답답하다는 듯 주먹으로 가슴을 치더니 소맥 한 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형우야? 내 월급이 얼마인지 아냐?”
“그, 글쎄요?”
“본봉에 수당에 보너스에 제휴 수익에 이것저것 다 더하면 억이 넘어.”
“예?”
“그리고 회사 가치가 조가 넘는다.”
“헐~”
솔직히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강주혁은 진짜 답답하다는 투로 말했다.
“맨손으로 시작해서 돈 많이 벌었지. 사회적으로 성공한 것도 사실이고. 기부도 엄청 하거든. 일 년에 거의 십억은 넘을걸? 근데 어느 순간이 오니까 공허해지더라고.”
그래서 그런 질문을 던진 거란다.
넌 어떻게 살 거냐?
사실, 강주혁이 고백하기를 지금은 일종의 정체기라고 했다.
성공만을 목표로 달렸기에, 그걸 이룬 지금 상실감 같은 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보려고 하는데, 이미 지나치게 튀어나온 형국이라나?
“솔직히… 두렵기도 해. 내 주변 사람들을 실망시킬까 봐서.”
그 담담한 고백은 강형우에게 울림을 주었다.
실제로 강주혁은, 적어도 회사 내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졌다고 했다. 게다가 뭐하자 이러면 창업공신들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지지한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돈이 목적이었고, 나중에는 사람이 우선이더라.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게 느껴지더라고.”
조금은 다른 세상 이야기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강형우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지금 강주혁이 중요한 뭔가를 전해 주려 한다는 것을.
***
“흐음~ 어떻게 살 것인가?”
사람이 우선이냐? 아니면 돈이 우선이냐?
그도 아니면 다른 무엇이 있느냐?
강주혁은 지금 당장 그걸 찾으라는 게 아니라, 평소에도 꾸준히 그런 생각을 해 보라고 했다. 그래야 어느 순간 가슴에 자리 잡게 되는 게 있다는 것이다.
“흐음, 가치관이라…….”
강형우는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머리가 복잡할 때는 명상이 최고였다. 그래서 침대에 누워 일단 호흡을 안정시켰다.
“호오오~ 흐으읍.”
어느 정도 머리가 시원해지자, 강주혁의 말이 더욱 선명하게 느껴졌다.
먼저 고백하기를 자신은 그렇게 살았기 때문에 결코 비정해지지 못한다고 했다.
나쁜 짓을 하려 해도 할 수 없다나?
어쨌든 그 때문에 더욱 고민하고 있단다. 기린 빌딩의 가게들을 어떻게 해야 할지가 혼란스럽다는 것이다.
그게 이해가 되니까, 조금 어이없기는 했다.
“성공했다고 해서 고민이 없는 것도 아니네. 그리고 돈이 전부가 아니구나…….”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강주혁이 말하기를, 돈을 무서워하란다. 경계하지 않고 익숙해지면 성격까지 바뀌게 된다나?
확실히 지금 상황에서 필요한 조언이 맞기는 했다.
사실, 돈이 어마어마하게 벌리고 있었다.
매출 200만 원을 찍고 일주일이 지났는데, 최고 240만 원을 기록했던 것이다.
이런 추세라면 신사임당으로 침대 매트리스를 만드는 것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았다.
“그래서 더 조심해야 하는 거지.”
재벌들이 갑질하는 세상!
하지만 내가 재벌이 된다고 과연 갑질을 하게 될까?
갑자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아무리 상상해도 그런 행동들이 도저히 불가능했던 것이다.
“에휴~ 너무 나갔다. 아직 갈 길이 구만 리인데…….”
솔직히 지금 현실 자체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잘 되면, 두세 달이면 대출을 정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거기에 가게 하나 더 만드는 건 일도 아니었고, 아껴 쓰면 몇 년 안에 작은 건물 하나를 살 수 있을 정도였다.
하지만 너무 낙관만 하면 안 된다.
호사다마라고 했던가?
이상하게 일이 잘 될 때는, 뭔가 꼬이는 일도 같이 따라왔으니까.
“그러고 보니 한 번 정리하기는 해야지.”
장백호의 기억도 그랬다.
뭔가 큰일을 해치운 직후, 과거를 되짚어 보는 습관이 있었다.
혹시 뭔가를 놓치고 있는 건 아닌지. 자신이 교만해진 건 아닌지를 꼼꼼하게 살폈던 거다.
“그래. 한 번 기록해 보자.”
강형우는 책상에서 연습장을 꺼냈다. 그리고 볼펜으로 끄적거리기 시작했다.
“일단 어묵국밥.”
정말이지 물러설 곳이 없어서 선택한 메뉴였다. 떨어졌던 손님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목적으로 저렴한 가격에 맞추어 만든 것이다.
“파스타는 조금 다르긴 했지.”
