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8
38화 사람이 모자라
“참 멍청한 짓이지.”
모르는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계속 깎아주면 손님들이 더 몰리지 않겠느냐고.
물론 박리다매라는 말이 존재하긴 한다.
한 그릇의 이익은 적어도, 손님을 많이 받으면 그만큼 큰 이익이 된다는 거다.
이건 옳다 나쁘다의 경우가 아니었다.
명백한 장단점이 존재했기에 선택의 문제였다.
“무엇보다 음식 가격이란 게 그렇게 정해지는 게 아니니까.”
김용철은 피식 웃었다.
판매 가격에서 원가는 크다.
평균 30~40% 사이.
예외도 존재하긴 하지만 돈 벌기 위해 차리는 가게의 경우 대부분 저 범주를 벗어나지 못한다.
여기에 임대료, 인건비 등등의 고정비용이 추가된다.
이게 일반적으로 알려진 상식이다.
하지만!
전문 컨설턴트들은 그 외에도 많은 것을 고려한다.
첫째 상권.
그것 하나만으로도 가격을 10% 가까이 올릴 수 있다.
가령, 번화가 중심의 경우 음식 평균가격 자체가 높다.
반대로 경쟁자가 적은 외각 지역도 마찬가지였다. 독점에 가까워 폭리를 취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두 번째가 음식의 희소성이다.
가령 잘 접하기 힘든 동남아 요리, 남미 음식들이 여기에 포함된다. 현지에선 샌드위치 가격이지만 한국에선 고급 요리 수준의 금액을 받는 것들도 적지 않았던 것이다.
세 번째가 타이밍이다.
우선 단발성이냐 지속성이냐로 구분하는데, 제철음식과 단기 이벤트의 경우 저렴해지는 편이었다.
반대로 방송에서 한번 히트 치면 가격이 폭등한다. 구하려 해도 구할 수 없으면 가치가 올라가면서 비싸지는 것이다.
그 예로, 한때 새우 중에 황제라 불리는 도하새우가 한 마리에 30만 원에 팔렸단다.
갑작스러운 이상 기온에 거의 수확이 되지 않아서였다.
그때는 평소 시세의 20배에 가까운 가격이었는데, 1인분 한 접시에 200만 원이나 했다.
공수비용에 조리, 서비스 포함하면 그 두 배는 될 터.
역시 특급 호텔은 달랐다. 예약 손님이 있다면서 두말없이 지불하고 가져갔던 것이다.
어쨌든 음식의 가격은 많은 것을 고려해야 했다.
같은 음식이라도 분식이냐, 코스요리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처럼.
하지만 조성기는 그걸 무시했다.
“뭐, 자업자득이지.”
조성기의 고집 때문에 할인을 이어 갔다.
이제 서서히 역효과가 올 때였다.
사실 짜장면 한 그릇을 2,000원에 팔면 잠깐은 괜찮다.
애초에 여기에 이런 가게가 있다. 그걸 알리기 위한 미끼 상품이기에 이익은 크게 고려가 되지 않는 거다.
하지만 그 시간이 길어진다면?
그 가게의 짜장면은 끝내 2,000원의 가치를 넘지 못한다.
고객들은 딱 그 정도의 음식으로 인식하는 법!
때문에 나중에 가격을 올리면 반발이 거세지고 매출이 뚝 떨어진다. 마진이 커서 수익이 늘어날 것 같지만 도리어 적자로 향해가는 것이다.
왜 그럴까?
사실 2,000원에 파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었다.
먼저 그만한 재료에 그만큼의 일손이 있어야 하며 시스템이 거기에 맞춰져 있어야 가능했다.
이게 3,000원이 되는 순간, 재료비는 오르고 노동력은 남아돈다. 시스템이 흐트러지면서 실수가 빈번해지고 알게 모르게 불만이 누적되는 거다.
이 모든 요소들이 합쳐지고 지속되면, 가게는 망한다.
홍화반점이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수익이 점점 줄고 있었다. 마진을 줄여서 손님을 늘였지만 피로도가 쌓이고 있었고, 그 영향 때문에 전체 매출이 출렁거렸던 것이다.
“아직 접을 때는 아니지만, 머지않았어.”
김용철은 각 가게 매니저들이 보낸 메일 내용을 자신의 프로그램에 입력했다.
넉 달째 상향곡선을 그리던 매출이 멈췄다. 그러다 주춤주춤 하더니 두 달이 지나서 내려오기 시작했다.
마지막 한 달은 처참했다.
김밥천왕이야 애초부터 적자를 감안하고 운영한 것이니 예외로 뒀다.
문제는 두 가게, 엄마 버거와 조가네 떡볶이였다.
엄마 버거는 나름 선전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기업만큼 지명도가 없는 상황에서의 지속적으로 할인을 해 버리니 브랜드 가치가 떨어진 것이다.
