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49화 확실히 팔린다
사람들은 참 희한하다. 하지 말라면 꼭 더 하고 싶은 그런 심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 덕에 불닭볶음면이 초히트를 쳤다.
일단 매웠다.
아니, 매워도 너무 매웠다.
얼마 전 떡볶이 때문에 찾아가던 범일동 매떡 정도는 아니었지만 진짜 먹다가 욕했다.
이걸 누가 먹냐고 그랬는데, 헐~ 인터넷을 뒤져 보니 인기가 폭발이었다.
정말 드물게, 출시하자마자 바로 컵라면을 준비할 정도로 불티나게 팔린단다.
매운 맛의 표준단위인 스코빌 지수가 4,404 이었다.
거의 씬라면의 네 배에 가까운 수치. 게다가 죽을 4자가 무려 세 개나 들어간다.
아무래도 먹고 죽으라고 만든 것 같은데?
살인청부 대신 이걸 선물하면 딱일 것 같았다.
매워서 죽을 것 같은데, 신기한 건 그래도 다들 맛있다고 잘 먹었다.
특히 공지혜는 한 번에 두 개씩 끓여 먹어야 제 맛이라며 만드는데,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눈이 매울 정도였다.
혹시나 내 입이 이상한가 싶어서 다시 한번 도전해 봤다.
먹을 때 옆에서 한 젓가락 했다가 한참 동안 기침을 해야 했다. 단숨에 생수 1L를 비울 정도로 죽음의 맛이었던 것이다.
대체 이게 뭐가 맛있다는 건지.
하지만 장사하는 입장에서는 충분히 매력적인 맛이긴 했다.
손님들이 많이 찾는 것, 즉 트렌드에만 맞다면 괜찮은 아이템이 되는 것이다.
실제로 몇 년 전부터 불닭 열풍이 불기는 했다.
하도 스트레스가 많이 받으니, 매운 거 먹고 확 풀라고!
덕분에 뭐만 하면 ‘불’이 붙었다.
불닭, 불짜장, 불짬뽕… 그러다 불떡볶이에 이어 불찜닭까지 나왔다.
그렇게 매운 맛이 하나의 인기 아이템으로 잡혀 가는 상황이니, 매운 돈까스를 추가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래서 소스를 만들어 봤다.
씨발~
만들다 죽는 줄 알았다.
전에 ‘최고의 매운 카레’라고 그 방송을 본 적이 있었다.
요리사가 방독면을 쓰고 만들더라.
그 이유를 확실하게 알 것 같았다.
소스의 메인은 화끈 오뎅에서 배운 얼큰한 국물이었다.
청양고추에서 씨만을 빼서 깔끔하게 우린 물로 소스를 만들었는데, 덕분에 전혀 안 매워 보이는 돈가스 소스가 완성된 것이다.
참고로, 돈가스 소스는 버터와 밀가루로 루를 만들어서 여기에 닭육수, 우유, 우스터 소스, 케찹과 설탕, 허브를 넣어 만든다.
여러 자료를 참고해, 입맛에 맞게 비율을 조정해서 완성했던 것이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재료들이 더 들어간다.
특히 하와이안 소스는, 여기에 다져서 볶은 양파와 후르츠 칵테일 국물, 레몬즙이 첨가되고, 파이어 돈가스는 육수에 바짝 졸인 매운 국물이 들어가는 식이었다.
강형우는 그 소스를 그득그득 부었다.
한 번 먹고 죽어 봐라, 하는 심정으로.
예상대로였다.
접시를 놓자마자 바로 반응이 나왔다.
“크흑.”
인정둥이는 동시에 코를 막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겉보기에는 처음 나온 왕돈까스와 별 차이가 없었다.
하지만 향이 장난이 아니었다.
“이거… 뭐예요?”
“와, 냄새 작살.”
강형우는 별말 없이 씨익 웃기만 했다.
먼저 도전한 건 강영지였다.
“와! 매운 향이 진짜…….”
그러면서도 돈가스를 크게 썰어 입으로 넣는데, 그렇게 부담스러운 기색은 아니었다.
“후우하~ 이거 맵다.”
“많이 매워?”
“아니, 그 정도는 아니고. 소스는 적당히 매콤한데, 뒤에 오는 향이 코를 찌르네.”
강영지는 다시 한 번 크게 잘라 입으로 넣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크하~”
애가 술 좀 마시나 보나?
왜 어르신들 감탄사가 입에서 나오는지 모르겠다.
“매운데 땡겨.”
또 한 입, 또 한 입을 먹더니 갑자기 휙 고개를 돌렸다.
“싸이다~ 싸이다.”
“어.”
강형우가 사이다 캔을 따서 컵에 부으려는데, 강영지가 그냥 낚아챘다. 그리고 뭐라 할 겨를도 없이 한 모금 크게 마시더니 우렁차게 토했다.
트럼을.
“끄어어어어~”
강영지가 휴지로 입을 닦는데, 너무 자연스러웠다. 방금 전의 상황이 없던 일처럼 말이다.
