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9
39화 걔 좀 잡아
크리티컬!
제대로 치명타를 입었다.
맙소사, 공지혜가 못 나온다니.
강형우는 다급히 폰을 들었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으니 삐 소리 후 소리샘…….
통화마저 안 되니 답답했다.
대체 무슨 일이 생긴 거지?
“너 표정이 왜 그러냐?”
“예? 아~ 지혜가 못 나온다고 해서요.”
“그 귀여운 김밥 아가씨?”
“예.”
반사적으로 대답을 하면서도 강형우의 정신은 온톤 폰에 가 있었다.
그러다 뭐가 생각났는지 다시 통화를 눌렀다.
“어, 영지야~”
다행이 강영지는 전화를 받았다.
친구니까 알 것 같아서 연락한 건데, 영지도 목소리가 다급했다.
“뭐? 병원으로?”
순간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느낌이 들었다.
병원, 그것도 응급실이라 그랬다.
자세한 내용은 강영지도 몰랐다.
공지혜 아버님이 갑자기 쓰러지셨단다. 그래서 같이 병원으로 가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가게 못 나오는 게 당연한 거겠지.
그나마 다행인 건 공지혜한테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라는 것!
“왜? 무슨 일인데?”
강형우도 아는 게 없어서 짧게 말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들은 강주혁은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런 경우면 어쩔 수 없지. 오늘 좀 고생하겠네.”
“아마 그렇겠죠.”
대답은 했지만, 마음은 천근만근 무거웠다.
공지혜는 서빙 알바였다.
하지만 가게가 바빠지면서 좀 더 많은 일을 했고, 인정둥이가 오고 나서는 지휘관으로 존재했다.
매일 매일 전쟁 치르는 지성분식 입장에서는 사령관을 잃은 상황.
“그러게 진작 사람 좀 뽑아 놓지.”
“알바지옥에 올려놓기는 했어요.”
이틀에 한 번씩 구인광고를 올렸지만, 방학이 끝나서인지 사람이 연락이 없었다.
“하긴, 딱 이때가 사람 구하기 제일 힘든 때지.”
“세 명 정도가 온다고 연락 왔었는데 그걸로 끝이더라고요.”
강형우도 짐작 가는 바가 있었다.
이력서 들고 지성분식을 찾아왔을 거다. 그러다 무지하게 바쁜 거 보고 그냥 돌아간 게 분명했다.
“뭐라고 올렸는데?”
“그야 홀 서빙하고 주방 보조요. 스물일곱 이하, 남녀 무관에 시급 4,000원요.”
“짜다!”
“왜요? 옆에 PC방하고 편의점은 3,500원 준다는데.”
“너네 알바 아가씨는 얼마 주는데?”
“4,500원요.”
강형우의 대답에 강주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최저시급도 안 되잖아?”
“그건 저도 알죠. 그래도 알바지옥에 올라온 거 평균보다는 훨씬 많이 쳐 준 거예요.”
올해 법정 최저시급은 4,580원.
하지만 이 동네 시급은 3,500원 수준이었다. 그 이상이면 차라리 월급제로 쳐서 계산해 버리는 것이다.
대충 일당 4만 원으로 계산해 주 1회 휴무에 120만 원 정도가 평균인 상황.
“그래도 식당일이라고 나름 고민해서 올린 금액이에요.”
강형우도 나름대로 할 말은 있었다.
창주 형에게 듣기로 화끈 오뎅의 경우, 직원 월급이 160, 170만 원이었다. 130만 원으로 시작해 반년마다 5만 원씩 올려 줘서 지금에 이른 것이다.
지금 일하는 누나도 알바로 들어와 100만 원 줬는데 지금은 20만 원이나 올려 줬단다. 게다가 얼마 전 구한 알바는 90만 원부터 시작이었다.
두어 달 일하는 거 보고 올려 주는 게 맞다면서.
여기에 명절이나 기념일 되면 몇십만 원씩 더 나간다고 했다. 또, 특별히 바쁘거나 힘들면 차비하라고 몇만 원씩 쥐어 준다는 것이다.
그게 분식집의 한계이자 현실이었다.
솔직히 동네 PC방이나 편의점은 더 심했다.
시급 4,000원 줄 바에야 차라리 알바를 안 쓰겠단다. 그래서 아예 월급으로 해버린다는 것이다.
주중 오전과 오후가 60만 원, 야간이 80만 원이었다.
강형우도 알바 경험이 적지 않아 그걸 불합리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시급을 고집했고, 그 부분에 대한 계산만은 확실하게 하려 한다.
그렇게 나름 변명 아닌 변명을 하는데…….
강주혁이 피식 웃으면서 물었다.
“너, 근로 계약서는 쓰냐?”
“예?”
“주휴수당은 알아?”
“그게… 뭐죠?”
강형우가 어리둥절해하자 강주혁은 고개를 끄덕였다.
“모르면 배워야지. 틈틈이 공부해라.”
“예.”
