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0
50화 이게 맞는 건가
“일당 얼마?”
“시급 만 원.”
“아니, 일당으로 달라고. 시급으로 하면 한 시간만 부려 먹고 후딱 보낼 거잖아.”
역시나 태구 놈은 눈치가 빨랐다.
“그럼 통으로 치자. 맡기는 비용 빼고 십만 원.”
“오케이. 삼십 분만 기다려라 친구야.”
강형우는 시계를 쳐다봤다.
현재 오후 3시 25분이었다. 저녁 타임이 거의 5시부터 시작되니 한 시간 정도는 여유가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기다리는데, 진짜 30분 만에 홍태구가 나타났다.
“시간 보니까 서둘러야겠네?”
역시 눈치 빠른 녀석 같으니라고.
홍태구가 장비를 풀고 준비를 하는데, 진짜 아이돌 덕후인 줄 알았다.
무슨 카메라가 대포처럼 생긴 건지!
어차피 전화 통화하면서 이야기를 거의 끝냈기에, 일 진행은 무척 빨랐다. 강형우가 음식을 내가면 홍태구가 저 대포 카메라로 촬영하기로 했던 것이다.
한데, 이놈이 까다롭기는 더럽게 까다로웠다.
“아무래도 그냥 테이블에 찍으니까 색이 안 산다.”
“그럼 어떻게 해?”
잠시 고민하던 홍태구는 주방 한쪽에서 하얀 천을 찾아냈다. 전에 김밥 써는 데 밑을 가렸던 건데, 거추장스러워서 치웠던 것이다.
“퐁퐁에 대충 빨아서 가져와.”
강형우는 시키는 대로 하얀 천을 박박 문질렀다. 그리고 두 손에 힘줘서 꽉 딴 뒤 팡팡 털었는데, 홍태구가 그걸 받아 확인했다.
“무쇠팬 바닥 깨끗한 거 있지? 달궈서 가져와.”
긴가민가했지만, 강형우는 일단 시키는 대로 했다.
홍태구는 테이블에 천을 깐 뒤 팬을 대고 스윽스윽 해 버렸다. 그러자 황당하게도 진하게 잡혔던 주름들이 펴지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이게… 다리미냐?”
“급한 대로 아무거나 쓰는 거지. 어차피 보이는 데만 큰 주름이 없으면 되니까 이 정도면 돼. 그리고, 천장 조명이 너무 약하다. 여기 반사판 없냐?”
“분식집에 무슨…….”
“하긴.”
홍태구는 한숨을 내쉬더니 또다시 주방으로 들어갔다. 양철 쟁반에 쿠킹호일을 감아서 돌아온 것이다.
“너, 거기서… 어, 그래. 거기서 들고 있어.”
강형우는 졸지에 조명기사가 되어 버렸다.
놀라운 건, 정말 반사판 효과가 있다는 거다. 많지는 않지만 뒷부분이 좀 더 빛이 난다고나 할까?
어쨌든 그 상태로 홍태구가 작업하는 걸 지켜보니, 강주혁의 말을 이해할 수가 있었다.
정말 예뻤다.
자신이 튀긴 돈가스지만, 천장 조명과 홍태구가 가져온 보조 조명, 거기에 반사판까지 더해지니 정말 고급스럽게 보였던 것이다.
특히 하와이안 돈가스가 압권이었다.
그릴 자국이 선명한 파인애플, 그 위로 주르륵 흐르는 소스, 그사이사이에 뿌려진 후르츠 칵테일의 과일 조각들은 정말이지 안 먹고는 못 배길 정도였다.
만약 이 비주얼로 메뉴판을 만든다면?
아마도 누구나 먹고 싶어 할 거다.
피식.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역시 공지혜의 말이 맞는 것 같았다. 강주혁이 탐낼 만큼의 아름다움과 맛이 여기에 있었다.
그랬기에, 내가 만든 메뉴판이 조악하고 한심하게 보였겠지.
그때였다.
“사장님, 저희 왔어요.”