녹화를 못한 것이 정말 아쉬웠다.
미래의 남친이 보면 정말 좋아할 장면이었는데.
“사이다는 아니다. 쿠울피스 갔다 놔라.”
“그 정도야?”
“어, 떡볶이보다 더 맵다. 그건 후추 때문에 그런 건데, 이건 좀 다르네. 딱 화끈하다~ 그리고 몸에서 열이 나는데, 해장되는 느낌?”
강형우가 기대했던 반응이었다.
동시에, 인정둥이도 나이프를 들었다. 해장이란 말에 도전해 보는 게 분명했다.
한 입 먹더니 몸을 부르르 떨었다.
두 입 먹더니 후욱후욱 거렸고, 세 입에서 휴지를 찾았다. 이마에서 땀이 유전처럼 터졌던 것이다.
사실, 돈가스 소스에는 비밀이 하나 더 있었다.
바로 쌍화탕이었다.
물론 시판 제품을 그대로 넣은 게 아니라, 몸에 열을 나게 하는 일부 성분인 계피, 감초, 생강을 졸여서 추가했던 것이다.
맛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히 말이다.
실제 양은 얼마 안 되지만, 이 약재가 매운 소스와 만나는 순간 시너지 효과를 불러왔다.
그걸 증명하듯, 인정둥이가 휴지를 겁나게 뽑아 썼다.
아무래도 휴지 값도 고려해서 가격을 책정해야 할 듯 보였다.
“일단은 맛있다는 거지?”
“엉. 이상하게 계속 손이 가네.”
강영지의 반응에 인정둥이를 쳐다봤다.
얘들은 고온지옥 열탕에 들어갔다 나온 그런 얼굴이었다.
땀을 한 바가지 흘리면서도 후련한 표정이었는데, 나름 장에 자극이 됐나 보다.
“형님. 맛있습니다. 속 쓰려 죽을 것 같지만.”
“자앙군! 제법 괜찮았소. 컨디션만 좋으면 두 접시도 가능할거요.”
나름 평가를 하는데, 정우가 저렇게 말할 정도면 확실히 합격점이었다.
“근데, 형! 이거 경고문은 붙여야 할 걸요?”
“경고문?”
강형우가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인정둥이가 동시에 말했다.
“먹다 디져도 책임 못짐.”
***
“어마마마, 소자 잘 다녀오겠습니다.”
“제가 옆에서 잘 챙길 테니 걱정하지 마세요.”
강인우와 정우가 번갈아 가며 씩씩하게 말했다.
그럼에도 박혜숙은 울컥하는 모양이었다.
아들 둘을 동시에 군대 보내는 게, 마음 편할 리가 있겠는가?
강형우도 나중에 들었다.
자신이 입대한다고 버스 타러 간 뒤에 펑펑 우셨단다. 그런 뒤 훈련소에서 보낸 첫 편지와 소포를 받고 또 한참이나 우셨다는 것이다.
제대한 뒤, 그 이야기를 강영지한테 들었다.
너무 미안했다.
잘난 것 하나도 없는 아들인데, 그런 아들 때문에 우셨다니…….
바로 공장에 취직한 건 그런 영향도 있었다.
빨리 돈 벌어서 호강시켜 드리겠다고.
힘든 국밥집 일 안 시키고, 편하게 여행이나 다니실 수 있게 하고 싶었다.
그러려면 진짜 돈 많이 벌어야 된다.
“요즘 군대 많이 편하데요.”
그 이야기는 꾸준히 있어왔다.
강형우도 들었고, 창주 형도 들었다. 심지어 혁기형 아버지 때도 있었다는 말이었다.
군대 많이 좋아졌단다.
좋기는 개뿔. 그래도 군대는 군대다.
무려 이년 동안, 그 답답한 담장 안에서 지내야 하는 것이다.
누가 그러더라, 군대 같다 오면 평생 씹을 안주거리가 생긴다고.
그만큼 좆같은 동네가 거기였다.
얼마나 거지같으면 평생 씹을 거리가 생기겠는가?
게다가 생판 처음 보는 고참들과 새로 들어올 후임들하고 한 방에서 지내야 한다.
그중에는 진상도 있을 거고, 고문관도 있을 거다.
당연히 쓰레기도 존재할 거고 지뢰나 피뢰침도 존재했다. 옆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날벼락을 맞는 것이다.
그게 참 억울하고 열 받지만, 그게 군대였다.
중대장이 임무를 주고, 행보관이 일거리를 투하하고, 사단장이 언덕을 평지로 만드는 마법까지 부리는 동네.
후우~
정말이지 군대 갔다 온 걸로 글을 쓴다면 누구나 책 한 권 이상은 나올 거다.
하지만 그 모은 걸 겪었음에도 강형우는 입을 열지 않았다.
말로 백날 해봐도 소용없었다.
막상 겪어보지 않으면 모르는 곳이 바로 군대란 새끼였으니까.
그나마 위안이 되는 건, 동반 입대라는 사실 뿐.
“잘 다녀와라!”
