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3
33화 레벨이 안 돼
“자앙군! 저희를 거두어 주시옵소서!”
“장군의 천군만마가 되어 요식계를 호령하고 싶사옵니다.”
무슨 사극놀이냐 싶었다.
강형우가 까르보라면에 집중하고 있는데, 가게로 두 사람이 쳐들어왔다.
강인우, 강정우.
쌍둥이들이 찾아와 반갑게 맞았다니 갑자기 무릎을 꿇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석고대죄하는 것처럼 바닥에 넙죽 엎드렸다.
“뭐하는 짓이냐?”
“저희를 거두어 주시면 이 은혜 자손만대 길이길이 남길 것이옵니다.”
“장부는 스스로를 알아봐 주는 사람한테 충성을 다한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두 형제는…….”
“헛소리 말고!”
강형우가 선을 딱 그었음에도 인정둥이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저희들은 드디어 형님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깨달았습니다. 이에 보답고저 도움이 되고자 찾아온 겁니다.”
“예, 그러하옵니다. 그동안 받은 용돈이 곧 저희에 대한 넘치는 사랑이었음을 뒤늦게 깨달았기에 이렇게 발걸음 하였습니다.”
강형우는 피식 웃으며 폰을 꺼냈다.
“어, 영지야!”
순간 인정둥이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형님. 그 간악한 무리의 사특한 세 치 혀에 농락당하시면 아니 되오!”
“장부가 뜻을 세웠으며 흔들리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습니다. 중상모략이 있을지언정 제 의지는 확고합니다.”
인정둥이들의 과장된 행동에 강형우는 피식 웃었다.
아주 충신들이 여기 다 있었다.
하지만, 이놈들아 번지수 잘못 찾았다.
“뭐? 그래? 알았다.”
강형우는 전화를 끊고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일어나라는 신호였다.
인정둥이들은 여전히 무릎을 꿇은 채 꼼짝도 하지 않았다.
“셋 안에 일어난다. 실시!”
“시, 실시.”
“옙! 저는 벌써 일어났습니다.”
강형우는 두 동생들의 처분을 어떻게 해야 할지 잠시 고민했다.
졸업식 끝나자마자 여행 가고 싶다고 졸랐다.
뭐, 그 정도야 이해할 수 있었다.
3월에 신체검사 받고 바로 지원하면, 4월 말이나 5월에 입대 예정이었다.
그러니 잠깐의 자유 정도는 허락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세상에 공짜는 없다.”
강형우의 말에 강영지가 보탰다.
“가고 싶으면 벌어서 가.”
그때 박혜숙이 손뼉을 쳤다.
“안 그래도 가게 일손이 필요했는데, 잘 됐네! 일도 하면서 용돈도 벌고…….”
결국 인정둥이들은 국밥집으로 끌려(?) 가고 말았다.
그게 보름 전이었다.
일주일 정도 바짝 일해서 둘이 합쳐 목표금액 백만 원을 모았단다. 그래서 이제 여행 날짜만 기다리는데 너무 눈치 없게 행동했다.
집안일이라도 제대로 하면 모를까 하루 종일 TV 보고 게임만 하고 잠만 잤다.
가끔 친구들 만나서 술 마시고 새벽에 들어오다가 강영지한테 딱 걸린 거다.
결국 최후 통첩이 떨어졌다.
국밥집 가서 일하든가, 시골 가서 일손을 돕든가 정하란다.
해서 인정둥이들이 고민 끝에 정한 도피처가 하필 지성분식이었다.
여기까지가 강영지가 일러준 내용.
이놈들이, 가게일이 얼마나 바쁜데…….
아무래도 만만하게 보였나 보다.
“괘씸한데?”
강형우의 날카로운 눈빛에 인정둥이들이 다급해졌다.
“자앙군. 저희의 뜻은 그런 게 아니옵니다.”
“예, 맞습니다. 형님의 고생을 몸소 겪어 보고자…….”
피식 웃은 강형우는 짧게 말했다.
“됐고, 시급 이천 원!”
“예?”
“싫음 말구.”
인정둥이들은 서로를 쳐다보며 눈빛을 교환했다.
시급 이천 원이면 짜도 너무 짰다.
둘이 합쳐 사천 원이면, 하루 열 시간에 고작 사만 원인 셈이니까.
하지만 며칠간 평화로운 생활을 만끽했기에, 가능하면 일 지옥은 피하고 싶었을 거다.
역시나 예상대로의 답이 나왔다.
“하겠습니다. 거둬만 주시면…….”
“예. 지성분식의 정직원을 목표로 열심히 뛰겠습니다.”
인정둥이들이 주먹을 불끈 쥐어 가며 의지를 표명했다.
하지만 강형우도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지각하면 10분에 벌금 천 원. 무단결근은 벌금 만 원. 그리고 중간에 도망가면 월급 없다.”