단골손님들의 단골 멘트.
기억하기로 근처 마트에서 저녁 타임 알바를 하는 아가씨들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일찍 식사하고 출근하려는 것 같았다.
당연히 강형우도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나눴다.
“근데, 뭐하시는 거예요?”
“하하. 메뉴판 새로 만들려고요.”
“아! 예. 그럼 파스타 사진도 찍어요?”
“예? 아… 그렇죠. 전부 새로 다 해야죠.”
강형우의 대답에 홍태구가 움찔하더니 곧 인상을 찌푸렸다. 아무래도 장시간 작업이 될 것 같다는 예상 때문이었다.
단골손님들은 주문을 끝내고 기다리면서 촬영하는 걸 구경했다.
일단 돈가스가 나오면 홍태구는 의자 위로 올라갔다.
거기서 수직으로 카메라를 내려 풀 샷을 찍더니 다시 아래로 내려와 접사를 찍었다.
방향을 바꿔 가면서 찍는데, 메뉴 하나당 1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확실히 경험자가 하니 빠르긴 빠르네.
문제는 남은 음식인데…….
“사장님. 그거 진짜 맛있어 보이는데…….”
“그럼 이거 드셔 보실래요? 당연히 돈은 안 받습니다.”
아가씨들이 환호를 했다.
아싸! 하면서 파이팅 포즈를 취하는 것이 노리고 있었던 게 틀림없었다.
그렇게 시식 겸 홍보 겸, 음식 정리를 하는데, 오늘 무슨 날인가 보다.
네 시쯤이면 평소 사람이 뜸한 시간인데도 손님들이 몰리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강형우는 하와이안 돈가스만 다섯 개를 더 튀겼고, 서비스로 나눠줘야 했다.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다들 맛있단다.
그러면서 다음에도 먹으러 올 테니까 언제부터 시작하는지만 가르쳐 달라는 것이다.
강형우는 메뉴판이 나오는 대로 판매할 예정이라고 했다.
그렇게 한 시간 정도가 흐르고, 촬영이 끝났다.
“이거 저녁에 포샵 해서 보내줄 테니까. 확인하고 이야기하자.”
“오케이.”
“계좌 번호 알지? 입금 들어와야 사진 보내 준다!”
하여간 철두철미한 놈 같으니라고. 이럴 땐 좀 덜 꼼꼼하면 좋을 텐데.
강형우는 그 자리에서 지갑을 열었다.
신사임당 두 장이 바로 홍태구의 지갑으로 들어갔고, 그렇게 소란이 끝나는가 싶었다.
잠시 후, 저녁 준비가 한창인데 강주혁이 찾아왔다.
“형우야! 이거.”
“예?”
“비싼 거다. 참고해라.”
그러면서 뭔가를 턱 놔두고 가는데, 확인해 보니 바로 황룡의 메뉴판이었다. 주혁 형네 브랜드 중에서도 최고라는 바로 그 중식당의 것이었다.
“헐~ 대박!”
강형우는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전에 같이 술 마셨던 수영점 풍광의 것이었는데, 듣기로 이거 디자인하는데 200만 원도 넘게 들었다고 했다.
30년 경력의 요리 장인이 만들었고, 전문 촬영기사가 특수 장비까지 동원해 찍었단다.
약품을 발라 광택을 내고, 주사기로 물방울 하나하나까지 표현하고, 드라이아이스로 연기까지 연출했다던 바로 작품이었다.
솔직히 홍태구의 촬영도 놀라웠지만, 한 번 해보고 나서 이걸 보니 정말 급이 달랐다. 그 격차가 단번에 느껴질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퀄리티였던 것이다.
강형우는 그 메뉴판을 살펴보면서 저녁 내내 고민했다.
결국 또다시 홍태구를 부르고 말았다.
***
“여기 파스타 세트 주세요.”
여전히 파스타는 잘 팔렸다.
찾는 손님이 조금씩 줄고는 있었지만, 아직도 인기 메뉴였던 것이다.
공지혜는 환하게 웃으면서 테이블에 다가갔다.
