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4
44화 이해가 돼요?
켈럭시 노트라고 폰을 새로 샀다. 화면도 크고 시원해서 단번에 질러 버린 것이다.
그 기념으로 전화를 했는데, 김용철이 받질 않았단다.
“이상했지. 이상했다고.”
조성기는 맥주잔에 소주를 절반이나 부었다. 그리고 맥주로 나머지를 채운 뒤 쭈욱 들이켰다.
강형우도 마찬가지였다. 답답한 마음에 500㏄ 한 잔을 단숨에 들이마신 것이다.
조성기는 이를 빠드득 갈았다.
“모두 연락이 안 되더라고.”
없는 번호라고 했다.
그렇게 사라진 사람은 김용철과 대리 점장 두엇이었다.
답답한 마음에 가게로 향했다.
김밥천왕과 홍화반점은 주방장과 점장이 어제부터 연락이 안 된 단다.
프랑스바게트와 조가네 떡볶이는 정상 영업 중.
엄마버거와 번개치킨은 점장 없이 알바들이 장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너 설마? 가게를 남한테 맡겼던 거냐?”
“뭐, 그럴 수도 있지. 사장이 꼭 장사하란 법은 없잖아.”
“미친 놈! 그걸 말이라고…….”
사장이 가게에 없으면 알게 모르게 누수가 생긴다. 확실히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모를까.
“믿었어. 믿었다고. 시키는 대로 하니까 다 되더란 말이야. 그래서 했는데…….”
관리 사무실로 쓰던 오피스텔이 비워져 있었다.
서류 하나 없이 깔끔했고, 남은 건 각종 고지서들뿐이었다.
혹시나 해서 거기도 가봤다.
망미역 고가도로 아래 순대국밥집에 가니 다행히 사장은 그대로였다.
조성기는 급한 마음에 김용철 어디 갔냐고 따졌다가 미친놈 취급을 받았다. 그게 누구냐고 오히려 욕까지 들었다는 것이다.
그럼 그때는 왜 친한 척했느냐고 물었더니 기억도 안 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하는 말이 모르는 사람도 아는 척해야 할 때가 있단다. 워낙 많은 손님을 받는데, 일일이 기억할 수 없기에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 한마디가 비수였다.
자네, 장사 한번 안 해봤냐고!
충격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혹시나 해서 은행을 가봤는데, 돈이 한 푼도 없었어.”
학원과 여기 호프집, 지하 PC방 보증금이 사라졌다.
그 돈만 무려 6억이었다.
“씨이발~”
조성기가 탁자를 쾅 내리쳤다.
그 직후 호프집이 시끄러워졌다.
사장이 음악소리를 키운 뒤에 조용히 찾아왔다.
“저기요, 조 사장님.”
“아~ 알았다고요. 조용히 할 테니까, 술하고 안주나 더 가져와요.”
조성기의 손짓에 호프집 사장은 불안한 눈빛으로 자리를 피했다.
때마침 홍태구와 오연희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야, 성기야.”
“어이~ 친구. 왔냐? 그런데 어쩌지? 나 오늘은 술 못 산다. 봐. 먼지밖에 없잖아.”
그러면서 주머니를 보여 주는데 거기서 몇 장의 서류들이 떨어졌다.
홍태구가 눈살을 찌푸렸다.
“고지서하고, 경고장?”
“어. 맞아. 그게 다 빚이다? 이상해서 전화를 해 봤지. 근데 김용철 이 씹새끼가…….”
강형우가 들은 건, 정확하지 않았다.
술 때문에 발음이 샌 것도 있었고 조성기가 얼버무린 것도 있어서였다.
대충 이야기하면 이랬다.
은행 대출금 7억인데 몇 달 전부터 이자를 내지 않았다.
대부업체 역시 마찬가지였는데, 무려 총 금액이 8억이나 된다고 했다. 그리고 연체이자까지 추가되어 매달 3,500만 원 가까이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은행이야 건물 지을 때 빌렸으니 그렇다 치더라도, 어째서 대부업체 대출이 저럴까 싶었다.
조성기는 소맥 한 잔을 더 마시더니 피식 웃었다.
“가게들 있잖아. 거기 가맹비 내고, 재료 받고, 인테리어 할 때 빌렸는데, 이후에 영업하면서 그 실적을 담보로 더 빌렸더라고.”
그게 가능한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하지만 되니까 대출을 받았겠지.
“게다가 장부도 가짜였어. 분명 장사 잘되고 있다고 했고, 서류까지 받았는데 그게 다 사기였던 거지.”
계산해 보니 수익은 월 천만 원도 안 된다고 했다. 여기에 월세를 더해도 이자 갚기에는 빠듯하다는 것이다.
강형우는 호기심에 한동안 넋두리를 들어주다 슬슬 짜증 나는 걸 느꼈다.
진짜 듣고 싶은 건 그게 아니었으니까.
“너 통장에 얼마나 있냐?”