“그래도 다행이네. 알고도 모르는 척하는 사장들도 많은데, 정말 모르니까. 하긴 이제 일 년 된 초보 사장이 뭘 알겠니?”
“그야 뭐, 차차 알아 가야죠. 그래서 형 볼 때마다 계속 이것저것 물어보잖아요.”
한동안 답답한 시기를 보냈다.
그때 느낀 건, 막막함이었다.
나름 알아본다고 하는데 한계가 있었고 도움 청하기도 쉽지 않았다.
강주혁이 술 먹자고 했을 때 바로 오케이 한 게 그래서였다.
해외 진출까지 하고 있는 외식업계의 큰손.
그가 해 주는 조언은 정말 알게 모르게 큰 도움이 되고 있었다.
“근데 형, 바빠요?”
“왜? 알바 빠져서 나 좀 부려 먹게?”
하여간 눈치 하나는 대단했다.
강형우는 반 농담 식으로 애교 부리며 말했다.
“그냥 안 바쁘면요.”
강주혁은 빵 하고 웃고 말았다.
돌아온 대답은 충격적이었다.
“야! 내 일당. 니 월급이다.”
***
“휴우, 난리다. 난리야.”
사령관 잃은 병사들이 ‘무조건 돌격’을 하고 있었다.
인정둥이는 테이블과 메뉴를 엇갈렸고, 주문마저 번번이 실수하고 말았다.
차라리 들어온 순서를 엇갈리는 건 애교였다.
한 테이블에 사골 떡만둣국에 라면, 어묵 국밥이 나갔다.
여자 손님 둘이서 먹기에는 실로 기묘한 조합!
그걸 왜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는 건지 모르겠다.
결국 중간중간 강형우가 나가서 정리를 했고, 다행이 두 시간 만에 애들이 정신을 차렸다.
공지혜의 부재에서 오는 공황이 그만큼 컸던 거다.
“점심이 이제 끝났네.”
시간은 벌써 오후 세시가 넘었다.
다행이 서비스 음료수 팍팍 나가는 바람에 큰 불평불만(?) 없이 넘길 수 있었다.
“후아하~ 진짜 힘드네.”
“나도, 누나 없으니까 머리에 쥐나는 줄 알았다.”
인정둥이의 말에 강형우는 불끈 주먹을 쥐었다.
“진짜 머리 쥐나게 해 줘?”
“형~ 우리 진짜 힘들었단 말이에요.”
“저도 발바닥 땀이 증발해 버릴 정도로 뛰어다녔습니다.”
진짜 말이나 못하면 밉지나 않지.
하지만 정말 고생한 걸 알기에 더 따지지는 않았다.
“근데, 그 형님. 왜 가 버렸대요? 좀 도와주지.”
“그러게. 전에 파스타 하는 거 보니까 장난 아니던데. 게다가 칼 다루는 게 완전 예술이더라고.”
공지혜가 김밥 썰다가 실수로 살짝 뭉개 버렸다.
그때 강주혁이 요령 가르쳐 준다고 한 번 시범을 보인 적이 있었는데 칼이 안 보였다.
보통 슥삭슥삭슥인데, 강주혁은 사삭사삭이었다.
앞뒤로 두어 번 움직였을 뿐인데 밥알의 단면까지 깔끔하게 잘렸던 거다.
다들 감탄하자 강주혁은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내친 김에 당근으로 꽃도 깎아 버렸다.
음식점 사장하려면 이 정도는 기본이라나?
덕분에 강형우는 기본도 안 되는 곰 취급을 받았다.
“니들, 그 형 무서운 사람이야. 좋아 보여도 함부로 대하면 큰일 나.”
먼 미래에, 니들 사장이 될지도 모른다는 말을 애써 참았다.
“그래요? 전혀 그렇게 안 보이던데?”
“점심 전에 놀러 와서 한 시간씩 노닥거리다 가잖아요. 그래서 백수인 줄 알았는데.”
“그건 니들이 몰라서 그래.”
지금 강주혁은 화끈 오뎅에 공을 들이고 있었다.
볼일 보는 김에 자연스럽게 들리는 것처럼 하면서 얼굴 도장을 찍으려는 것이다.
문제는 튀김과 오뎅으로는 식사가 안 된다는 점!
겸사겸사 여기서 밥을 먹고 가는 게 그래서였다.
지성분식은 일종의 기착지인 셈.
그걸 알기에 오히려 부담이 없었고, 강주혁 스스로도 그렇게 말했었다.
“그나저나, 너희들 어떻게 할래?”
“예? 왜요?”
“뭘, 어떻게 해요? 그냥 예정대로…….”
강형우는 인우와 정우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그리고 진심으로 부탁했다.
“여행 안 가면 안 되겠니?”
인정둥이의 표정이 살벌하게 바뀌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애들이 착해서 욕은 안 하더라.
***
“하아~ 사람 구하는 게 이렇게 힘들 줄이야!”