“손님 저희 가게에 이번에 새 메뉴가 나왔는데요.”
“예?”
“파스타 세트도 잘 나가는데, 이번에 이렇게 바뀌었거든요.”
공지혜가 메뉴판을 활짝 펼쳤다.
순간 두 여자 고객들의 눈이 활짝 커졌다.
“어머! 이쁘다.”
“이거 맛있어 보이는데? 잠깐 메뉴판 봐도 되죠?”
“예. 편하게 보시고, 고르시면 불러 주세요.”
공지혜가 빠지자 손님들은 메뉴판을 파고들었다.
강형우는 씨익 웃으면서 그 광경을 지켜봤다.
황룡의 메뉴판을 참고로, 재촬영을 했다.
미리 깨끗한 하얀 천을 구해 왔고 조명집에 들려서 반사판도 챙겼다.
거기에 디테일한 아이디어 몇 가지가 추가되었다.
돈가스 위에 튀긴 마늘 후레이크를 올린다던가, 파슬리와 참깨, 흑깨를 더해서 색상 차이를 준다던가, 소스의 박진감을 살리기 위해 좀 더 높은 곳에서 붓는다던가 하는 식의 연출이 더해졌던 것이다.
그건 파스타와 볶음밥도 마찬가지였다.
세트 메뉴 구성에 맞게 다양하게 촬영을 했는데, 그러다 보니 새벽 세 시 넘어서야 끝나고 말았다.
홍태구는 그길로 집으로 들어갔고 다음날 저녁에 포토샵 파일을 보냈다.
두 번 일 안 하려는 듯 꼼꼼하게 작업해서 보내왔는데 충분히 만족스러웠다.
그걸로 메뉴판 제작에 들어갔고, 제품이 나온 게 바로 이틀 전이었다.
총 비용은 무려 40만 원이었다. 홍태구가 디자인부터 잡스러운 걸 전부 맡아 줬기에 25만 원을 줬고, 개당 만 원에 15개를 뽑아 왔던 것이다.
하얀색 레자 가죽에, 안쪽은 접착식으로 되어 있었다. 때가 타거나 하면 출력만 해서 바로 붙일 수 있게 말이다.
나중에라도 메뉴가 추가되거나 바뀌어도 손쉬운 교체가 가능한 방식이었다.
제발 그럴 일은 없어야겠지만.
그 외에도 자잘한 것들이 바뀌었다.
벽을 장식하던 지저분한 메뉴판을 정리하고, 어묵국밥 플래카드도 떼 버렸다. 여기에 10만 원을 더 들여 주문서도 새로 했고 작은 꽃그림들까지 더했다.
그 효과 때문일까?
지성분식은 이전의 분식집과 다른, 조금은 아늑한 양식 레스토랑 같은 분위기가 되었던 것이다.
“여기요!”
“예, 손님.”
“저희는 돈가스 세트요. 크림 파스타하고 하와이안 돈가스에 떡볶이 이렇게 주세요.”
장사 개시 첫 주문이었다.
“하아~ 아쉽다.”
말투와는 다르게 표정은 환했다. 아주 입꼬리가 올라가 찢어지다 못해 귀에 걸릴 정도였던 것이다.
사실 강형우는 예상치 못한 상황을 맞아야 했다.
과감하게 돈가스에 도전할 수 있었던 건 이유가 있었다.
장사 안 될 가능성도 있고 해서 재고를 염두에 두었다. 그래서 왕돈가스는 하루 50개, 하와이안은 30개, 불돈가스는 20개 정도를 만들어 놨던 것이다.
일명 한정 판매였다.
그게 이틀째인 토요일, 불과 점심시간에 다 나가 버렸다.
바로 만들어도 저녁 판매는 장담할 수 없는 상황.
고기에 밑간을 하고 숙성시키는 시간도 필요했고, 그건 소스 역시 마찬가지였다.
“너무 욕심내지 말자. 남으면 남는 대로 손해니까, 조금씩 적당히.”
