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1
51화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
“에이, 난 또~”
강형우는 어이가 없었다.
차였다고 해서 심각한 줄 알았더니, 의외로 사소(?)한 거였다.
“뭐, 그 정도 가지고 그래요. 이런 적 한두 번도 아니라면서요?”
“뭐, 임마? 이 자식이 지 일 아니라고 막말하네.”
강주혁은 진짜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다.
강형우가 장난치듯 움찔하자 강주혁도 피식 웃었다.
“됐고. 네가 사는 거니까 안주 하나 더 시켜도 되지?”
“뭐, 땡기면 그러시던가요.”
“어쭈? 말이 삐딱하다? 너 그러면 확 제일 비싼 거 시켜 버린다?”
“눼에, 눼에~”
강형우가 이토록 자신만만해 하는 이유는, 별거 없었다.
메뉴판을 다 안다.
어울렁이라고, 장전동 안쪽의 작은 꼬치집이었다. 제일 비싸 봐야 탕 종류가 오천 원이고, 세트 정도 시켜야 만 원이 넘어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강주혁의 스타일이 그랬다.
“싸장님~ 여기 오리 하나하고, 닭 껍질하고, 은행, 그리고 파프리카 소시지 하나 주세요.”
한 개가 아니라 네 개를 시켰지만, 가격은 오천 원 정도에 불과했다.
여기에 소주 한 병 추가해서 칠천오백 원 정도?
강주혁은 잽싸게 소주를 따서 잔에 채웠다.
“네가 산다니까 오늘은 죽도록 마실란다.”
“출근은요?”
“당연히 하지. 괜찮아. 난, 무적의 미친놈이거든.”
피식 웃는데, 그럴만하다 싶었다.
소주 열 병은 기본에, 양주 한 병 원 샷도 그냥 한다고 했다. 살면서 만난 가장 대단한 술고래가 강주혁이었던 것이다.
그런 사람이 힘들어하다니.
정말 좀처럼 못 볼 광경이었다.
사실 왜 이 먼 부산대까지 불렀나 싶었는데, 방금 전까지 창주 형이랑 있었다고 했다. 잘 아는 가게에서 좋아하는 걸 사 주기 위해 여기까지 불렀다는 것이다.
물론 두 사람 성격상 비싼 걸 먹을 것 같지는 않았다.
그랬기에 이 동네를 왔겠지.
어쨌든, 결론은 까였단다.
강주혁이 프랜차이즈 한번 해 보자고 눈도장을 그렇게 찍었는데도 끝내 실패했던 거다.
잘 되고 있다 생각했는데, 안 됐다고 하니 그 이유가 궁금했다.
“근데, 왜 안 된 거예요?”
“그게…… 아직 완성된 모델이 아니래, 군데군데 틈새가 많다는 거야.”
“흐음.”
강형우가 보기에 화끈 오뎅은 그렇게까지 허술하진 않았다.
특히 튀김 업그레이드 이후, 몇 가지를 더 손을 봤고 그 때문에 장사는 정말 잘 되는 상황이었다.
지성분식이 버는 것 몇 배는 더 가져가는 걸로 알고 있는데 아직 아니라니.
“이유는 그게 아니야. 동네가 좁은지 소문이 벌써 다 났더라고. 내가 기린 빌딩 샀다고!”
“예?”
“그게 네가 전에 말한 친구 중에 빨빨이라고 있잖아. 이름이 태구라던가?”
“아~ 예.”
들어 보니 대충 사정을 알 것 같았다.
홍태구는 알바로 PC방 공사를 뛰었다. 그러다 마무리 때문에 몇 번 갔다가 거기서 강주혁을 봤고, 이래저래 물어서 사정을 알아낸 것이다.
물론 조성기 일도 알고 있으니 연관시키기는 쉬웠을 거다.
문제는 홍태구의 입이 의외로 가볍다는 것!
