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
31화 드셔보세요
아!
순간 머릿속에서 뭔가가 폭발했다.
왜, 까르보나라에 꽂혔는지 그 이유를 알 것 같았다.
사실 ‘핸섬 파스타’ 입구에서 기다릴 때, 많이 어색하고 민망했다.
거의 열 명이 넘는 사람들 가운데, 남자는 오직 자신뿐이었으니까.
그만큼 이 음식은 여성들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특히 강영지와 공지혜는 정말 맛있다고 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좋은 날 돈 써가면서 먹을 가치가 있다고 평가했다.
오히려 남자들이 비싼 술집 가서 일본술이나 양주시키는 것보다 훨씬 저렴하다나?
거기에 팍 꽂히고 눈이 돌아간 거다.
여긴 주택가였다.
지하철 역 주변을 제외하면 상권이 거의 없었고, 도로에서 한 블록만 들어가도 조용한 동네였다.
그래서인지 학교가 많았다.
역 반경 1㎞이내에 초등학교만 네 군데였다. 동명, 연미, 배산, 수미가 있었고, 중학교도 네 군데, 고등학교도 네 군데였다.
가장 중요한 건, 고등학교 두 곳이 여학교라는 것!
그런데, 여학생들을 즐겨 찾는 음식은?
없었다.
혹시나 해서 다시 생각해 봤다.
화끈 오뎅부터, 치킨집에 버거집까지 그 어디도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메뉴가 따로 존재하지 않았다.
그 순간 느낌이 왔다.
이거, 잘만 하면 대박이겠구나!
“일단 만들어 봐요. 그리고 고민하면 되죠.”
확실히, 공지혜의 말은 일리가 있었다.
해놓고, 맛을 보고, 다른 음식들과 조화를 보면 된다.
그전에 까르보나라 파스타와 비슷한 요리들을 먼저 찾아봤다.
일단 크림 파스타가 제일 많았다. 그래서 과거의 경험을 살려 초저예산 크림 파스타를 만들어 봤다.
재료는 레토르트 양송이 스프와 크림 스프였다. 거기에 시판용 생크림을 추가하니 4,600원, 우유와 치즈를 추가하니 총비용이 7,000원이었다.
나오는 분량은 대략 4인분.
강형우는 먼저 물에 스프를 적정 비율로 때려 넣고 끓였다.
적당히 풀린 상태에서 우유를 붓고, 생크림과 치즈를 넣으니 대충 비슷한 소스가 만들어졌다.
여기에 삶은 사리면을 넣고 볶으니… 실로 오묘했다.
“이거 사람이 먹을 수는 있는 건가?”
겉으로 보기엔 향도 비슷했고 그럭저럭 괜찮을 것 같았다.
하지만 젓가락으로 살짝 찍어 맛보니, 그저 졸인 우유에 끓인 라면이었다.
거기에 크림과 치즈 맛이 조금 강하다는 것 정도?
공지혜도 한 입 먹더니 인상을 찌푸렸다.
“어우~ 느끼해. 진짜 이거 팔려고요?”
“그럴 리가 있나? 일단 프로토 타입인데.”
전에 먹은 것과 전혀 다른 음식이었지만, 나름 실마리는 잡은 것 같았다.
베이스는 거의 비슷한 느낌으로 다가왔으니까.
만약 여기에 야채가 들어가고, 닭육수 맛이 더해지면 좀 더 풍성해질 게 틀림없었다.
문제는 베이컨이었다.
이걸 쓰면 저렴하게는 못 만든다.
하지만 짭짤함과 고기맛을 내기에는 이만한 재료가 없었다.
그러다 떠올렸다.
사서 쓰는 게 비싸면?
직접 만들면 된다!
***
“야! 넌 필요할 때만 나 찾냐?”
정분석이 버럭 하는 게 수화기 너머로도 느껴졌다.
“미안해요. 부탁할 사람이 형밖에 없어서.”
“에라, 벼룩의 간을 빼먹어라.”
“이거 잘되면 진짜 제 간 빼 드릴게요. 요즘 운동 열심히 했더니 막 웅담 나오는 게 느껴지는데…….”
“헛소리 말고! 박 부장님한테 연락해 놓을 테니까 기다려.”
“감사합니다. 형님!”
“감사는 됐고. 다음 휴일 때 같이 보기로 했다. 그때 얼굴이나 한번 보자.”
“옙!”
뚝, 뚜욱~
통화가 끊기자 강형우는 주먹을 번쩍 들었다.
사실, 혼자서 모든 걸 하려니 막막했다.
인터넷을 보고 블로그를 뒤지고, TV 방송을 살피면서 대략적이나마 감을 잡았다.
결론은 역시 까르보나라는 안 된다.
하지만, 까르보나라 파스타만으로는 안 된다는 것뿐 방법이 없지는 않았다.
가격은 일단 4,500원으로 잡았다.
새로운 음식에 도전할 수 있는 심리적 저항선이 딱 5,000원이다. 그걸 넘게 되면 애초에 주문조차 없을 가능성이 컸던 것이다.