강형우가 인정둥이를 껴안으려 했으나 애들이 극구 사양했다.
“다 큰 남자는 이런 거 안 합니다.”
“전 오늘부터 국방부 소속입니다.”
아무래도 얘들, 군대 가면 개고생할지도.
어쨌든 이른 새벽, 두 동생이 논산으로 떠났다.
동시에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부려먹었을 땐 정말 좋았는데.
***
“이거 확실히 팔린다.”
드디어 끝판왕의 평가까지 끝났다.
강형우는 한숨을 내쉰 뒤, 마음의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환하게 웃었다.
그 동안 많은 사람들을 불러서 시식 테스트를 했다.
창주 형이 왔고, 뒤이어 덕수형과 그 맴버들이 찾아왔다. 홍태구와 오연희도 불렀고, 이학수와 이제는 많이 친해진 강사들도 초대했다.
분석이 형네 집에도 들고 가 만들어 줬는데, 형수가 하와이안 돈가스를 제일로 뽑았다.
뜻밖에도 조카들은 불 돈가스에 환장하더라.
아! 파이어 돈가스는 너무 유치하다고 해서 이름을 바꿨다.
내 작명 센스가 꽝이라 당분간 이걸로 가기로 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런 식으로 테스트한 결과, 다들 맛있다고 해 줬다.
마지막은, 바로 강주혁이었다.
“맛있어. 이건 분식집 돈가스 수준이 아니라… 다른 메뉴 다 빼고 돈가스 집만 해도 되겠다.”
“예? 그 정도예요?”
“어. 특히 하와이안 돈가스. 이거 먹힌다. 확실히 여자들이 좋아할 맛이야. 그리고 구성도 아주 잘 됐고.”
사실 머리에 피 마르게 고민했다.
현재 메인은 파스타 세트였다. 그것과 연결시켜 자연스럽게 돈가스 메뉴를 부각시키려고 꽤나 연구를 했던 것이다.
지성 돈가스는 5,000원.
하와이안 돈가스는 6,000원이었다. 그건 불 돈가스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파스타와 함께 시키면 천 원 할인이 붙는다.
아니면 떡볶이가 추가되는 식이었다.
“문제는… 바로 이거야.”
“예? 뭐가요?”
강형우가 어리둥절해하는데, 강주혁이 한숨을 내쉬었다.
“에휴~ 답답한 놈. 너는 이거랑 이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니?”
“그러니까 뭐가요?”
“메뉴판!”
대체 뭐가 이상한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강주혁은 머리를 긁적거렸다.
“자! 문제. 보기에도 좋은 음식이 맛있어 보이는 거야. 이거 해답 못 찾으면…….”
씨익 웃는데 왜 그리 사악해 보이는지 모르겠다.
“못… 하면요?”
“내가 직접 김밥천왕 운영할 거다.”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외식업계 끝판왕이 직접 맞붙자는데 어찌 놀라지 않을까.
물론 장난이겠지?
“농담 아니야. 안 그래도 고민하고 있는데, 제일 편한 건 내가 직접 하는 거거든.”
“아니~ 왜요?”
“싫으면 문제 풀던가. 하여간 맛있게 먹었고, 난 간다.”
강주혁이 바람같이 사라졌다.
남은 건 테이블에 올려진 꼬질꼬질한 메뉴판이었다.
그때 공지혜가 슬쩍 끼어들었다.
“오빠. 안 그래도 말하려고 했는데요.”
“어? 뭔데?”
“제가 봤을 때. 주혁 오빠가, 심술부리는 거예요.”
“심술?”
“예.”
공지혜는 피식 웃으며 빈 접시를 가리켰다.
“소스까지 단무지로 삭삭 다 닦아 먹었잖아요.”
“그, 그러네.”
너무 깨끗해서 설거지 안 해도 될 정도였다. 강아지가 핥아먹었다고 해도 믿을 정도였고, 이대로 들어서 얼굴 비추면 거울로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만큼 돈가스가 맛있다는 거죠.”
“그런가?”
강형우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돈가스가 맛있는 거 하고, 메뉴판하고 무슨 상관이 있다고 그러는 건지.
“장사꾼의 본능이랄까? 그런 게 있는 것 같아요. 이렇게 맛있는 돈가스는 잘 팔려야 한다. 뭐 그런 거요.”
“아! 그래서.”
강형우는 메뉴판을 펼쳤다.
나름 칼라 프린터로 뽑아서 코팅까지 한 건데, 이렇게 보니 역시 뭔가가 아쉬웠다.
“메뉴판을 새로 만들어야 하나?”
그건 사실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사진 파일 보내고 뽑아 달라고만 하면 되니까.
그런데 이상하게도 선뜻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뭔가가, 다른 판단을 내리라는 듯 망설이게 했던 것이다.
“끄응. 이럴 때는 친구라도… 어!”
순간 눈이 번쩍 떠졌다.
왜 그 생각을 못했지?
강형우는 곧바로 전화를 걸었다. 만능 재주꾼 홍태구한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