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1
41화 제일 많이 줄걸
아버님이 뇌출혈로 쓰러지셨다.
일단 수술은 잘됐다.
하지만 의식을 회복하는 게 많이 늦어졌고 이틀 전에야 일반 병실로 옮겼단다.
“아! 정말 잘 됐네.”
“예. 그래서 오빠! 저 알바 어떻게…….”
“왜? 당분간 못 나올 것 같아서? 괜찮아. 걱정하지 마.”
강형우가 안심시키기 위해 말했다.
공지혜는 강영지를 보면서 눈짓을 하더니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게 아니라, 다른 사람 구한 거 아니에요?”
“구하기는 구했지. 그런데 우리 둥이들 대신해서 뽑은 거야.”
“아!”
“안 그래도 요즘 바쁘기도 하고… 아직 사람 필요해.”
“그럼 다시 나가도 돼요?”
“당연하지. 그래도 니가 창업공신인데.”
강형우가 장난치듯이 엄지를 척 올렸다.
그럼에도 공지혜는 안심하지 않았다. 아니, 뭔가 다른 생각을 하는 것 같았다.
“근데, 시간이…….”
“필요하면 조정해 줄게. 점심? 아니면 저녁?”
강형우는 솔직히 조급했다.
이강석은 기본이 있어 나름 빠르게 적응 중이었다.
정은혜도 조금은 나아졌지만 가능하면 칼질은 시키지 않았다. 피로 물든 라면은 한 번이면 족했으니까.
이럴 때 공지혜가 한 타임이라도 맡아준다면 조금은 수월할 터.
“그게 아니라…….”
공지혜가 망설이는데, 강영지가 끼어들었다.
“오빠! 나중에 내가 말해줄게.”
“엉?”
“그런 게 있다고. 됐고. 병문안 왔으면 들어가서 아버지 어머니부터 보는 게 먼저 아이가?”
강형우는 강영지의 손에 이끌려 병실로 들어갔다.
하얀 병실이 주는 묘한 위압감 같은 게 있었다.
그래서인지 강형우는 어색함을 느꼈다.
사실 어머님은 자주 봤었다.
어릴 때, 강영지가 공지혜 집에 많이 놀러갔다. 그래서 데리러 간다고 여러 번 방문했고, 그러다 밥도 자주 얻어먹었던 것이다.
다행히 아버님은 주무시고 계셨고, 어머니는 편하게 대해 주셨다.
“형우, 오랜만이네.”
“예. 자주 못 찾아봬서 죄송합니다.”
“아니야. 바쁜 게 좋지. 요즘 같은 시기에는 일복이 최고라는데. 아, 음료수 마실래?”
“옙.”
잠깐의 면회였지만 병실을 나오니 답답함이 가셨다. 그냥 편하게 몇 마디하고 안부 주고받고, 다음에 또 보자가 전부였지만 이상하게도 어려웠던 것이다.
다시 공지혜와 몇 마디 나누고 이제 돌아가 육수를 만들려 했는데, 강영지가 배웅하겠다고 따라 붙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자 강영지가 돌변했다. 팔꿈치로 옆구리를 찍어 버린 것이다.
“아욱!”
“진짜 눈치도 눈치도~ 소리 다 들리는데 복도에서 그리 말하면 되나?”
“으으음. 내가 뭐했는데?”
“에휴~ 오빠라는 사람이 이렇게 답답해서야.”
강영지는 인상을 찌푸리더니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마자 강형우를 끌고 나갔다.
주차장에 이르러서야 사정을 들을 수 있었다.
공지혜 아버님이 운영하시던 공장이 망했단다.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고, 사기 비슷한데 걸린 모양이었다.
그 충격으로 쓰러지신 것이고.
“어머님은 괜찮다고 하던데, 지혜 학교도 그만둔다고 하더라.”
“휴학 중 아니었나?”
“일단 자퇴해야 등록금 일부라도 돌려받을 수 있다더라. 당분간은 학원도 안 나간대.”
“왜? 돈 번다고?”
“어. 중환자실에 오래 있어서 수술비하고, 병원비만 팔백 나왔다더라. 보험회사에서 어떻게 해 준다고는 하는데…….”
공장 망한 여파가 있는 모양이라 했다. 당장 집도 넘어가게 생겨서 이사도 알아봐야 한다나?
“그래서 알바 늘리려고 하는데, 오빠 가게 시간대가 애매해서 쉽게 말 못하고 있다.”
“그럼, 하루 종일 한다는 거야?”
“상황 봐서 두 탕 정도는… 왜? 오빠가 쓸라고? 월급 많이 줄 수 있나?”
강형우는 오래 고민하지 않았다. 이미 생각해 둔 바가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제일 많이 줄걸?”
***
사실 꽤 오래 고민했다.
주혁 형의 조언을 듣고 틈틈이 찾아봤다.
