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40화 (40/251)

# 40

40화 사장님이 왕이다

“야! 강석아!”

고함을 지르자, 그림자가 멈칫했다. 그러다 강형우를 보더니 화들짝 놀라 속도를 더했다.

그게 실수였다.

데루르르르.

급격한 내리막길이었다. 다리가 꼬이면서 앞으로 넘어졌는데 한참을 굴러가고서야 멈췄던 것이다.

슬리퍼마저 옆으로 날아갔고, 무릎에선 피가 질질 흘렀다.

“에이 씨.”

이강석이 몸을 일으키는데 강형우가 어깨를 잡았다.

“일어나.”

“아씨~ 놔요!”

이강석이 거칠게 팔을 휘둘렀다.

손길을 뿌리치기 위한 건데, 그러다 강형우의 얼굴을 치고 말았다.

“어?”

이강석이 당황하는데 강형우가 말했다.

“그래, 이제 막가자는 거지?”

“아뇨. 형. 그게… 으어어어.”

이강석이 느낀 건 지진이었다. 몸이 상하좌우로 마구마구 흔들리더니 핑 하고 현기증이 찾아온 것이다.

강형우가 멱살을 잡고 거칠게 흔들어서다.

“야. 정신 차려.”

손으로 살짝 뺨을 두드렸는데, 이강석의 눈동자는 아직도 초점을 못 잡고 있었다.

“강석아.”

몇 번 더 흔들자 그제야 이강석이 눈을 깜빡였다.

“어… 형, 뒤에.”

강형우가 고개를 돌리니 주인아줌마가 보였다.

손에 빗자루 몽둥이를 들고서.

***

“끅! 좀 살살해요. 아윽!”

“씨끄러워. 뭘 잘했다고 그래!”

“아, 진짜 형한테 안 잡혔으면 괜찮았… 끄악.”

“아주 입은 살았어, 입은!”

찰싹, 찰싹!

강형우가 리듬에 맞춰 종아리를 때리자 이강석은 뭍에 올라온 물고기처럼 온몸을 펄떡거렸다.

“아우씨, 아프단 말이에요.”

이강석의 앙탈에 강형우는 손에 힘을 주었다.

왼손으로 허리를 누르고 강제로 바닥에 고정을 시켰다. 그런 뒤 멘소래담을 허벅지에 주욱 짰다.

“움직이지 마!”

강형우의 커다란 손이 종아리부터 허벅지까지를 몇 번이나 왕복했다.

“끄으윽.”

이강석은 억지로 신음을 참으며 부들부들 떨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엉덩이부터 종아리까지 멍투성이었다.

주인아줌마가 애를 잡을 듯이 빗자루 몽둥이를 휘둘렀기에 만들어진 상처였다.

처음엔 강형우도 말렸다. 그래도 사람 패는 게 아니라면서 막아 주다가 몇 대를 대신 두들겨 맞았다.

하지만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럴 만했다.

강석이를 패지 않았으면, 아줌마는 울화병으로 실려 갔을 거다.

얼마나 속이 상했으면 울면서 아들을 두들겨 팰까?

이강석이 반항 없이 맞은 건 그래서였다.

“에라, 한심한 놈.”

“아! 진짜. 일이 그렇게 될 줄은 몰랐죠.”

이강석은 한숨을 푹푹 내쉬었다.

자기도 지은 죄를 아는 모양이다.

강형우는 이강석의 뒤통수를 가볍게 어루만져 준 뒤, 밥상을, 아니 술상을 차렸다.

파스타 연습한다고 가져온 덕분에 치즈는 넉넉했다. 얇게 썬 햄 사이에 그걸 끼워서 적당히 자르니 뚝딱 안주가 만들어졌던 것이다.

일명 햄치즈.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안주로 제격이었다.

“야! 한잔 마시고 푹 자!”

“이 방에서요?”

“그럼? 그러고 니 방가서 잘래?”

“아오, 홀아비 냄새 진동하는데…….”

“이 시키가!”

강형우가 손을 들려하자 이강석이 찔끔했다.

“한 잔 받아.”

“예.”

이강석은 단숨에 소주를 털어 넣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그런 뒤 햄치즈를 오물거리더니 코를 킁킁 거렸다.

“왜?”

“형, 손맛이 나서요.”

“그거 맛있다는 거지?”

“아뇨. 짜요.”

아오~ 저 매를 버는 입을 보게.

강형우가 저놈 주리를 틀어 버릴까 고민하는데, 이강석이 눈물을 글썽거렸다.

맞은 데가 아파서가 아니었다.

마음이 아픈 거다.

“아~ 진짜. 병신같이…….”

빈 병이 세 개가 될 때까지 강형우는 말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강석의 취중 고백 덕에 대략적인 사정은 파악할 수 있었다.

경찰서에서 집으로 연락이 왔다.

사기 피해자 조사 관련해서 방문 좀 해 달라고.

주인아줌마, 김복희는 그제야 사실을 알게 되었고, 이강석을 다그쳤다.

알고 보니 이강석이 엄마 카드를 썼다.

그것도 불법으로 카드깡을 때려 버렸다.

