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45화 (45/251)

# 45

45화 안 보고 싶습니다

“정신병… 이요?”

“그래. 가장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이 뭐더라? 아! 스토커!”

강주혁은 손가락을 튕긴 뒤 고개를 끄덕였다.

결혼 전에, 형수가 교통사고 비슷한 걸 당했다. 그 때문에 원래 조짐이 보이던 증상이 더 심해졌다는 것이다.

“병명은 강주혁 의존증이라고…….”

“예?”

“뭐 그런 게 있어. 물론 우리야 서로 사랑하는 사이고, 적당히 조절되고 중증도 아니라 별문제는 없는데, 그거 일종의 스토킹이야.”

강주혁은 파전을 크게 입에 넣더니 눈살을 찌푸렸다.

“좀, 짜네. 너도 먹어라. 많이.”

“흐음. 전 간장 안 찍어서…….”

“그러니까, 내가 들은 게 몇 년 전이라 가물가물한데, 단순 망상형 스토커인가? 그쪽으로 분류가 될 거야. 보통사람들은 이해하기 힘들고, 왜 드라마 보면 그런 거 있잖아?”

강주혁은 심각한 표정으로 주먹을 움켜쥐었다.

“내가 갖지 못한다면, 누구도 당신을 가질 수 없어. 그럴 바에야 차라리~ 부숴 버리겠어!”

“와, 형 진짜 연기 잘한다. 순간 소름.”

“짜식, 장사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지. 내일 가게 문 닫아도 오늘 온 손님 앞에서는 웃어야 하는 거라고. 어쨌든 그게 거의 마지막 단계인데, 보통은 이래.”

처음에는,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보여주겠다, 정도였다.

그다음은, 나를 사랑하게 만들겠다로 바뀐단다.

그게 잘되면 좋은데 실패하면 아까처럼 부숴 버리겠다가 된다는 것이다.

“헐, 그거 무섭네요.”

“당연히 무섭지. 하지만 네 경우는 마지막까지는 아닌 것 같아.”

그러면서 설명하길, 보통은 피해자와 환자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있어야 시작된다는 것이다.

실제로 환자의 상당수는 인격장애가 있거나 사회 부적응자에 가깝고, 자제력이 떨어진다고 했다.

원인은 다양한데 성장기 때의 제대로 된 인간관계를 맺지 못하거나 폭력적인 경험을 다수 겪으면 그럴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계기였다.

어떤 일을 시작으로 갑자기 증상이 강해지는데 질투가 심해지고 집착이 늘어난다는 거다.

“그럼 이 경우는 로또인가요?”

“야, 로또 당첨자가 무슨 죄냐? 그냥 운이 좋은 거지. 서민들의 희망을 무시하냐!”

“그건 아니고요. 그냥 계기라고 해서.”

“흐음, 그건 맞는 것 같은데? 갑자기 돈이 들어오니 욕심이 생긴 거고, 소유욕이 강해지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게 되거든. 근데, 그 친구 정신병 병력 같은 거 있나?”

“아! 그게…….”

전에 술에 취했을 때 고백하기를, 의가사제대 사유가 정신병이었다. 그 때문에 면접 보기가 쉽지 않았고 취직도 남의 일이 된 것이다.

강형우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그거, 군병원에서 치료하기 귀찮아서 내보낸 거지. 요즘 군대는 어떤지 모르겠는데, 나 때는 그랬어. 그냥 제대 날까지 병원에 가둬 놨거든.”

“예?”

“그리고 안에서도 치료하기 까다롭다 생각하면 본인 의사 물어보고 제대시켜 버리지.”

하지만 취업이나 기타 다른 사유로 의가사제대를 거부할 경우, 정신병동 안에서 지내야 한단다.

괜히 군부대로 돌려보냈다가 사고라도 나면 난리가 나니까.

실제로 십오여 년 전에 그런 일이 있었단다.

