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6
46화 노력해서 성공해라
“형, 뭐라고 그랬어요?”
“엉? 뭐가?”
“염전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강형우가 기습적으로 묻자,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하하, 염전… 그래, 염전 좋지. 거기가 참 돈은 많이 주거든. 우리 회사 스타일이 그래 힘들면 힘들수록 돈은 아주 많이 줘.”
그러면서 옛날 개그를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시급 제일 센 직업이 그거란다.
비행기 밀어서 이륙시키는 거 하고, 제철소 용광로에 손가락 넣어서 온도 재는 거.
“헐. 그거 몇 년 전 개그인데.”
“한 이십 년 됐으니 다시 한 세대 돌고 나면 웃기겠지.”
“설마요. 근데…….”
강형우는 그제야 눈치챘다. 강주혁이 말 돌리려고 실없는 이야기를 꺼냈다는 걸 말이다.
“진짜 염전으로 보내게요?”
의외로 강주혁의 표정이 진지하자 덜컥 겁이 났다. 새우잡이 배, 섬노비, 염전 노예 등등의 단어들이 머리를 스쳤던 것이다.
“자기 인생은 자기가 선택하는 거야. 이후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지. 그리고 형우야. 인생은 누가 대신 살아주는 게 아니다.”
강주혁은 그렇게 말하고는 입을 다물었다.
일전에 듣기는 했었다.
철진 기획을 통해서 적당한 인재가 들어오면 일단 본사에서 먼저 쓴다. 당연히 사대보험에 상여금까지 지급되고 복지까지 빵빵하단다.
그다음은 이거였다.
현재 강주혁의 회사는 많은 가맹점을 가지고 있는데, 거기에 필요한 식품들을 자체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시설을 늘리고 있었다.
예전에는 위탁 계약을 통한 직거래를 했는데, 품질이 아쉬웠다는 거다.
해서 지방에 채소와 나물 농장들을 짓고, 젓갈회사를 차리고, 중국에 김치 공장까지 짓고 있단다. 그러면서 소금까지 자체 생산하기 위한 시설까지 갖췄다는 것이다.
심지어 고춧가루 때문에 고추농사도 계획하고 있을 정도였다.
그러다 보니 사람 구하기가 정말 쉽지 않았다.
무척 힘들고, 외지라서 근무 환경이 좋지 않고, 바깥 구경이 쉽지 않았으니까.
대신 월급은 아주 많이 준다고 했다.
그중 어떤 걸 선택할지는 자신의 몫이었다.
실제로 돈 때문에 중국에 있는 김치 공장을 지원한 이들도 적지 않다는 것이다.
“사실 아버님이나, 동생은 무슨 죄냐? 그래서 내가 건물 매입 제안하면서 그랬지. 괜히 집 팔지 마라. 자식을 위한 거라면 스스로 책임지고 갚게 해라.”
“그래서요?”
“고민 오래하면 뭐해? 결론은 나와 있는데…….”
재산 처분하고 집 팔아 봐야, 해결 안 된다. 오히려 다른 문제가 더 커질 수도 있다.
무엇보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
그런 설득 끝에 빚은 조성기가 다 뒤집어쓰는 걸로 하고, 기린 빌딩을 받아 낸 거다.
“난, 단 한 푼도 깎아줄 생각 없거든. 그나마 베풀어 줄 수 있는 건, 내 밑에서 일하는 동안 잠시 묶어두는 정도지.”
건물 넘기는 시점을 기준으로 빚을 동결시켜 준다. 대신 일 시켜서 받아내겠다, 로 정리된 것이다.
이제 남은 건 가게들 명의 문제와 소송이었다.
“자잘한 거야 내 일이고, 너도 사기 조심해라.”
“안 그래도 이번 일 겪고 나서 섬뜩하더라고요.”
불과 몇 달 사이, 이강석이 당했고 공지혜 아버님이 쓰러지셨다.
마지막이 조성기였다.
그것도 아주 무지막지하게 당했다.
며칠 전에 정분석과 강주혁 이렇게 셋이서 술자리를 했는데 그 이야기가 나왔다.
강형우를 제외한 두 사람이 동시에 말했다.
그게 당연한 거란다.
진짜 프로급 사기꾼들은, 그냥 돈 얼마 먹고 마는 게 아니었다. 상대가 고소고발을 못할 만큼 철저하게 파멸시킨다는 것이다.
다시 재기하지 못할 정도가 되어야 후환이 없다나?
그래서 조성기는 영혼까지 탈탈 털리도록 당했다. 총 부채가 얼마인지 물어보기가 겁날 정도로.
“자! 큰 건 해결했으니 오늘은 마셔야지.”
서로 잔을 친 두 사람은 단숨에 소주를 비워냈다.
그제야 강형우는 궁금한 걸 물었다.
“형, 근데… 사실 이렇게 말하면 기분 나쁠 수도 있는데요.”
“뭔데?”
