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42화 (42/251)

# 42

42화 장사 어렵다

본능이랄까? 아니면 직감?

무심코 TV를 보는데, 어떤 말이 귀에 확 꽂혔다.

“항상 위기를 짐작하고 대비해라. 정말 위험할 때는 이미 늦었으니까.”

“그럼 어떻게 준비하면 됩니까?”

“과거를 돌아봐라. 거기에 해답이 있다.”

무슨 도사 어쩌고 하는데서 나온 말인데, 왜인지 무시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강형우는 천천히 되짚어봤다.

***

불과 반년 전까지만 해도 지성분식은 망하기 일보 직전이었다.

일 매출 십만 원 이하!

주방 이모들도 하루 종일 놀고 있었고, 바쁜 건 점심, 저녁 때 잠깐뿐이었다.

파리조차 한가한 그런 상황.

강형우는 결단을 내렸다. 김밥천왕과 싸우는 대신 지성분식만의 길을 가겠다고.

먹고 사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그러다 이학수의 조언에서 아이디어를 얻고 방향을 잡았다.

다른 곳에서 하지 않는 메뉴. 그리고 가볍게 빨리 먹을 수 있고, 속에 부담이 없으며 가격까지 저렴한 걸 목표로 고민했던 것이다.

그게 어묵국밥이었다.

오뎅을 미끼로 한 건 주효했다.

그 덕에 싸다는 인식을 줄 수 있어서 많은 학생 손님들을 끌어올 수 있었다.

솔직히 어묵국밥은 많이 남지 않았지만 재기의 발판은 됐다. 일단 적자를 벗어난 게 좋았고, 돈 버는 행복을 다시 느낄 수 있게 해주었던 것이다.

이후 또다시 고민했고, 본능적인 이끌림으로 파스타를 선택했다.

이 동네 인근에는 여자들이 찾아와서 먹을 만한 음식이 없다는 것을 파악했으니까.

정확히 분류하면 크림 스파게티, 토마토 스파게티였다. 그리고 여기에 어울리게 매운 떡볶이까지 갖추려고, 부산에 소문난 집들은 다 찾아다녔다.

광안리 ‘다리집’부터 ‘남천할매’ ‘부대떡볶이’ 등등을 다녔고, 남포동, 서면 1번가와 동래시장, 수영 팔도시장에, 안락동 서원시장까지 훑고 다녔다.

마지막은 범일동 ‘매떡’ 이었다.

아주 혀에 불나게 매웠다.

순간 조성기를 데려와 한 접시를 입에 털어 넣어 버리고 싶었다. 합법적인 고문이란 생각까지 들 정도로 무지하게 아팠던 것이다.

어쨌든, 그 덕에 적절한 맵기를 찾아낼 수 있었다.

딱 아프기 직전까지의 얼얼한 맛.

그게 파스타와 조화를 잘 이뤄서 대박이 난 거다.

사실 지금까지는 지성분식을 살리고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한 밑바탕에 불과했다.

솔직히 말하면, 아직도 위태위태했다.

지성분식의 현재 포지션은 동네에서 음식 좀 괜찮게 하는 가게였다. 거기에 저렴하게 먹을 수 있는 짝퉁 파스타 집이었고, 인근 학생들한테는 부담 없는 가게였다.

만약 여기서 어묵국밥과 파스타가 사라진다면?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하지만 지금이 그때를 대비해야 할 때였다.

***

“확실히 잘 안 나가네.”

고작 4월이다.

하지만 부산은 낮 기온이 20도 가까이 올라가면서 난리가 났다.

새벽에는 바람막이를 걸치고, 낮에는 반팔을 입는 상황.

당연하게도 오뎅 판매량이 뚝 떨어졌고 그건 어묵국밥도 마찬가지였다. 그나마 비오는 날만 손님들이 많이 찾았던 것이다.

다행인 건 파스타 세트였다.

살랑살랑한 봄바람 때문인지, 어린(?) 연인들의 방문이 늘어나고 있었다.

일명 신학기 커플들이었다.

강형우는 애들이 먹는 걸 보면서 대충 짐작했다.

이제 고등학교를 막 입학한 것처럼 보이는데, 우걱우걱 먼저 먹기 바빴다. 그러다 남은 떡볶이 한 조각을 두고 싸움이 벌어졌다.

일명 포크 칼 싸움이었다.

승자는 남학생이었다.

장난치듯 포크로 위협하다가 떡볶이 국물이 여학생 교복 셔츠에 튀었다. 놀라서 당황하는 순간에 마지막 한 조각을 쟁취한 것이다.

참 유치한 싸움인데, 파장은 클 것 같았다.

아~ 쟤들은 한 달 가면 오래가겠구나.

그다음 커플은 정말 며칠 안 된 모양이었다.

앞접시를 부탁해 서로 조금씩 나누어 먹는데, 눈치 보는 모습이 지켜보는 사람도 설렐 정도였다.