통합병원 정신과 군의관이 병사의 상담을 무시하고 그냥 돌려보냈는데, 그날 자살을 해버렸다. 꾀병이라고 생각한 고참들이 구타를 했고 다음부터 병원 진료를 나가지 못하게 한 것이다.

이 사실이 밝혀지자 난리가 났다.

군의관과 고참들은 큰 처벌을 받았고, 정신병 관련해서 관리가 강화된 것이다.

당시 원스타인 통합병원 원장이 그랬다.

신경정신과 계열의 상담 병사들은 각 부대 사단장이 직접 챙겨서 제 날짜에 꼭 병원에 보내라고.

“그래도 하나는 다행이다.”

“뭐가요?”

“네 덩치를 봐라. 폭력이 통하겠는가?”

“그러라고 키운 거 아니거든요? 그런데 왜요?”

강주혁은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힘으로 안 되면 무기를 들 수도 있거든. 원래 스토킹의 끝은 상대를 죽이고 나도 죽는 거니까.”

연기 잘하는 사람이 그러니 진심으로 무서웠다.

하지만, 강형우는 겁나지 않았다. 만약 무기를 든다면 상대도 충분히 각오해야 할 테니까.

“그런데 기분이 어때? 아직도 그 친구가……”

“아뇨. 이제 친구도 아니고, 동정할 가치도 없어요. 솔직히 표현하면 이젠 적이죠.”

강형우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장사해 보면 안다.

매상이 줄면 하루하루 피가 마른다. 이유도 모른 채 손님이 떨어지는데, 진짜 미치고 환장할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이다.

공과금 내는 날은 순식간에 찾아오고, 월세 날이 다가오면 손까지 부들부들 떨린다.

매출이 오르기 전까지 하루하루가 고역인 상황.

대부분의 식당이 그래서 사라진다고 보면 된다. 장사를 계속할 자신이 없어서, 그 스트레스를 이기지 못해 스스로 문 닫는 것이다.

김용철이 지성분식의 폐업을 예상한 건 그 때문이었다.

따지면 조성기가 한 일은 간접 살인이나 마찬가지인 셈이었다.

그래서 충동이 일어났다.

“지금은, 가능하면 안 보고 싶습니다.”

그건 진심이었다.

***

한 열흘은 잠잠했다.

하긴, 그렇게 사람을 패대기쳤는데 또 찾아오면 인간이 아니겠지.

공지혜 역시 만반의 준비를 한 듯, 가게 입구에 바가지를 걸었고 소금을 잔뜩 담아 놨다.

보이면 확 뿌려 버리겠단다.

재수 없다고.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그럴 일은 없어. 간이 배 밖에 나오지 않는 이상 어떻게 찾아오겠어?”

강형우는 아직 그때의 이야기를 해주지 않았다.

스토커라거나 망상병 환자라고 말했다면, 다들 겁을 먹을 테니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게 그거였다.

저 미친놈이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마치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안고 자는 기분이랄까.

다행인 건, 홍태구가 알려주길 예상 외로 부상(?)이 적다는 거였다.

일말의 이성은 남아 있었나 보다.

눈이 돌아간 상태인데도 주먹질은 하지 않았다. 성질나서 여러 번 패대기를 쳤는데, 푹신한 소파 위로만 집어 던졌다는 것이다.

해서 전신타박상 이 주가 나왔단다.

온몸이 쑤시고 아프고 결리는데, 어디 부러지거나 크게 다친 건 없었다는 거다.

이걸 좋아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모르겠다.

그렇게 하루하루를 보내는 와중에, 두 사람에게서 연락이 왔다.

“송구하게 됐습니다.”

등산복 차림의 까까머리 아저씨가 고개를 숙였다.

그 옆에는 단정한 옷차림의 여자가 있었는데, 바로 조희애였다.

“오빠, 죄송해요. 전 모르고 있었어요.”