특히 친한 사이라면 소주 한 잔에 백과사전급의 소문을 풀어놓을 정도였다.
그 때문에 이야기가 다 퍼졌단다.
“그래서 그래. 그 건물 때문에 동네 사람들 인식이 안 좋더라고. 어딜 가도 경계하는 게 딱 보여.”
조성기 새끼가 개지랄을 하는 바람에 알게 모르게 동네에 상처가 많았다. 전혀 상관없는 우동집 매출이 훅 떨어질 정도로 상권 자체가 많이 휘청거렸던 거다.
그 원흉을 인수했으니 당연히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어쩔 수 없죠. 일이 그렇게까지 됐는데. 그래서요? 형은 어떻게 할 건데요?”
슬쩍 떠보듯이 물었지만, 솔직히 강형우도 걱정이 많았다.
조성기가 새 발의 피라면 강주혁의 회사는 독수리였다.
자본금 몇 십억만 풀어도 이 동네 상권 박살은 순식간일 테니까.
막말로 황룡만 들어서도, 혁기 형네 중국집은 문을 닫아야 할 거다. 홍화반점 따위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어마어마한 전국구 브랜드였으니까.
간단히 표현하면, 동네 슈퍼 옆에 홈프러스가 들어오는 격이라고나 할까?
“형우야. 형님 잔 좀 채워 주라. 목구멍이 뻑뻑해.”
“옙, 형님!”
강형우가 웃으면서 소주를 채우는데, 마침 음식이 나왔다.
곧바로 닭 껍질을 집은 강주혁은 먹어도 되냐는 눈짓을 했다.
강형우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눈빛이 너무나 간절해 보였던 것이다.
돈도 잘 버는 양반이, 참 이렇다.
그래서 더 정감이 가는 거겠지.
그때 강주혁이 피식 웃으며 묵직한 한 방을 날렸다.
“솔직히 고민 많이 했거든. 처음에는 그냥 우리 회사 브랜드를 다 때려 넣을까 싶었어.”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강형우는 소주 한 잔으로 가슴을 진정시킨 뒤, 강주혁의 눈빛을 살폈다.
확실히 하나도 안 취했다.
그래서 더욱 불안했다. 적어도 농담이 아니라는 말이었으니까.
***
이상하게 이 형하고 술만 마시면 생각할 게 많아진다.
근원을 의심하게 만드는 질문을, 무심하게 툭툭 던지는데 그래서 더욱 고민되는 것이다.
분명 서로간의 격차는 어마어마했다.
이제 좀 장사되는 동네 분식집 사장과, 성공 브랜드 여러 개를 들고 있는 외식업계의 거물.
하지만, 분석이 형 못지않게 친근감이 들었고 오히려 많은 도움까지 받았다.
무엇보다 옆에 있는데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다.
그냥 동네 친한 형 정도?
게다가 돈 많은 티를 안 내니, 나한테 계산시킨 것도 너무 자연스러웠다.
푸짐하게 먹었는데도 3만 원이 나왔다. 둘이서 소주 여섯 병을 비운 걸 감안하면 정말 저렴한 액수였다.
그렇게 계산하고 나왔는데, 머리가 복잡했다.
그걸 눈치챈 것일까?
“한잔 더 할래?”
“저야 좋죠.”
그렇게 둘은 지하철 쪽으로 향했다.
그러다 몇몇 사람들하고 마주쳤는데, 다들 웃으면서 인사를 하더라.
그건 강주혁 역시 마찬가지였다.
서로 안부를 묻고 밝은 표정으로 헤어졌다. 그 과정이 몇 번 반복되다 보니 궁금해졌다.
“형, 아까 그분들…….”
“아~ 다들 동네에서 장사하시는 분들이야. 오다 가다 안면 좀 익혔지.”
“그래요?”