“왜, 저한테 잘해주는 거죠? 대출도 그렇고.”
계속 궁금했었지만, 묻기가 어려웠다. 괜히 사이가 멀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너 바보냐?”
“예?”
“세상에 공짜는 없다. 너 이자 줄여 준 거, 그거 다 이득이 되니까 해주는 거지.”
강주혁은 피식 웃으며 손가락 두 개를 들었다.
“그거 이천만 원짜리 채권이 아니야. 깡 때려서 천이백에 산 거라고. 그러니 다 받아내기만 해도 이자 포함하면 구백만 원 이득이지.”
“헐.”
강형우는 깜짝 놀랐지만, 곧 어느 정도 이해는 되었다.
강주혁은 그런 사람이었다. 냉정하다 싶을 정도로 계산에는 철두철미한 스타일인 것이다.
그만큼 조성기는 개고생을 하게 되겠지만.
“그리고 이유는 있어.”
“뭔데요?”
“난,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하거든.”
강주혁은 다소 씁쓸한 표정으로 웃었다.
***
“노력하는 사람이라…….”
강형우는 몇 번이나 그 말을 곰씹었다. 그리고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를 깨달았다.
강주혁이 술김에 그랬다.
“아직도 나이든 어르신들 일부는 정육점 사장을 백정이라 불러. 양식집에서 스테이크 굽거나, 고급 일식집에서 초밥을 쥐거나 하는 사람들만 쉐프라고 부르고, 제대로 된 요리사로 본다고.”
“그야… 뭐…….”
“그럼 우린 뭐냐? 주방 하인이냐?”
순간 큰 충격을 받았다.
외식업계에서 나름 큰 소리 친다는 대표였다. 그럼에도 저런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게 무척 의외였던 것이다.
“아직도 요리는 재능의 영역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들만 제대로 된 실력자라고 인정하는 거지. 하지만 실제로 그런 가게에서 먹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어.”
술에 취했는지 감정이 격해졌는지, 말투가 거칠었다.
“평범한 사람들이, 유명 쉐프가 요리하는 고급 음식점을 평생 몇 번이나 가 보겠냐? 일 년에 한 번? 두 번?”
강형우도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그나마 최근, 고급 요리라고 먹은 건 핸섬 파스타가 전부였으니까.
“대부분 우리 같은 사람들이 음식 하는 식당에서 먹어. 하루 두 끼를 외식하면 두 끼를, 세 끼를 나가서 먹으면 세 끼를 해결한다고.”
“그야. 그렇기는 하죠.”
“그런데 사회적인 위치는 아직 바닥이야.”
이해가 되기는 했다.
강형우도 어디 나갔을 때 직업을 물으면,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분식집 사장!
이런 말이 쉽게 나올 것 같지만 실제로는 쉽지 않았다. 음식을 한다고, 요리를 한다고 말하기가 무척이나 힘들었던 것이다.
그걸 고민하고 있는데, 강주혁의 눈빛이 달라졌다.
아무래도 취한 모양이었다.
게다가 술자리가 길어진 탓인지 이야기도 두서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솔직히 식당 음식 만드는 건 재능보다 기능, 즉 게임으로 치면 일종의 스킬에 가까워. 지속적으로 꾸준히 반복하면 숙련도가 늘고 마스터가 가능한 거지.”
그 정도에 이르면, 재료를 대충 잘라도 크기가 맞고 간을 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맞춰진다고 했다.
맛을 보면 뭐가 빠졌는지 단번에 파악할 수 있고, 약간의 더함으로 균형까지 맞출 수 있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누구나 열심히 하면 잘할 수 있다고 했다.
하지만, 그 단계에 이르기까지는 피토하는 노력이 필요한데 많은 사람들이 그걸 무시한단다.
시기와 질투 때문이었다.
고작 요리사가 돈 많이 벌고, 가게를 몇 개나 가지고 있고, 사장입네 하는 걸 좋게 보질 않는다는 거다.
나중에는 시대가 바뀌면 모를까, 적어도 지금 시기는 그렇다고 했다.
“넌 아직, 오 년이 안 되는 초보 요리사 겸 일 년 겨우 넘은 분식집 사장이지.”
“그야… 그렇죠.”
“기죽지 마. 넌 아직 성장 중이고, 젊어. 그러니 자부심을 가지고 상처 받지 마라. 무엇보다 노력은 절대 배신하지 않는다.”
조성기 빚을 단 한 푼도 안 깎아 주는 게 그래서란다.
운 좋게 음식점 사장이 됐으면, 감사하고 노력해도 모자랄 판에 흥청망청 대기나 했으니까.
아니, 그러면서 열심히 노력하는 사람들을 괴롭혔다.
그게 불쾌하고 기분 나빴다. 자신도 그와 같은 힘든 경험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노력하는 사람을 좋아하는 게 그래서야.”
강주혁은 술잔을 쳤다. 그리고 이전과는 다른 또렷한 눈빛으로 말했다.
