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골목식당 리얼갑부-37화 (37/251)

# 37

37화 이거 적자네

아이디어의 발단은 이거였다.

정덕수 형은 참 사람이 좋은데 가끔 술 마시면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또 하는 경우가 있었다. 전에 흘리듯이 했던 전단지 이야기를 다시 꺼낸 것이다.

“마! 니 일로 와 봐라.”

“예?”

딱 봐도 어린 남학생이었다.

방학을 맞아 전단지 알바를 뛰는 것 같았는데, 추운 겨울임에도 이마에 땀방울이 보였다.

하지만 정덕수는 그런 걸 볼 여유가 없었다.

머리끝까지 화가 치밀었기 때문이다.

“니는 상식이 있나?”

“그게… 왜요?”

지은 죄가 있는지 학생은 잔뜩 쫄아 있었다.

“니 손에 들린 게 뭐고?”

“전단지요.”

“거기 뭐라 적혀 있는데?”

“어, 엄마 버거요. 할인 쿠폰인데…….”

정덕수는 자기 가게 간판을 가리켰다.

“여긴 뭐라 적혀 있는데?”

“형님 버거…….”

“근데 그걸 우리 집 문에 붙이고 가냐?”

그러면서 눈살을 확 찌푸리니 학생이 움찔했다.

솔직히 정덕수는 자기 얼굴이 썩 잘생기지 않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랬기에 좋은 인상 남기려고 항상 웃고 다녔다.

게다가 나이 든 아주머니들은 절에 있는 불상 닮았다고 했을 때는 특히 좋아했다.

부처님 그림처럼 인자해 보인다나 뭐라나.

하지만 성질부릴 때는 전혀 아니었다.

왜, 영화에 나오는 인상 더러운 조폭들 있지 않는가?

그중에서도 몇 손가락에 꼽을 정도로 무시무시하게 생겼다.

실제로 이발 잘못해서 머리카락을 바짝 잘랐을 때 누가 지명수배범으로 오해해 신고 당한 적도 있었다.

그때 경찰까지 출동했지만 다행히 동네 장사 3년 차라 누명(?)을 벗을 수 있었다.

하지만 한동안 위축된 것도 사실이었다.

어쨌든 그 사건 이후로 더욱 웃고 다녔고, 어지간하면 화를 잘 내지 않았다.

그런 정덕수가 폭발하고 말았다.

“너 인마. 용돈 한 푼이라도 벌라고 알바 하는 거 아는데, 그래도 이건 아니잖아!”

버럭 하면서 인상을 쓰니, 학생이 바로 빌었다.

“자, 잘못했습니다. 다시는 안 그럴게요.”

그러면서 고개를 팍팍 숙이니, 정덕수도 당황했다.

“그게 아니라…….”

“아저씨~ 살려 주세요!”

“누가 죽인대… 야! 말 좀 들어!”

오해를 멈추게 하려고 버럭 했는데, 갑자기 학생이 울먹이기 시작했다.

“끅, 끄윽, 진짜 잘못했어요. 저도 아는데, 사장님이 시켜서…….”

그러다 진짜 울면서 손을 삭삭 비비는데, 모르는 사람이 보면 오해하기 딱 좋았다.

“그러지 말고, 일단 들어와.”

“제발~ 요~”

여기서 애가 무릎이라도 꿇으면 진짜 신고 당할지도 몰랐다.

그런 위기감에 정덕수는 학생의 손목을 붙잡아 가게 안으로 데려갔다. 혹시나 누가 납치로 오해(?)할까 봐서 문까지 열어 둔 채로 말이다.

학생이 진정한 건 5분이나 지나서였다.

불고기 버거 세트를 모두 아작 낸 뒤에.

“그러니까. 너네 사장이 꼭 우리 집에는 빠뜨리지 말고 붙이라고 했다 이거지?”

“예.”

“왜?”

“그거야 저는 모르죠. 전 시키는 대로 하고 알바비만 받으면 되는데.”

그 말에 정덕수가 울컥했다.

하지만 가까스로 참으면서 최대한 점잖게 이야기했다.

“마. 이 형님도 예전에… 나쁜 짓 좀 해봤는데, 그래도 양심이 있어야지. 치킨집에 다른 치킨집 전단지 붙이는 건 인마, 하면 안 돼!”

“왜요? 어차피 돈 받고 하는 건데.”

“그럼 니가 전단지 붙이는 거, 누가 따라다니면서 떼면 뭐라고 할 건데? 돈 받고 하는 거면 괜찮겠네?”

“에이, 누가 그런 짓을 해요?”

“야! 니가 그런 짓을 하잖아!”

그럼에도 학생은 뭐가 잘못됐는지 모른다는 표정이었다.

하긴, 이제 중2다.

이제 겨우 세상물정을 알아갈 나이니 구박해도 모를 터.