정말 모르는 게 많았다.
왜 학교에서는 이런 중요한 걸 가르쳐 주지 않는 거지?
공장이야 회사니까 당연히 하는 거지만, 단순 알바할 때는 근로계약서를 쓴 적도 본적도 없었다.
월급 얼마다? 언제부터 나올 수 있느냐?
더도 덜도 말고 딱 그게 전부였다. 그래서 전혀 생각해 보지 못했던 것이다.
솔직히 주휴수당이 뭔지도 몰랐다.
아니, 그런 게 있는지조차 생소했다.
아! 정말 난 병신처럼 살았구나.
부끄러워서 알아봤는데, 헐~ 나만 모르는 게 아니었다.
덕수 형도 몰랐고, 혁기 형도 몰랐다. 현우 형은 그거 휴가비냐고 되물을 정도였다.
아는 건, 창주 형이 유일했던 것이다.
“그런 거 계산하기 복잡해서 월급으로 퉁 치는 거지. 대부분 다 그렇게 해.”
그래서 그렇구나 하기에는 뭔가가 거슬렸다.
해서 강형우는 며칠 동안 인터넷을 뒤졌다.
법정 최저 시급이 4,580원.
하지만 작년 기준으로 편의점 알바의 3분의 2가 그 이하로 받고 있다고 했다.
주휴수당이나 야간수당을 제대로 계산해 주는 데는 본사에서 운영하는 직영점이 전부란다.
가맹점이나 체인점의 경우 사장이 정하는 게 시급이라나?
뭔가 이상해서 주변에 물었더니, 그게 정상이란다. 애초에 법으로 정한 금액이 현실과 맞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다.
대체 뭐가 잘못된 건지 모르겠다.
분명 법은 지키라고 있는 건데, 주변에는 지키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그럼 저 사람들은 전부 범죄자가 되는 셈인가?
그건 그거대로 말이 안 되는데?
강형우는 좀 더 알아봤다.
현재 주변 편의점이나, PC방, 단순 서빙 알바들 시급은 3,100원에서 3,800원 사이였다.
더 힘든 음식점이나 바쁜 술집, 일이 많은 고깃집 알바들이 4,500원 수준이었고, 5,000원 받는 데는 택배 상하차가 유일했다.
가장 충격적인 건, 지금도 2,500원 주는데도 있다는 거였다.
저기 어딘가에 있는 편의점이라는데, 새벽에는 손님이 아예 없다고 하더라. 그래서 사장 말로는 그 이상 줘야 할 것 같으면 차라리 문을 닫겠단다.
그 인터넷 기사의 리플들을 보면 가관이었다.
-차라리 망해서 닫아라.
-알바 등골브레이커 등극.
-역시 고담시티~
이건 양호한 거고, 아주 쌍욕으로 도배가 되어있었다.
그 정도면 만수무강은 기본이고 100세 돌파도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사장들 말도 일리가 있기는 했다.
일단 제일 돈 많이 나가는 게 월세고, 그다음이 인건비란다. 최저시급에 수당까지 다 쳐주면 남는 게 없다는 것이다.
반대로 알바들한테 물어보면 그렇지 않았다.
알바들 시급 깎아서 자기 월급 채워 간다나?
그런 이야기들을 찾아볼수록 머리는 더욱 혼란스러워질 뿐이었다. 기준이 명확하지 않으니 뭐가 맞는 건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이게 분식집에도 적용되는 게 맞나?
그냥 월급으로 처리하면 다 되나?
법은 지키라고 있는 건데?
해서 배산회 모임에 나가 물어봤는데, 역시나 여기도 대답은 천차만별이었다.
“계산은 시급으로 하고, 월급으로 주는 거지.”
“물가 비싼 서울이나 가능한 거지. 부산은 택도 없어. 거기랑 여기랑 현실적으로 3년 차이가 난다고.”
“서울 밥값이 육천 원인데, 부산은 지금도 오천 원 안 하는 데 많아. 물가가 다르니 월급도 달라야지.”
“알바들이 번화가는 오히려 피한다니까. 시급 많이 받는 데는 힘들다고 안 가.”
그러면서 요령이라고 가르쳐 주는 게 이거였다.
“일단 알바지옥에 구인 글을 올려. 그런 뒤 전화 연락이 많이 오면 시급을 내리고, 연락이 안 오면 시급 올리면 되는 거지.”
그게 현실적이고 명확한 해답이란다.
그 이야기에 몇몇 사장들은 고개를 끄덕였고, 직원들은 오히려 부들부들 떨었다.
그러면서 말하기를.
“시급 짠 데는 시급만 짠 게 아니야. 사장 새끼가 원래 짠 거지. 그런 데는 밥값도 안 주고 벌금만 많더라.”
“알바비 깎아서 지 외제차 기름 넣더라. 그러면서 경제가 어렵다고 뭐든지 깎아서 사라는데, 진짜 수명 깎아버리고 싶었다.”