그런 것치고는 너무 아는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그렇게 생각하는데, 강주혁은 점점 으슥한 곳으로 향했다. 이런데 술집이 있나 싶을 정도로 불 꺼진 동네 골목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여기야, 여기. 여기 치킨이 또 죽이거든.”
그 말에 고개를 들어 보니, 카레향이 진동했다. 아무리 봐도 단순한 치킨 집이 아닌 것 같아서였다.
막 들어가는데, 입구의 직원이 다급히 뛰어나왔다.
“죄송합니다. 저희 장사 마쳤거든요.”
“아, 그래요? 형, 그럼 다른 데…….”
강형우가 옷을 잡아끌려는데 반전이 일어났다.
갑자기 주방 안쪽에서 나이 지긋하신 어르신이 튀어나오더니 고개를 숙이는 게 아닌가.
“아이고, 강 실장님. 오랜만입니다.”
“예. 사장님. 자주 찾아뵀어야 하는데…….”
“하하하. 실장님 바쁜 거 다 알죠. 자자, 들어오세요.”
사장의 안내를 받아 들어가는데, 뒤쪽에서 아까 그 직원이 하는 말이 들렸다.
“저기 사장님 아까 분명히 마친다고…….”
“어. 맞어. 근데, 이분은 손님 아니야.”
“예?”
“허허허, 손님 아니라고. 그렇게만 알어.”
직원이 어리둥절해하는데 사장은 안쪽 방으로 안내했다.
황당한 건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잠시 기다리는데 주문도 안 한 치킨이 나왔다. 그리고 맥주 둘, 소주 네 병이 당연한 것처럼 놓이더니 사장이 고개를 숙였다.
“그럼 편하게 드시다 가십시오.”
“옙, 사장님 감사합니다.”
강주혁이 과장되게 웃으면서 고개를 숙이는데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었다.
결국 강형우는 참지 못하고 물었다.
“형, 여기 뭐에요?”
“어? 아, 그냥 단골집인데, 뭐 그렇게만 알아. 그리고 사실 이차 온 것도, 크흠. 너도 묻고 싶은 게 많겠지만 나도 묻고 싶은 게 많거든.”
괜히 속내를 들킨 것 같아 찔끔했다.
사실, 기린 빌딩의 상황은 온 동네의 관심사였다.
안 그래도 몇몇 식당들은 비슷한 업종을 피하려 했고, 장사 시작하려는 이들도 예의 주시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이리로 온 거야. 그러니까 미행이라고 해야 하나? 나도 좀 그런 게 있어서.”
“예?”
“미안한데 그냥 그래.”
강주혁은 맥주를 따서 소맥을 말더니 한 잔을 권했다.
그러면서 말하길.
홍화반점과 번개치킨, 그리고 김밥천왕은 어차피 간판을 떼야 한다. 본사에서 고소 들어온 것도 있었고 지속된 할인 때문에 생긴 이미지가 문제라는 것이다.
당연히 법적인 문제는 조성기 명의로 전부 돌렸다고 했다.
고소장이…… 중국으로 간단다.
“그게 어떻게?”
“뭐, 그게 중요한 게 아니고. 일단 영업이 문제인데, 물건이야 어떻게든 받아서 돌릴 수는 있거든, 거기에 본사에 인원들 동원하면 일도 아니야.”
하지만 그걸 안고 가기에는 오히려 손해가 크다고 했다.
강주혁은 두 번째 소맥을 말더니 다시 잔을 툭 쳤다. 그런 뒤 닭다리를 하나 건네주고는 큼직한 살덩어리를 입으로 가져갔다.
“홍화반점을 옆 가게하고 합치면, 그럭저럭 황룡이 들어갈 자리는 나와. 번개치킨 자리에 희망국수를 넣는 것도 괜찮을 거고, 김밥천왕은 글자 하나만 바꾸면 되거든.”
김밥천왕은 단일 브랜드가 아니었다.