동네 상권의 특성과 고객층을 고려해서 정한 메뉴였고, 그 틈새를 파고들어 성공할 수 있었다.
따지면 그 역시 생소한 도전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무수한 시행착오와 실패를 거듭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계산해 보니까. 어머어마하네.”
버린 재료비만 대충 200만 원이었다.
빡빡하게 계산해도 거의 4~500인분 정도를 음식쓰레기로 날려 버렸던 거다.
하지만 고생한 보람은 있었다.
그렇게 파스타로 번 돈으로 지성분식을 재정비할 수 있었고, 또 다른 도약을 시작할 수 있었으니까.
“돈가스는 정말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한숨만 나왔다.
사실 가게 안에서도 공지혜만 안다. 쉽게 생각하고 덤볐다가 엄청나게 피를 봤다는 걸 말이다.
대체 만들면서 몇 번이나 넉다운을 당한 건지 모르겠다.
재료 구입부터 헤매다가 정신 나갈 뻔했고, 사기꾼들을 겪고 나서 성격까지 망가질 뻔했다.
결국 직접 하기로 결정했고, 그렇게 고생고생해서 만들었는데 정우가 맛이 없단다.
그때, 정말 멘탈이 와장창 무너졌다.
표현하지 않아서 그렇지, 진짜 혼자 속으로 얼마나 끙끙 앓았는지 모른다.
그 때문에 일식 돈가스 쪽으로 마음이 기울기도 했었고, 내 결정을 몇 번이나 의심하기도 했던 거다.
무엇보다 생각이 갈팡질팡하다 보니 실로 해괴한 작품들도 창조되었다.
더블 치즈 돈가스를 생각해서 튀겼다가, 터져 버렸다.
일명 속 터진 돈가스였다.
튀김 열 때문에 치즈가 튀어나와서 노란 꽃이 폈는데, 아주 이뻤다.
하지만 아차 하는 순간 갈색으로 바뀌었고, 손쓸 도리가 없게 된 것이다.
건져 내서 먹어 보니 치즈는 탔는데 고기는 익지 않았다.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화끈 오뎅의 고추튀김에서 영향을 받은 만두속 돈가스도 있었는데, 니 맛도 내 맛도 아니더라.
형님 버거에서 얻어온 패티를 얇은 고기로 감싸 튀긴 돈가스도 있었는데, 이건 누린내가 폭발했다.
그 외에도 시도는 많았지만 그만큼 많은 실패작들이 나왔다.
이상과 현실의 차이 때문이었다.
“여기까지는 지나온 길이고…….”
강형우는 돈가스 뒤에 물음표를 그렸다.
지금 장사가 잘 된다고 계속 잘 된다는 보장은 없었다.
때문에 앞으로의 계획도 생각해야 했고, 강주혁이 말한 것처럼 달릴 때는 치고 나가야 했으니까.
강형우는 물음표에 수십 번이나 동그라미를 치고 나서야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이 정해졌던 거다.
***
“예. 안녕히 가세요.”
카드 계산을 마치고 손님이 나가자 강형우는 한숨을 내쉬었다.
최근에는 다양한 시도를 위해 포지션을 바꾸었다.
일단 장사 시작할 때의 밑 준비는, 공지혜와 함께했다. 예전에 혼자 하던 걸 분담해야 할 필요를 느꼈던 것이다.
어쨌든 다음 날 튀길 돈가스를 만들고, 밥을 하고 재료 손질하고 하는 것들을 같이 시작했다.
장사 오픈하면, 주방은 거의 순이 이모에게 맡겼다. 메인인 돈가스 튀기는 건 이강석이 전담했고, 강형우는 주방과 홀, 양쪽을 컨트롤 하는 식으로 업무를 변경했던 것이다.
사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최근에, 홀에서 사건 사고가 참 많았던 거다.
“후와하~ 씨발, 졸라 맵네.”
느닷없이 튀어나온 욕설에 손님들이 전부 그쪽을 쳐다봤다.
강형우도 예의 주시하고 있던 커플이었다.
일단 남자 손님의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자다 일어난 듯 금발로 염색한 머리가 하늘로 뻗쳐 있었고, 근육자랑을 하려는 듯 트레이닝 복의 지퍼가 가슴 아래까지 내려와 있었다.
그 안에 있는 건 허연 러닝 하나였다.
그 아래로는 반바지에 삼선 슬리퍼였는데, 종아리는 빈약하기 그지없었다. 운동 좀 해 본 입장에서 봤을 때, 과시용으로 상체만 꾸준히 단련한 것처럼 보였던 것이다.
같이 있던 여자도 상태는 썩 좋지 않았다.
