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8
48화 내 방식대로 해보는 거다
“맛이… 없다고?”
워낙 정직한 녀석이라 더 당황스러웠다.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재일이는 친구라고 신경 썼다며 나름 신선도가 좋은 안심 덩어리를 잘라줬다.
그걸 가져와 두툼하게 자른 뒤 칼집을 넣어 펼쳤다.
대충 돈가스 모양이 나오면 비닐을 덮고, 작년 이맘 때 개봉한 영화 ‘토르’ 에 나오는 망치 비스무리 한 걸 들었다.
일명 연육망치라고, 너무 작은 걸 샀더니 다들 장난감 망치냐고 핀잔을 주더라. 그래서 큰 걸로 구입했는데 사이즈가 딱 이었다.
그걸로 통통통 두드린다.
너무 넓게 펴면 두께가 얇아져서 식감이 좋지 않았다. 그래서 살살 펴는데, 아무래도 요즘 힘이 넘치나 보다.
고기 다섯 장을 찢어먹고 나서야 어느 정도 조절이 가능했던 것이다.
어쨌든 그렇게 펼친 고기에 소금, 후추 간을 하고, 반나절을 숙성시켰다.
그다음은 밀가루 묻히고, 계란물에 잠수 시킨 뒤, 다시 빵가루로 덮어서 찍어 눌렀다.
이것도 그냥 한 게 아니었다.
밀가루에는 말린 새우와 버섯을 갈은 분말과 강황 가루를 참가했다. 혹시나 있을 잡내와 밀가루만의 텁텁함을 커버하기 위해서였다.
빵가루도 식자재 마트에서 산거에다 우유를 뿌려 습식으로 만든 거였다.
그렇게 공들여 튀겼는데 어찌 맛이 없겠는가?
실제로 테스트 결과는 합격이었다.
파삭하는 튀김 느낌에 고기 육즙도 있었고, 씹는 식감도 나쁘지 않았다. 소스야 아직 업그레이드 과정이니 둘째로 치더라도 5,000원이라는 가격을 감안하면 평균 이상은 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맛이 없단다.
놀란 건 강형우만이 아니었다.
“설마?”
공지혜와 이강석이 한 조각씩 맛을 봤다.
하지만 반응은 평소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실험 대상이 되었기에 며칠씩 맛을 봤음에도 질린다거나 하는 표정이 아니었던 것이다.
“괜찮은데?”
“예. 특별히 맛이 달라지거나 하지는 않아요.”
두 사람의 평가에 강형우도 포크를 들었다.
소스를 듬뿍 묻힌 후 입에 넣었는데, 딱 예상하던 맛이 났다.
“그런데 맛이 없다고?”
강형우가 묻는데, 인우가 다급히 손을 저었다.
“아니 형. 그런 것 때문에 그래서가 아니라. 그게 참 거기시가 그러해서, 그러니까…….”
“말 똑바로 안 해?”
그때 정우가 손을 번쩍 들었다.
“맛이 없다는 게 아니고요. 정말 맛있는 돈가스를 먹고 왔거든요.”
“정말… 맛있는 거?”
들어보니, 평가가 이해가 되었다.
***
떠나요~ 둘이서~
모든 것 훌훌 버리고, 제주도 푸른 밤, 그 별 아래.
아니, 이게 아니지.
강형우는 자신도 모르게 노래를 부르고서는 화들짝 고개를 저었다.
인정둥이가 그런 말을 했던 건 이유가 있었다.
제주도를 놀러갔는데, 거기서 인생 돈가스를 만났단다. 친구에 친구의 소개를 받아 정말 제주도 사람들이 인정하는 맛집을 찾아갔다는 것이다.
일명 제주도 흑돼지 돈가스였다.
일식 돈가스 수준으로 두툼해서 식감이 좋았고, 육즙이 선명하게 느껴질 정도였단다. 거기에 감귤을 갈아 넣은 소스까지 더해지니 색다르면서도 정말 맛있었다는 것이다.