“이거 장기 프로젝트인가?”
예상 기간은 최소 한 달.
빠르면 더 일찍 될 수도 있고, 늦어도 3월까지는 완성해야 했다.
때문에 강형우는, 지금껏 살면서 겪어 보지 못했을 만큼 바쁘게 움직여야 했다.
대형 식자재 수입유통 회사!
일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그런 곳이었다.
왜냐하면, 여긴 말 그대로 대량 주문만 받는다. 개인을 상대로 하는 소량 판매는 하지 않는 것이다.
강형우는 정분석의 도움을 받아 박일복 부장을 만났고, 그 덕에 여길 소개 받을 수 있었다.
사실 내 밥상에서 일할 때, 배달 파트에서 조리 파트를 거쳐 영업까지 했었다.
하지만 자재 구입 쪽은 거의 정분석과 가족들이 맡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건 외식업계의 특성 때문이었다.
식품 원자재가 얼마에 들어오고 가공 후 얼마에 나가는 걸 알게 되면 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으니까.
생각해 봐라.
분식집 라면 한 그릇 원가가 고작 삼사백 원이란 걸 알게 되면, 그걸 3,000원 주고 선뜻 사먹겠는가?
실제로 얼마 전의 커피 논란만 해도 그랬다.
한 잔 만드는데 들어가는 원가는 고작 300원, 하지만 판매 가격은 4,000원 선이었다.
그 이야기가 퍼지자마자 인터넷은 난리가 났다.
커피 프랜차이즈들은 저마다 해명하기 바빴고, 한동안 관련 산업들이 휘청하기도 했다.
나중에야 월세, 인건비, 인테리어 등등이 포함된 가격이고, 일종의 장소 대여비 개념을 겨우 이해시킬 수 있었다. 그 덕에 무마되긴 했지만 당시에는 정말 심각했던 것이다.
하지만 이후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커피 팔면 많이 남는다더라!
그런 소문이 퍼지면서 전국적으로 커피 전문점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던 것이다.
이후 외식업계 쪽에서는 가능하면 식품 원가를 밝히지 않는 쪽은 선택했다. 때문에 자재 매입은 본인이 직접 하거나 믿을 수 있는 가족들만 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알 사람은 다 알지만.
강형우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한 건 그래서였다.
“우와. 진짜 크네요.”
진심 어린 감탄에 박일복 부장도 웃음을 터뜨렸다.
대지 면적 200여 평에 거의 창고식으로 된 건물이었다. 거의 2층 높이까지 엄청나게 많은 박스들이 쌓여 있었는데, 그사이로 여러 대의 지게차들이 움직이고 있었던 것이다.
“이쪽은 공장 납품용 자재 창고입니다. 업소용 수입 제품 목록은 저쪽 사무실에 따로 있습니다.”
박일복을 따라가니 작은 사무실이 나왔다.
벽면에 있는 건, 한 뼘만 한 두께의 책자들이었다. 그게 목록마다 한 권씩 해서 서른 개 정도가 있었다.
한식, 일식, 중식, 과일, 수산물 등등 다양했는데, 강형우는 유심히 살피다 그중 하나를 펼쳤다.
집중해서 살핀 덕에 쉽게 목록을 찾을 수 있었다.
강형우는 공손하게 부탁했다.
“부장님, 이거하고 이 제품들, 국내 유통업체 연락처 좀 알 수 있겠습니까?”
***
“야이! 미친놈아!”
김창주는 버럭할 수밖에 없었다.
강형우가 내어놓은 튀김 신제품, 그게 너무 어이가 없었던 거다.
안 그래도 저녁에 다들 모이자고 한 강형우였다.
장소는 화끈 오뎅이었다. 그래서 다들 기다리고 있는데 강형우는 커다란 박스 하나를 가지고 왔다.
그런 뒤 주방으로 들어가 뚝딱뚝딱 뭔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게 이거였다.
“아잉~ 형님들 드셔 보시고 평가해 주세요.”
애교 넘치는 위협(?)에 다들 피식 웃었다.
“그래 일단 먹어 보고 평가하자.”
정덕수가 손짓하자 이내 커다란 접시가 놓였다.
거기에는 여러 종류의 튀김이 쌓여 있었는데, 몇 개는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 못한 거였다.
“뭐냐 이건?”
“헐. 이게 튀김?”
통닭 사장 김현우는 입을 쩍 벌렸다.
이혁기도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젓가락으로 튀김을 뒤적거렸고, 김창주는 손으로 이마를 감싸 쥐었다.
“하우야~ 나보고 이걸 만들어서 팔라고?”
그냥 봐도 쉽지 않아보였다.
일단 크기부터가 남달랐다. 반죽에 뭘 섞었는지 색상도 약간 노르스름했고, 향도 오묘했다.
“근데 이건… 생뚱맞다?”
정덕수가 꺼낸 건 큼지막한 가래떡 튀김이었다.