김밥천국처럼, 뉴를 붙이든가 지역이름을 더하면 상표권 분쟁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생각한 게, ‘김밥천사’란다.
헐, 이 형도 참 이름 못 짓네.
“뭐, 하려고 하면 할 수는 있어. 아마 욕은 바가지로 먹겠지만 돈 버는 거 생각하면 무시할 수 있지. 근데 문제는…….”
강주혁은 소주 한 잔을 단숨에 마시더니, 엄지손가락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나야. 나!”
“예? 형이 문제라고요? 왜요? 어디 아파요?”
“아프긴 개뿔. 욕을 하도 처먹어서 백 살은 넘게 살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내가 그런 성격이 못 된다고.”
강주혁은 엄지로 자신을 가리키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왜, 지금 쥐새끼 대통령이 그랬잖아. 저는~ 그러한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아아~”
너무 연기를 잘해서 순간 울컥했다. 자신도 모르게 주먹이 쥐어지고, 확 뻗어 나갈 뻔한 것이다.
강주혁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나… 나름 정직하게 살았다. 열심히 일했고, 다른 사람들한테 상처 주지 않기 위해 정말 노력했어.”
“그… 래요?”
“이 시키가! 형님 말하면 의심하기만 하고. 좀 그냥 들어라. 그냥.”
그러면서 하는 행동이 너무 웃겨서 강형우는 뒤로 넘어갈 뻔했다.
강주혁은 단번에 소맥 잔을 비우고 한숨을 내쉬었다.
“솔직히, 이번 같은 경우는 처음이거든. 건물 인수해서 뭘 해보려고 하는데,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된 적은 처음이야.”
그 고뇌가 이해가 되었다.
열심히 장사만 한 사람. 그래서 성공했는데 이번에는 경우가 안 좋았다.
“돈? 좋지. 좋아. 하지만 욕먹는 삶은 싫어. 선택의 여지가 없다면 또 모를까. 넌 안 그래?”
“형. 누가 욕먹고 싶겠어요?”
“그렇지? 내 생각이 이상한 건 아니지?”
“에이. 그게 당연한 거죠.”
강형우가 웃으며 술잔을 쳤다. 그렇게 소맥 두어 잔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그제야 좀 마음이 놓였다.
강주혁도 사람이구나.
그렇게 철저하고 지랄 맞을 정도로 꼼꼼함에도, 결국은 나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걸 알기에 창주 형도 기꺼이 진심으로 대했을 거다.
그랬기에, 프랜차이즈 거절이 더욱 가슴 아프게 다가왔을 것이고.
하지만 이건 시간에 필요한 일이었다.
동네 사람들이 싫어하는데, 어찌 창주 형이 쉽게 응하겠는가?
“근데, 김창주 씨 괜찮은 사람이긴 하더라. 사업 쪽으로 만나서 서로 말 놓기는 그랬거든. 근데 다음에 마실 때는 친구 하자네.”
“예? 정말요?”
“그럼 비싼 술 처먹고 헛소리 하겠냐?”
강주형은 피식 웃다가 갑자기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게 웃겨서 강형우도 마구 웃었다.
솔직히 김창주는 아낌없이 퍼주는 형이었지만 의외로 낯가림이 심했다.
그런 사람이 친구하자고 할 정도면 반쯤은 인정받은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생각을 하는데, 강주혁이 말했다.
“그래. 난 그렇게 살아와서 나쁜 짓은 못하겠더라. 그래서 더 고민하는 거고 머리 아픈 거야.”
나를 모르고, 창주 형을 모르고, 동네 사람들을 몰랐으면 정말 돈 버는 방향으로 진행했을 거란다.
문제는, 화끈 오뎅 때문에 눈도장 찍으러 다니느라… 황당하게도 우리 동네에 정이 들었단다.
그래서, 미칠 지경이라나?
그러면서 물었다.
“나도 이렇게 고민하는데, 넌 앞으로 어떻게 할 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