밝은 갈색 머리카락이었는데, 안 감았는지 그냥 대충 묶은 상태였다. 핑크색 트레이닝복도 많이 구겨져 있었고, 아이스크림이라도 흘린 듯 가슴 쪽에 얼룩까지 보였던 것이다.
이런 커플의 경우, 열에 아홉은 시끄러웠다.
“좀, 욕 좀 하지 말고 묵어라.”
여자가 투덜대자, 남자는 오히려 목소리를 키웠다.
“야. 씨발, 맵잖아? 이걸 어떻게 먹냐?”
“남자가 돼서 그거 하나 못 먹나? 매워 봐야 얼마나 맵다고.”
여자가 한 조각 맛보려 하는데, 남자가 막았다.
“니는 못 먹는다. 진짜 맵다.”
“매워 봤자지.”
그러면서 먹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별로 안 매운데?”
“이게 안 맵다고?”
“그래. 하나도 안 맵네. 그리고, 니 매운 거 잘 먹는다면서 시켜 놓고 이거 하나 못 먹나? 남자가 자존심이 있…….”
“이 썅~”
날아간 건 돈가스 나이프였다.
쨍그랑 소리 직후, 이번에는 여자가 성질을 부렸다.
“야이! 새끼야~ 어디서 지랄이고?”
“뭐, 이년이 돌았나.”
그러면서 남자가 벌떡 일어나더니 테이블을 붙잡았다. 여자한테 엎으려고 힘을 줬던 것이다.
탁. 탁탁.
하늘로 솟을 것 같던 테이블이 제자리에 놓였다.
한쪽으로 쏠렸던 돈가스 접시들도 원래 자리로 돌아갔고, 떨어지기 전의 물 컵도 아슬아슬하게 멈춰 선 상황이었다.
강형우가 테이블을 붙잡고, 배로 막아섰기 때문이다.
“이 씨…….”
남자는 자신의 행동이 막히자 바로 성질부터 냈다. 갑자기 고함을 지르더니, 미친놈처럼 발작해 버린 것이다.
“씨발~”
수저통을 집어던지고, 의자를 찼다. 여자한테 물을 뿌리더니 그걸로는 화가 안 참아지는지 주먹으로 벽을 쾅쾅 두드린 것이다.
너무 짧은 순간에 벌어진 일이라, 강형우도 미처 막지 못했다.
“씨팔~ 좆같…….”
“이런 미친 새끼가!”
강형우는 홧김에 멱살을 잡았다.
“컥.”
남자의 얼굴이 벌겋게 되자 그 순간 아차 싶었다. 그래도 손님인데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고, 다들 손님들의 시선도 걱정되었던 거다.
그래서 다급히 손을 풀었다.
그때 여자가 갑자기 남자 거시기를 차버렸다.
“끄억.”
“씨발, 양아치 새끼가~ 툭하면 지랄이고, 지랄은. 조폭 똘마니가 자랑이가?”
여자는 그렇게 말한 뒤, 지갑에서 이만 원을 꺼냈다. 그리고 강형우 손에 쥐어 준 다음 바로 나가 버렸다.
정말이지 황당하고 어이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껏 별 거지 같은 손님들도 다 받아 봤지만, 이번 같은 일은 진짜 처음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씨발~”
갑자기 남자가 달려들더니 주먹을 휘두르는 게 아닌가?
퍽.
기습적으로 한 대 맞고 나니, 울컥 짜증이 났다.
강형우는 남자를 쳐다봤다.
“너 뭐냐?”
***
“죄송합니다. 형님.”
강형우가 담배를 물자, 남자가 재빨리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였다.
“후우~ 하아~”
연기가 뿌옇게 뿌려지는데, 가슴이 답답했다.
장사 하면서 별의별 일이 다 있었지만 오늘 같은 일은 처음이었다.
동시에 왈칵 짜증이 치밀었다.
“죄송합니다. 제가 분노조절 장애 같은 게 있어서요. 평소에는 안 그런데…….”
“뭐?”
“그게, 병원에서 그러던데요…….”
“야! 나도 그런 장애가 생겼으면 좋겠다. 씨발~”
강형우가 와락 인상을 찌푸리자 남자가 움찔했다.
짧게 한숨을 내쉰 강형우는 담배를 끈 뒤, 남자의 얼굴을 쳐다봤다.
일단 먼저 맞은 건 이쪽이었다. 마구 휘두른 주먹에 얼굴 두어 대를 맞고, 배도 한 번 차였던 것이다.
하지만 강형우은 멀쩡했고 상대는 아니었다.
싸대기 두 방에 코피가 터졌고, 한쪽 눈탱이는 팅팅 부어 있었다. 원래 엉망이던 머리카락은 더 개판이 되어 있었고, 무릎도 피멍이 보였던 것이다.
저 얼굴을 가만히 보고 있으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강형우가 물었다.
“야. 돈가스가 그렇게 맵더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