받을 생각은 없지만, 이 정도는 해 줘야 애들이 긴장할 것 아닌가.
“형님. 세상에 그런 갑질은 사라져야 하는 걸로 아뢰오.”
“아아! 형제간의 우애가 바닥에 떨어졌구나.”
이어지는 사극시트콤에 강형우가 버럭했다.
“시끄럽고. 할 거야 말 거야?”
“합니다. 해요.”
“전 벌써 걸레 잡았습니다. 청소부터 하면 되죠?”
“오빠, 가게가…….”
공지혜는 사방팔방 번쩍번쩍 광이 나는 가게를 보고 화들짝 놀랐다.
“아! 간만에 대청소 한 번 했어.”
“그랬… 어요? 그럼 저 있을 때 하지.”
공지혜가 괜히 미안한 표정을 짓자, 강형우는 엄지를 들어 주방을 가리켰다.
거기 열심히 땀 흘리면서 뛰어다니는 인정둥이들이 있었다.
강형우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안 그래도 사람 필요했는데, 잘된 거지.”
***
“라면!”
“예, 라면 나갑니다.”
“김밥!”
“예, 김밥 나갑니다.”
강형우는 주방에만 있었고, 공지혜도 김밥만 말았다. 서빙과 밖의 오뎅까지 인정둥이 둘이서 맡고 나니 한결 편해졌던 것이다.
하지만 몸이 편하다고 마음까지 편한 건 아니었다.
강형우는 틈틈이 인터넷을 하며, 여러 가지를 고민했다.
덕분에 대충 메뉴가 나왔는데.
일단 이름은 까르보라면으로 정했다.
간단히 말하면 크림소스에 버무린 라면이었다.
우뚜기 크림스프와 양송이 스프를 8대2의 비율로 끓이고 여기에 생크림과 우유를 더한다. 거기에 감칠맛을 더하는 닭육수가 추가된다.
여기에 큼직하게 썬 감자와 야채를 넉넉히 넣고 30분만 끓이면 소스는 완성이었다.
손님한테 나갈 때는 여기에 치즈를 뿌리면 된다.
문제는 미묘한 부족함이 있다는 거다.
첫맛은 고소하고, 먹을수록 치즈향이 올라왔다.
하지만 5분이 지나면 급격히 느끼해지면서 김치를 찾게 되는 것이다.
참 신기했다.
파스타 집에서 먹을 때는 끝까지 그런 게 없었다. 해산물이나, 베이컨이 맛을 잡아 줘서 그런지 마지막까지 고소함이 유지되었던 거다.
“하아! 실패인가?”
확실히 까르보나라 파스타는 일반인들의 영역이 아닌 모양이었다. 그럴듯하게는 되는데, 확실한 맛을 내기가 무척 어려웠던 것이다.
이제야 공지혜의 말이 이해가 되었다.
학교 앞에서 육천 원 정도에 파는 맛!
그 때문에 전문점이 아니면 아예 주문 자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하지만 그 편견만 깰 수 있다면 대박이란다!
비싸서 자주 못 먹는 거지, 음식 자체를 맛없다고 하는 여자들은 없다는 것이다.
그렇게 며칠을 고민하는데, 구원투수가 등장했다.
단골손님이자, 외식업계의 스페셜리스트 강주혁이었다.
“형우야! 이게 무슨 냄새냐?”
“예? 아, 신메뉴 준비한다고 이것저것 해 보고 있어요.”
“그래? 맛 한번 볼 수 있을까?”
“그게…….”
잠시 고민하던 강형우는 에라 모르겠다는 심정으로 까르보라면을 해서 가져왔다.
강주혁은 포크로 딱 네 번 먹었다.
“푸하. 푸하하하하.”
막 웃는데, 그래서 강형우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웃음을 멈춘 강주혁은 면 사이를 헤집었다.
“1㎝ 큐브로 썬 감자, 호박, 고구마. 여기에 양파, 브로콜리, 채 썬 양배추라……. 이 정도면 건더기는 충분하고 식감도 나쁘지 않아. 하지만 갈 길이 머네.”
“많이 이상한가요?”
“풋. 푸하! 에라이~ 미친놈아. 넌 네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하고 있는 줄 아니?”
“예?”
강형우가 영문을 몰라 하는데, 강주혁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손님을 바보로 보냐 이거야. 이건 결국 혀속임밖에 안 돼. 아니, 맛만 충분하다면 상관없기는 하지. 정작 문제는 따로 있는 건데…….”
강주혁은 자리에서 일어나 주방으로 향했다. 스윽 둘러보며 몇 번 고개를 끄덕이더니 다시 자리에 앉았다.
“쉽게 말하면, 이건 포기해라.”
“예? 왜요?”