총 결제 금액은 1,300만 원. 12개월 할부로 그어 버린 것이다.

“원래 천백인데, 이자하고 수수료하고 해서 더 붙은 거예요.”

“무식하면 용감하다더니, 너도 참 대단하다.”

“제가 벌어서 갚으려고 했거든요.”

이강석의 꿈은 모델이었다.

고등학교 2학년 때 학교 교복 모델로 선정이 됐는데, 이후 그쪽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거다.

외모 조건은 나쁘지 않았다.

허여멀건한 얼굴에 큰 키, 마르고 늘씬한 몸매.

게다가 쇼핑몰 피팅 모델 알바까지 간간이 하고 있었다.

한 달에 두어 번씩 촬영하면서 용돈 벌이를 했는데, 졸업하자마자 일이 뚝 끊겨 버렸다.

학생 모델이라는 메리트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나?

고민하던 이강석에게 몇 번 촬영했던 쇼핑몰 사장이 연락해 왔단다. 회사를 더 키우려고 하는데 같이 할 생각이 없냐면서 일단 만나잔다.

들어보니 일종의 동업이었다.

전속모델도 하면서 쇼핑몰 일도 배우고 하면 좋지 않겠냐는 말에 이강석은 선뜻 제안을 수락했다.

그렇게 이 주 정도 출근했을 때 사장이 조심스레 부탁을 했다.

물건 값이 모자란다면서 도와달라고. 매달 월급 줄 때 같이 줄 테니 카드 한 번 긋자는 것이다.

이강석은 고민 끝에 엄마 카드를 몰래 써버렸다.

“솔직히 며칠 전까지도 사장이 출근했거든요. 월급날도 얼마 안 남았고 해서…….”

안심하다 뒤통수 맞았다.

사장이 사기 친 사람은 이강석뿐만이 아니었다. 20대 초반의 철모르는 애들만 다섯이었는데, 개중에 잘 사는 애가 있어 피해금액만 구천만 원이 넘는다고 했다.

이걸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사기 피해자 한 명의 아버지가 형사란다.

단단히 열 받았는지 사장은 딱 이틀 만에 붙잡혔다.

이후 조사 과정에서 이강석의 이름이 나와 경찰서에서 연락이 왔던 것이다.

결국 이강석도 형사의 도움을 받아 피해자 접수를 하고 왔다.

이제 남은 건 매달 날아오는 카드고지서와 마음의 상처뿐.

“병신같이… 빨리 눈치챘으면 됐을 텐데…….”

이강석은 고개를 푹 숙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참 갑갑했다. 이제 고등학교 막 졸업한 애가 뭘 알겠는가?

“사장이 진짜 나쁜 새끼네.”

“형사님이 그러는데, 사기 전과만 세 개래요. 안 걸린 것까지 치면 몇 개 더 있을 수도 있다네요.”

이강석은 갑자기 피식 웃었다.

형사가 말하길 사회초년생을 상대로 한 악질 범죄에 동종전과까지 있었다. 합의 못 보고, 특별범죄가중처벌에 여죄까지 나온다면 최하 5년은 세상 빛을 못 볼 거란다.

과연 그렇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게 위안이라면 위안이었다.

강형우는 말없이 술을 따라주었다.

지금 해줄 수 있는 건 그거밖에 없었다.

사실 할 말이 없지는 않았다.

너네 엄마 미용실 하는데 한 달에 백오십도 못 번다. 거기에 내가 내는 월세가 십오만 원이고, 일 층 안집 월세도 이십만 원밖에 안 된다.

그걸로 너희 집 두 식구가 먹고 산다고.

하지만 지금 상황에서 그런 말을 해봐야 무슨 소용 있겠는가?

이강석은 술잔을 비운 뒤, 한숨을 내쉬었다.

“저도, 잘해 보려고 했는데…….”

“그래 안다.”

강형우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이강석이 옆으로 쓰러졌다.

정말 햄치즈가 짰는지, 눈물을 글썽이고 있었다.

그러면서 중얼거렸다.

“엄마, 미안…….”

“형우 총각.”

“예, 아주머니.”

다행이 막 새벽 운동하러 나가려는 타이밍이었다.

강형우가 밖으로 나오자 김복희가 냄비 하나를 들고 있는 게 보였다.

“어제 미안했어. 이건 별거 아니고, 해장이나 하라고.”

“아이고, 안 그러셔도 되는데…….”

강형우는 커다란 냄비를 받았다.

냄새를 보니 콩나물국이었다.

그사이 김복희는 방 안쪽을 보려고 기웃거렸다.

“강석이 아직 자요.”

“그래? 그럼, 잠깐 이야기 좀 할까?”

“예?”

표정을 보니 심상치가 않았다. 뭔가 중요한 결단을 내린 듯 망설임이 느껴졌던 것이다.

“다른 게 아니라…….”

***

“내 말을 따라 한다. 실시.”

“아, 왜 무게 잡고 그래요. 어색하게…….”

딱.

이강석은 머리통을 붙잡고 눈물을 찔끔거렸다.

딱 그 정도 아프게 때린 건데, 제대로 들어갔다.