“글쎄? 여행 가서 좀 쓰기는 했지만 그래도 오천 정도는 남아 있을 걸?”
역시 재벌과 연예인은 걱정할 필요가 없다더니, 딱 그 말이 맞았다. 게다가 구구절절 어렵다고 징징대는 모습에 동정심조차 생기지 않았다.
홍태구가 정답을 말했다.
“그럼 됐네. 건물 팔면 되는 거잖아. 그럼 빚 정리는 끝나는 거 아냐?”
“미쳤냐? 건물을 왜 팔아!”
조성기가 발끈해서 소리치는데 오연희가 노려봤다.
“목소리 높이지 마!”
“씨이~ 에이. 알았어. 알았다고. 하여간 건물은 못 팔아! 이게 내 꿈이었는데, 소원이었는데 어떻게 팔겠냐?”
그 한마디에 결론은 났다.
지금 이 술자리는 조성기가 진짜! 힘들어서가 아니었다. 배부른 자의 투정에 불과했던 것이다.
강형우는 더는 들어주기 힘들었다.
취해서 말하는 것도 듣기 싫었고, 왜 짜증 나게 이 자리에 있어야 하는지도 이해가 되지 않았다.
홍태구가 아니었다면 이제 얼굴 볼일도 없겠지.
그런 생각으로 툭 내뱉었다.
“그럼 평생 이자나 내다 죽든가.”
***
때로는 분노가 육체를 지배한다고 했다.
강형우는 의식 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팔이 들렸다 내려가니 퍽, 소리가 났다. 뭔가 들썩하더니 비릿한 게 튀었다.
또다시 주먹이 움직이고, 또다시 주먹이 움직이고.
그걸 얼마나 반복했는지 모른다.
희미하게 정신이 들어올 때가 되어서야 시야가 회복되었다.
눈앞에 있는 건 붉은 고깃덩어리였다.
얼굴이 커다란 돌에 찍힌 것처럼 뭉개진 데다 눈알도 튀어나와 있었다. 입에서는 피가 흘러 나왔고 간헐적으로 경련하는 게 심상치가 않았다.
시체의 주인은 조성기였다.
“헉!”
강형우는 겨우 정신을 차렸다.
아주 잠시지만 의식이 멍해지고 말았다.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내가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나?
강형우는 급하게 일어나 주위를 둘러봤다.
다리가 보였고, 그 아래로 강물이 흐르고 있었다. 그 양쪽으로 사람들이 산책을 하면서 시원한 밤바람을 쐬고 있었다.
“여긴 온천천?”
그제야 강형우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졸았던 모양이었다.
아니면 기절했던가.
하긴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진짜 아까의 일은 너무 충격적이었으니까.
“야! 이게 모두 너 때문이야. 정말 다른 사람은 몰라도 너는 그러면 안 된다고.”
조성기가 버럭하자, 강형우는 어리둥절했다.
잠시 씩씩거리던 조성기가 말을 이었다.
“전부 널 위한 거였다고.”
“뭐?”
“지성분식 망하면, 그래야 네가 나를 찾아올 거 아냐?”
순간 머리가 띠잉 했다.
내가, 방금 무슨 소리를 들은 거지?
하지만 조성기의 외침은 끊어지지 않았다.
“생각해 봐. 난 평생 너한테 받기만 했어. 그래서 이제라도 너한테 뭔가 해 주고 싶은데, 넌 필요 없다고 하잖아. 사실 보증금도…….”
간절하게 그때의 상황을 설명하는데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성기는 빌고 빌어서 지성분식 보증금을 받아 온 거였다. 그래 놓고 대범한 척 수표를 내민 거고, 아버지한테 그렇게 말해달라고 부탁했단다.
“왜?”
“그래야. 네가 거절하지 않을 것 같아서지.”
순간 울화가 치밀었다.
왜 정신적 충격 때문에 사람이 쓰러지는 걸 알겠다.
강형우는 주먹을 불끈 쥐어서 흐트러지는 의식을 억지로 붙잡았다.
“그래. 그래서 그런 거야. 너 망하면 나 찾아올 거고. 그럼 내가, 우리 같이하자고 할 수 있잖아.”
강형우는 조성기의 정신 상태를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이게 정상적인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범주인가?
혹시나 싶어 돌아보니, 홍태구도 오연희도 충격받은 모양이었다.
“솔직히 난 괜찮다고 생각했어. 우리가 가족이 되는 것도. 그리고 희애가 너 좋아하잖아.”
그 말에 겨우 정신이 돌아왔다.
당시 강형우가 내 밥상에서 일할 때였다.
조성기가 여자 소개 시켜 준다고 나오라고 해서 나갔는데, 그 자리에 조희애가 있었다. 오빠가 첫사랑이라면서 꼭 다시 만나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멍청한 새끼 같으니라고.
25살 친구한데, 고1 여동생을 소개시켜 준다는 게 말이나 되는가?
아니, 상식적으로 그게 될 것 같냐?
아주 꼬꼬마 때부터 본 사이인데?