“이런 말하면 기분 나쁠 수 있는데, 하아~ 어떻게 말해야 하나?”
강주혁은 진심으로 고민하고 있었다.
그걸 알기에 강형우는 더욱 긴장할 수밖에 없었다.
짧게 한숨을 내쉰 강주혁은 사형선고에 가까운 말을 꺼냈다.
“미안하다. 솔직히 말할게. 넌 아직 이 음식을 다룰 레벨이 안 돼.”
***
멍했고, 띵했다.
마치 커다란 쇠망치로 머리를 맞은 것 같았다.
이게 그렇게 못 만든 음식이었나?
아니면, 내 선택이 잘못된 건가?
대체 뭐가 부족하다는 거지?
순간 무언가가 울컥하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하지만 강주혁은 진심으로 말하고 있었다. 그랬기에 감정이 급속도로 사그라들면서 대신 그 자리를 궁금증이 채웠다.
“예? 레벨이… 안된다고요?”
“그전에 물어 볼게. 왜 이 요리를 팔려는 거야?”
“그야…….”
강형우는 솔직히 말했다.
일전에 파스타집을 가 봤는데 여자 손님들이 많더라. 생각해 보니 이 동네는 여학생도 많은데, 그 고객층에 맞춰진 음식들은 거의 없었다.
만약 이걸 제대로 만들 수 있다면 잘 팔릴 것 같았다.
“신메뉴에 접근하는 방향은 아주 훌륭해. 분식집 사장이면 당연히 그렇게 생각해야지.”
강주혁이 칭찬했지만, 기분은 썩 좋지 않았다.
아직도 머릿속에 레벨이 안 된다는 말이 머물고 있었으니까.
“전문점 혹은 고급 레스토랑에서도 철저히 준비해서 만드는 게 까르보나라 파스타야! 이걸 분식집에서 팔겠다? 아이디어는 좋아. 소스를 보면 충분히 노력을 기울인 것도 알겠고.”
“예. 많이 해보니까…….”
“노! 내가 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야. 부족한 설명을 다시 해 줄게. 자! 분식집 기준으로 여기는 하이 레벨이야. 그것도 상당한 퀄리티를 가진 가게지. 이해해?”
강형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여긴 양식집 기준으로 어느 정도 레벨이 될까?”
“예?”
“분식집 기준 하이레벨이라고, 양식집 하이레벨이 되는 건 아니라는 거지. 물론 기본 솜씨가 있으니 그럴듯하게 만들 수는 있어. 하지만 네가 얼마나 터무니없는 짓을 시도하는지 설명해 줄게.”
강주혁은 조심스럽게 설명했다. 가능하면 강형우가 기분 나쁘지 않게 배려하면서.
강형우가 만들려는 건, 양식 파스타의 분식집 어레인지 버전이다.
이건, 거의 새로운 요리를 창조하는 수준으로 힘든 일이다.
하지만 아직 양식에 대한 이해도가 높지 않다.
특히 까르보나라 파스타에 대한 공부가 부족하다.
강주혁이 그렇게까지 말하니, 강형우는 어안이 벙벙했다.
“그러니까. 여기서 크림소스 라면을 만들어 판다는 게 그렇게 거창한 건가요?”
“어! 발상도 신선하고, 접근 방향도 좋아. 내 학생이라면 별 다섯 개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로. 아! 잠깐만.”
강주혁은 폰을 들더니 어딘가 전화를 했다.
그런 뒤 다시 까르보라면에 대해 하나하나 분석하기 시작했다.
“일단 맛이 끝까지 이어지지 않는 건…….”
“스튜와 소스는 다른 거지. 까르보나라의 포지션은 그 중간이긴 한데…….”
“베이컨 대신 대패 삼겹이라고? 그거 좋은데? 그럼 절임? 아니면 조림?”
그렇게 한 30분 정도를 이야기한 것 같았다.
그때 가게 문이 열리고, 한 사람이 들어왔다.
“어! 태오야. 가져왔어?”
“예, 여기.”
“수고했다. 가 봐.”
“예, 형님.”
뭐가 뚝딱하는 사이 청년은 비닐 하나를 놓고 사라졌다.
강주혁은 피식 웃더니 갑자기 소매를 걷었다.
“내가 시범을 보여 줄게.”
***
친하게 지내면서 잊고 있었다.
형동생 하면서 술 몇 번 마셨기에 같이 음식점 하는 업계동료 정도로만 생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강주혁은 외식업계의 전설적인 인물이었다. 그 말을 증명하듯, 무시무시한 맛을 만들어 낸 것이다.
그는 그저 재밌는 여흥이라고 했다.
하지만 강형우에겐 신세계였다.
오기가 생긴 건, 그래서였다.
이틀 뒤, 강형우는 드디어 손님에게 내놓을 수 있는 까르보라면을 완성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