하긴, 그럴 수밖에 없겠지.
“일단 그것부터 드셔보세요. 설명은 나중에 드릴게요.”
강형우가 재차 권하자 다들 떨떠름한 표정으로 한입 물었다.
파사삭, 쫀득쫀득.
“어? 뭐야?”
“그러게, 안에 뭐가 있는… 어! 흐른다.”
김현우의 호들갑에 다들 놀랐다.
큼직한 가래떡 사이에서 노랗고 걸쭉한 뭔가가 쭈르륵 흘렀다.
동시에 아주 짧은 순간, 향이 퍼졌다.
“설마 이거… 치즈?”
“딩동댕!”
강형우가 손뼉을 치자 김창주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떡 안에 치즈를 넣었다고?”
“예.”
“어, 어떻게?”
피식 웃은 강형우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한번 맞춰 보라는 그런 표정이었다.
김창주는 인상을 찌푸렸다.
제품 중에 떡치즈 종류가 다양하게 있기는 했다.
하지만 아직 저만큼 큰 건 보지 못했다. 대부분 엄지손가락보다 조금 큰 정도였고, 애초에 튀김용으로 나오는 경우는 없었으니까.
“간단해요. 어차피 물떡 팔잖아요.”
놀랍게도 물떡은 부산에서만 판단다.
원래 노점상의 경우, 오뎅 국물에 떡을 담갔다가 익으면 건져 냈다. 그걸 고추장 소스와 비벼서 떡볶이로 팔았고 오뎅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부산처럼 오뎅하고 떡을 담가서 그냥 파는 경우는 거의 없단다.
“불린 떡 가운데 구멍 뚫고 거기에 치즈 넣어서 튀기면 이렇게 되요.”
강형우가 해답을 알려 줬지만 김창주는 답답했다.
“아니 그걸 모르는 건 아닌데, 어떻게 만들었냐니까?”
“당연히 구멍 뚫어서 주사기로 쭈욱 했죠.”
“그게 아니라…….”
김창주가 복창 터지기 직전에 강형우가 뭔가를 꺼내왔다.
캐찹, 머스터드 같은 소스를 담는 빨간 통, 그리고 노란 팩이었다.
“이건 뭔데?”
“왜, 요위에 호프집 가면 나초 찍어먹으라고 치즈 소스 내오잖아요.”
“아!”
정덕수와 이혁기, 김현우가 동시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어제 셋이서 맥주집 가서 한잔한 모양이다.
“제가 시범을 보여 드릴게요.”
치즈 소스를 통에 담고 가래떡의 구멍 난 부분에 끝을 끼웠다. 그대로 쭈욱 짠 뒤, 반죽에 담그면서 손가락으로 막아 주면 된다.
“끝이야?”
“예. 이걸 바로 튀겨 주면 되요.”
기름에 넣자 치즈떡이 치이익 하고 튀겨지기 시작했다. 금세 건진 튀김은 아까 먹은 것하고 거의 차이가 없었다.
“일단 과정은 간단하네.”
“예. 다른 것도 별거 없어요.”
그러면서 하나하나 시범을 보이는데, 특별할 건 없지만 튀김은 다르게 나왔다.
일단 깻잎전.
보통은 깻잎 한 장에 뭔가를 넣고 반 접어서 튀긴다.
하지만 강형우는 깻잎에 만두소 비슷한 걸 넣고 끝에 반죽을 살짝 묻힌 후 그 위에 깻잎 한 장을 더 덮었다.
그렇게 해서 튀기니 크기가 훨씬 커질 수밖에 없었다.
“드셔 보세요.”
다들 먹는데, 표정이 재밌었다.
“어라? 뭐가 씹히는데?”
“그러게, 오독오독? 이게 뭐지?”
김창주는 이제 놀랍지도 않다는 얼굴로 물었다.
“고추튀김 속하고 달라?”
“예. 오징어 대신 천사채를 다져서 넣었거든요. 아주 쪼오금!”
“천사채라면…….”
“예. 횟집에서 회 밑에 까는 거 있잖아요.”
“그거, 못 먹는 거 아냐?”
강형우는 피식 웃은 뒤 설명을 이어나갔다.
천사채라고, 반투명한 국수가 있다.
이건 다시마를 물에 담갔을 때 나오는 알긴산 성분에 전분을 섞어서 만든 거다.
그냥 씹히는 식감만 좋을 뿐 특별한 맛은 없었다.
중요한 건 엄청나게 싸다는 거다.
“삼천 원짜리 두 봉지 사서 쓰면, 대충 깻잎전 천 개 정도 나오겠네요. 개당 3원 정도 되려나?”
“헐.”
다들 어마무시한 원가에 충격 받은 모양이었다.
단지 김창주만이 납득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일 뿐.
“고추튀김 만두소에 오징어 대신…… 깻잎전은 이걸 넣으면…….”
짧은 시간 조리과정을 되짚은 김창주는 씨익 웃었다.
하지만 강형우의 마법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