니들은 그래도 오래 갈 것 같네.

그런 생각들이 저절로 드는 걸 보니, 확실히 봄이긴 봄인 모양이었다.

어쨌든, 나름 선방하고 있었지만 파스타 세트의 매출은 조금씩이지만 지속적으로 하락하는 상태였다.

역시 유행은 잠깐인 모양이었다.

“진짜 가게 확장했으면, 큰일 날 뻔했을지도.”

고작 두 테이블이지만 손님이 꽉 찬 것과 안 찬 건 차이가 컸다.

솔직히 손님 많은 가게를 가면 일단 안심이 된다. 맛은 기본 이상일 거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이다.

그 때문에 일부러 테이블을 줄여서 손님 줄 만드는 가게도 있을 정도였다.

“일단 새 메뉴는 계속 고민해보자.”

그렇게 작정하면서 준비하고 노력하지만 사실 쉽지가 않았다.

왜냐하면, 장사가 너무 힘들었던 거다.

“하루하루가 정말 쉽지가 않아!”

진짜 장사는 임기응변이었다.

김치볶음밥이 매워서 못 먹겠다고 해서 공기밥 반 공기와 국물을 더 드렸다. 또, 어묵국밥이 짜다고 따져서, 뜨거운 물 한 컵을 가져다 드렸다.

차라리 이 정도는 양반이었다.

사골국물에서 비린내 난다고 화를 내더니 돈 안 받겠다고 하자 밥까지 비벼서 말아먹더라.

참 기가 찼지만 그나마 너그럽게 넘길 수 있었다.

문제는 구타 유발자들이었다.

파스타 맛이 이상하네 하면서 짜증을 내기에 정중히 돈 안 받겠다고, 그냥 가시라고 했다.

그럼에도 끝까지 시비를 걸더라.

참고, 또 참으면서 몇 번이나 사과하면서 피했는데, 이 새끼가 나간 뒤에 입구 문을 걷어찼다.

쾅 소리가 크게 나면서 다들 놀랐고 어떤 여자 손님은 비명까지 질렀다.

강형우가 잡으려고 나갔는데, 정말 빠르게 도망가더라.

강화유리라 다행이지 깨졌으면 어쩔 뻔 했는지.

그다음은 발암 발생자들이었다.

비오는 어떤 날, 나이 지긋한 어르신 두 분이서 어묵국밥에 소주를 시키셨다.

딱 한 병을 갈라마셨을 뿐이데, 갑자기 언성이 커지기 시작했다. 대통령이 죽일 놈이니, 살릴 놈이니 하다가 서로 멱살을 잡아버린 것이다.

그러다 자빠지면서 테이블을 엎었다.

손님들은 피하고, 술병은 깨지고, 술 냄새는 퍼지고.

순간 혈압이 올랐지만 어떻게 겨우겨우 달래서 내보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입구에서 또 싸우더라.

계산은 팔천오백 원이 나왔다. 서로 오천 원씩 내고 잔돈을 받으시더니, 니가 오백 원을 더 가져가네 마네 하면서 또 멱살을 잡으셨던 것이다.

결국 경찰 부르겠다고 하자, 사태가 마무리되었다.

누가 그러더라.

참을 인자 세 번이면 살인도 피한다고.

세 번이 아니라 하루에도 열 번은 넘게 필요한 것 같았다.

금고에 돈 차는 소리 때문에 참는 거지, 아니라면 정말 감옥에 갈 뻔한 적이 여러 번이었다.

“대체 어떤 새끼가 장사가 쉽다고 말했는지, 머리 통을 갈라보고 싶네.”

그런 고단함 때문일까?

강형우는 메뉴 정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집에 들어가면 힘들어서 바로 잠드는 나날이 계속 되었던 것이다.

하지만, 노력 덕에 대충이나마 좁힐 수 있었다.

“결국 이쪽이냐? 이쪽이냐 인데?”

강형우는 인터넷 창을 보며 머리를 긁적거렸다.

하나는 부산대학교 앞의 유명 분식집 해바X기였다.

메뉴가 엄청 많았는데 한식만 해도 볶음밥이 네 종류, 찌개도 네 종류에 두루치기, 비빔밥도 팔았다.

여기에 유행한다는 알밥도 있었고 치즈 토핑도 추가되었다.

이것만 해도 종류가 열여섯 가지.

여기에 라면과 오븐 그라탕, 돈까스에 볶음밥, 오무라이스까지 있었고, 계절에 따라 막국수와 쫄면도 팔았다.

대충 따져도 서른 가지가 훌쩍 넘었는데, 뭘 시켜도 평타 이상의 맛이었다.

특히 잘 팔리는 메뉴가 두루치기였는데, 반찬만 5개 넘게 나오는데 가격은 고작 4,500원이었다.