“형우야!”
“예.”
“노력해서 성공해라. 무엇보다, 넌 그렇게 됐으면 한다!”
“말이 쉽지.”
강형우는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눈앞에 있는 건 돈가스였다.
접시만 무려 여덟 개, 그리고 그중에는 같은 게 하나도 없었다.
“냉동 돈가스 종류가 이렇게 많을 줄은…….”
일단은 같은 소스로 시험해 보기로 하고, 식자재 마트에 파는 걸 종류별로 다 샀다.
또, 인터넷으로 평이 좋은 업체들을 뒤져서 사업자 전용 샘플 세트도 열 개나 구입을 했다.
당연히 일반적인 마트 제품은 제외했다.
종류도 가장 보편적인 등심으로 한정시키면서, 일식에 가까운 쪽도 뺐다.
그건 소스 때문이었다.
지성분식의 돈가스는 탕수육으로 치면 부먹에 가까웠는데, 일식은 찍먹에 가까웠던 것이다.
그럼에도 종류만 40개가 넘었다.
냉동식품, 아니 돈가스 회사가 이렇게 많을 줄은 정말이지 꿈에도 몰랐다.
알려지지 않은 지역 업체들까지 포함하면 수백 개가 넘어갈지도.
휴우~ 이걸 언제 다 맛을 보나?
참고로 이강석은 삼 일 만에 도망쳤다 잡혀 왔고, 정은혜는 농담 삼아 병원비를 청구했다.
저녁마다 돈가스를 먹다 보니 입천장이 다 까졌다나 뭐라나?
순이 이모는 아무래도 양식은 소화가 안 된다면서 몇 조각만 맛을 봤다.
대신 미안하다면서 남은 걸 가져가 반찬으로 쓰겠다고 했고, 덕분에 맛보는 종류를 늘릴 수는 있었다.
물론 공지혜를 뺀 다른 이들은 결사반대를 했지만!
“휴우~ 오늘이 마지막이니, 힘내서 먹어 봅시다.”
강형우를 시작으로, 다들 나이프를 들었다.
아사삭, 파사삭.
소스를 부었지만 아래쪽은 아직 바삭했다. 제대로 잘 튀겨졌다는 증거였다.
사실, 처음에는 돈가스를 조금 무시했다.
회사에서는 온도 맞춰서 한꺼번에 튀기고, 최소 시간이 지나면 색깔 진한 것부터 건져 내면 되었다. 조리부장이 타이밍을 잡아 주었고 그 같은 과정을 기계적으로 반복했기에 쉽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절대 아니었다.
종류와 두께에 따라서 튀기는 시간도 온도도 미묘하게 달랐다.
심지어 기름 빼는 것에서도 차이가 존재했다.
처음 지성분식 할 때는 그걸 몰랐다.
물건 납품하는 평석이 형의 추천 제품을 그냥 튀겼다. 소스도 기성품에 약간의 맛을 더한 게 전부였지만, 나름 평타 수준은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돈가스는 하루 서너 개도 나가지 않았다.
조사해 보니 인근에 오래된 전문점들이 적지 않았고, 배달 업체들도 제법 많아서였다.
때문에 돈가스는 한번 들어오면 냉동실에 최소 일주일 이상은 있었다.
해서 크게 관심을 두지는 않았고, 메뉴에서 정리한 것도 그래서였다.
하지만 이제는 좀 더 제대로 된 걸 판매할 생각이었다. 제품에 따라 하나하나 확인하고 튀겼고 시간도 꼬박꼬박 메모해 놨던 것이다.
“와, 이건 소스 맛으로 먹는 건지. 튀김 맛으로 먹는 건지 모르겠어요.”
이강석의 표정을 보니, 욕하기 직전이었다.
정은혜도 한마디를 거들었다.
“고기가 신문지 두께네요. 이건 돈 받고 먹으라고 해도 사양!”
먹어 보니 강형우도 같은 생각이었다.
역시나 이게 복병이었다.
막상 포장지를 보면 그럴싸한데, 튀겨서 나오면 달랐다.
또 썰어서 단면 보는 것하고 입에 넣어서 씹는 것하고 천지 차이의 제품도 존재했다.
“이건 진짜, 소비자 기만상품이네.”
울화통이 터질 정도로 맛이 없었다. 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딴 걸 파는 건지.
유일한 호평은 공지혜가 했다.
“학교 앞 돈가스집 맛이 나서 괜찮은데요?”
초등학생 때 먹었던 추억의 맛이란다.
당연하게도 강형우는 그 돈가스에 빵점을 주었다.
***
“에이씨~ 차라리 직접 만들까?”
주둥이 수준이 높아졌는지, 딱히 이거다 하고 꼽히는 게 없었다.
사실 맛으로 합격점에 가까운 제품은 여섯 개나 되었다.
예상대로 모두가 최상위권의 가격을 자랑했는데 몇 가지 문제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