어쨌든 조희애와 어색해진 건 그때부터였다.
이후, 가끔 안부나 묻고 동네 지나가다 보면 인사나 하는 사이가 된 것이다.
“물어보니까. 희애도 아직 너 좋아한데, 그럼 둘이 결혼하고 내 건물에서 너 장사하면 되는 거잖아.”
조성기가 당당하게 말하니까, 더욱 충격이 컸다. 가까스로 잡고 있던 정신이 희미해지는 느낌까지 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건 몇 초 되지 않았다.
조성기가 그랬다.
“다 너랑 잘해보려 한 거야. 그리고 전에도 말했지만 나도 영지 좋아해. 서로 사돈하고 그러면…….”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뚝 끊어졌다.
“야이, 개새끼야!”
강형우는 벌떡 일어나 테이블을 잡고 옆으로 밀어버렸다.
그런 뒤, 조성기 앞으로 성큼 다가갔다.
“형우야!”
누군가가 팔을 잡았지만 강하게 뿌리쳤다.
강형우는 그 손을 그대로 움직여 멱살을 붙잡았다.
순식간에 조성기의 몸이 위로 떴다.
“야, 형우야.”
조성기가 다급하게 외쳤지만, 강형우는 멈추지 않았다. 그대로 바닥으로 던져 버린 것이다.
“컥!”
비명은 한 번이 아니었다.
강형우는 두 손으로 또다시 조성기를 붙잡았다. 그리고 번쩍 들어서 아래로 패대기쳤다.
그걸 몇 번이나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쾅 소리가 났다.
***
“아주, 쑈를 한다 쑈를 해~”
“어, 형. 나왔어요?”
강형우가 고개를 돌리니 강주혁이 보였다.
파란색 삼선 추리닝을 입고, 투덜투덜 거리는 걸 보니 괜히 웃음이 나올 것 같았다.
“미친놈아. 가정 있는 유부남한테 밤 열두 시에 전화하면 어떻게 하냐?”
“그게… 형, 미안해요.”
“됐고, 쌀쌀하다 일단 가까운데 들어가자.”
강형우는 강주혁을 따라 온천천을 벗어났다. 그리고 다리 가까운 곳의 막걸리집으로 향했다.
사실 우울하고, 답답했다.
머릿속이 혼란스럽기도 했는데, 누군가에게 이야기하면서 이 울컥하는 감정을 풀고 싶었던 것이다.
제일 먼저 생각나는 사람은 정분석이었다.
하지만 일전의 소동도 있었고, 일찍 자는 스타일이라 겁나서 전화를 못했다.
그러다 강주혁이 떠올랐다.
“쯔, 나도 일 때문에 집에 막 들어간 거라 나온 거지. 겸사겸사 이 핑계 대고 한잔하는 거고. 그래 무슨 일이냐?”
강형우는 짧게 이야기했다.
아침에 조성기란 놈을 만났다.
막 두들겨 패고 싶어서 나갔는데, 주변에서 말리는 사이 녀석이 도망치더라. 그런데 그래 놓고 저녁에 도와달라고 전화를 했다는 것이다.
이야기나 들어보자고 나갔는데 그만 폭발하고 말았다.
“그때 차용증 넘긴 그 친구?”
“예.”
“그래서? 죽였냐?”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잠깐 눈이 돌아간 거죠. 성질나서 몇 번 집어 던진 것 같은데, 다른 친구가 말리더라고요.”
강주혁은 강형우의 위아래를 노골적으로 훑어 봤다.
“그런다고~ 말려질 게 아닌 것 같은데?”
“그게. 맥주병으로 제 머리를 쾅…….”
“아! 그 친구 현명하네. 나중에 우리 쪽에 취직하고 싶으면 면접 한번 받아 보라 그래라.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그게. 크큭. 저 잠시 기절한 모양이더라고요. 그사이 그 새끼는 도망간 것 같고.”
“다행이네. 사람 안 죽어서.”
진담처럼 들려서 강형우는 기겁을 했다.
아까 잠시 졸면서, 정말 사람 죽이는 꿈을 꿨었다. 만약 홍태구가 말리지 않았다면 어쩌면 그렇게 됐을지도 몰랐다.
“야. 네 덩치를 봐라. 울컥한다고 사람 패면 그냥 죽어! 내가 전에 그랬… 일단 막걸리 나왔다. 한잔하자!”
강주혁이 막걸리를 채워 주자 강형우는 단숨에 비웠다.
갈증이 사라지자 조금은 후련해지는 기분이었다.
그제야 강형우는 아까의 일을 조심스럽게 풀어놨다.
특히 조성기가 했던 말을 가능하면 그대로 전달하는데 주력했다. 전부 나를 위해서 지성분식을 망하게 하려 했다는 것들 말이다.
“형은, 그런 감정이 이해가 돼요?”
“어? 어!”
“예? 그게요?”
강형우가 눈을 크게 뜨는데, 강주혁이 말했다.
“당연하지. 그거 정신병이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