“정신 안 차릴래?”

“아~ 진짜!”

“쓰읍!”

강형우가 인상을 쓰자, 이강석이 움찔했다.

“내 말 따라해. 주방에서는… 내가 왕이다.”

“주, 주방에서는… 내가 와…….”

“아니, 그게 아니고! 사장님이 왕이다.”

“사, 사장님이 왕이다.”

피식 웃은 강형우는 손가락을 튕겼다.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한다.”

“무, 무조건 시키는 대로 한다.”

“좋았어! 그거 절대 잊지 말고, 내가 멈추라 그러면 무조건 멈추는 거다. 알겠지?”

“예.”

이강석은 눈치를 보며 어깨를 움츠렸다.

솔직히 지금도 제정신은 아닐 터.

강형우는 이강석이 깨자마자 콩나물국에 밥 한 그릇 뚝딱 말아 먹였다. 그리고 강제로 샤워를 하게 한 뒤, 옷을 챙겨 입히고 지성분식으로 끌고 왔다.

강형우는 이강석을 주방에 넣은 뒤, 말했다.

“넌 앞으로 주방 보조다.”

“예?”

“하여간 어머니랑 그렇게 이야기가 됐다. 알겠지?”

“왜요?”

“왜요는 일본 담요고.”

“와~ 그런 개그 진짜 오랜만이네요. 우리 학교 학주쌤이나 하던 건데.”

강형우가 주먹을 들자 쫑알거림이 사그라들었다.

사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았다.

하지만 주인아줌마의 말을 들어 보니 일리가 있었다.

애가 혹시나 어제 일로 나쁜 생각하거나, 엇나가지 않을까 고민이라 했다. 그러면서 강석이 데려다 일 좀 시키면 안 되냐고 부탁했던 것이다.

바쁘게 일하다 보면 잡생각이 사라질 거라면서.

일단 이해는 되었다.

거기에 딜을 던지셨는데, 강석이 일 시키는 동안은 월세를 안 받겠다고 했다.

중요한 건 아들이지 돈이 아니라면서.

마지막으로, 그래도 일 년 넘게 지내면서 형처럼 따랐으니 형우 총각 말은 잘 듣지 않겠느냐는 거다.

생각해 보니 나쁘지는 않았다.

좀 게으르고, 잠 많이 자고, 툴툴대긴 하지만 어쨌든 시키는 건 다 했으니까.

게다가 주방 보조를 구하고 있는 상황이니, 일단 데려다 쓰면서 고민해도 될 것 같았다.

“너 음식은 좀 하니?”

“그야 기본적인 건 하죠. 엄마가 많이 가르쳐 줬거든요.”

오호라~ 이게 웬 재수!

시켜 보니 속도는 조금 느렸지만, 칼질은 제대로 했다.

어디서 본 건 있는지 팬도 제법 잘 다뤄서 김치볶음밥을 가르쳐 줬더니 뚝딱 만들었다.

역시 주인아줌마 말이 뻥이 아니었다.

미용실 일 때문에 늦을 때가 많아서, 저녁은 거의 강석이 혼자서 해결한단다. 차려진 걸 먹는 게 아니라 직접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정말 다행이었다.

완전 생초짜 데리고 가르치려면 최소 두어 달은 고생해야 했으니까.

“근데 형. 하래서 하기는 하는데…….”

“하는데?”

“월급은 많이 줘요?”

눈치를 보는데, 피식 웃음이 나왔다.

이것도 주인아줌마랑 이야기가 끝났다.

“한 달에 오십만 원 줄게.”

“예? 꼴랑?”

“싫으면 말구.”

“아니 형. 세상에 누가 그 돈 받고 일해요? 요 앞에 손님 없는 편의점도 오십은 넘게 줄 텐데. 아오~ 그럼 나 안 할래요.”

그러면서 앞치마를 벗으려는데, 강형우가 말했다.

“대신 빵꾸난 카드 값은 내가 내주마.”

***

“이게 뭐라고…….”

강형우는 거울을 보며 옷차림을 확인했다.

검은 바지에 흰 셔츠, 거기에 가디건을 입고 갈색 코트까지 걸쳤다.

밖으로 나와 과일바구니를 산 뒤 지하철로 향했다.

환승 한 번으로 금련산 역에 내린 강형우는 심호흡을 했다.

광안병원은 지하철과 병원 지하가 연결되어 있어 확실히 편했다.

“몇 호실이라고 했더라?”

강영지한테 전화를 하니 10층으로 올라오란다.

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공지혜와 강영지가 보였다.

“미안, 좀 일찍 왔어야 되는데.”

“아뇨. 와 준 것만 해도 고마운데요.”

공지혜는 애써 웃으며 과일바구니를 받았다.

사실 중간에 한 번 쉬는 날이 있었는데, 그날은 정말 시체처럼 잠만 잤다. 피로가 쌓이는 바람에 꼼짝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다시 일주일이 지나 휴일이 찾아왔다.

병문안을 온 건 그래서였다.

강형우는 뭐라 할 말이 있었는데, 이상하게 선뜻 나오지가 않았다.

다행히 공지혜가 먼저 이야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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