“차라리 형님 버거처럼 철저하게 바닥으로 가면 모를까.”
맞다.
형님 버거는 밥버거로 손님을 늘렸고, 그걸 이용해 저가 햄버거를 시장을 파고들었다.
덕분에 엄마 버거의 포지션이 애매하게 된 거다.
그게 매출을 흔들고 있었다.
그다음은 조가네 떡볶이였다.
경쟁을 붙였는데, 오히려 화끈 오뎅이 고급 라인 쪽으로 가 버렸다.
때문에 전국급 지명도를 가진 떡볶이 체인점이 오히려 싸구려가 되었다. 동네 흔한 떡볶이집 수준으로 취급받게 된 것이다.
그걸 증명하듯, 최근 매출은 아예 반 토막이 나 버렸다.
“흐음, 강형우라고 했나?”
듣기로 식품회사에서 일했었다고 했다.
그 경력으로 동네 신흥강자가 되었는데, 김용철이 보기에는 풋내기였다.
그런데다 조성기의 부탁까지 있어 철저하게 짓밟아 버렸다.
이후의 반응은 예상대로였다. 거의 몇 달을 헤매더니 망하는 순서를 밟아 갔던 것이다.
“그런데, 살아난 거지. 그리고 그게 다가 아니라니…….”
화끈 오뎅, 형님 버거에도 강형우가 관여했다고 들었다.
제대로 방향을 잡아 개선시키는 바람에 오히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알고 했다면 진짜 프로. 모르고 했다면…… 정말 천부적인 감각이 있다는 건데.”
김용철은 고개를 저었다.
제대로 공부하고, 무수한 실전을 거치고, 수십 차례 성공시킨 이들도 매번 벽에 부딪힌다. 그러다 실수 한 번에 나락까지 추락하는 게 이 업계였던 것이다.
“이번 경우는 초심자의 행운 정도로 보면 되겠군. 그건 그렇고, 아쉽지만 슬슬 정리를 해야겠어.”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또 있었다.
작업을 함께 진행하던 업체가 넘어갔던 것!
잠시 흔들렸던 김용철의 얼굴이 본 모습으로 돌아왔다. 영업용 미소를 지운, 지극히 냉정한 표정으로 말이다.
김용철은 조성기의 메일로 수치를 고친 파일을 보냈다.
거기에 덧붙였다.
장사는 잘되고 있으니 안심하라고.
***
“근데, 참 익숙한 맛이 난단 말이야?”
토마토 파스타를 앞에 둔 강주혁의 평가였다.
“뭐가요?”
“이 맛은 분명 내가 알고 있는 맛이거든. 근데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단 말이지.”
강형우의 입에서 피식 웃음이 나왔다.
전문가조차 파악하지 못할 정도의 교묘함, 그건 노린 거였다.
토마토 파스타의 비밀은 친숙한 인스턴트에서 오는 익숙함과 거기에 더해진 생소함이었다.
예전에 홍태구가 자취방에 놀러 온 적이 있었다.
배고프다고 뭐라도 해달라고 했는데, 하필 타이밍이 거지같았다. 밥하기도 애매했고, 라면도 뚝 떨어졌던 것이다.
있는 건, 팔두 비빔면과 우뚜기 스파게티 두 개뿐.
그래서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같이 끓였다.
맛은 정말 의외였다. 비빔장과 스파게티 분말이 놀랍게도 잘 어울렸던 것이다.
물론 다른 약간의 양념이 더해지긴 했지만.
맛은 토마토 비빔면, 혹은 매콤 스파게티 정도로 표현할 수 있었다.
다 먹은 뒤에 물어보니 홍태구도 맛있다고 했었다.
강형우는 토마토 파스타를 만들 때 소스의 비율을 조정해 그 맛을 재현하려 노력했다. 거기에 매콤한 콩나물 무침을 더해 저렴하지만 식감을 살린 한 그릇을 만들어 냈던 것이다.
강주혁은 뚝딱 한 그릇을, 아니, 한 세트를 다 먹어 버렸다.
그런 뒤 배를 두드리며 평가했다.
“맛은 가격 대비 합격. 아! 그건 그렇고, 왜 이름이 파스타냐? 오히려 토마토 스파게티가 잘 어울릴 것 같은데?”
원래 스파게티는 파스타의 한 종류라 보면 된다.
우리가 마카로니라 부르는 것도 파스타의 하나고, 샐러드에 나오는 꼬불꼬불한 푸실리도 그랬다.
하지만 이름을 그렇게 정한 건 이유가 있었다.
“그게, 파스타가 뭔가 더 있어 보이잖아요. 고급스러운 느낌도 들고.”
그 대답에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하긴, 그렇기는 하지.”
“근데 형, 조언 좀 구해도 됩니까?”
“오늘은 기분 좋으니까 무료로 상담해 주마.”