연신 고개를 숙이면서 사과를 하는데, 강형우는 뭐라 대답해야 할지 몰라 침묵을 지켰다.

사실 두 사람한테는 별 감정이 없었다.

조희애를 부담스러워했던 건 자신이고, 조원무의 사정은 잘 알고 있었다.

뇌출혈로 쓰러진 이후 거동이 힘들 정도로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러다 아는 스님 덕에 절에서 요양을 하게 된 것이다.

해서 늦봄부터 가을까지 일하고 겨울 전에 다시 절로 들어간다.

또, 실제로 스님이 되려 하기도 했다.

하지만 조희애가 미성년자였고, 조성기에 대한 미련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반 스님 생활을 하고 있었다.

그런 조원무에게 연락한 건 홍태구였다. 직접 지리산 암자까지 찾아가 소식을 전했던 것이다.

하여간 이런 면에서는 참 대단하기는 했다.

조원무는 길게 이야기를 했다.

결론은 이거였다.

절에 데려가든가, 정신병원에 넣던가였다. 어떤 식으로든 사회와 격리시킬 생각이었던 것이다.

조성기의 성격을 보면 그게 가능할 리가 없을 텐데?

“걔가 받아들이던가요?”

“반쯤 세상을 포기한 눈빛이더군요.”

혹여 자살이라도 할까 봐 걱정되는 표정이었다.

조원무가 말하길 그날의 일로 조성기는 매우 큰 충격을 받았다.

정신이 돌아오고 나서, 자신의 실수를 깨달았다.

홧김에 했던 고백은 치부였다. 절대 누구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았던, 열등감과 감정의 응어리였던 것이다.

그 때문에 자괴감에 빠졌다고 했다.

하지만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문제는 저 건물입니다.”

“많이 심각한 겁니까?”

“예.”

조원무는 그간 있었던 일을 설명했다.

연일 고소장이 날아들고 있단다.

사정을 모르는 두 사람으로써는 당혹스러운 일이었다.

해서 주변에 도움을 청해 알아보니, 그 사기꾼 새끼는 정말 엄청난 놈이었다.

김밥천왕과 홍화반점, 번개치킨은 짝퉁이었다.

정식 계약을 체결하지 않은 채 간판과 디자인, 인테리어를 그대로 베낀 것이고, 비슷한 퀄리티의 식품 업체 제품들을 받아서 영업했다는 것이다.

말 그대로 정식 프랜차이즈는 아닌 셈.

무려 반년에 가까운 할인은 그것 때문에 가능했단다.

본사 제재를 받지 않았으니까.

솔직히 강형우도 할인을 그렇게나 오래해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업체에 따라 점주에게 주는 재량권은 다르다. 인근에 같은 브랜드의 가게만 없다면 상권의 특성을 인정해 주는 편이었으니까.

어쨌든, 짝퉁 가게들은 고소를 맞았다.

그 금액만 수억 원 대였고, 조원무가 뒤늦게 협상을 하고 가맹 계약을 하려 했지만 거절까지 당했다.

장기간의 할인, 본사 기준에 맞지 않는 매출.

무엇보다 그런 선례를 남기면, 앞으로 그런 일이 계속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없었다. 이번 고소로 본때를 보여 주겠다고 작정한 것이다.

“이제는 건물만 팔아서 해결될 일이 아니더군요. 상가를 처분해도 배상액을 맞출 수 있을 런지도 자신하기 어렵습니다. 무엇보다…….”

매달 나오는 사천만 원에 가까운 이자도 부담스러웠다.

그래서 조원무는 전 재산을 내놓기로 했다.

집도 팔고 그동안 모은 돈을 다 쏟으면 어떻게든 될 것 같단다. 전부 자식 못 챙긴 자신의 책임이라면서, 이렇게까지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기가 무서운 거다.

단순이 몇천, 몇억을 털어 가는 게 아니었다.