강형우는 매일매일 수량 파악을 해서 조절을 했다.
황당한 건, 판매비율이 급격히 달라지고 있다는 거였다.
열흘 동안 평균을 내 보니 이랬다.
파스타 세트가 36개 전후였고, 각각 판매는 20그릇 안팎이었다. 왕돈가스가 19개, 하와이안이 62개, 불돈가스가 31개 전후로 판매가 되었던 것이다.
“확실히 하와이안이 잘 나가네.”
강주혁의 예언이 적중했다.
하와이안 돈가스는 인기 폭발이었다. 대부분 세트가 이걸 중심으로 이뤄졌던 것이다.
여기에 호기심이 더해져 불돈가스가 팔렸는데, 특히 크림 파스타와의 조합이 좋았다.
강형우의 바람대로였다.
서서히 인기가 꺼지기 시작하는 파스타에서, 신메뉴인 돈가스 쪽으로 매출 중심이 옮겨간 것이다.
여기에 다른 메뉴까지 더하니 일평균 매출이 무려 150만 원이 넘어갔다.
특히 주말에는 최소 20% 정도 수익이 더해졌다.
그러다, 터졌다.
판매 개시 후, 세 번째 주말.
지성분식을 오픈하고 장사 시작한 이후, 최초로 일 매출 200만 원을 돌파했다.
***
“이게… 맞는 건가?”
강형우는 믿을 수 없었다.
월 매출이 3,200여만 원이었다.
식자재비에, 고정비, 인건비, 기타 비용을 제외하고 강형우의 손에 들어온 건 무려 1,100만 원이었다.
물론 그게 다 순수익은 아니었다.
하지만 세금을 감안해 이것저것 떼놓아도 엄청난 금액이었다. 몇 달 전까지 2~300만 원 수준의 월급을 가져갔던 걸 생각하면 몇 배나 더 벌어들인 것이다.
갑자기, 울컥하더니 눈물이 날 것 같았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정말 많이 번다고 하겠지.
하지만 지난 몇 달은 정말 지옥 같았다.
돈가스 때문에 반쯤은 가게에서 숙식을 해결했고, 정말 치열하게 공부했었다.
하루 24시간, 한 달 720시간이었다.
그렇게 두어 달을 자는 시간을 제외하고 거의 쉰 적이 없었다. 목숨 걸고 매달리다시피 고민하고 고생한 끝에 얻어 낸 성과였던 것이다.
이게 그 보상 같았다.
“하아~ 믿기지 않아!”
이게 솔직한 감정이었다. 통장에 찍힌 액수가 너무도 비현실적이었으니까.
강형우는 한참 동안 미친놈처럼 보이는 행동을 했다.
통장을 보고 웃다가, 넋 나간처럼 멍하게 있더니 또다시 통장을 보고 웃었다.
이걸 현찰로 찾아서 방에 한 번 뿌려 볼까?
만 원짜리로 찾으면 돈방석 정도는 만들 수 있을 텐데?
아니야. 천 원짜리로 찾아서 침대 매트리스를 만들자.
그런 오만 상상을 하면서 시간을 보냈던 것이다.
물론 강형우는 이제 어느 정도는 알고 있었다.
오픈빨의 함정, 그리고 앞으로 있을 경쟁자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무엇보다 여기서 안주하면 안 된다. 고정 단골을 확보하고 지성분식이 안정적인 체제로 돌아가기 전까지는 긴장을 풀면 안 되는 것이다.
그때였다.
♪~ ♪♪
박차고 태어나서…… 짠짜잔, 짠짜잔.
겁날 게 뭐가 있나~
폰을 보니, 강주혁 이름이 떠 있었다.
“여보세요.”
“어, 형우야~ 내일 쉬는 날이지? 잠깐 볼 수 있냐?”
“예. 근데 무슨 일 있어요?”
목소리가 심상치 않아서 물었는데,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어, 나 차였거든. 안 바쁘면 위로주나 한잔 사라.”
순간 멍해졌다.
이 형 유부남 아니었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