가격은 무려 세종대왕님 한 장 되시겠다.
하여간 너무 맛있어서 세 번이나 먹으러 갔다는데, 그때마다 만족했단다.
해서 인터넷을 뒤져봤다.
의외로 제주도 돈가스가 엄청 많았다.
좀 더 검색해보니, 최근 몇 년 전부터 제주시에서 양돈 산업을 적극 지원하고 있단다.
그 사업의 일종으로 흑돼지를 가공한 제품들이 출시되기 시작했는데, 그중 돈가스가 특히 인기라고 했다.
왜냐?
재일이가 설명해 준 건데, 흑돼지도 일반 돼지와 마찬가지였다. 삼겹살, 목살이 제일 비싸고 나머지 부위는 상대적으로 저렴하다고 했던 것이다.
해서 판매가치가 높은 순서대로 가공하는데, 등심은 거의 돈가스란다.
좀 더 알아보니 최근 쿠퐁, 티멍에서 적극적으로 할인판매를 하고 있었다.
청정지역 돼지 생등심 돈가스.
흑돼지 고급육으로 만든 수제 돈가스.
두툼한 제주 사랑 돈가스.
등등의 제품들이 판매 상위에 올라와 있었던 것이다.
그 돈가스들이, 지금 강형우의 눈앞에 있었다. 진짜 맛이 어떤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 제일 잘나간다는 걸 주문해 버린 것이다.
“후우~ 또 돈가스라니.”
아주 질리다 못해 미칠 지경이었다.
하지만 이것도 노력의 일부였다.
성공을 위해서라면 열흘 내내 돈가스 먹는 것 정도는 참을 수 있었다.
명창이 되기 위해 삼년 내내 폭포 옆에서 고함지른 사람도 있다는데 그 정도야 못할 게 무언가.
일단 튀겨 놓고 보니, 그럴싸했다.
한 제품은 아예 편하게 먹을 수 있게 전자렌지용으로 나와서 더 괜찮아 보였다.
세 제품을 모두 먹어 본 결과!
지성분식의 돈가스보다 고기 맛이 조금 더 잘 느껴진다는 게 장점이었다.
아이스팩 포장으로 이정도면,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러니 직접 현지에서 생으로 된 걸 먹으면 더욱 맛이 뛰어날 게 분명했다.
“흐음, 고기 맛이라…….”
사실 갈등이 생기기는 했다.
이 제품들의 경우 두께 자체가 일식 돈가스에 가까웠다. 특히 두툼하게 씹히는 중심 부분은, 고기만 엄지손가락 두께는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분식집 돈가스는 아니지.”
강형우가 왕돈가스를 선택한 건, 돈가스 전문점이나 일식 돈가스집이 많아서였다.
비슷비슷한 걸로 싸우기에는 한계가 있었고 무엇보다 분식집 돈가스만의 정취와 맞지 않아서였다.
“그러고 보니 흔들렸던 모양이야.”
강정우가 맛이 없다고 했다.
거기에 충격 받아 고민했던 것이고, 애초의 방향을 의심했던 거다.
생각해 보니 그 말도 틀리지는 않았다.
하지만 고급 식당의 만 원짜리 돈가스와 분식집이 오천 원짜리를 비교한다는 것부터가 잘못 된 거다.
애초에 식재료에 쓸 수 있는 금액자체가 다르니까.
“그래, 고민하지 말자! 내 방식대로 해보는 거야!”
***
“으어어어~”
“브어어어~”
인정둥이는 숙취에 헤롱헤롱거렸다.
입대일자가 벌써 모레로 다가왔다. 미리 이 년 치 알코올을 채우고 가겠다는 듯 미친 듯이 퍼마시고 다녔는데, 어제는 새벽 네 시에 들어왔다는 것이다.