엄청난 빚을 지우고, 피해자와 그 가족에게도 고통을 준다.

평생 지울 수 없는 마음의 상처까지 남기는 셈.

“다행인 건, 이제라도 정신이 돌아왔다는 겁니다. 하지만 언제까지 그럴 수 있을런지는 자신하기 어렵습니다.”

조원무가 걱정하는 건 그거였다.

***

“허… 참.”

일이 풀리려니 이렇게 될 줄은 몰랐다.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조성기는 팔렸다. 기린빌딩과 세트로 철진 기획에 넘어간 것이다.

“솔직히 싸게 샀지.”

강주혁은 술잔을 흔들면서 씨익 웃었다.

맞다.

이번 일로 가장 큰 이득을 본 건, 철진 기획이었다. 은행 대출하고 보증금 합쳐서 13억이면 싸다는 것이다.

게다가 실제로 든 돈은 거의 없었다.

어떻게 이런 계산이 나오는 것일까?

최근 철진 기획은 막대한 돈을 풀어 연산동 일대의 대부업체들을 하나씩 흡수하고 있었다.

그중 하나가 기린빌딩의 채권자였다.

“뭐, 보증금이야 나중에 천천히 줘도 되는 거고, 은행 대출은 상황 봐서 처리하면 돼. 진짜 문제는 그런 게 아니고…….”

“형, 눈빛이 살벌한데요?”

“그게 사정이 좀 있다. 사실 여기 인수하면서 말이 좀 많았거든.”

“무슨…….”

“사장은 회사를 팔려 했는데, 직급 높은 관리 직원들이 반대가 심하더라고. 결국 사고 나서 알아보니까, 아주 윗대가리 새끼들이 전부 사기꾼들과 한통속이었어.”

내부 업자와 짜고 담보만 있으면 거의 불법에 가깝게 대출해 줬다. 그런 뒤, 단기간의 높은 이자로 대출금을 회수한 다음 경매에 넘기는 짓을 한 것이다.

회사에 피해를 끼치면서 사기꾼들한테 뒷돈을 받았으니 당연히 반대할 수밖에.

“전부 회사 그만뒀는데, 싸그리 고소해 버렸지. 합의도 안 해 줄 거야. 어쨌든 저 빌딩은 운이 좋았지.”

“과연 그럴까요? 해결할 일도 꽤 많은 걸로 아는데.”

홍태구를 통해 듣기로, 소문이 다 났다.

건물주가 거지 됐다는 말이 퍼졌다.

학원 원장이 스트레스 때문에 한 달 만에 대머리가 됐다더라.

호프집 사장도, PC방 사장도 보증금이 날아갈까 전전긍긍하다 발기부전까지 왔다는 이야기도 해줬다.

게다가 1층 상가의 가게들도 마찬가지였다.

분위기가 뒤숭숭해서 장사가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게다가 짝퉁가게 소문 때문에 손님 발길까지 뚝 끊겼단다.

강형우가 그런 이야기를 하자,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그건 내가 알아서 할 일이지. 넌 니 장사만 신경 써라.”

“이제는 그래야죠. 그런데… 진짜 궁금한 게 있는데요?”

“뭔데?”

“성기는 어디로…….”

일전에 그랬었다.

철진 기획은 취직을 시켜준단다. 돈을 벌어야 돈을 갚을 수 있다면서 말이다.

그러면서 본사, 혹은 계열사, 혹은 거래처 중에 적당한 곳으로 보낸다고 했다.

“궁금하니?”

“약간은요?”

“뭐, 이자도 제법 있으니까 돈 갚으려면 빡시게 벌어야지. 제일 돈 많이 주는 데가 있기는 한데 버틸 수 있으려나…….”

강주혁이 무심코 중얼거렸다.

보통 사람이라면 거의 듣기 힘들 정도로 작은 소리였다.

하지만 강형우는 똑똑히 들었다.

분명 염전이라고 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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