거기에 그라탕과 왕돈까스도 유명했고 그것들을 합친 세트메뉴도 인기 폭발이었다.

그래서인지 방학 때도 학생들이 끊이질 않았고, 요상한 소문도 퍼졌다.

여기 사장님이 건물이 몇 채 있다더라.

카운터 아가씨가 사장 딸인데, 40평대 아파트에 산다더라 하는 등등.

물론 소문은 소문일 뿐이었다.

어쨌든 이 가게가 강형우가 추구하는 모델 중에 하나였다.

일종의 만능 식당!

분식 메뉴로 가볍게 먹고, 한식 메뉴로 식사를, 양식 메뉴로 특별함을 느낄 수 있는 가게.

여기에 계절메뉴만 추가된다면, 지성분식의 수익을 늘릴 수 있었다.

이후 안정만 된다면 확장할 계획이었다.

공지혜와 순이 이모, 이강석이 제 역할만 해준다면 불가능한 일도 아니니까.

“하지만 현재 상태로는 어렵지.”

솔직히 메뉴 몇 개 늘리는 건 일도 아니었다.

그냥 만들어서 이름 올리면 된다.

하지만 그걸 안정되게, 꾸준히 판매한다는 건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였다.

가령 돈까스를 추가한다고 치자.

기성품을 받아서 튀겨서 판매하는 방법이 있고, 고기를 가져와서 직접 만드는 방법도 있었다.

전자의 경우, 브랜드별로 제품을 구입해 일단 먹어봐야 한다. 그리고 식자재 거래처에 있는지 확인한 뒤, 가격 경쟁력을 따져야 하는 거다.

후자의 경우는 더욱 복잡했다.

안심이나 등심이냐, 고기 부위에 따라 달라지고 냉동이냐 냉장이냐에 따라 가격도 차이가 났다. 또,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정육점이 있느냐도 무척 중요했다.

때문에 지성분식 입장에서는 생돈까스는 무리였다. 현실적으로 냉동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경쟁력과 차별화를 더해야 한다.

“결국 좋은 제품을 구입해서 소스를 직접 만들어야 한다는 건데.”

이래저래 알아보니 생각보다 마진이 짰다.

판매 가격은 5000원대.

냉동 돈까스는 500원에서 2500원까지 있었다. 그 외의 제품들도 있었지만, 지성분식에서 사용하기는 무리라 일단은 제외한 것이다.

“이천 원 이상이 좋기는 한데, 소스에 밥, 샐러드와 스프까지 나가면 원가율이 50%가 넘네.”

계산해보니, 아무래도 좀 더 고민을 해봐야 할 것 같았다.

팔아도 적게 남는다면 오히려 손해였다. 돈 벌려고 장사하는 거지, 자원봉사하려는 게 아니니까.

“그다음은 이쪽인데……”

부산을 기반으로 한 모 김밥집 체인인데, 비슷한 이름으로 상표권 싸움이 한참이었다.

지금은 처음 시작한 집이 밀리고 있었다. 나중에 차린 집이 상표권을 먼저 등록해서 고소했던 것이다.

강형우가 집중해서 보는 건 다른 부분이었다.

바로 돈까스 김밥과 새우튀김 김밥이었다.

지금 지성분식 입장에서는 현실적으로 손쉽게 늘릴 수 있는 메뉴가 라면과 김밥이었다. 차별화만 확실히 된다면 분식 라인이 보강되는 것이다.

“결국 돌다 돌아서 돈까스네.”

이즈음 되면 거의 운명이라고밖에는 할 수 없었다.

***

“와! 춥네.”

조성기는 인상을 찌푸리며 팔을 문질렸다.

인천공항에서 김해공항으로, 거기서 다시 택시를 타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영 기분이 좋지 않았다.

김용철의 조언을 했다.

자신이 알아서 할 테니 차용증을 넘기라고, 그리고 몇 달 여행 다녀오면 모든 게 해결되어 있을 거라 했다.

솔직히 계속 부산에 있는 게 껄끄럽기는 했다.

집도 가깝고 해서 오다가다 마주치기라도 하면 불편할 테니까.

해서 훌쩍 떠났다.

놀기 좋아하는 성격이라 여행도 가고 싶었는데, 마침 김용철이 잘 아는 가이드까지 소개해줬던 것이다.

그래서 따뜻한 남쪽 나라를 돌아다녔다.

대만, 필리핀, 인도네시아를 거쳐서 베트남까지 돌았더니 석 달은 금방이었다.

“확실히 돈이 좋긴 좋아!”

한국보다 못사는 나라라서 그런지 돈이면 안 되는 게 없었다.

특히 집중한 건, 술하고 여자였다.

조성기는 모태솔로의 설움을 풀겠다는 듯, 거기에 미친 듯이 빠져들어 지냈던 것이다.

그러던 중에 김용철이 메일을 보냈다.

모든 게 다 끝났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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