게다가 동네형이 하는 거 도와주고 만 원 받고, 끝나면 엄마 버거 하나 얻어먹는다고 했다.

그래서 물었다.

“근데 거기 꺼하고 우리 꺼하고 뭐가 더 맛있냐?”

정덕수는 괜히 물었다 싶었다.

“그때 그 이야기 듣는데 머리로 막 피가 솟더라. 성기 그 새끼는 진짜…….”

“그러네. 걔 아버지랑 동생은 참 사람 괜찮은데, 걔만 왜 그러냐?”

김창주도 이해할 수 없다는 듯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시던 고량주를 탁 내려놓은 정덕수가 그랬다.

“확 그냥 나도 전단지 한 묶음 이빠이 찍어서, 그 집에 한 뭉텅이 집어던지려다 참았거든.”

강형우가 손가락을 튕긴 건 그때였다.

“그럼 우리도 하죠?”

***

술김에, 이야기 나온 김에 해 보자고 합의했다.

그렇다고 엄청 거창하게 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해서, 만든 게 이 쿠폰이었다.

내용은 의외로 간단했다.

선배가 쏜다!

00중학교 0회 졸업, 00고등학교 0회 선배입니다.

근처에서 작은 가게를 하고 있는데, 후배님들의 입학 기념으로 조금 저렴하게 해 주고 싶습니다.

입학식 딱 그 주일 동안 10% 할인하오니 많은 방문 바랍니다.

딱 이 정도 내용이었다.

그리고 쿠폰 뒷면에는 지성분식과 화끈오뎅, 형님버거의 간판과 약도를 실었다.

사실 큰 기대를 하고 한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번 해 보는 것도 좋겠다는 말이 나왔다.

그러면서 다들 자책을 했는데, 지금까지 이런 생각을 아무도 못했단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화끈 오뎅은 무려 30년 장사했다.

형님 버거도 4, 5년이나 됐고, 강형우도 거의 일 년이 다 되어 가는 상황이었다. 셋 다 배달 업종도 아니라서 굳이 전단지 같은 홍보물에 신경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그랬기에 뒤늦게나마 놓쳤던 걸 해 보자고 했는데 의외로 효과가 컸다.

“괜히 전단지 뿌리고 그러는 게 아니네.”

“그러게요.”

그때 왕언니가 똥집 튀김 접시를 놓으면서 끼어들었다.

“흐이구, 장사한다는 사람들이 그걸 몰라? 그거 뿌리고 안 뿌리고 천지 차이야.”

“예? 진짜요?”

“그래. 내가 예전에 닭발 장사를 했는데…….”

지금보다 작은 가게에서 했는데, 배달 전문이었단다.

하루에 전단지 300장 뿌리면 매출이 60%가 오르고 다음날도 30%가 더 나온다고 했다. 그래서 사나흘 간격으로 계속 뿌려야 장사가 된다는 거다.

설마 했는데, 그 정도나 차이가 클 줄 몰랐다.

“당연하지. 하루에도 몇 개나 생기는 게 배달업체인데, 진짜 맛있는지 아니면 사람들이 기억 안 해! 그래서 단골 생기기 전까지는 몇 달 내도록 뿌려야 한다고.”

역시 괜히 왕언니가 아니었다.

노하우라고 이야기하는데, 오픈할 때 아니면 신문보급소는 절대 피하라고 했다.

또, 업종에 따라 다르지만 퇴근하고 고단한 몸으로 집에 들어갈 때 전단을 봐야 가장 효과가 크단다.

“이것도 나름 과학이네요.”

“당연하지. 장사에 그냥은 없어.”

그 말에 공지혜가 똥집 튀김을 가리켰다.

“언니, 그럼 이건요?”

“서비스지! 고객을 낚는 미끼라고나 할까?”

그러면서 호탕하게 웃는데, 역시 장사 관록은 그냥 생기는 게 아니었다.

***

“요즘 유명한 집이 여기야?”

“어. 전에 와 봤는데, 대박! 진짜 맛있어.”

“근데, 그냥 동네 분식집 같은데?”

“야! 니가 몰라서 그런데, 원래 이런 데가 맛있는 거야. 솔직히 광안리 같은데 나가면 비싸기만 하지. 별루더라고.”

교복을 보니 부산여상이었다.

애들 다섯이서 떠들고 있는데, 지성분식의 문이 열렸다.

오뎅통을 들고 나온 건, 인정둥이였다.

특히 강인우는 머리에 젤을 발라 넘겼고, 정우는 갈색으로 염색까지 한 상태였다. 거기에 몸에 쫙 달라붙는 흰색 셔츠에 정장바지까지 한껏 빼입은 상태였다.

“저 오빠들 모델인가?”

“그러게, 괜찮게 생겼는데?”

“우와! 키 크다. 180은 그냥 넘겠는데.”