강형우는 아주 친절하게, 그런 동생들을 깨웠다. 입대 전에 근사한 걸 먹여 주겠다고 해장도 할 겸 같이 나가자고 했던 것이다.
그런 뒤, 택시를 불렀다.
도착한 곳은 당연히 지성분식!
“혀어어엉~~ 우리 맛있는 거 먹는다면서요?”
“자앙군~ 우리 가게에는 제대로 된 해장 메뉴가 없사옵나이다. 차라리 엄마 가게로 가겠소~”
강영지가 둘을 노려보며 한 소리를 냈다.
“쓰읍!”
반항은 그 한 마디로 정리되었다.
강형우는 피식 웃은 뒤, 주방으로 들어갔다.
해장 메뉴는 당연히 돈가스였다.
소스까지 제대로 업그레이드 한, 지성분식 표 돈가스.
메뉴는 무려 세 개였다.
지성 돈가스, 하와이안 돈가스, 파이어 돈가스.
강형우는 우선 숙성시킨 고기를 꺼내 튀김 옷을 입혔다.
치이이이익.
기름 온도를 확인하고 고기를 투하하자 금세 거품이 생기면서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했다.
그사이 냉장 숙성한 소스를 꺼내 데우기 시작했다.
다시 튀김 상태를 확인하고, 부가 재료를 꺼내어 손질에 들어갔다. 그 후 양파를 구운 뒤, 숙주를 함께 넣고 볶았고 이번에는 통조림까지 땄었다.
그렇게 후다다닥 조리를 시작한 지 20분이 지났다.
원래라면 돈가스가 튀겨지면 끝이었지만, 미리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아서 시간이 더 걸렸던 것이다.
“먼저 이거!”
강형우가 내온 건 전번하고 같은 돈가스였다.
단지 소스 향이 틀리다는 것 뿐, 비주얼은 거의 그대로였다.
그걸 본 강정우가 죽는 소리를 냈다.
“해장으로 돈가스라니… 악!”
“차라리 스프라도 내어주던… 꺽!”
강영지의 등짝 스메쉬가 작렬했다. 이어지는 건 잔소리 폭탄이었다.
“이것들이 군대 간다고 봐줬더니, 해도 해도 너무하네. 여행 갔다 와서! 매일 술 처먹고 돌아다닌다고 바빠서, 밤 열두 시 전에 들어온 적이 하루라도 있어?”
“그게 누님마마…….”
“누님이고 지랄이고, 진짜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거 보여줘?”
강영지가 호통을 치자 효과가 있었다.
“아닙니다. 누님마마!”
“전 벌써 나이프를 들었습니다.”
역시 인정둥이는 현실적응이 뛰어났다. 저 정도 순발력이라면 군대에서도 걱정은 없을 터.
문제는 바로 윗고참이 강영지라면 쉽지 않다는 거지.
“둥이 이것들이, 어딜 오빠한테 함부로 기어올라? 엉~ 오빠가 힘들게 공장에서 벌어다 준 돈으로 너네 고등학교 다닌 거 알아? 몰라? 그럼 이 정도는 당연한 거지!”
잔소리가 이어지는 동안 인정둥이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 상태로 칼질을 하고, 고기를 입에 넣기를 반복하면서 이 지옥이 끝나기만을 기원하는 모양이었다.
곧 강영지가 주방을 향해 윙크를 날렸다.
동시에 강형우는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오늘의 일은 미리 계획된 거였다.
강영지가 부탁을 하더라. 애들 좀 잡아달라고.
이삼 일에 한 번씩, 아침에 화장실을 가면 시큼한 냄새가 진동을 한다고 했다.
얼마나 처마시고 왔는지 새벽마다 토하는 소리가 끊이질 않았고, 오후 늦게 일어나 라면 후딱 끓여먹고 또 술 마시러 나간다는 거다.
해서 용돈을 스톱시켰는데, 제주도에서 노가다로 받은 돈이 제법 되는 모양이었다.