“맨날 사람 안 구해진다고 지랄하는데, 그 돈 받고 누가 일하겠냐? 사장 지보고 하라면 입에 게거품 물고 뛸 거면서.”
양쪽 이야기를 다 들어보니 적정선을 찾는 건 어려울 것 같았다.
결국 강형우는 이날도 해답을 찾지 못했다.
“푸하~”
“왜요? 전 얼마나 심각한데.”
“시급 때문에 며칠이나 고민한 거냐?”
“당연하죠. 범죄자가 되느냐 마느냐인데.”
강형우가 입술을 비쭉거리자 강주혁은 풋 하고 웃고 말았다.
사실, 이런 것까지 묻기에는 좀 그랬다.
하지만 열심히 찾아볼수록 머리만 아팠다. 더욱 혼란스럽기만 했던 것이다.
결국 문제 제출한 사람한테 정답 묻는 게 제일 빠를 것 같았다.
강주혁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일단 나는 법대로 계산 다 해줘. 그리고 수당 정도가 아니라 알바들도 성과급 챙겨주지. 물론 기준이 조금 다르긴 하지만.”
그 많은 가맹점 대부분이 정직원이라고 했다.
초창기는 안 그랬지만, 서서히 그런 틀을 갖춰가고 있다면서 앞으로는 직영점 위주로만 늘려가겠다는 것이다.
“자세히 설명하면 길고, 니가 고민하는 원인부터 찾아야하지 않겠니?”
“원인요?”
강주혁은 그렇게만 말하고 말을 아꼈다. 대신 조언이라고 하는 게 그때 말한 그거였다.
사람을 못 믿겠으면, 니가 주는 돈을 믿어라!
대체 이게 무슨 말일까?
그렇게 고민하고 있는데, 강석이 일이 터진 거였다.
놀랍게도, 그때 절반 정도 해답을 찾았다.
난 알바를 구하는 게 아니었다. 함께 갈 수 있는 동료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랬기에 시급과 월급에 대해 고민한 것이고 이강석에게 그런 제안을 했던 거다.
카드 값을 대신 내주겠다고.
덕분에 일 년짜리 노예(?) 동생이 생겼다.
적어도 그 동안은 주방보조를 못 구해서 걱정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월급 오십만 원이라 하지만, 백만 원 넘는 카드 값까지 치면 적지 않은 금액이었으니까.
공지혜도 그런 경우였다.
시급 몇백 원, 몇천 원이 중요하지 않았다.
믿고 함께 갈 수 있는 사람이란 확신이 생기면 몇 십만 원 더 주는 게 무슨 대수겠는가?
해서 나름 세게 불렀다.
공지혜는 일단 170만 원부터 시작하기로 했다.
11시 출근, 9시 퇴근에 반년 단위로 5만 원씩 올려주기로 합의를 본 거다.
이제 남은 건, 그 월급을 주려면 빡시게 벌어야 한다는 것!
여기에 한 사람이 더 추가되었다.
또 하나의 기쁜 소식!
정순이 이모가 김밥천왕을 나왔단다.
원래 9시 반 출근으로 정하고 일을 시작했는데, 무조건 15분 전에 나와서 준비하라고 했다.
그것 때문에 트러블이 생겼다. 애 유치원 시간 맞추려다 보니 그게 힘들었던 것이다.
지각도 아니었는데, 대리 점장은 시간 조절 못해 주겠다고 했다.
그러면서 나가란다.
결국 순이 이모는 김밥천왕을 나왔다.
더러워서 못해 먹겠다고, 돈 적어도 마음 편한 사람하고 일하는 게 좋겠다면서 며칠 고민하다 전화한 거다.
그게 나에게는 행운이었다.
***
“대충 틀은 갖춰지는 것 같은데?”
주방의 메인은 강형우.
하지만 파스타를 제외한 요리의 대부분은 순이 이모한테 맡겼다. 손도 빠르고, 능숙했으며, 애초에 식당 경력자체가 압도적이었다.
그 옆에 찰떡처럼 붙어서 열심히 일하고 있는 게 이강석이었다.
가게 요리를 전부 마스터 하면, 월급 10만 원 인상!
그 조건 때문에 눈에 불을 켜고 있었다.
김밥과 홀 서빙은 공지혜가, 그 보조로 정은혜가 움직이는데 의외로 호흡이 잘 맞았다.
그리고 인정둥이는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갔다.
괘씸한 놈들 같으니라고.
이 형은 뼈 빠지게 일하고 있는데 여행이라니.
하지만, 이해해 줄 수 있었다.
제주도에서 부산으로 오면 열흘 뒤 동반입대였다. 잠깐 쉬다가 논산으로 가는 것이다.
“그건 그렇고… 역시나 예상대로네.”
매출에 조금씩이지만 변화가 생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