인정둥이는 오뎅통에 육수를 붓고, 열심히 분위기 잡으면서 장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하지만 입꼬리가 슬쩍슬쩍 올라가는 걸 보니 다 듣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때 커다란 검은 그림자가 인정둥이를 덮었다.

텅, 텅~

요란한 소리가 울리고 두 녀석이 머리를 감싸 쥐었다.

“니들, 내가 앞치마 입고 나오라고 그랬지?”

“아, 혀어엉~ 힘들게 머리 만지고 나왔는데.”

“이거 오만 원짜리 염색입니다!”

인정둥이가 불평하는데, 강형우는 가차 없었다.

“됐고! 영지가 그러더라. 셔츠에 떡볶이 국물 튀어서 오면 죽여 버리겠데.”

“헐.”

두 녀석은 누가 먼저라고 할 것 없이 가게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면서 냄비에 담아 온 양념을 통에 부었다.

그때 귓가를 스치는 소리가 들렸다.

“모델 오빠들 들어가고, 산적 같은 아저씨가 나왔어.”

“그러게 근육 돼지잖아. 어우 징그러워.”

순간 강형우의 이마에 핏줄이 불뚝 설 뻔했다.

하지만 고객은 고객.

강형우는 싱글싱글 웃으며 여학생들에게 말했다.

“아직 오픈까지 30분 정도 남았는데, 조금만 기다려 주세요.”

하지만 돌아오는 반응은 썰렁 그 자체였다.

쿠폰 빨인지 모르겠지만 손님은 나날이 늘었다.

사실 그냥 뿌린 게 전부가 아니었다.

홍태구가 일러 주길, 재활용도 가능하다고 했다.

들어온 쿠폰은 6,000원 이상 먹은 손님들한테 다시 주면 된단다.

다음에 들리면 또 할인해 준다고.

그럼 손해 아닌가 했는데, 홍태구가 딱 잘랐다.

“손님 없어서 손가락 빠는 것보다는 낫지. 그리고 보통 천 장 정도 뿌리면 한두 달 안에 대부분 회수가 돼.”

역시 그 말 대로였다.

작은 분식집에 둘 이상 오는 경우 아니면 어지간하면 6,000원이 넘을 일이 없었다.

화끈 오뎅도 튀김 많이 시켜야 가능했고, 무엇보다 형님 버거는 세트 둘 이상 되어야 그 가격이 나왔다.

그걸 형들한테 말해 주니 그렇게 해 보잔다.

덕분에 화끈 오뎅은 매출만 40%가 더 늘었고 형님 버거는 안정적으로 단골들을 확보할 수 있었다.

그 와중에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강형우였다.

인근의 유일한 파스타 집이었다. 버스 타고 몇 정거장을 나가야 제대로 된 걸 먹을 수 있었는데, 분식집치고는 고퀄리티라고 입소문이 난 것이다.

덕분에 여학생들의 방문이 끊이질 않고 이어졌다.

강형우는 처음에 큰 충격을 받았다.

업소용 대용량 스파2게티 면, 그중에서도 평이 좋다는 걸 썼는데 1인분 가격이 고작 200원 수준이었던 것.

덕분에 소스에만 무려 1,500원 가까이 투자할 수 있었다.

제일 비싼 건, 튀긴 삼겹살과 볶은 소고기였다. 저렴한 부위를 가져왔음에도 역시 고기는 고기였던 것이다.

“와~ 대박!”

“떡볶이도 진짜 매운데… 파스타랑 먹으니까 잘 어울린다.”

“이게 진짜 저 가격이라고?”

파스타만 먹으면 4,500원, 세트는 만 원이었다.

크림 파스타와 토마토 파스타, 거기에 딸려 나오는 매운 떡볶이 1인분.

덕분에 혼자 오는 손님만 아니면 대부분 세트를 먹었다.

때문에 강형우는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아! 우린 분식집인데.

그나마 다행인 건, 여학생들 러시 타임이 끝나면 학원생들과 강사들이 온다는 거였다.

덕분에 지성분식의 정체성은 아직 흔들리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얼마나 갈지 자신하기 어려웠다.

***

“이거, 적자네?”

말투도 가볍고, 표정도 그리 심각하지 않았다.

하지만 모니터 상의 수치는 그렇지 못했다.

-68만 원, -132만 원, +384만 원, +73만 원…….

김용철은 볼펜을 눌렀다 튕겼다를 반복했다.

원인은 알고 있었다.

배산회 모임 나가는 사람이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 동네 터줏대감급의 가게들이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이다.

충분히 예상된 일이기는 했다.

실제로 기린 빌딩 같은 게 들어서면, 효과는 길어야 반년이었다. 그사이에 단골 확보하고 안정적으로 자리 잡으면 꾸준히 수익이 지속되는데, 조성기 때문에 자충수를 뒀던 것이다.

바로 지속된 할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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