강영지가 폭발한 결정적인 이유는 이거였다.
이틀 전, 친구들 잔뜩 데리고 어머니 국밥집을 찾아가 공짜로 엄청 마셨단다.
그러고도 모자라 용돈까지 타냈는데, 그게 무려 이십만 원이었다.
박혜숙의 심정을 모르는 바는 아니었다.
실제로 강형우가 입대하기 전에도 적지 않은 용돈을 쥐어주었으니까.
해서 이번 일은, 철저하게 강영지 감독, 강영지 극본의 작품이었다.
물론 강형우도 제작 투자에 나섰다.
결코, 돈가스가 ‘맛이 없다’ 는 그 말의 복수(?)는 아니었다.
어쨌든 강영지가 씨익 웃자 강형우는 다시 추가조리에 들어갔다.
이번에는 하와이안 가스였다.
기존 돈가스에, 그릴에 구운 파인애플과 후르츠 칵테일 반 국자가 소스에 더해지는 것이다.
그 차이로 맛이 미묘하게 변하는데, 그게 강형우의 노림수였다.
지성 돈가스가 바닥을 드러낼 무렵, 하와이안 돈가스가 나왔다.
“오, 이쁘다.”
강영지가 감탄하며 인정둥이를 쳐다봤다.
표정을 보니 거의 죽기 직전이었다.
아무리 봐도 토할 것 같았는데, 그걸 방지하기 위해서인지 강영지가 두 동생을 사랑으로 다듬어주었다.
짝~ 짝~
또다시 등짝에 불이 나자 인정둥이는 정신을 번쩍 차렸다.
“똑바로 해! 안 그러면, 너희 휴가 나오기 전에 집 이사 갈 줄 알아!”
안 그래도 그런 말이 나오고 있었다.
강형우는 지성분식 때문에 근처에서 자취하고 있었는데, 여기서 인정둥이까지 군대를 가면 집이 텅 비는 것이다.
게다가 박혜숙은 요즘 국밥집에서 자는 경우가 많았다.
굳이 큰 집을 유지할 필요는 없는 상황.
강형우가 시간을 두고 의논해보자고 했지만, 박혜숙과 강영지는 뭔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다.
“근데 오빠?”
“엉?”
“이거 꽤 맛있다. 여자들이 좋아하겠는데?”
강영지는 꽤나 호평을 했다.
어지간한 치즈 돈가스보다 훨씬 맛이 좋단다.
그러면서 파인애플을 썰어서 고기와 함께 먹는데, 반쯤은 넋이 나간 표정이었다.
다행이 인정둥이도 입에 맞는지 조금씩 입으로 우겨넣고 있었다. 파인애플과 후르츠칵테일의 과일이 소스의 부족한 수분을 채워 줬던 것이다.
사실 하와이안 가스는 많이 고민했다.
뭔가 지성분식만의 색다른 돈가스가 없을까 하고 알아보는데, 공지혜가 힌트를 줬다.
며칠 내도록 돈가스만 먹었더니, 느끼하단다. 이럴 땐 상큼한 게 땡긴다나?
그러면서 오늘은 다른 거 먹고 싶은데 시켜도 되냐고 했다.
이미 정은혜와 말을 맞춘 듯한 눈치여서 결국 허락을 하고 말았다.
배달 온건 하필 피자였다.
먹어 보니 의외로 맛이 괜찮았다. 느끼한 치즈맛을 여러 과일들, 특히 파인애플이 커버하고 있었던 것이다.
알아보니, 작년에 여러 업체들이 앞다투어 출시한 하와이안 피자였던 것.
강형우는 이걸 돈가스 메뉴에 적용시키기로 마음먹었다.
그리고 또 하나.
불과 이 주 전에 출시했는데, 학생들 사이에 폭발적으로 팔려 나간 제품이 있었다.
처음 먹으면 누구나 욕한다는 그 제품.
바로 불닭볶음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