음식 장사가 힘든 이유 중에 하나가 이거였다.
바로 구인난이었다.
“일단 계산부터 해보자.”
3월 한 달, 일평균 매출은 대략 100만 원 정도였다.
테이블 여덟 개 가게치고는 상당한 수준이라 할 수 있었다.
그건 파스타 세트 덕분이었다. 단가가 만 원짜리라 매출이 껑충 뛰었던 것이다.
또, 그 때문에 많은 음식을 내지 않아도 되었다.
초창기 지성분식처럼 메뉴가 많았다면, 주문을 다 소화하기에도 벅찼을 테니까.
월 매출 2436만 원.
여기에 월세 50만 원이 빠지고, 대출이 60만 원이었다.
공지혜 인건비가 90만 원 정도가 나와서 그냥 100만 원으로 해 버렸다.
인정둥이도 시급 4,000원으로 계산했다.
아무리 집안의 가장이고, 큰 형이며, 뒤에서 악덕업주라 불리지만 그래도 일한 건 제대로 쳐줄 생각이었다.
그렇게 계산하니 얘들도 100만 원씩은 됐다.
식자재비도 대략 1100만 원 정도가 나왔다. 파스타를 만들기 위해 연습하다 보니 예상보다 지출이 컸던 것이다.
여기에 전기세와 기타 공과금 등등을 제외하니 대충 850만 원 정도가 남았다.
이걸 다 수익으로 잡으면 안 된다.
세금 문제가 있어서 일부를 빼놓고, 강형우의 월급도 계산해야 했다.
“대충 500만 원 정도 여유가 있네.”
정직원 둘을 고용한다 치면, 거의 200만 원이 남는 셈이었다.
그게 강형우가 가져가는 순수익이었다.
확실히 많이 벌기는 벌었다.
하지만 감가상각이나, 투자금에 대한 이자 등등을 계산하면 만족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병원비(?)도 고려해야 했다.
공지혜가 못 나온 지 벌써 오 일째였다.
인정둥이는 매번 퍼지기 직전까지 일했고, 집에 갈 때마다 휘청거렸던 것이다.
그걸 감안하면 약값은 필수였다.
다행인 건, 여행을 조금 미루기로 했다는 것!
같이 가기로 했던 친구들이 이해를 해 줬다. 그 때문에 극적인 협상(?)이 가능했다.
“빨리 사람부터 구해야 할 텐데?”
그게 제일 급선무였다. 그래서 알바지옥에 수시로 글을 올렸고 전화도 제법 받았다.
하지만 이력서 들고 온 건 두 사람뿐이었다.
27살 남자와 20살 여자였다.
남자는 주방 보조를 하고 싶다고 했는데 의외로 요리 경력자였다.
잘 됐다 싶어서 쓰기로 했는데 일보다는 다른 데 관심이 많았다.
밥을 어떻게 짓느냐?
파스타 소스 비율은 어떻게 되느냐?
저 양념 가루는 뭐냐?
그렇게 이틀을 지내보니 알 것 같았다.
일을 하러 온 게 아니었다. 딱 산업스파이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고민하고 있는데, 딱 하루 더 나오더니 사정이 생겼다고 출근이 어렵겠단다.
여자 알바는 조금 달랐다.
공지혜 때문에 눈이 높아진 것일까?
일이 서툴러도 너무 서툴렀다.
칼질하다가 김밥을 피로 물들인 것만 세 번째.
결국 오뎅 떡볶이 가판으로 보냈고, 주문 때만 안에 들어오거나 바쁠 때 서빙만 도와주는 식으로 쓰고 있었다.
역시나 입에 맞는 사람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한 명은 스파이에, 한 명은 덜렁이.
정말이지 공지혜가 이렇게 간절히 그리워지기는 처음이었다.
“하아~ 힘드네.”
결국 고민고민 끝에 조언을 구했는데, 강주혁의 대답은 이거였다.
“사람을 못 믿겠으면, 니가 주는 돈을 믿어라!”
***
“보람 찬~ 하루 일을~ 끝마치고서~”
집으로 향하는 골목길.
강형우의 입에서 군가가 자동으로 재생되었다. 딱 그 시절이 생각날 정도로 바빴던 것이다.
다행인 건, 새로 온 알바 정은혜가 조금씩 익숙해지고 있다는 거였다.
또 하나, 기쁜 소식이 있기는 했다.
“야! 거기서.”
날카로운 고함에 깜짝 놀랐다.
순간, 어딘가 익숙한 목소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어둠속에서 뭔가가 튀어나왔다.
비쩍 마른 그림자가 옆을 스쳐 지나가는데 다시 저 앞쪽에서 고함이 들렸다.
“형우 총각. 걔 좀 잡아!”
주인집 아줌마였다.
뒤를 돌아보니 슬리퍼 하나가 하늘을 휘날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급하게 도망치다가 벗겨진 모양이었다.
강형우는 망설이지 않고 아래쪽을 향해 뛰어 내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