강형우는 이때다 싶어 며칠 전 이야기를 꺼냈다.
건물주님 박첨기께서 찾아오셨다.
월세 안 미루는 거 보니 다행이라면서, 그날도 공짜로 사골만두국을 드셨다.
서비스라며 토마토 파스타를 조금 드렸는데 역시나 입맛에 안 맞으신단다.
그 직후, 조용히 물으셨다.
혹시 가게 확장할 생각 없느냐고.
“뭐, 확장?”
“예. 안 그래도 요즘은 주말만 되면 점심때부터 줄 서거든요. 그런데 여기가 골목길이고 차도 다니고 해서 일단 가게 안으로 들이기는 하는데…….”
많지는 않지만 그래도 줄이 생기고 있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이대로라면 이웃에 민폐가 될지도 모르는 상황.
게다가 가게가 좁아서 불편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뭐라고 하시던데?”
“저도 몰랐는데, 건물 뒤로 돌아가면 두 평 정도 공간이 있데요. 주방 뒤쪽으로 뚫으면 확장이 가능하다고 하시더라고요.”
강형우는 열심히 설명했다.
주방을 좀 더 뒤로 밀면 테이블을 두 개 더 놓거나, 여유 있게 공간을 활용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장 중요한 건, 월세는 그대로라는 것!
하지만 강주혁의 반응은 의외로 차가웠다.
“하지 마.”
“왜요?”
“손님들 줄 세우는 것도 장사 전략 중에 하나야. 무턱대고 확장하는 거? 난 반대다.”
“흐음… 그래요?”
강형우가 고민하는 듯 하자 강주혁이 일침을 놨다.
“어차피 내 말 흘려들을 것 같지만, 솔직히 말할게. 지금 줄서는 거? 길어야 석 달이야. 여긴 신상 파스타 집이고 지금은 오픈 빨을 받고 있는 거지.”
“그 정도는 저도……”
“아니, 넌 몰라. 그리고 여기가 반년만 장사 잘되면 무슨 일이 생길 것 같아?”
당장 내일 일도 모르는데 반년 뒤를 어떻게 예상하겠는가?
하지만 강주혁은 거침없이 말했다.
“근처에 파스타 집 세 개는 생긴다. 여기 와서 먹어 보고 경쟁력 있다고 판단하면.”
순간 심장이 덜컹했다.
사실 고급스럽게 포장하고 있지만, 강형우의 파스타는 일종의 야매였다. 분식집 단가에 맞게 고친 것이라 맛은 있지만 많은 것이 부족했던 것이다.
지성분식의 정체성에 대한 확신을 가지지 못한 게 그래서였다.
“손님은 없는데 가게만 크면 오히려 썰렁하지. 한 번 상상해 보라고.”
“생각해 보니… 그렇겠네요.”
“그리고, 너도 물었으니 나도 하나만 물어보자. 너 동생들 말이야.”
“왜요? 애들 사고 쳤어요?”
“아니, 그게 아니라 생각보다 얼굴도 괜찮고 해서… 근데 걔들 키가 몇이냐?”
“186㎝인가, 될 걸요?”
“그래? 흐음… 애들 장래 희망은 뭔데?”
강형우는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고 보니 들은 적이 없었다. 그냥 군대 갔다 와서 취직하겠다는 게 전부였으니까.
“내가 보니까, 외모도 괜찮고 싹싹하고, 눈치도 빠르더라고.”
“잠깐! 형 그거 혹시, 스카우트?”
“그야 그렇지. 항상 사람 모자란 게 이 바닥이잖아.”
최근 먹방이 인기였다. 그러다 쿡방으로 바뀌었고 스타 쉐프들이 방송에 나와서 인기를 끌고 있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일반적인 인식은 좋지 못했다.
식당 종업원, 서빙 알바, 주방보조들을 3D 업종의 하나로 봤던 것이다.
차라리 공장에서 일하면 월급 오르고 진급이라도 하지.
그게 어른들의 인식이었다.
때문에 사람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아니, 정확히 표현하면 키워 쓸 만한 인재가 무척 드물었다. 그래서 직원 뽑는 것보다 지인을 통해 검증된 사람을 쓰는 걸 우선으로 했다.
“걔들 현역 1급 받았어요. 지원했으니까 이르면 다음 달이나 다다음달 영장 나올 걸요?”
강형우가 아쉽다는 투로 말했는데, 강주혁은 피식 웃었다.
“넌, 장사 일이 년 하고 말거냐?”
“당연히 아니죠.”
“그럼 제대할 때까지 기다리면 되지. 그리고 나보다 네가 더 급하네. 당장 다음 달부터 동생들 없으면 장사 어떻게 하려고?”
순간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공교롭게도 공지혜한테서 문자가 왔다.
미안하다고, 며칠 가게 못 나가게 됐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